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구르미 데이
12.
앞이 붉다.
시야에 잡히는 거라곤 온통 새빨간 세상이었다.
‘이게 뭐지?’
고병갑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제야 이제껏 눈을 가리던 게 빨간 커튼 따위가 아니라 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으윽!”
얼굴 가죽이 화끈거렸다. 어디 그뿐이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이 지경이 됐는지 되뇌었다.
‘그래······.’
불과 몇십 분 전의 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 괴물이 발산한 충격파에 맞아 나가떨어진 순간이었다.
짧게 회상하는 사이 다시 시야가 붉어졌다. 고병갑은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 다 붙어 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서둘러 운기조식을 취해 몸을 회복시켰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찌르르르르!!!
“큭!”
고막을 터뜨릴듯한 굉음과 함께 온 세상이 밝아졌다. 마치 번개가 쳤을 때처럼.
실제로 저 멀리 천공에 닿을 듯 솟아오르는 벼락 줄기가 보였다.
저건 아마도 심승섭의 작품일 것이다.
고병갑은 틀어막았던 귀를 놓으며 발을 놀렸다.
“벼··· 병··· 갑······.”
“!?”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병갑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소리 난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처참한 몰골의 김대엽이 있었다.
“어, 어어······ 이런 씨!”
김대엽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상태였다. 하반신은 완전히 짓뭉개졌고 상반신만 간신히 삐져나왔다.
‘제길! 제길! 제길!’
도대체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잔해를 파헤쳤다.
“병··· 병갑······ 쿠핡! 꺼흐흑!”
김대엽이 왈칵 피를 토했다. 응고된 핏덩이가 꿀렁꿀렁 쏟아져 나온다.
“말하지 마세요! 제기랄!”
“벼, 병갑 씨······. 무전··· 본부로······.”
김대엽이 간신히 말했다. 눈동자로는 한쪽의 무전기를 가리켰다.
“무전··· 해야······. 저는··· 틀렸어요······.”
“됐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요!”
고병갑은 미친 사람처럼.
아니, 실제로 반쯤 미쳐서 콘크리트 더미를 치웠다. 손끝이 부르트고 살갗이 갈라져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김대엽은 잔해더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의 전신이 바로 드러났다. 몰골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다리가······.’
무릎 아래는 아예 잘려 나갔고, 그 위도 다짐육과 다를 바 없었다.
‘배낭!’
고병갑은 지척에 떨어진 보급품 배낭을 집어 들었다. 손을 덜덜 떨며 포션이 담긴 주머니를 연다. 천만다행으로 포션은 온전했다.
서둘러 엘릭서를 먹이려던 찰나, 그의 손이 멈칫했다.
‘이대로 먹이면 안 돼.’
엘릭서의 효능은 두말하면 입 아픈 수준이다. 하지만 소실된 신체까지 복원할 수는 없었다.
포션은 그저 인간의 자가회복을 돕는 것뿐이니까.
‘경단을 먼저 먹여야 해.’
고병갑은 김대엽이 보든 말든 고대의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피살이, 살살이, 뼈살이 경단을 종류별로 두 개씩 사들였다.
“입 벌려요!”
“으으······.”
“씹으세요! 씹고 삼키란 말입니다!”
김대엽은 간신히 경단을 씹어 삼켰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곤죽이 됐던 하체가 빠르게 제 모양을 잡아갔고, 잘려 나간 정강이도 새로이 자랐다.
포션까지 먹이니, 당장 죽을 것처럼 창백했던 안색이 본래 빛으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이제 괜찮을 겁니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이럴 때가 아닙니다. 본부와··· 본부와 연락해야 해요!”
“제가 하겠습니다. 그보다 호윤 씨는 어딨습니까?”
“부, 분명 저쪽으로······.”
고병갑은 김대엽이 가리킨 방향을 샅샅이 뒤졌다. 몇 분 뒤 기절한 정호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괜찮아. 기절한 것뿐이야.’
정호윤은 비교적 온전했다. 전신에 골절상을 입긴 했지만 떨어져 나간 수족은 없었다.
