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52화 (52/151)

052. C조

1.

-빠직!

“아우욱!”

B급의 라이칸스로프.

늑대 머리를 단 거한이 무너져내렸다. 골통이 완전히 으깨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동족의 죽음에 분노라도 하듯, 또 한 마리의 라이칸이 정선경을 노렸다.

“여엄병 하네.”

그녀는 다만 귀찮은 몸짓으로 도끼를 올려쳤다. 날이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라이칸은 세로로 쪼개졌다.

“퉤!”

그녀가 필터뿐 남지 않은 담배를 거칠게 뱉었다. 새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며 주위를 살폈다.

육십 개체쯤 됐던 몬스터가 거의 정리됐다.

-파지직!

“하암.”

다른 한 편.

심승섭은 늘어지게 하품하며 전격을 쏘아냈다. 그의 손끝을 타고 쏘아진 뇌전의 창이 가도스를 관통했다.

거대 도마뱀 괴물은 새카맣게 타죽었다.

놈이 마지막이었다.

정선경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꼭두새벽부터 무슨 지랄이야. 짜증나게.”

“그래도 이것들 덕분에 잠은 다 깼네요.”

송한길이 사람 좋게 웃으며 답했다.

정선경은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카르마를 전방위로 발산하며 몸에 묻은 오물을 떨쳐냈다.

“아직 작전 시간 아니죠? 나 자요.”

“아니요, 선경 님. 이동할 겁니다.”

조장 부영건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하자 정선경은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아니, 왜요?”

“몬스터 나왔잖아요. 여기서 어떻게 더 자요.”

“어차피 떨거지들인데 뭐 어때요? 더 튀어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이동할게요. 짐꾼분들 짐 정리해주세요.”

“······하여튼 저 밥맛. 쯧!”

부영건은 그녀의 불평을 가뿐히 무시하고 명령했다. 이런 일은 익숙했다. 정선경도 작게 욕을 구시렁댈 뿐이었다.

고병갑을 포함한 세 명의 짐꾼은 부랴부랴 야영지를 정리했다.

두 명이 텐트와 물자를 걷어 배낭에 차곡차곡 쌓으면 나머지 한 명은 노련하게 뒷정리를 했다.

“음······.”

부영건이 지도를 들여보며 생각에 잠겼다. 의욕이라곤 약에 쓸래야 없는 눈빛이었다.

그가 짐꾼들에게 다가갔다.

“식량 얼마나 남았어요.”

“두 끼니 분량 남았습니다.”

식량과 각종 생필품을 담당한 고병갑이 즉시 답했다.

“보급은 언제였죠?”

“금일 17시입니다. 접촉지점은 16지점이고요.”

이번에는 무전을 담당하는 김대엽이 대답했다. 부영건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몬스터 사체를 쓱 훑었다.

“아, 이것들 어디 숨어있다 튀어나온 거지? 아직 더 있나? ······스읍. 그냥 지금 19지점까지 정리해버릴까. 어차피 해야 하는 건데.”

그가 혼잣말을 중얼댔다.

부영건은 분주히 일하는 짐꾼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어쩔까요? 지금 19지점 가서 임무 수행하고 16지점으로 내려갈까요? 그게 낫겠죠?”

‘그걸 왜 우리한테 묻냐.’

고병갑은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 다른 짐꾼들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뭐, 이제는 별로 대수롭지도 않았다.

조장 부영건은 같은 공격대 인원들과는 거의 소통하지 않았다. 의견을 공유할 일이 생기면 짐꾼들하고만 얘기했다.

작전을 수행한 지 어언 3주간 흘렀건만, 매번 이런 식이었다.

“쩝. 그래야겠다. 놀면 뭐할 거야? 일이나 해야지. 대엽 님. 본부에 무전 쳐서 18지점에 잔존 몬스터 있는지 확인 부탁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혼자 결론을 내고는 획 돌아갔다.

“······.”

짐꾼 정호윤은 고병갑과 합을 맞춰 텐트를 개던 중이었다. 그가 부영건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병갑에게 물었다.

“원래 여기서 대기하다가 보급받으러 내려가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은 안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지금 19지점 가봤자 다 정리하지도 못할 텐데.”

