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수복 사업
41.
2025년 9월 14일.
평화로운 일요일 밤. 하지만 청와대 집무실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이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박태석.
5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그는 누가 뭐래도 실력 있는 정치인이었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강단으로 막힘없이 일을 진행 시키는 게 그의 스타일. 대통령 직책을 위임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가 성사시킨 업적은 한둘이 아니었다.
덕분에 그는 국민들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었다. 불도저라는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고.
“이 새끼가 감히······ 이딴 식으로 나를 엿 먹여!”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박태석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서류 다발을 옆의 비서실장에서 던졌다. 몹시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 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이런 거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냔 말이야!”
“죄송합니다.”
비서실장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솔직히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으나 감히 말대꾸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박태석은 광선이라도 뿜을 것 같은 눈빛으로 구겨질 서류 다발을 쏘아보았다. 그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치곤 이 개새끼. 씨발놈의 새끼! 그 새낀 대체 뭣 하는 새끼야!”
헌터 협회 협회장을 저주하는 악담이 한동안 이어졌다. 잠시 후 박태석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차 대기 시켜.”
“예!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곧장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그가 집무실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먼저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잠시 벙쪘다. 감히 누가 대통령 개인 서고에 함부로 들어온단 말인가?
들어선 이는 딱 봐도 수상했다. 두꺼운 후드를 푹 눌러쓴 남자였다.
“뭐··· 뭐야!?”
비서실장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대통령은 침착하게 서랍장을 열어 권총을 손에 쥐었다.
“당신 누구야! 어떻게 여길? 헉!?”
열린 문 틈새로 의식을 잃고 널브러진 사람이 보였다. 비서실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경호팀에 급히 무전을 보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경호팀! 경호―억!”
일순 집무실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치 심해로 빨려 들어간 듯 엄청난 압박감이 비서실장을 짓눌렀다.
그는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
그 압박은 대통령을 피해갔다. 덕분에 박태석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다만 비 오듯 진땀을 쏟았다.
“······누구요.”
박태석은 초인적인 기지로 떨림을 억눌렀다. 몰래 쥔 권총 손잡이에 땀이 흥건했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후드를 걷어냈다. 괴한의 얼굴을 마주 본 박태석은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대통령님. 좀 늦긴 했다만 당선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한국에 있었던 거요?”
“얼마 전에 돌아왔습니다. 뭐, 곧 다시 떠날 거지만요. 제가 워낙 바쁜 몸인지라. 후후.”
괴한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집무실 소파에 앉았다.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손에 쥔 그건 놔두시고요.”
“······.”
‘얘기? 얘기를 하자고? 저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나를 기만하려 들어?’
박태석의 속에서 분노가 끓어 올랐다. 하지만 그걸 바깥으로 표출할 만큼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권총을 순순히 내려놓고 소파로 다가갔다. 범. 아니, 용을 상대로 바늘 따위를 들이대 봤자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이게 지금 무슨 행패요? 지금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용서라. 후후후.”
괴한이 서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대통령님 그거 아십니까? 용서와 관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오.”
박태석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는 깡다구 하나로 정치계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괴한과 눈싸움을 벌이는 찰나의 시간이 지난 정치 인생보다 고달프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괴한이 표정을 풀고 온화하게 말했다.
“후후. 뭐, 다소 무례한 부분이 있었던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배움이 짧아 격식 같은 것을 잘 모르거든요.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길.”
“용건이 무엇이오? 실없는 소리나 늘어놓자고 날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
“시원시원하시군요. 역시 불도저 대통령님답습니다. 후후. 예. 저도 단도직입적인 걸 좋아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괴한이 몇 초간 너스레를 떨다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말하시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뭐요?”
“단어 그대로입니다.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십시오.”
“알아듣게 얘기하시오.”
“뭘 하려고 하지 말란 말입니다. 남은 임기는 그저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시면 되는 겁니다. 영부인과 함께 여행도 가시고, 맛있는 것도 잡수러 다니세요. 아? 제가 얼마 전까지 체코에 있었는데 되게 좋더군요. 음식도 제법 괜찮고. 이참에 한 번 갔다 오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괴한이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금 후드를 덮어썼다.
“저는 대통령님 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제안하는 겁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시오?”
“흐흐흐. 장난이라······.”
박태석이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찢어진 부위에서 비릿한 피가 새어 나왔다.
괴한은 그저 끅끅대며 웃기만 했다.
바로 그때 무형(無形)의 힘이 대통령의 목을 옭아맸다. 대통령은 깜짝 놀라서 목을 움켜쥐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윽고 가공할,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공포가 박태석을 덮쳤다. 그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려버릴 것 같았다.
괴한이 음산하게 말했다.
“웃고 즐기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겁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꺼, 꺼헓!”
