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54화 (54/151)

054. C조

5.

“······.”

고병갑은 눈동자만 움직여 옆을 흘겨보았다. 장용일이 눈을 까뒤집은 채 널브러져 있다. 기절한 모양이었다.

“켁켁! 이··· 자식이! 누가 누굴 죽인다고?”

조광헌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목이 부러졌을 텐데 기세를 전혀 굽히지 않는군.’

솔직한 마음으로 조금 감탄했다.

충분히 위축될 만한 상황임에도 눈이 살아있다.

‘정신병자긴 해도 전사로서 자질은 우수하다는 건가.’

고병갑은 긴장의 끈을 조금도 흩트리지 않았다.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라, 따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앞에 선 존재는 먹이사슬 상층부의 포식자였다.

방심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만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자세를 잡는다. 검 끝이 여우의 꼬리처럼 살랑살랑 움직였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팟!

“읍!?”

고병갑은 그야말로 벼락처럼 움직였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두른다. 칼날이 신속하게 목을 노렸다.

조광헌은 반 박자 늦게서야 반응했다.

‘빠르다! 하지만 이따위 공격!’

조광헌은 얼른 카르마로 무장했다.

카르마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에워싸며 그 어떤 갑옷보다 단단한 방패를 이루었다.

저딴 카르마도 싣지 않은 생 공격 따위 거뜬히······.

음!?

‘자, 잘린다!’

칼날이 목에 닿기 직전.

조광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칼날이 배리어를 비집고 들어와 목을 떨쳐놓을 거란 사실을.

그가 황급히 몸을 뺐다. 하나, 이미 칼날이 훑고 지나간 뒤였다.

-푸쉬이익!

“케겍! 케그긁!”

“막판에 목을 빼서 피해를 최소화했나? 과연 동물적인 감각이네. 그런데 마무리가 좀 어설펐던 모양이지?”

조광헌의 목이 3할 정도 떨어져 나갔다. 목뼈 골절과 더불어 살가죽의 유실이라니. 머리통이 언제 떨어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너··· 너!”

조광헌은 주저앉은 채 고병갑을 죽일 듯 쏘아보았다.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엔 분노와 공포만이 남아 멋대로 뒤섞였다.

‘내 카르마가 뚫렸다고? 고작 하위 각성자의 생 칼질에?’

조광헌은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저놈은 분명 평범한 짐꾼이었을진대?

‘······카르마는 형편없어. 말할 것도 없이 하위 각성자다. 하면 저 힘은 대체 뭐란 말이야?’

최초 기습부터가 그랬다. 아무리 방심한 상태였고 전투태세가 아니었다지만, 하위 각성자의 발차기 따위를 맞고 부서질 목이 아니다.

게다가 좀전의 일격은 명백히 상위급 공격이었다.

‘젠장! 처음에 기습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목의 상처가 심각하다. 슬슬 호흡에도 무리가 오는 게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정말 위험할 듯했다.

‘일단 자리를 뜨자.’

조광헌은 그렇게 다짐한 뒤 은밀하게 움직였다. 체내의 카르마를 하체에 집중시켰다.

찰나의 순간. 조광헌은 땅을 박차며 달음박질쳤다.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카르마의 도움 없이 내 속도를 따라올 수는―!’

“도망치려고?”

“뭐!? ―끄아앍!”

칼날이 조광헌의 등짝을 가로질렀다. 살가죽이 맥없이 갈라지고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으어어! 으억!”

조광헌은 바닥에 엎어져 허우적댔다. 마치 뒤집힌 거북이처럼.

고병갑은 놈의 복부를 밟아 단단히 고정하고 검을 들어 올렸다.

“머, 멈춰! 하지 마!”

“기가 막히네. 네가 왜 억울하단 표정을 짓냐?”

“장난이었어! 그냥 장난이었다고!”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네 대가리가 깨질 거란 생각은 안 해 봤나 보지?”

“아, 아냐. 겁만 줄 생각이었어. 진짜로 죽일 생각은 없었단 말이야!”

“지랄하네.”

고병갑이 검을 찔렀다.

“내가 죽으면!”

순간 조광헌이 악을 질렀다.

뚝 떨어지던 검이 멈칫했다.

“나는 네놈들이랑 달라!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곧장 찾아 나설 거다! 그러면 네가 범인이라는 것도 금방―”

“걱정하지 마라. 네놈 시체는 이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

“뭐, 뭐야?”

고병갑은 콧바람을 뿜으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정말로 갈라놓을 심산이었다.

“오케이 거기까지.”

-턱!

‘······발?’

검격이 목을 잘라내기 일보 직전. 칼날이 웬 발등에 가로막혔다.

