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62화 (62/151)

062. 사전준비

19.

「드디어 안개를 넘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의 도르마. 고병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계속 미뤄 왔는데 이젠 결실을 볼 때인 것 같아서. 여기서 언제까지고 태평하게 지내는 것도 뭐 나쁘진 않겠지. 그런데 우리의 최종 목표가 뭐냐?」

그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고블린들이 입을 헤 벌렸다.

「아, 아스빌람의······.」

「그래! 아스빌람의 재건이다. 내가 잘은 몰라도 아스빌람이 이런 산골에만 박혀 있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않냐, 도르마?」

「맞습니다! 아스빌람은 천하를 아우르고 전 대륙을 호령하던 최강의 왕국이라고 들었습니다!」

도르마가 흥분된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그의 눈동자엔 강한 열망이 넘실거렸다.

고병갑도 덩달아 감정의 격양을 느꼈다.

「그래. 그러니까 나가자! 나가서 이런 소꿉장난이 아닌 진짜 왕국을 세우는 거야! 안개밖에 어떤 괴상한 것들이 있더라도 겁먹을 필요 없다. 누가 감히 우리 앞을 막겠어? 그렇지 않냐!」

「그렇습니다!」

「로드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가자! 가자!」

「우워어어어!」

갑자기 식당이 떠들썩해졌다. 에아가 화들짝 놀라 숟가락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고병갑은 손을 휘휘 저으며 고블린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진정들 해라. 말했듯이 지금 당장 나간다는 말은 아니니까. 앞으로 딱 한 달간 준비 기간을 가질 거야.」

「준비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음. 좋은 질문이다, 키리얀.」

그가 식당 내부를 넓게 둘렀다.

「목표는 이곳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거다. 완벽한 자급자족 체계와 기반시설을 갖춰야 해. 식구도 지금의 세 배는 돼야 할 거고.」

그가 잠시 뜸 들였다. 다음으로 꺼낼 말은 선뜻 내뱉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가지 않고 이곳에 남을 녀석들을 꼽아야겠지.」

「으응!?」

「모두 데리고 갈 수는 없어. 누군가는 남아서 이곳을 관리해야 하니까.」

고블린들이 짐짓 숙연해졌다. 어쩌면 자신이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우려하는 듯했다.

「일단은 그렇게만 알고들 있어라. 그리고 고붕이.」

「예, 옙!」

「너는 밥 다 먹으면 나 좀 보자.」

고붕이의 눈동자가 사뭇 떨렸다. 녀석은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조금은 소란스러운 아침 식사가 끝났다.

고병갑은 자신의 거처로 갔다. 넓은 책상에 커다란 도화지를 펼치고 그림이나 필기 따위를 끄적였다.

그러고 있으려니 고붕이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로드시여. 저 왔습니다.」

「어, 왔구나. 이리 와서 앉아.」

「옙.」

고병갑과 고붕이가 마주 앉았다. 평소와 달리 고붕이의 표정이 어둡다. 로드가 어떤 용무로 자신을 부른 것인지 짐작하는 듯했다.

「내가 왜 너를 불렀는지 알겠어?」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말해봐.」

「저더러. 여기에. 남으라는 거. 아닙니까?」

「맞아.」

고붕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고병갑은 쩝 입맛을 다셨다.

「싫으냐?」

「그,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로드와. 헤어진다는 게. 슬퍼서.」

「고붕아.」

「옙!」

「나는 고블린 중에 네가 제일 좋다. 가장 믿는 것도 너고.」

그가 테이블 위 도화지를 가리켰다. 새하얀 백지 상단부엔 알파벳으로 뭔가 적혀 있었다.

‘Somnium’이란 단어였다.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냐?」

「모르겠습니다.」

「솜니움. 꿈이란 뜻이야.」

「꿈······ 말입니까?」

「그래. 난 이곳의 이름을 솜니움이라고 지을 거야. 왜냐면 바로 여기서 우리의 꿈이 시작됐으니까. ······좀 유치하냐?」

「아, 아닙니다! 멋집니다!」

고붕이가 얼른 손사래쳤다. 덕분에 고병갑이 피식 웃었다.

「후후. 아무튼 그렇게 소중한 곳이라면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너한테 맡기는 거다.」

「아······.」

고붕이가 작게 탄복했다.

