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C조
3.
접선 지점이 북적였다.
특임대 전부가 보급을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지원조는 특임대를 위해 이동식 샤워실과 화장실을 설치했다. 함께 온 밥차는 전투식량이 아닌 제대로 된 음식을 내놓았다.
엿새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 보급일은 일종의 연회였다.
“아, 거참. 빨리빨리 좀 씁시다.”
“물 아껴 쓰세요. 대기원 많아요.”
샤워실에 줄이 길다. 전부 S등급 헌터들이었다. 외모는 하나같이 선남선녀였으나 몰골은 꾀죄죄했다.
저들은 기본적으로 전투 중에 몸이 오염될 일이 없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노폐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엿새간 눌어붙은 땀과 떡이진 머리만 하더라도 상당한 악취를 내뿜었다.
“오랜만이네요, 병갑 씨. 자 이거 받으세요. C조 보급 물자에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이게 제가 하는 일인데.”
지원조 소속 장용일이 커다란 배낭을 건넸다. 고병갑은 빈 배낭을 넘겨주고 새것을 받았다.
장용일은 A4용지 한 장을 추가로 내밀었다. 보급 품목이 적힌 종이였다.
“확인해보세요.”
고병갑은 종이를 대강 훑어보았다. 식량과 포션, 생필 물자는 이상이 없다. 중요한 건 담배였다.
‘70갑. 문제없네.’
자신의 몫으로 10갑 정도. 나머지는 전부 정선경 앞으로 가는 것이다. 고병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호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어디 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시죠?”
“좋죠.”
두 사람은 으슥한 곳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소소한 담소를 나누었다.
일은 할 만하냐, 어디 탈은 없냐, 집에 가고 싶다 등등. 그런 사소한 이야기였다.
장용일이 불현듯 탄성을 지르더니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아! 오면서 들었는데 헌터들이 또 크게 다쳐서 줄줄이 실려 갔대요.”
“아 그래요? 몇 명이나요?”
“한 열댓 명이라던가? 오늘내일하는 사람도 있다더라고요.”
“아이고. 그럼 벌써 낙오자만 쉰 명이 넘는 거네요.”
“한 그쯤 되겠죠. 아무래도 여긴 사방 천지가 변종 균열이다 보니 사고도 빈번한가 봐요.”
“어휴. 돈 벌러 와서 몸 다치고 가면 무슨 낭패래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쯔쯔쯧.”
장용일이 안쓰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북한반도 수복 작전은 총 2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진다.
휴전선 일대부터 천천히 북진하며 밟히는 모든 균열을 토벌하는 토벌대. 그리고 북한반도 최북단 일대에 넓게 포진한 몬스터를 직접 해치우는 특임대.
장용일의 경우엔 토벌대로 뛰다가 보급일이 되면 지원조로 역할이 바뀐다.
“아무튼 용일 씨도 몸조심하세요.”
“그래야죠. 처자식도 있는데. ······저보다는 병갑 씨가 더 걱정인데요?”
“저요?”
“네. 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몬스터 있는 곳에서 야영 못 할 것 같거든요.”
“아아.”
고병갑은 피식 웃었다.
그도 처음에는 식겁했다. 세상에. 사방에 몬스터가 들끓는데 텐트를 치고 자라니. 자는 사이 몬스터가 목이라도 베어가면 어쩐단 말인가?
실제로 첫날에는 긴장이 돼서 한숨도 못 잤다. 어떤 날은 아스빌람에서 몰래 자고 온 적도 있다.
그런데 누가 그랬던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뭐······ 저도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별일 없더라고요. 불침번도 서고, 옆에 S등급 헌터도 있고. 용일 씨도 그 인간들이 칼질하는 거 보면 생각이 바뀔 거예요.”
“S등급 헌터가 세긴 센가 보죠?”
“말도 마세요. 저희랑은 그냥 종 자체가 달라요.”
두 사람은 한동안 낄낄거렸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 갈 무렵. 고병갑은 꽁초를 지근지근 밟으며 말했다.
