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57화 (57/151)

057. 구르미 데이

10.

새로 아스빌람에 들어온 고블린은 모두 133명이었다.

노멀 36, 홉 74, 자이언트 17, 비스트 5, 그리고 고블린 프리스트가 하나.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생김새가 비슷하다. 칙칙한 잿빛 피부에 추한 얼굴. 뾰족한 코와 귀, 다소 빈약한 머리숱.

종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틀은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저마다 특징이 또렷했기에 분간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단적인 예로 노멀 고블린은 체구가 140cm 남짓뿐 되지 않지만, 자이언트 고블린은 2m를 가뿐히 넘긴다.

그런 의미에서 고블린 프리스트 ‘바몬드’ 역시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도르마랑 비슷하게 생겼어. 같은 계열이었던가?’

고블린은 크게 네 가지 계열로 구분한다.

노멀, 홉, 로열, 킹.

자이언트, 비스트, 알비노 등등도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뿐이지 저 4가지 계열에 포함됐다. 참고로 그들은 모두 홉 고블린 개통이었다.

고붕이와 키리얀이 이종사촌쯤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아무튼, 고블린 샤먼인 도르마는 ‘로열 고블린’ 계열이었다. 그리고 새로 온 바몬드 역시 로열 쪽 줄기였다.

다만 키리얀처럼 어느 정도 돌연변이를 거친 듯했다.

‘뭐였더라. 분명 몬스터 백서에서 읽었는데······ 아!’

「맞아! 홀리 고블린!」

고병갑은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마주 앉은 바몬드는 어째 당황한 기색이었다.

「······예?」

「아무것도 아니야.」

물론 그러한 구분은 인간이 붙인 것이다. 고블린끼리는 너도나도 다 같은 동족일 뿐 다른 것은 없었다.

뭐가 됐건 아스빌람에 상위 종 고블린이 들어온 것은 기쁜 일이었다.

‘고놈 문신 멋지게도 새겨놨네.’

바몬드의 얼굴과 상체 전반부에 걸쳐 새겨진 문신. 불꽃 같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하다. 고병갑은 저 문신을 통해 바몬드가 고블린 프리스트임을 알아보았다.

「그래. 아스빌람에 오니 어때?」

「······사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바몬드는 긴장이 되는지 입술에 침을 몇 번이나 발랐다. 고병갑의 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야야. 뭘 그렇게 눈치를 봐? 내가 뭐 잡아먹냐?」

「그··· 그게 로드를 뵙는 게 처음인지라 긴장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됐어, 뭘 또 죄송해. 그냥 편하게 해.」

「예··· 예.」

고병갑은 바몬드가 진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침울한 내용이기도 하니까.

슬슬 됐겠다 싶을 무렵 고병갑이 서두를 텄다.

「그래. 이제 얘기를 좀 들어보자.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보름도 더 전이었습니다······.」

바몬드는 술술 넋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대략 보름 전.

고블린들의 본래 보금자리였던 이면 세계가 갑자기 붕괴를 일으켰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면 세계 바깥은 그야말로 삭막했다. 그들을 반기는 건 가물은 땅과 시린 밤공기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기짐까지 그들을 괴롭혔다. 허기는 이면 세계에선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맞아 그랬지. 다른 애들도 균열을 벗어난 뒤부터 배고픔을 느꼈으니까.’

굶주림을 느낀 것은 고블린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몬스터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굶주려갔다.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괴물 소 떼가 저희를 공격하고 잡아먹기 시작했지요. 다른 괴물들도 마찬가지더군요. 약한 것들은 속수무책으로 잡아먹혔습니다.」

고블린들도 자기들보다 약한 몬스터를 잡아먹으며 근근이 버텼다. 하지만 영 신통치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굶주림과 부상은 점점 더 목을 조여왔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전멸을 목전에 둔 순간 구세주처럼 고병갑이 나타났다.

‘이상하리만큼 하위 몬스터가 안 보이더라니. 싹 잡아먹힌 거구먼.’

C조 앞을 막아선 것은 죄다 상위급 몬스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약육강식에서 살아남는 생존자들인 셈이다.

괴물들이라고 전부 한 편은 아니구나. 고병갑은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고생 많았다. 이제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여기 있으면 위험할 일은 전혀 없으니까.」

「저희를 거두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얀마 고맙긴. 내가 너희 로드인데 당연한 거지.」

고병갑은 슬슬 몸을 일으켰다. 아스빌람에 너무 오래 있었다.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만 가서 쉬어라. 생활하다 불편하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고붕이나 도르마를 찾아가. 둘 다 누구인 줄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걔들한테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줄 거야. 내가 여기 계속 있으면 좋겠지만, 얼마간은 바빠서 잘 못 오거든.」

「그러시군요.」

「아무튼 아스빌람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

고병갑은 바몬드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그 뒤 곧장 고붕이를 찾아갔다.