“생각이 있나 보죠, 뭐.”

“에휴. 간만에 좀 쉬나 했네.”

정호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영지 정리는 금방 끝났다. 지난 3주간 합을 맞췄더니 손발이 척척 맞았다.

고병갑은 한숨을 돌리며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고작 새벽 5시 35분이었다.

“이동할게요. 바로 19번 탈환지로 가겠습니다.”

“예? 보소, 조장님. 아직 여도 정리 덜 된 거 아입니까?”

“마저 하고 가면 되죠.”

“아 그래예? 뭐, 그라믄 되겠네.”

공격대에서 힐러 겸 서포터를 맡은 한창훈이 빠르게 수긍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아예 토 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 뭐 이런 조합이 다 있냐.’

고병갑이 귀속된 C조.

C조의 공격대는 지극히 개인주의자들이었다. 다들 성격이 무던했고, 딱 비즈니스적인 관계만 유지하려 들었다.

이러면 이런가 보다, 저러면 저런가 보다.

어떻게 보면 의욕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실력만큼은 확실한 일류였기에 지금까지 어떠한 탈도 없었다.

“대엽 님. 본부랑 연락됐나요?”

“아, 예. 18-5지점에 몬스터 군락으로 보이는 물체가 관측됐답니다. 구체적인 좌표가 나오는 대로 전파해주겠답니다.”

“그래요? 그럼 우선 18-5지점으로 갈게요.”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죠.”

“그러세요.”

“병갑.”

정선경이 고병갑을 불렀다. 그녀는 검지와 중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담배를 피우자는 사인을 보냈다.

고병갑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아니나 다르랴. 정선경은 부영건이 안 보이는 각도에서 그를 째려보며 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오, 저 멀대 새끼. 아침부터 성질 살살 긁네.”

“······또 왜?”

“사람 개무시하잖아.”

고병갑과 정선경은 C조에서 둘밖에 없는 흡연자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정선경은 고병갑과 담배만 피우러 오면 온갖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들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3주가 지나니 귀에 딱지가 앉을 노릇이었다.

“무시하지 말라고 해, 그럼.”

“하! 말한들, 쟤가 ‘예 알겠습니다.’ 하겠냐? 생긴 것부터가 남 말 귓등으로도 안 듣게 생겼는데. 일하러 와서 괜히 감정싸움 하기도 싫고.”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턱선에 맞춰 칼같이 자른 머리 모양만큼이나 성격도 날카로웠다. 나이는 31살로 조원 중 가장 많았는데, 나잇값 못하기로는 뒤에서 1~2등을 다퉜다.

“쯧! 그리고 아무리 뭣 같아도 대놓고 개기면 안 되지. 명색이 조장인데.”

“뒷담화는 괜찮고?”

“어머, 얘 좀 봐? 이거 뒷담화 아니야. 그냥 하는 말이지.”

“참나······.”

고병갑은 그냥 속으로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럴 때면 아스빌람의 고블린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 순둥한 애들은 남 흉보는 일이 없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넌 재수도 있고 말도 통하잖아. 거기다 담배도 피우고.”

말이 통하는 게 아니라 당신 푸념 들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다, 라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해졌다고 해도 상대는 S등급 헌터. 그어놓은 선을 확실히 지킬 필요가 있었다.

고병갑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탁탁 털어 껐다.

“슬슬 가자.”

“왜? 한 대 더 피고 가.”

“누나 진짜 그렇게 피다 죽어. 아까 몬스터랑 싸울 때도 대여섯 까치는 피더만.”

“야. 그래서 죽을 거였으면 난 벌써 죽었어. 열여덟 살부터 폈는데.”

“······자랑이다. 먼저 가 있을게.”

“아, 같이 가!”

정선경은 못마땅한 얼굴로 고병갑을 따라왔다.

그들은 일행에 합류했고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2.

S등급 헌터라고 모두 날 때부터 살육전차인 것은 아니다. 그들도 초임 헌터일 때가 있었고, 자기보다 한참 아래 등급 몬스터에게도 벌벌 떨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강함을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경력이 3년쯤 되면 살육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진다.

‘끝내주는구먼.’

그런 의미에서 C조는 프로페셔널이었다.