“이제 슬슬 가서 밥이나―”
“야, 용팔아. 여기 숨어서 담배 피우고 있었냐? 내가 너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악!”
그때였다. 웬 사내가 갑자기 등장하더니 장용일의 뒤통수를 팍 때렸다.
고병갑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장용일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병갑의 눈치를 살폈다.
“밥때 되면 밥 타올 생각을 해야지 뭔 농땡이를 치고 있어? 밥차에 줄 길어지잖아!”
“보급품 전해주려고 잠깐 온 거예요.”
“네 손에 들린 건 뭔데? 이젠 거짓말까지 하네?”
“아니. 이건 그냥 잠깐 얘기하느라······.”
“말대꾸까지 한다고?”
“······죄송해요.”
의문의 사내는 몇 초간 장용일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박장대소하였다.
“푸하하하핫! 야 용팔아! 장난이잖아, 장난!”
그가 장용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하여간 얘는 진담이랑 장난도 구분 못 하고 만날 정색하더라. 표정 풀어 인마.”
“아······ 예.”
“그래그래. 밥시간 됐으니까 밥이나 먹자고 찾은 거였어. 얼른 와 밥 먹게.”
“얘기 끝나면 갈게요.”
“······.”
한순간 사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하지만 고병갑을 의식했는지 얼른 인상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천천히 얘기하고 와.”
사내는 어깨동무를 풀다가 고병갑과 눈이 마주쳤다. 고병갑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내의 눈은 반달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러나 장난기 안에 감춰진 진짜 눈빛은 서늘했다.
사내가 고개를 까닥이며 고병갑에게 인사했다.
“고생하시네요?”
“······.”
“흐흐흐. 용팔아. 얘기 끝나면 바로 와라. 바로.”
사내가 팔자걸음으로 떠나갔다. 장용일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고병갑은 사내가 떠나간 자리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저 새끼 뭐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것도 아니긴요. 저놈 또라이예요? 왜 애먼 사람 뒤통수를 때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장용일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흘끗 본 주먹엔 힘이 가득 실려 부들부들 떨렸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었다. 분함 때문인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
고병갑은 담뱃갑에서 추가로 한 개비를 꺼내며 말했다.
“혼자 속앓이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 봐요.”
4.
“자기는 계속 장난이라고 하더라고요. ······참. 이런 거로 스트레스받는다는 것 자체가 웃기네요. 제가 뭐 고등학생도 아니고 곧 있음 서른인데.”
장용일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혈압을 올리기에 더없이 좋은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이 있다는 내용이다. 장용일을 괴롭히는 이의 이름은 조광헌.
A급 헌터로 나름 실력자에 조장까지 맡은 모양이다.
‘우리 조장은 선녀였네.’
조광헌은 처음에는 친해지자는 척 접근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선을 넘기 시작했다. 나이를 앞세워 하대하고, 다리를 주무르라는 둥, 물을 떠 오라는 둥 사적인 심부름을 시켰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는 손찌검까지 일삼았다.
“아니······. 다른 조원들은 안 말리고 뭐 한답니까?”
“말리긴요. 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써요. 그나마 한 명이 제 편을 들어주시긴 하는데 그마저도 신통치 않고요.”
“······.”
고병갑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급히 다물었다.
‘당신은 바보처럼 그걸 당하고만 있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장용일은 애써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두 달 뒤면 더 볼 사이도 아닌데요, 뭘. ······후후. 터놓고 얘기하니까 속이 좀 편해지네요.”
“······힘내세요.”
“그래야죠. 이제 슬슬 가죠.”
사람들은 밥차 앞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었다. 매콤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이 냄새는 제육인가?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병갑 씨.”
“네. 용일 씨도 맛있게 드세요.”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고병갑은 짐을 적당한 장소에 옮겨놓은 뒤 밥차로 향했다. 둥그런 식판을 들고 배치된 음식을 한가득 담는다.
“맛있게 드세요호호홍.”
분주하게 음식을 만드는 인원들. 그들은 평범한 요리사나 주부였다.
비록 헌터는 아니지만,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서 이 위험한 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물론 전부 각성자였다.