고병갑은 헛기침을 몇 번 하여 목을 가다듬었다. 그 후 한껏 진중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흠흠. 오늘부로 고붕이 너를 솜니움의 영주로 임명하겠다.」

「여··· 영주. 말입니까?」

「그래. 솜니움에서만큼은 네가 로드란 말이야. 그러니까 책임지고 다스려라.」

「그, 그렇지만. 저는. 자신이······.」

「야야, 너무 부담 갖지 마. 영주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니까. 그냥 지금 하는 대로만 해주면 돼. 애들 잘 가르쳐주고, 작업도 열심히 하고.」

고붕이는 몇 번이나 말을 삼켰다.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녀석의 얼굴에 의욕이 싹텄다.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옙!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애들한테는 내가 나중에 공식적으로 선포할 테니까 그전까지는 조용히 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안개를 넘어가더라도 솜니움엔 주기적으로 찾아올 거야. 언제든 소통할 수 있게 연락망 역시 갖출 생각이고. 그러니까 영영 못 볼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돼.」

「저, 정말입니까?」

「얀마.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겠냐?」

「아닙니다!」

「그래. 아무튼 떠나기 전에 네게 가르쳐줄 게 많으니 긴장하고 있어라.」

「옙!」

고붕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걸 보니 고병갑도 안심이 되었다.

20.

2026년도 벌써 하루가 지났다.

고병갑이 눈을 뜨자마자 방문한 곳은 중고차 매장이었다. 당연한 말이다만, 밥 먹으러 간 것은 아니다.

“이게 21년식인데 주행거리도 9만밖에 안 되고 완전 새 차에요. 어디 가서 이 가격에 이런 매물 못 구해요.”

딜러의 현란한 혀 놀림.

고병갑은 파란색 1t 트럭을 쓱 훑었다. 탄탄하니 잘 굴러갈 것처럼 보였다.

“네. 이걸로 할게요.”

“아유, 좋은 선택이십니다!”

이날 고병갑은 1t 트럭 두 대를 구매했다. 다 합쳐도 새로 뽑은 SUV 값의 반도 되지 않았다.

구매한 트럭을 몰고 간 곳은 애용하던 고물상. 거기서 200L 드럼을 10통이나 샀다. 모두 깨끗하게 세척된 것이었다.

쉴 틈이 없다. 그는 드럼통을 한가득 싣고 동네에서 가장 싼 주유소를 찾았다. 선 자리에서 드럼통 10개를 가득 채우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열 드럼이면 못해도 반년은 쓰겠지?’

그는 트럭과 경유 드럼을 몽땅 아스빌람으로 보냈다. 그걸 본 고블린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 로드. 이거. 뭐야?」

「앞으로 너희가 타고 다닐 거.」

「엥?」

낮 동안은 몇몇 똘똘한 고블린을 꼽아 운전을 가르쳤다. 차라는 것이 워낙 위험한 물건인지라 고병갑도 적잖이 긴장해야 했다.

「히, 히익!」

「얀마! 브레이크! 브레이크 밟아!」

「브, 브레이크? 헉!」

「그건 악셀이잖아!」

뭐, 예상한 대로 고블린들의 운전 센스는 최악이었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조차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세 번째 고블린을 태울 때 그의 혈압은 한계점을 돌파했다. 다섯 번째에 이르러선 본인이 성격 파탄자임을 깨닫게 됐다.

「야아아아!!! 차 세워!」

「예, 옙!」

「너 나한테 억하심정 있냐? 불만 있어? 있으면 말로 해 인마! 운전으로 시위하지 말고!」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러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밟으면 가고 떼면 멈추는데 뭐가 어려운 거냐고!」

「히끅! 죄, 죄송합니다!」

「내려!」

「흐윽!」

「로··· 로드. 너무. 무섭다······.」

믿었던 고붕이마저 말을 타니 진지하게 때려치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병갑이 불같이 화를 내면 고블린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마음 여린 녀석은 끝내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

「음? 이게 다인가요? 되게 쉬운데요?」

인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구경 나온 에아가 너무도 쉽게 차를 몰아버린 것이다.

그녀는 아스빌람을 여유롭게 한 바퀴 돈 뒤에 차를 세웠다.