오직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최강의 도살자들. 그들은 몸짓 하나도 허투루 하는 경우가 없었다.

설령 손가락 하나를 까딱한다 치더라도, 그것 역시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일련의 동작이었다.

“껅!”

“까악!”

민간인 일백쯤 우습게 죽이는 상위 몬스터들. S급 헌터들은 그런 포식자를 심심풀이로 때려잡았다.

상위와 최상위의 격차. 그것은 거의 호수와 바다의 차이였다.

몬스터들은 저항다운 저항은 해보지도 못했다.

고병갑이 할 일은 먼발치에서 몬스터의 목이 날아가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꿀이다, 꿀이야.’

처음 S등급과 한 조를 이룬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섰다. 온갖 위험이 목을 조여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그건 마음 앞선 걱정이었다.

고병갑은 그저 짐을 들고 나르며 공격대원들 끼니를 챙겨주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불침번을 설 뿐이었다.

귀찮은 마석 수거는 할 필요도 없었다. 뒤따라오는 정리팀이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고작 이거 하고 20억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하도 하는 게 없으니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준다는 돈을 마다할 마음은 전혀 없다.

“아침 먹고 19지점으로 넘어갈게요. 식사 준비 해주세요.”

“예.”

고병갑과 나머지 2명의 짐꾼은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했다. 거창하게 말하긴 했다만, 즉각취식형 보존 식량을 데우는 게 일의 전부였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끼니가 마련됐다. 헌터들은 묵묵히 다가와서 맛없는 전투 식량을 퍼먹었다.

‘군말 없이 잘 먹네.’

고병갑은 이번 원정을 수행하며 많은 선입견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신비주의로 여겨졌던 S등급 헌터들. 그들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저 맛 없는 산채비빔밥을 군말 없이 먹는 것 보라. 과연 프로페셔널이다.

“어, 은지야. 일어났어? 응? 난 밥 먹고 있지. 에이, 뭘 다쳐. 안 다쳤어. 응응. 보고 싶어.”

전격을 다루는 원거리 딜러 심승섭.

그는 전투 중이 아니면 밀반입한 핸드폰을 항시 붙들고 살았다. 통화하는 여성이 매번 바뀐다는 건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심승섭은 통화할 때면 쉴 새 없이 떠들어댔지만, 조원들과는 사담 한 마디 나누는 법이 없었다.

“병갑 씨. 짜 먹는 고추장 다 먹었어예?”

“네. 어제 먹은 게 전부였어요.”

“아따, 마. 고추장 없으니까 안 넘어가네. 와이리 맛대가리가 없노.”

한창훈.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내. 그는 송한길과 더불어 C조의 지방방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창훈 형님. 저 고추장 안 썼는데 이거라도 괜찮으면 드실래요?”

“아! 그래도 됩니꺼? 아, 거, 미안해서 우얍니까.”

“괜찮아요. 저 저염식단 하고 있거든요.”

“아이고, 마 고맙심더.”

송한길은 서글서글하니 모난 구석이 없었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유형의 인간이다.

“병갑. 담배 한 대 때리러 가자.”

“아직 덜 먹었어.”

“왜 그렇게 느려. 빨리 좀 먹지.”

“나는 방금 먹기 시작했잖아.”

“······그럼 피고 있을 테니까 바로 와.”

정선경. 꼴초 여인네.

보급받을 때마다 양담배 60갑씩 신청하는 미친 여자다. 그녀가 입을 열면 담배 쩐내가 풀풀 풍겼다.

개개인만 보면 조화롭기는커녕 죄다 따로 논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그들은 하나의 몸인 양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하여간 기막힌 노릇이다.

조촐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C조는 제19번 작전지역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1,000헥타르 정도의 범위를 낱낱이 수색하며 숨어있는 몬스터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

“19-2지점까지 13시 안에 돌고 보급받으러 갈게요.”

조장 부영건이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C조는 말없이 임무를 수행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소분할 지점을 클리어했다.

일행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몬스터 사체만 가득했으니, 죽음을 몰고 다닌다는 이명이 썩 어울렸다.

19-2까지 무사히 토벌한 C조는 보급품을 받기 위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접촉지점인 16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조들이 와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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