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수복사업
46.
염정화.
고병갑은 작게 탄성을 질렀다.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염정화는 그의 반응이 재밌는지 쿡쿡대며 웃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네요. 병갑 씨를 다시 볼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그러시겠죠. 제 이름도 까먹으셨으니.”
“아니, 그건······.”
“농담이에요. 뭘 그렇게 당황하시나요.”
염정화가 장난조로 말하며 손사래 쳤다. 고병갑은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그는 지나가는 시선으로 염정화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명찰에 j-3라고 적혀있었다.
“병갑 씨도 공격대로 지원하신 건가요?”
“예? 아뇨. 저는 짐꾼으로 지원했죠. 제가 무슨 공격대로 지원을 하겠습니까?”
“왜요. 병갑 씨는······.”
염정화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고병갑을 잡아끌었다.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까요?”
“뭐, 그러죠.”
고병갑과 염정화. 두 사람은 대강당을 벗어나 넓은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한적해서 듣는 귀가 없었다.
염정화가 짐짓 목소리를 깔며 서두를 텄다.
“사실 그날 이후 줄곧 궁금했어요.”
“뭘요?”
“병갑 씨의 정체에 대해서요.”
고병갑은 심장이 뜨끔한 것을 느꼈다. 하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았기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발뺌할 생각인가요.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음.”
“그때 우리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세 사람 기억하나요?”
“어렴풋이는 기억합니다.”
“그들은 병갑 씨가 등급을 숨긴 상위 각성자라고 결론짓더군요. 암살자 타입이라서 카르마를 감추는 것에 능하다는 식으로요.”
“······.”
“하지만 저는 알 수 있어요. 병갑 씨는 등급을 숨긴 게 아니라는 것을요. 다만, 힘을 숨기고 있다는 데엔 동의하죠. 그것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힘을요.”
‘이 여자······.’
고병갑이 꿀꺽 침을 삼켰다. 염정화는 그의 이질적임을 거의 간파했다.
물론 그가 고블린 로드라는 것까지 밝혀내진 못했을 터다. 그래도 고병갑이 여느 각성자와 다르다는 것은 확신하는 듯했다.
“그날. 저는 정신을 잃기 전에 봤어요. 병갑 씨가 뭔가······ 알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싸우는 모습을요.”
“읍!?”
고병갑이 순간적으로 숨을 집어삼켰다.
‘설마 고블린들까지 들킨 건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블린들과 힘을 합쳐 싸우는 모습을 들켰다면, 뭐라 핑계 대기도 애매해진다.
이 여자를 어떻게 입막음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런데 염정화가 웬 생뚱맞은 소릴 늘어놓았다.
“그게 뭐였는지 혼자서 계속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병갑 씨, 혹시 귀신을 불러낼 수 있는 건가요?”
“······예?”
‘뭔, 귀신 도시락 까먹다 요절하는 소리야?’
애써 유지하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그의 얼굴에 황당함이 깔렸다.
반면 염정화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뭐요? 귀신이요?”
“아, 일반인에게 익숙한 단어를 쓴다는 게 그만. 우리는 그것을 영령이라고 부르죠.”
염정화가 상의에 감춰두었던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흔히 육망성이라 부르는 별 모양 펜던트. 중앙에는 기분 나쁜 눈이 박혀 있다.
고병갑은 그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여자. 육망교 신자였나?’
육망교.
딥 임팩트 이후 창립된 수많은 사이비 중 하나다.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규모가 꽤 크다는 부분이었다.
육망교 역시 다른 사이비 종교처럼,
딥 임팩트 배후에 있을지 모를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믿었다.
그 ‘초월적인 존재들’은 총 7명으로, 1명의 절대 신과 그를 보좌하는 6명의 사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이면 세계 어딘가에 숨어 가끔 모습을 보인다.
그들과 마주치면 세계의 진리를 통달할 수 있고, 우주의 진실을 알 수 있으며,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고 하는데, 글쎄.’
고병갑도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을지 모른다는 데엔 동의했다. 하나, 결코 맹신하지 않았다.
고블린 로드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신이란 하늘 나는 스파게티 괴물과 다를 것도 없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염정화는 장난기 쏙 빠진 말투로 질문해왔다.