고병갑은 눈썹을 찌푸리며 옆을 보았다. 그곳에 정선경과 송한길, 그리고 심승섭이 있었다.

‘도대체 언제? 기척도 못 느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의 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유령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고병갑이 다시 고개를 돌려 검을 바라보았다.

‘혼신을 담은 일격이었는데 고작 발등으로 막아냈다고? 생채기 하나 없이?’

“아우, 쓰라려! 이씨!”

정선경이 발을 튕기자 검이 솟구쳤다. 고병갑은 하마터면 손잡이를 놓칠 뻔했다.

“우리 병갑이. 진짜 죽일 생각이었나 보네?”

“······언제 온 거야?”

“병갑아. 너 사람 죽여 봤냐?”

정선경이 동문서답했다.

그녀는 옅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의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적일 만큼 거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도 저만큼의 살기를 뿜은 적이 없다. 고병갑은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뭐··· 하자는 거야.”

“오해하지 마. 너 때문에 화난 거 아니니까.”

정선경은 그렇게 말하며 조광헌을 내려보았다. 눈매가 몹시 시리다. 흡사 해충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조광헌. 질 나쁜 놈인 줄은 알고 있었다만, 이만큼인 줄은 몰랐네.”

“사··· 살려······.”

“살려줄 거야. 응, 살려는 줘야지.”

정선경이 담배 한 대를 꼬나물며 고병갑을 보았다.

“병갑아. 사람 함부로 죽이는 거 아니다.”

“내 기준에서 저 새낀 사람이 아니야.”

“오우, 그런 발상은 좋지 않아. 네가 이 세상의 중심인 건 아니잖아.”

“······.”

“그리고 이놈.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일단은 한 지붕 식구거든.”

고병갑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이내 검을 거두었다.

이미 조광헌을 죽이는 일은 물 건너갔다. S등급 헌터가 셋이지 않은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고병갑을 저지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터다.

대신 고병갑은 약간의 분노를 담아 물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젠장! 처음부터 보고 있었으면 왜 안 도와줬던 거야? 하마터면 용일 씨가 죽을 뻔했다고!”

“진정하세요, 병갑 씨.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뭐요? 이유는 무슨 이유?”

“심증만 가지고 나설 수는 없잖아요.”

“그럼 누구 하나 송장 치렀어야 했다는 말입니까?”

“야, 고병갑. 우리도 나서려고 했거든? 근데 대뜸 네가 튀어 나가서 쌈박질하는데 어떡해?”

“흐흑! 흐흑! 사, 살려······.”

“어휴. 이 새끼 숨넘어가겠네.”

정선경이 품에서 포션 병을 꺼냈다. 최상급 포션인 엘릭서였다.

그녀가 조광헌에게 엘릭서를 아주 조금 먹였다. 상처에도 한두 방울 뿌렸다. 조광헌이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회복했다.

조광헌이 갓 태어난 망아지마냥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허억!”

“야, 조광헌. 정신 안 나갔으니까 내 말도 들릴 테지?”

“으으······.”

놈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잘 들어. 넌 아군을 죽이려다가 우리에게 발각됐어. 그러자 격렬히 반항하며 도주했지. 우리로선 전투가 불가피했고 그 과정에서 네 모가지가 썰릴 뻔한 거야. 잊지 말고 기억해 놔.”

“뭐?”

“넌 길드와 헌터 연합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철저히 제명될 거다. 작전 중 살인 미수이니 이거 뭐 빼도 박도 못하고 수용소에 처박히겠네.”

“수, 수용소라고?”

“그래. 한 오십 년만 썩다 나와.”

조광헌의 얼굴에 절망이 깔렸다.

당연한 일이다. 헌터가 일으키는 범죄. 특히나 살인, 강간과 같은 강력범죄는 처벌 수위가 어마어마하다. 선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흉악범들은 수용소라 불리는 특수 교정시설에 들어간다. 그곳은 절대 탈출 불가능한 무간지옥 같은 곳이다.

한 번 들어가면 꼬부랑 노인네가 되기 전까진 나올 수 없으리라. 설령 나온다고 해도 이미 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 웃기지 마! 내가 뭘 했다고! 그, 그래 증거! 증거 있어?”

“이 썩을 놈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네? 야 우리가 게 눈깔로 보이냐? 여기 보는 눈만 몇 개인데.”

“흐··· 흐흐······. 잡아떼면 그만이야. 어차피 물증이 없으면······.”

“승섭 씨. 보여주세요.”

송한길이 심승섭에게 말했다.

심승섭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핸드폰을 내보였다. 핸드폰은 원래 작전 수행 간 소지가 불가능한 금지 품목이다.