그에게도 서둘러 경단과 포션을 먹였다.
고병갑이 본래 위치로 돌아왔을 때, 김대엽은 주저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무전기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젠장!”
왜 그러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한눈에 봐도 무전기는 박살 난 상태였다.
김대엽은 ‘어떡하죠?’라는 눈빛으로 고병갑을 올려보았다.
“대엽 씨. 호윤 씨를 데리고 내려가십시오.”
“예?”
“왔던 길을 그대로 밟고 가면 몬스터와 마주칠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조를 찾아서 도움을 요청하세요.”
“병갑 씨는 어쩌려고요?”
“······.”
고병갑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저 먼 곳에선 지금도 5초에 한 번씩 굉음이 울렸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곳에 공격대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고병갑의 의중을 알아챈 김대엽이 단박에 소리쳤다.
“뭘 어쩌려는 겁니까? 저희가 낄 수준이 아니에요!”
“그래도 나는 가야 합니다.”
고병갑은 몸을 일으켰다.
“최대한 빨리 이곳의 상황을 알려야 합니다. 대엽 씨 손에 우리 모두의 운명이 달렸어요.”
“아, 아니······.”
“가세요! 얼른!”
“젠장! 알겠어요!”
김대엽이 벌떡 일어섰다. 그는 정호윤을 둘러업고 사력을 다해 달렸다.
두 사람을 떠나보내고. 고병갑은 다시 앞을 보았다.
-파지지지직! 콰쾅!
전방 1km쯤 지점.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듯 굉음과 폭발이 빗발친다.
그리로 한 발짝 내딛자마자 오싹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몸은 쉴 새 없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어쩌면 김대엽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많이 강해졌다곤 하나, 저곳은 자신이 발을 담글 만한 수심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블린들이 눈에 밟혔다.
‘만약 내가 죽으면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물어 뭐하겠는가.
그가 죽으면 고블린들도 꼼짝없이 죽는다. 아스빌람에 갇혀 돌아오지 않는 로드를 기다리다가 서서히 말라 죽겠지.
“······염병!”
하지만 그래도 가야 했다.
거기에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뿐.
등신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내력을 내뿜으며 세차게 달렸다. 그럴수록 더욱 농밀한 죽음이 피부를 찔렀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
한참 내달리던 그의 시선에 무언가 들어왔다. 그건 잘려 나간 수족의 일부였다. 사람의 것이다.
누구의 것일까?
부영건? 한창훈? 송한길? 심승섭?
그것도 아니면 정선경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끅!”
거대한 절벽이 좌우를 가로막은 거대한 협곡.
이런 협곡은 미국이나 아프리카에만 있는 줄 알았건만 한반도에도 있었구나.
그런 시답잖은 감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날아가 절벽에 처박혔다.
그건 조장 부영건이었다. 특이사항이라면 팔이 한 짝뿐이었다.
-콰쾅!
절벽으로 뭔가 거대한 것이 날아들었다.
검고 거대한 괴물.
C조를 풍비박산 낸 장본인이다.
‘발록!’
그것은 위험도 S급에 등재된 발록이었다.
덩치는 4m 정도이며 온통 검기만 한 몸에선 쉴 틈 없이 불이 타오른다.
눈, 코, 귀, 입 등등. 하여간 구멍이 뚫린 곳이면 그게 어디든 불꽃을 뿜어냈다.
거대한 뿔은 산양을 닮았고, 날개는 박쥐와 같았다. 긴 꼬리는 축 늘어져 펄떡거렸는데, 1,000년 묵은 구렁이를 보는 듯했다.
웬만큼 담력 큰 사람이 아니라면 보는 것만으로 요절하리라.
“카롸라라!”
-쾅! 쩌저적!
발록이 절벽에 주먹을 꽂았다. 타격 지점부터 반경 30m에 이르는 영역이 속절없이 함몰됐다.
고병갑은 무너지는 절벽에 깔리지 않으려 몸을 피신했다.
‘부영건은 살아있는 건가?’
그는 발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일순 놈이 거대한 배트에 얻어맞은 듯 곤두박질쳤다.