고병갑은 식판을 들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테이블 개수가 모자라서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고병갑도 어련히 그들 사이에 끼려고 했다.
“야, 병갑! 여기야 여기!”
저쪽 구석에서 정선경이 팔을 휘휘 저으며 소리쳤다. 샤워를 마쳤는지 한껏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고병갑은 순순히 그리로 갔다. 송한길이 정선경과 함께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 한참 찾아다녔는데.”
“찾아다녔다니 왜? 무슨 일 있었어?”
“왜긴. 밥 먹고 같이 담배 피우자고.”
“나 참.”
“병갑 씨.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 네. 한길 씨도 맛있게 드세요.”
고병갑은 묵묵히 밥과 국을 입안에 퍼 넣었다.
너무 맛있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뭐 하다 왔어?”
“그냥 얘기 좀 하느라고.”
“얘기? 누구랑?”
“다른 조 사람이랑.”
“호오. 아는 사람 있나 봐?”
“그런 건 아니고. 여기 와서 알게 된 사람이야.”
정선경의 식판은 벌써 비어있었다.
그녀는 턱을 괸 채 고병갑이 밥 먹는 장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 했는데? 여자야?”
고병갑은 콩나물국을 후루룩 마시며 말을 무시했다. 그러다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경이 누나라면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게 힘센 놈 데려다가 엄포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당장 겁을 준다 쳐도 뒤에 가서 해코지하면 어떡해? 그 전에 선경이 누나가 도와주기나 할까?’
고병갑은 결코 오지랖 넓은 성격이 아니었다. 애저녁 제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오지랖은 무슨 오지랖.
하지만 장용일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말이나 꺼내 보자.’
고병갑을 결심을 굳히고 서두를 텄다.
“사실은 말이야······.”
이야기는 10분 정도 진행됐다. 정선경은 물론이고, 송한길까지 귀를 기울였다.
고병갑은 장용일의 사연을 빠짐없이 늘어놓았다. 그가 세 살 딸아이의 아빠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이야기가 끝난 후 반응은 생각보다 더 격했다.
“그거 순 양아치 새끼 아니야! 누구야? 누가 일하러 와서 그 지랄을 해?”
“원정단에 그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있다니 황당하네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곳인데 무슨 원한을 사려고.”
“누군데? 그 새끼 이름이 뭐냐고.”
정선경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 했다.
고병갑은 조금 놀랐다. 저들의 정의감이 저리 투철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조광헌이라고 하던데.”
“조광헌? 언더문의 그 조광헌?”
“언더문? 그 길드 소속인지는 모르겠네.”
“봐봐. 이렇게 눈 찢어진 자식 아니야?”
정선경은 자기 눈을 직접 찢어 보였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송한길이 킥킥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나 언더문이잖아. 설마 그것도 몰랐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와. 고병갑 진짜 섭섭하다.”
“뭘 또 섭섭······.”
“아무튼 조광헌이란 말이지? 오케이.”
정선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병갑은 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뭐 어쩌려고?”
“뭐가?”
“지금 조광헌한테 가려는 거 아니야?”
“뭔 소리야 한 대 태우러 가는 건데. 도저히 너 못 기다리겠다.”
“아.”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길 가다 그 자식 보이면 따끔하게 얘기해놓을 테니까.”
정선경이 유유히 떠나갔다. 그 무렵 식사를 마친 송한길도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도 지인분을 도울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송한길도 홀연히 떠나버렸다. 혼자가 된 고병갑.
왠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방금까지만 해도 당장 도와줄 것 같더니만. ······역시 남 일은 남 일이라는 건가.’
고병갑은 헛바람을 흘리며 밥이나 먹었다.
그의 식판도 빠르게 비어갔다. 제육을 우물우물 씹으며 헌터들을 쓱 돌아본다.
‘대한민국 초일류들이 모인 것치고는 어디 공사판 함바집에 더 어울리는 풍경이네.’
실없는 감상을 흘리던 그때.
그의 시선에 무언가 잡혔다.
‘장용일?’
장용일은 돌부리에 걸터앉아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과 동떨어진 곳이다.