“혹시 영령을 불러내거나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건가요?”
“저기―”
“그들과 언제 처음 만났죠? 그들의 생김새는 보았나요?”
“저기요, 정화 씨.”
“네. 말씀하세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화 씨가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 라고요?”
염정화는 조금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고병갑은 여세를 몰아 시치미 떼기로 했다.
“정화 씨가 뭘 보셨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날 던전에는 저희 말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헛것을 보셨거나 몬스터를 잘못 보신 거겠죠.”
“아닌데······.”
“그리고 저의 힘에 관해선 체질적인 거라고 해두지요. 이것에 관해선 딱히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체질이라고요? 진심으로요?”
“네. 그리고 정화 씨가 제 체질에 관해서 이곳저곳에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다만······.”
“다만?”
“정말 체질적인 게 맞나요? 혹시 말하기 껄끄러워서 둘러대시는 건 아니고요? 걱정 말아요. 혹여 병갑 씨가 영령과 접촉했더라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어디서 만났는지, 언제 만났는지 단서라도······.”
“아니, 영령이고 귀신이고 본 적 없다니까요.”
고병갑이 일축했다. 염정화는 풀이 죽어 어깨가 축 처졌다.
“더 할 말 없으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병갑 씨! 잠깐만요!”
염정화가 급히 불러세웠다. 그녀는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고병갑에게 내밀었다.
자기네 종교 명함이었다.
‘환장하겠네.’
“나중에라도 하고픈 말이 생기시면 이리로 연락주세요. 어떤 거라도 괜찮아요. 우리······ 병갑 씨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사람들 아니에요.”
염정화는 고개를 꾸벅이더니 앞질러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참나.”
고병갑은 결코 평등주의자가 아니었다.
선입견도 좀 있고, 사상도 어느 정도 치우쳐 있었다. 당연히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는 허무한 눈빛으로 명함을 바라보았다. 여섯 개의 끝과 기분 나쁜 눈.
각각 6명의 사도와 1명의 절대 신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세상에 이런 게 어딨어?”
고병갑은 명함을 대충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래도 잘 무마했으니 다행이네.”
그가 김빠진 웃음을 흘리며 대강당으로 도로 들어갔다.
47.
4층 대강당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S등급 강자가 강당에 들어설 때면 뒷덜미가 절로 오싹해졌다.
고병갑은 새 사람이 들어설 때마다 목을 쭉 빼고 구경했다. 마치 미어캣처럼 말이다.
‘조금 추한가.’
뒤늦게 민망함이 느껴져 점잖게 앞을 주시했다. 양옆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염정화와 떨어져 앉았기 때문이다.
고병갑은 눈동자만 굴려 옆 사람을 흘겨보았다. 이런 말 하긴 뭐하다만, 별 볼 일 없는 자들이었다. 하위 헌터라는 소리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주위엔 온통 하위 헌터뿐이었다.
‘일부러 상위 헌터 옆자리는 피하는 건가.’
어째 호랑이 우리에 들어온 똥개무리가 된 것 같아 씁쓸해졌다.
-팟!
어두컴컴하던 회의장이 한순간 밝아졌다. 단상으로 한 남성이 걸어 나왔다.
훤칠하고, 어딘가 고지식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다. 그는 마이크를 톡톡 두들기며 상태를 점검하더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제1차 북한반도 탈환 작전의 총괄팀장을 맡은 전민식입니다. 반갑습니다.”
전민식이 고개 숙여 인사했음에도 반응이 없었다. 헌터들은 팔짱을 끼거나 다리를 꼰 채 ‘어디 한번 떠들어 봐라.’라는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전민식은 개의치 않으며 계속 말했다.
“현재 이곳에는 총 600분의 헌터가 와계십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시작이구먼.’
고병갑은 집중해서 경청을 시작했다.
그는 은연중에 이번 오리엔테이션이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명씩 나와 자기소개를 하고 여차하면 장기자랑도 하고, 끝나면 술집 가서 뒤풀이하는. 뭐, 그런 것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혀 달랐다. 오리엔테이션은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3개월간 진행될 작전의 개요, 원정대의 목표, 각종 유의사항과 숙지사항.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건성으로 듣지 않았다.
당연하지. 목숨과 직결되는 엄중한 내용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필기라도 하고 싶었다.