먼지구름을 뚫고 부영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지지직!
처박힌 발록 위로 어마어마한 벼락 줄기가 내리쳤다. 수만 개의 벼락 줄기는 협곡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에 당하고도 발록은 굳건히 일어섰다.
“아······.”
심승섭은 5개의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자지러졌다. 힘을 다한 것이다.
“이 씨발! 뒤져!”
정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머리 높이 치켜든 도끼와 함께 뚝 떨어졌다.
“크롸라!”
“으익! ―꺅!”
발록은 날개를 이용해 도끼를 막은 후 주먹을 내질렀다. 얻어맞은 정선경은 테니스공처럼 날아가 절벽을 때렸다.
절벽에 또 하나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발록은 쉬지 않고 불을 뿜어 정선경을 노렸다.
부영건이 재빨리 앞을 가로막으며 대규모 배리어를 전개했다.
화염과 방어막의 충돌. 방어막은 잠시 버티는가 싶더니 이내 깨져버렸다.
두 사람이 화염에 잡아먹혔다.
‘같은 S급인데도 이렇게나 차이 난단 말이야?’
그놈이 그놈인 하위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같은 S급일지라도 최정상급과 중간급의 체급 차는 상당했다.
‘왜 셋뿐이지? 다른 사람은 어딨어?’
이상했다. 송한길과 한창훈이 보이지 않았다.
고병갑은 난장판이 된 협곡을 샅샅이 훑으며 두 사람의 흔적을 쫓았다.
이윽고. 사이좋게 널브러진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창훈은 전신이 시커멓게 그을린 상태였고, 송한길은 허리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안 돼. 힐러가 빠지면 승산이 없어.’
고병갑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전투 현장을 주시했다.
손에 들린 포션이 땀으로 촉촉이 젖어갔다.
‘한창훈이라도 살려야 한다.’
다행히 발록은 이쪽에 관심이 없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이 재생됐다. 고병갑은 최적의 시뮬레이션을 골라낸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 번.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팟!
그가 바닥을 박찼다. 그는 한 마리의 늑대처럼 협곡을 가로질렀다.
쓰러진 두 사람과의 거리가 삽시간에 좁혀졌다.
30m.
20m.
15m.
이제 거의 다 왔······.
“크르르르······.”
“뭐!?”
왜 발록이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일까?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아니, 1초 전까지만 해도 저 멀리 있었는데!
발록이 거대한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것은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쏘아졌다.
세상이 멈춘 듯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주먹이 실시간으로 근접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하나, 그것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죽는다.’
고병갑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야 이 미친놈아! 네가 왜 여기 있어!?”
정선경이었다.
그녀는 가히 살벌한 기세로 카르마를 내뿜으며 적의 공격을 받아쳤다.
“너 또라이냐!? 헛짓 말고 빨리 도망―!”
“크롸라라!”
“어?”
눈앞에서 정선경이 사라졌다. 그녀는 바닥을 쓸며 수십 미터도 넘게 튕겨 나갔다.
발록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놈은 쉬지 않고 발차기를 내질렀다.
‘제길! 못 피한다!’
이번에는 막아줄 사람도 없다.
고병갑은 급한 대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내력을 최대로 방출하며 육체를 보강했다.
찰나의 순간. 발록의 우악스러운 발이 고병갑을 찼고, 그는 속수무책으로 날아가 절벽에 처박혔다.
-콰광쾅!
암석을 부수고 몇 미터나 파고들었다. 부서진 파편이 떨어지며 몸을 때렸다. 끔찍한 고통이 엄습했다.
“커허헉! 꺼으윽!”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장이라도 의식이 꺼질 것 같았다.
‘온몸의 뼈가······ 다 부러진 것 같아······. 젠장. 내가 살아있긴 한 건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방금 일격으로 깨달았다. 무슨 짓을 해도 발록은 잡을 수 없다.
‘저딴 걸 대체 무슨 수로 이겨? 고블린들이라도 불러서 함께 싸워야 하나? ······지랄. S급 다섯이 달라붙어도 안 되는데 고블린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쿨럭!”