고병갑은 그를 불러들이려 했다. 한데 그보다 먼저 장용일 앞으로 누군가 다가갔다.
조광헌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장용일과 조광헌이 무어라 대화를 주고받았다. 거리가 멀고 주변 잡음이 많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장용일은 식판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조광헌을 따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젠장.’
고병갑은 먹던 밥도 잊은 채 그들을 뒤따랐다.
조광헌과 장용일은 점점 더 으슥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멈춰선 곳은 숙영지로부터 10분 거리나 떨어진 외진 산기슭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짝!
“야, 용팔아. 너는 내가 우습냐?”
“······또 왜 그러세요.”
장용일이 쓰린 볼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조광헌의 눈빛이 살벌했다.
“밥 빨리 먹고 텐트 쳐놔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너 때문에 기다려야겠냐?”
“아니, 다른 짐꾼들도 있는―”
-짝!
“말대꾸하지 말라니까 왜 자꾸 말을 안 들어?”
“때, 때리지 마세요!”
“풉! 뭐? 다시 말해봐.”
“때리지 말라고요! 저 당신한테 이런 취급이나 받자고 여기 온 거 아닙니다!”
장용일이 세게 나갔다. 조광헌도 짐짓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조광헌은 너스레를 떨며 장용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장용일은 재빨리 빠져나왔다.
“야, 용팔아, 화났냐?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건들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를 그렇게 부르지도 마세요. 제가 왜 용팔이입니까?”
“내가 뭐 했냐? 그냥 어깨동무한 거잖아. 용팔이는 애칭이고.”
철면피도 저런 철면피가 없었다.
장용일. 그 선한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얼굴엔 수치와 모멸감이 가득했다.
“생각해 봤는데 더는 안 되겠습니다. 저도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더는 이런 치욕을 참을 수 없어요. 언론사든 어디든 전부 연락할 겁니다. 당신이 이제껏 저한테 한 짓 다 폭로할 거라고요!”
“야 장난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해?”
“당신한테나 장난―억!”
“아 귀청 떨어져 나가겠네.”
조광헌이 장용일의 팔을 주먹으로 쳤다. 언뜻 보면 가볍게 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 미친놈. 카르마를 둘러서 때렸어!’
장용일이 팔을 얼싸안으며 신음했다.
“으으······ 으으으······.”
“장난이라고, 장난. 용팔이 너 장난이란 단어를 몰라?”
“······씨팔! 이게 무슨 장난이야!”
“그럼 뭐가 장난인데? 이런 거? 이런 거?”
“으악! 악! 히이익!”
장용일이 바닥을 기며 간신히 벗어났다. 그는 명백히 겁에 질려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사람들한테 다 말하겠어. 도와주세요! 도와―읍읍!”
“아, 진짜 피곤하게 하네. 우리 용팔이 뭘 잘못 주워 먹었나. 흐허허허.”
조광헌은 섬뜩하게 웃으며 장용일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위 각성자인 장용일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용팔아. 이 먼 이북 땅에서 너 같은 놈 하나 죽어난다고 누가 신경이나 쓸 것 같냐? 너 죽여다가 어디 산에 묻어버려도 찾는 사람 하나 없어. 알아?”
“읍읍!”
“나도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거든? 근데 네가 엄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니까 어쩔 수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읍읍! 읍!”
조광헌이 팔을 들어 올렸다. 손날 비수에 가공할 카르마가 몰려들었다.
그것은 최대치까지 늘어난 활시위처럼 위태로웠다. 정말로 죽일 셈이다.
“진짜 장난이었는데.”
조광헌은 그렇게 말하며 팔을 쏘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광헌의 얼굴로 강력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컥!”
조광헌은 목이 꺾이며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끍! 끄억! 크커컥!”
그가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그러면서도 재빨리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살폈다. 곧 조광헌의 시야에 한 사람이 잡혔다.
“너, 너는 아까!?”
“너는 진짜 살려두면 안 되겠다.”
고병갑이 아스빌람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서늘한 장검을 뽑아냈다.
“쓰레기여서 고맙다. 너를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