저녁 식사를 마친 고블린들은 힘을 합쳐 뒷정리하고 이제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병갑은 그들 틈에서 고붕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붕아.」

「앗! 예, 로드시여!」

「잠깐 이리 와봐.」

고붕이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시간의 여유가 없으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새로 온 애들 있지.」

「예.」

「내일 날 밝으면 묘약 먹이고 교본도 각인시켜. 묘약이랑 교본 어디 있는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좋아좋아.」

고병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붕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지금 가시는. 겁니까?」

「어, 가야지.」

「또 언제. 오십니까?」

「글쎄다. 당분간은 못 올 거 같아. 일이 바쁘거든.」

「아쉽습니다······.」

「얼마 안 남았어. 그때까지 애들 좀 잘 부탁한다.」

「걱정! 마십시오!」

「오냐. 나 간다. 잘 자라.」

「안녕히! 주무십시오!」

고병갑은 피식 웃으며 아스빌람을 떠났다.

그가 떨어진 곳은 한적한 숲이었다. 슬쩍 눈을 돌려 사람이 있나 살핀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곧장 숙영지로 돌아갔다. 오늘은 보급일이라서 여러 팀이 다시금 한자리에 모였다.

텐트로 돌아가기 길. 흘끗 옆을 보는데 S등급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아직도 저러고 있네.’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 사건이 공식적으로 전파됐다.

협회의 입장은 작전을 속행하는 것이었고, 번복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헌터들은 그 안건에 대해 몇 시간이고 얘기를 나누었다.

“정부에서 헌터들의 출국을 전면으로 막았다더라고요.”

“엥? 제가 들은 거랑 다른데요? 저는 몇몇 길드에서 파견단을 모집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벌써 몇 명은 날아가기도 했다던데.”

“귀국 명령하겠죠. 저번에도 그랬잖아요.”

“도와줘야 하는 거 아녜요? 거기 뭐··· 헌터는커녕 인프라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런데 솔직히 도와줄 필요가 있나요? 듣자 하니 최빈국 중 하나라던데. 보상도 제대로 못 받지 않겠어요?”

“에이······ 돈 때문에 그러나요. 사람 죽어 나간다니까 살리러 가는 거지.”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떻대요? 누구 아는 사람 없어요?”

“얼추 들었는데 그쪽 나라들 줄줄이 도산하고 있대요.”

“그럼 한국에는 피해 없는 거예요?”

서른 개가 넘는 입에서 말들이 빗발쳤다.

온갖 뇌피셜이 쏟아지는 걸 보니 오늘 밤 안으로 의견이 합치되긴 그른 듯했다.

고병갑은 그들을 지나쳐 텐트로 돌아갔다. 그도 세계정세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좋든 싫든 12월 23일까지는 이북 땅에 묶여 있어야 하는 몸. 괜히 생각이 많아져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잠이나 자자.’

얼른 원정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11.

원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간간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어지간해선 흉흉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원정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핫팩 받아 가세요.”

“오늘은 5개네요? 그렇지 않아도 밤에 잘 때 좀 추웠는데 잘됐네요.”

11월 30일, 원정 69일 차.

41지점 탈환 완료 외 특이사항 없음.

“식사하세요.”

“에이씨. 왜 또 산채비빔밥으로 준 거야? 망할 협회 놈들!”

“그래도 계속 먹다 보니 먹을 만하지 않나요?”

“뭔 헛소리에요?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데.”

12월 6일, 원정 75일 차.

50지점 탈환 완료. 정선경의 밥투정이 있었으나 그 외에 문제는 없었다.

“와······ 뭐꼬. 하늘에 빵꾸났나? 뭔 눈이 이리 퍼붓노?”

“그러게요. 당장 내일이 보급일인데.”

“이래서는 눈에 파묻혀서 잠도 못 자겠는데요. 어떡합니까, 조장님?”

“흠······ 야간 행군하겠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바로 보급 지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12월 15일, 원정 84일 차.

55지점 탈환 완료했으나 이후 엄청난 폭설이 쏟아졌다. C조는 과감하게 야간 행군을 감행했고 무사히 보급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는 계속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원정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드디어 마지막 보급품이네요, 병갑 씨.”

“그러게요.”

고병갑은 장용일에게서 마지막 보급 물자를 전달받았다.

조광훈이 사라진 후 장용일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니 고병갑의 마음도 훈훈해졌다.

“마지막까지 긴장 놓지 말고 무사히 나갑시다.”

결의와 함께 시작된 최후의 작전.

고지가 눈앞에 보이니 C조의 공격대원들도 더욱 열성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켉!”

“캬아앍!”

56, 57, 58지점이 불도저에 밀린 뜻 쓸려나갔다. 헌터들은 발에 채는 모든 몬스터를 가루로 만들며 진격, 또 진격했다.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짐꾼 정호윤이 혀를 내둘렀다. 고병갑이 할 일은 그 감탄에 동조하는 것뿐이었다.

‘진짜 무식하게 강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구먼.’

지난 석 달간 지겹도록 봐왔음에도 상위 2%의 강함이란 대단했다.

저들을 과연 인간의 범주에 가두어놓을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도 엄청나게 강해졌다지만 S급에 비비기는커녕 닿는 것조차 상상이 안 되네. ······S급도 저 정도인데 SS급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이쯤 되니 SS등급 헌터가 태평양을 반으로 가른다고 해도 영 못 믿을 말은 아니었다.