「나는 이 운전이란 게 아주 마음에 들어요! 온종일 하고 싶을 정도로요.」

「고맙다······ 진짜 고마워.」

「어머? 당신 지금 우는 건가요?」

조수석에 탄 고병갑은 눈물을 흘렸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고병갑과 고블린, 양자에게 상처만 남긴 운전 교육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그들은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 속에서 유류고를 조성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과 그다음 날에도 운전 연수는 계속됐다.

고블린들의 운전 실력이 절망적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차는 무조건 필요해.’

차의 활용방안은 무궁무진하다.

효율적인 작업, 많은 양의 물자 운반, 신속한 이동까지. 이 척박한 곳에선 그야말로 만능열쇠나 다름없다.

천만다행으로 고블린들은 배움을 알았다. 비록 느리긴 해도 나날이 발전해나갔다.

「오, 그렇지! 봐라. 내 말대로 하니까 잘 되잖아.」

「헤헤······ 맞습니다!」

「자, 고붕아. 여기서 우회전하자.」

「옙! 우, 우회전!」

「야아아아!!! 오른쪽이라고 이 멍충아!」

「히익!」

「차 세워!」

······말했잖은가. 느리다고.

자동차를 들인 것 외에도 아스빌람은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루에도 몇 채씩 새로운 건물이 올라갔고, 온갖 현대 물자가 들어찼다. 앞으로 식구가 많이 늘어날 것이니 부지런히 대비해야 했다.

물론 걸림돌은 언제나 찾아왔다.

‘역시 아쉬워.’

아스빌람에 없는 게 딱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인프라와 전문 기술자다.

마음 같아서는 현대식 시설물을 잔뜩 짓고 싶었다. 이를테면 냉동 저장고, 현대식 화장실, 공중목욕탕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공중목욕탕은 개뿔. 현실은 아주 기초적인 인프라조차 없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손수 지하수를 뚫고 가스배관을 설치할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산 넘어 산이구먼. ······목욕탕은 몰라도 냉동창고랑 화장실은 시급한데.’

지금도 썩어서 버리는 식자재가 한 트럭이다. 부패한 음식물을 처리하는 일 역시 상당한 골치였고. 그러니 냉동 저장고는 꼭 필요했다.

화장실은 두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다. 이제까지는 구석진 숲에 볼일을 보고 땅에 묻어버리는 식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었다.

‘······모르면 배워야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때워야 하고.’

그날부터 고병갑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의 단기 목표는 냉동 저장고와 화장실을 짓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26년에 2주 차가 밝았을 때.

‘됐어. 이거면 될 거야.’

고병갑은 자신만의 설계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술과 지식의 공백이 대수랴? 고대의 상점과 창의력으로 채우면 그만이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 될 거다.」

「응? 뭐라고?」

「다들 장갑 껴라.」

우선은 냉동 저장고였다.

‘고대의 상점’

[고대의 상점]

-건설

-기술

-잡화

-기타

[보유 수정 : 5,170,860]

‘좋아. 자본은 충분해.’

그가 원정을 떠나있는 동안에도 고블린들은 부지런히 수정을 채굴했다. 그 결과 500만 수정이 넘게 모였다.

발록만 아니었으면 600만도 넘겼을 텐데······.

‘쩝. 이미 써버린 걸 어쩌겠어.’

그가 쓴 입맛을 다시며 원하는 상품을 탐색했다.

[천도산의 만년빙]

-가격 : 3,300 수정

-설명 : 천도산 꼭대기에서 채취한 녹지 않는 얼음. 스스로 한기를 내뿜는다. 맨손으로 만질 시 살갗이 벗겨질 수도 있다.

고병갑은 ‘천도산의 만년빙’을 잔뜩 사들였다. 그건 아스빌람산 냉동고의 핵심 재료였다.

만녕빙은 단 한 덩이만 하더라도 엄청난 한기를 뿜어냈다.

「우으······. 이거. 위험하다.」

「갑자기. 춥다.」

「다들 조심해라. 맨살에 닿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뭐하면. 돼?」

「이것들 저 안으로 싹 옮겨.」

고블린들이 지정된 건물 안으로 만년빙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건물 역시 보통 건물은 아니었다. 외벽에 황토가 덕지덕지 발려있는데, 틈새를 막아 새어 나가는 한기를 최소화한 것이다.

한 시간 후. 건물 바닥에 얼음이 빈틈없이 깔렸다. 그 위로는 플라스틱 팔레트가 들어앉았다.