핸드폰을 보자 조광헌이 경악했다.

핸드폰에선 한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조광헌이 장용일을 폭행하는 장면이었다.

“어··· 어떻게······.”

“병갑아.”

“어, 응.”

“이 쓰레기 자식은 내가 직접 데리고 내려가서 인계할 거야. 그러니까 이놈의 처분에 관한 건 걱정하지 마.”

“······알겠어.”

“씨이바알! 저놈! 저놈도 날 죽이려고 했어! 나도 피해자라고!”

조광헌이 끝까지 발악했다.

그때 딱 타이밍 좋게 동영상이 끊겼다. 동영상에는 고병갑이 조광헌을 때려눕히는 장면이 담겨있지 않았다.

정선경이 한껏 비웃었다.

“벼엉신아. 증거도 없는 게 왜 땡깡을 부려?”

“다, 당신들이 봤잖아!”

“보다니 뭘? 난 아무것도 못 봤는데? 그쪽은 뭐 봤어요?”

“네? 아뇨. 저는 저 인간이 용일 씨란 분을 죽이려 한 것만 봤는데요.”

정선경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너스레 떨었다. 송한길도 적절히 맞장구쳐주었다.

“하아암. 나 이제 가도 되죠?”

“네, 승섭 씨. 그만 가보세요.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앞으론 이런 거로 부르지 마요.”

심승섭은 일말의 감정표현 없이 떠나갔다.

“마··· 말도 안 돼······.”

“어디 D급 헌터한테 쥐어 터져서 죽을 뻔했다고 떠들고 다녀 봐. 누가 믿어주나.”

“저, 저놈이 D급 이라고? 개소리! 개소리야!”

“아이씨! 어디서 개가 이렇게 짖어?”

“끍!”

정선경이 조광헌의 이마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 뒤 카르마를 뿜으며 짧게 충격파를 쏘았다.

그러자 조광헌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해버렸다.

사건이 종료된 것이다.

정선경은 고병갑에게 슬쩍 다가가더니 장난스레 옆구리를 찔러댔다.

“얀마. 이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거야. 일 처리를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대충 모가지 따고 묻으면 만사 능통할 줄 알았어?”

“동영상까지 찍어 놨으니까 조광헌의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안심하세요, 병갑 씨.”

고병갑은 조금 얼떨떨한 마음이었다.

따지고 보면 조광헌이나 자신이나 살인을 저지르려던 것은 똑같다. 하지만 조원들은 모른 척해주고 있었다.

고병갑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느끼고 물었다.

“어째서 내 편을 들어주는 거야? 한길 씨도 그렇고.”

“엄마? 얘 말 섭섭하게 하는 것 좀 봐? 야, 조원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돕고 사는 거지.”

“그래요. 병갑 씨도 실수할 뻔하셨지만,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됐잖아요? 그럼 된 거죠.”

“이 개자식은 쓰레기니까 쓰레기통에 버린다 쳐도, 너는 괜찮은 놈이잖아. 너까지 쓰레기통에 쑤셔넣을 순 없지.”

송한길이 조광헌의 사지를 단단히 포박했다. 그 뒤 어깨에 걸쳤다. 고병갑은 장용일을 둘러업었다.

세 사람은 숙영지로 돌아갔다.

“병갑. 너 근데 좀 세더라?”

“······.”

“약골인 줄 알았더니 다시 봤어. 킥킥.”

“그러게요. 병갑 씨한테 그런 숨겨진 힘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두 사람.

아니, 심승섭까지 해서 세 사람은 고병갑의 힘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데도 별로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안 물어봐?”

“뭐를?”

“내가 어떻게 그런 힘을 낼 수 있는 건지 안 물어 보냐고.”

“참 나. 그게 뭐 대수로운 거라고. 네가 남들이랑 다른 뭔가가 있는 거겠지. 왜? 궁금해해야 하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쯔쯔쯧.”

정선경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혀를 찼다.

“야야. 이 누님의 관심을 사고 싶으면 힘자랑할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라. 내 관심을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

“저는 좀 궁금하네요. 어떻게 한 거예요? 언뜻 보니까 카르마가 변칙적으로 증폭하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그게······.”

막상 물어오니 말문이 막혔다.

고병갑이 말끝을 흐리자 송한길이 얼른 손사래 쳤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병갑 씨가 일부러 밝히지 않은 거라면 마땅한 이유가 있겠죠.”

“고맙습니다.”

“에이, 고맙긴요. 같은 조원끼리.”

같은 조원끼리.

고병갑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는 원정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깨달았다. 자신이 속한 C조는 꽤 괜찮은 팀이라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