58지점을 완전히 클리어하니 딱 시기적절하게 밤이 찾아왔다. C조는 두런두런 모여앉아 원정 마지막 점호를 취했다.

“내일 마지막 지점인 59지점 마무리 짓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복귀하겠습니다. 기상 시간은 새벽 5시로 하겠습니다.”

“조장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 한길님 말씀하세요.”

“임무를 마치면 바로 복귀하는 건가요? 제가 알기로 F조의 진행률이 여타 팀보다 부진한데 지원하거나 하지는 않나요?”

송한길이 참 사람 좋은 질문을 던졌다.

부영건은 눈동자를 몇 바퀴 굴리다가 덤덤히 대답했다.

“글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본부에서 지원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맞아요. 자기네가 늑장 피우느라 뒤처진 건데 도와주긴 뭘 도와줘요? 우리 일 끝마쳤으면 됐지.”

정선경도 부영건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돈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얼른 복귀해서 쉬고 싶은 것이다. 그건 돈이라면 죽고 못 사는 고병갑도 마찬가지였다.

“더 질문 없으면 점호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푹 주무시고 내일 무탈하게 일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영건이 머뭇거렸다. 그의 얼굴에 쑥스러움이 조금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간 부족한 조장 따라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조원들이 다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저 무뚝뚝한 인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잠시 정적이 일다가 이내 격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조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고 마 부족하긴 뭐가 부족합니꺼? 조장님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린거지예.”

“그래요. 뭐··· 가끔 맘에 안 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당신 정도면 꽤 잘한 거예요.”

“고생하셨습니다.”

고병갑도 조용히 한마디 보탰다. 점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병갑 담배.”

“어, 그래.”

취침 전. 고병갑은 정선경과 흡연을 하러 나왔다. 그녀와 이렇게 마주 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오늘 내일이면 마지막이리라.

“하······ 이 짓도 드디어 끝나네. 진짜 빌어먹게도 지긋지긋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야··· 분위기 깰래?”

정선경이 미간을 찌푸린다. 고병갑은 실없는 웃음을 흘리다가 질문했다.

“그나저나 59지점 클리어하면 우린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모르지. 단물 빼먹겠다고 다른 데 보내거나 균열에 투입 시킬 수도 있고. 아아,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누나 말 들으니까 왠지 순순히 보내줄 것 같지는 않네.”

“아, 병갑아. 너 종이랑 펜 있냐?”

“종이? 있지.”

고병갑이 허리춤의 파우치를 뒤적였다. 거기서 작은 노트와 펜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정선경은 그 위로 뭔가를 쓱쓱 적더니 다시 내밀었다.

“그거 내 핸드폰 번호거든? 원정 마치면 연락해라. 술이나 한잔하자.”

“누나가 사는 거지?”

“하? 얘 진짜 어이없네. 술값을 여자가 내게 돼 있냐?”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돈 많은 사람이 내는 거지.”

“술값은 네가 내. 호텔비는 내가 낼 테니까.”

“뭐? 뭔 비?”

고병갑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몇 초 후. 정선경의 말을 곱씹던 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바, 방금 뭐라고······.”

“푸하하하핫! 얘 얼굴 빨개진 것 좀 봐! 농담이야 이 바보야! 푸하하하!”

정선경이 배꼽 빠지라 웃어댔다. 고병갑은 담배 필터를 질겅질겅 씹으며 분을 삭였다.

“얘 선수인 줄 알았더니 완전 숙맥이었네! 아무튼 연락이나 해. 술이고 뭐고 이 누나가 다 사줄 테니까.”

“······그래. 내가 아주 기둥을 뽑고 만다.”

고병갑은 고블린 400명을 대동해서 얻어먹으러 갈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다 타들어 간 꽁초를 털어 끄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불빛 하나 없는 이북의 하늘은 수만 개의 별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내일 별일 없겠지?”

“별일이 어디 있냐?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너는 뒤에 잘 숨어나 있어. 괜히 나대다가 어디 다치지 말고.”

“나대라고 고사를 지내도 숨어만 있을 거니까 누나나 조심해.”

“킥킥. 조심해야지. 나이 서른 하나에 요절하면 좀 억울하냐? 아휴 춥다. 들어가자.”

“응.”

C조는 평화로웠다. 최후의 작전을 남겨두고도 이렇다 할 걱정이나 긴장은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지난 석 달간 잘 해왔고, 남은 하루도 평소와 똑같을 줄로만 알았으니까.

하지만······.

고병갑은 순탄함이란 그늘에 취해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시린 칼바람이 몰아치는 북녘의 땅.

잘린 육신이 꽝꽝 언 흙바닥에 너저분히 깔렸고,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붉게 적셨다.

“끄아아아악!”

“꺅!”

“당장 본부에 무전 때려! 당장!”

“본부! 본부! 지금 당장 충원병력! 충원병력 59-4번 지점―껅!

그랬다. 현실이란 냉혹함의 다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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