“나눠드린 명찰은 다들 확인하셨을 겁니다. 맨 앞에 적힌 알파벳이 자기가 속한 팀입니다. 잠시 앞을 봐주시지요.”
커다란 스크린이 화면을 띄웠다.
조 편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자료였다. 고병갑은 즉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씨 다시 칠. 씨 다시······ 뭐!?’
몇 초 후.
그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이번 원정은 총 50개의 팀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10개는 S등급 헌터와 짐꾼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들은 작전과 동시에 가장 깊숙한 곳으로 투입되어 특수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A에서 J까지가 특임대잖아. 그럼 나도 특임대라고?’
C-7인 고병갑은 S등급 헌터들과 한 조를 이루게 됐다.
맙소사!
‘S등급이랑 한팀이 됐으니까 좋아해야 하는 건가? 미쳤냐? 딱 봐도 위험한 임무를 할 게 뻔하잖아?’
이거 좋아해야 할지, 낙담해야 할지. 감정의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항의하여 조를 바꿀 수는 없는 걸까?
고병갑은 당장이라도 손을 들고 질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보아하니 고병갑과 비슷한 심정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리엔테이션은 계속 진행됐다. 고병갑은 속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출정은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입니다. 이곳 에이션트 빌딩에서 일괄적으로 이동할 것이고요. 추가 안내 사항이 생기면 개인 연락처로 공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고병갑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한순간 강당 안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예. 무엇입니까?”
“조를 바꿀 수는 없는 겁니까?”
“어렵습니다. 편성된 조는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라 가장 시너지가 좋은 조합으로 구성했습니다. 최대한 변동사항 없도록 하자는 것이 주최 측의 입장입니다.”
전민식이 즉답했다. 고병갑은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것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셔 감사합니다. 화요일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은 그렇게 끝났다. 고병갑은 복잡한 심경을 간직한 채 대강당을 빠져나왔다.
‘골치 아프구먼. 대충 짐꾼 노릇이나 하려고 했더니만 뭔 놈의 특임대야.’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역시 담배밖에 없었다. 그는 빌딩을 빠져나와 흡연장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빌딩 바로 앞에 흡연장이 있었다.
그곳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나온 헌터들로 북적였다. 그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그사이에 꼈다.
흡연장에는 유명한 헌터들도 많았다. 그들과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니 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고병갑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음?”
“맞죠? 아까 질문한 사람.”
“아······.”
고병갑은 놀라서 입을 헤 벌렸다. 말을 건 사람은 S등급 헌터 송한길이었다.
그는 18살에 헌터를 시작해서 이제 갓 20살이 된 사내였다. 아직도 얼굴에는 앳된 티가 흘렀다.
그가 고병갑의 가슴팍을 빤히 바라보았다. 깜빡 잊고 명찰을 떼지 않은 상태였다.
송한길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가워요. 저도 C조에요. 이름은 송한길이고요.”
“어우, 영광입니다. 고병갑입니다. 한길 씨 팬이에요.”
“정말요? 아닌 것 같은데. 후후.”
고병갑은 얼른 담배를 거두고 악수했다.
송한길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능청을 떨었다. 그의 말마따나 팬이라는 말을 그냥 한 소리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흘끗 봤는데 C조에 편성된 헌터분들 전부 굉장하신 분들이더라고요.”
“아, 딱히 걱정하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고병갑은 예의상으로 답했다.
솔직히 좀 못 미덥다는 말을 면전에다 대고 어떻게 하겠는가?
“후후. 그럼 다행이네요. 아무튼 한 조인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피우던 거 얼른 마저 피우세요.”
“한길 씨는 안 피우세요?”
“저는 담배 안 피워요. 그냥 그쪽이랑 인사하고 싶어서 따라 들어온 거예요.”
“그러시군요.”
“네. 아무튼 화요일에 봐요.”
송한길은 그 말만 남기고 획 떠나버렸다.
‘S급 헌터랑 악수했다.’
고병갑은 오른손을 내려보며 신기한 감상에 젖었다.
‘이거 잘하면 S급 친구 만들 수도 있겠는데?’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시간은 정처 없이 흘렀다.
주말과 월요일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고, 어느새 출정 당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