뱃속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뜨거웠다. 내장이 다 터져버린 모양이다.
‘일단 치료를······.’
고병갑은 내력을 끌어올려 운기조식을 취했다. 간신히 몸을 움직일 정도가 된 후에는 고대의 상점을 열었다.
포션이 전부 깨져버렸으니 경단이라도 사 먹어야 했다.
경단을 입에 털어 넣고 나니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한 끗 차이로 생사를 오간 기분이었다.
고통이 가시니 어째선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기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몸을 회복한들 밖의 괴물에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지 않은가.
“망할.”
그는 상점 창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고대의 상점. 이 기묘한 상점에서도 발록을 잡을 수 있는 묘검따윈 팔지 않았다.
그쯤 되니 그냥 다 포기하고 아스빌람으로 피신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자. 애당초 자신이 낄 레벨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 도망치자.”
모든 걸 접으려던 순간.
그의 눈에 한 가지 상품이 들어왔다.
13.
부영건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은 절망과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오판했다. 그리고 오만했다.’
명백한 판단 실수였다. S급 중위 다섯이면 발록에게 비벼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택도 없었다.
놈은 상상 그 이상으로 강했고, 팀은 전멸 위기에 빠졌다.
‘전부 내 잘못이야. 전부.’
한시라도 빨리 후퇴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아니. 애당초 발록을 포착한 순간 피신했어야 했다.
후회해도 이미 쏟아진 컵이지만.
‘내가··· 내가 미끼가 돼야 해.’
이제 남은 수는 그뿐이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나머지 조원들을 대피시키는 것. 그것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무섭다.’
두려웠다. 죽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S급이니 뭐니 해도 그 역시 사람. 고작 스물여덟 나이로 죽기에는 삶에 미련이 많았다.
“······.”
사실상 C조는 이미 궤멸상태였다.
송한길, 한창훈은 진즉 쓰러졌다. 미친 듯이 카르마를 쏟아붓던 심승섭은 제풀에 꺾여 혼절했다.
자신도 팔 한쪽을 잃었다. 출혈량이 극심해서 이젠 서 있는 것도 위태로웠다.
“뒤져! 좀 뒤지라고!”
그나마 정션경이 온전했다. 그녀는 홀로 남은 상황에서도 투지를 불태웠다.
안타깝지만 기세만 가지고는 발록을 꺾을 수 없었다.
“꺅!”
결국엔 정선경도 무너졌다. 무지막지한 화염과 육탄공세가 그녀를 망가뜨렸다.
정선경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바닥에 퍼졌다.
“크롸라라라라라라!”
발록이 포효를 내질렀다. 그 우렁찬 외침에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조금만.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됐는데!’
발록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신창이에 가까웠다.
팀에 힐러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 한창훈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승리는 이쪽이 거머쥐었을 터다.
“크롸라라라!”
“꺅! 끄악! 으엑!”
발록이 쓰러진 정선경을 마구 짓밟았다. 아주 곤죽을 만들 심산이었다.
발록이 발을 구를 때마다 땅이 꺼졌다. 그 속에서 가냘픈 신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만······. 그만하면 충분하잖아! 네가 이겼다고!’
그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저 처참한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했다.
‘······죽자. 죽어서 조원들에게 사죄하자.’
그가 분노와 함께 최후의 카르마를 끌어 올렸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괴물에게 한 방 먹일 심산이었다.
그러지 못하면 분해서 죽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가 카르마를 폭발시키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해라 이 괴물 새끼야.”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나타나 발록의 앞을 막아섰다.
믿을 수 없었다. 그건 고병갑이었다.
고병갑은 발록의 발을 막고 서서 정선경을 보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발록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놈은 그러한 상황이 심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크롸라라!”
“피하십시오!”
발록이 두 주먹을 말아쥐고 땅을 쳤다.
부영건은 고병갑과 정선경이 사이좋게 으스러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서걱!
한 줄기의 섬광이 번쩍인 순간.
발록의 두 팔이 댕강 잘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