‘오우. 제대로인데?’

잠깐 있었을 뿐인데도 팔에 닭살이 돋았다. 사방에서 뿜어지는 한기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온도는 계속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잘 보이는 곳에 온도계를 달았다. 내부 온도는 놀랍게도.

‘가장 높은 곳은 0도. 가장 낮은 곳은 영하 20도 정도인가? 딱 좋네!’

일부러 구획을 나눈 보람이 있었다. 이로써 냉장과 냉동을 동시에 할 수 있으리라.

「얘들아. 미안한데 바로 움직여야겠다.」

「또 무엇을.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어. 이번엔 화장실을 만들 거야.」

「화장실. 말입니까?」

「그래. 다들 삽 들어.」

쉰 남짓한 고블린이 삽과 곡갱이를 잡았다.

고병갑은 앞서 선정해놓은 부지로 그들을 이끌고 갔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계속 파.」

「땅을 파라는. 말씀이십니까?」

「응. 깊고 넓게 파야 하니까 각오 단단히 해라.」

「알겠습니다!」

고블린들이 달라붙어 땅을 헤쳐냈다. 고병갑도 팔을 걷어붙이고 거들었다. 가로 20m 세로 10m 깊이 5m는 족히 파야 했다.

2시간 남짓 파대니 원하는 깊이와 너비가 나왔다.

「내가 셋 하면 동시에 드는 거다.」

「옙!」

「자아, 준비해. 하나, 둘······ 셋!」

「흐힛!」

「끄기긱!」

그들이 나르는 것은 특수 제작한 직육면체 모양의 통이었다. 외부 소재는 정화조와 같다.

그들은 거대한 통을 파놓은 구덩이로 집어넣었다. 자로 잰 듯 사이즈가 맞아떨어졌다.

그 뒤엔 통 안으로 흙을 쏟아붓는다. 바닥에서 1m 높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로드. 이거. 뭐냐?」

「뭐냐고? 지렁이 집이다 왜?」

「엥? 지렁이?」

고병갑은 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대의 상점을 열었다.

[이빨 지렁이 군체]

-가격 : 1,600 수정

-설명 : 토반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포식자. 짐승의 뼈조차 말끔히 먹어 치우는 최고의 청소부들이다.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

화장실의 핵심 재료는 이 지렁이였다.

‘내가 이놈들 먹성 실험한다고······ 어휴.’

고병갑은 실제로 자신의 인분을 줘가며 며칠간 이빨 지렁이를 사육했다. 결과만 말하자면 이놈들은 아주 잘 먹었다. 단신으론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먹이는 충분할 테니까 너희끼리 싸우지 마라.」

그가 넓은 통 안으로 지렁이 군체를 잔뜩 풀었다. 대략 1만 마리는 됐다.

「후우. 이걸로 아스빌람산 청정 정화조 완성.」

당연히 이 상태로 끝은 아니다. 고병갑은 정화조 위로 주문 제작한 철판을 깔았다. 볼일 보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낭패니까.

다시 그 위로 건물을 얹는다. 아쉽지만 내부 구조는 몽땅 뜯어낸 뒤 재구성해야 했다.

「고붕아.」

「옙!」

「어제 내가 들고 온 것들 있지.」

「그. 하얀 것들. 말씀이십니까?」

「맞아. 애들 데리고 가서 그거 전부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고블린들이 부리나케 뭔가를 운반했다. 매끈하고 하얀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양변기였다.

‘사실 그냥 푸세식으로 해도 되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칸칸이 나눈 자리마다 양변기를 놓는다. 밑이 떨어지지 않게 실리콘을 덧바르니 꽤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왔다.

이곳에서 볼일을 보면 변이 정화조로 떨어질 것이고, 그 즉시 이빨 지렁이들이 먹어 치울 것이다. 그럼 쌓일 일도 없다.

「끝났다!」

「우와아아!」

화장실 준공까지 끝마치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살다 살다 내 손으로 냉동창고랑 화장실을 지을 줄이야.’

고병갑은 멋들어지게 올라간 두 채의 건물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블린 로드가 된 이후 팔자에도 없는 짓을 많이 한다지만, 설마 이런 일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보람차고 기분 좋네.’

하나 확실한 건, 이 모든 일이 즐거웠다.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로드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핥! 핥!」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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