“대통령께서는 똑똑하신 분이니 제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사람을 한 명 보내지요. 그의 전언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건 경고입니다.”
“컭! 커헑! 사, 살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이무것도.”
괴한은 그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박태석은 무형의 힘에서 해방됐고 젖은 걸레마냥 철퍼덕 쓰러졌다.
“콜록! 콜록! 허억, 허억, 허억······.”
그가 죽은 물고기의 눈동자를 하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괴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아으아······ 아으······.”
아직도 그의 몸엔 공포가 가득했다.
박태석은 어린아이로 회귀한 양 엉엉 울어버렸다.
42.
“야······ 뭐냐, 이거?”
앉은뱅이 밥상 위가 초라하다. 짠지 몇 조각과 김, 전자레인지에 대충 돌린 햄 쪼가리가 전부다.
고병갑은 쌀밥을 우물우물 씹으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미친. 북한에 괴물이 튀어나왔다고? 그것도 한 달 전에?”
어제인 일요일 저녁.
헌터 협회 협회장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단독 기자회견을 벌였다. 그가 말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딱히 명칭이 없어 그저 구 북한 지대라고 부르는 곳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시가 무려 한 달도 전이었다.
“골때리는구먼.”
북한이 뭐 지구 반대편인가? 서울에서 차 타고 몇 시간만 가면 닿는 곳이다.
물론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지점은 함경북도. 즉, 한반도 최북단 부근이긴 했다.
그래도 머리 위에 몬스터를 두고 한 달간 살아왔다는 게 기막히게 느껴졌다.
“이제 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또 사람들 난리 나겠네.”
이제야 민심이 좀 안정되나 싶었다.
휴업했던 회사들은 영업을 다시 시작했고, 학생들은 정상적으로 등교했다.
식자재 마트에 가도 기다란 줄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몬스터 웨이브라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아무 걱정마시고 생업에 종사해주시면 됩니다. 협회의 명예를 걸고 국민 여러분께 그 어떤 피해도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대책이 있다니까 다행이네.”
정부도 생각은 있는 모양이었다.
협회와 여러 길드가 협업해서 사태를 해결할 거라고 한다. 비단 몬스터 웨이브를 잠재우는 것뿐 아니라 한반도 북부를 완전수복하는 게 최종 목표란다.
“하기야. 북한에 있는 균열 그게 다 돈인데 내버려 두면 안 되지.”
고병갑은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밥 먹는 데에 집중했다. 북한이고 몬스터 웨이브고 위에 놈들이 알아서 하리라.
당장 집 앞에 몬스터가 나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그가 칼 들고 뛰쳐나갈 이유는 없었다.
“돈이나 벌자. 그래야 빚도 갚고 엄마 병원비도 내고 애들 먹을 거라도 사주지.”
고병갑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늘은 강원도 홍천군으로 가서 B랭크 균열을 토벌했다.
「케륵! 케륵!」
「옳지. 잘한다.」
공격대 인원들의 실력이 나날이 발전했다. 몇몇은 하급 교본을 거의 다 익혀서 슬슬 중급을 넘보고 있었다.
‘공격대 애들 전부 중급 교본을 뗄 무렵엔 A랭크 균열을 넘볼 수도 있겠어. 그럼 하루에도 수천만 원을 벌 수 있고!’
예전엔 달에 600~700 벌었었는데, 한탕에 수천만 원이라니.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일이다.
“캬하핡―칽!”
고병갑은 C급 몬스터 흑철지네를 일격에 분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른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B랭크 균열 토벌은 언제나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면 세계 진입 4시간 30분여 만에 보스 몬스터 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쿠우욱! 쿠욱!”
「슬슬 칼날 갈 때 됐는데. 마침 잘 됐네.」
B급 짐승형 몬스터 샤프디어.
어깨높이만 2m에 이르는 사슴 형상의 대형 몬스터다.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니나 우악스러운 뒷다리도 무시무시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저 뿔. 닿는 것을 모조리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뿔 때문에 여러 헌터가 수족을 잃었다.
그러나 고병갑에겐 연금술 재료일 뿐이다.
「위험한 녀석이다. 물러나 있어라.」
「옙!」
고병갑은 칼을 빼 들며 앞으로 나섰다. 부하 몬스터를 모두 잃은 샤프디어는 성난 기세로 발을 굴렀다.
“쿠욱! 쿠욱!”
“휘잇!”
휘파람을 불며 도발하자 샤프디어가 쏜살같이 돌진했다. 흡사 장갑차를 마주한 기분이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며 체내의 내력을 폭발시켰다. 동시에 노련하게 적의 빈틈을 찾아 나섰다.
‘오른 다리!’
표적을 머리에 새기며 마주 달려간다.
고병갑은 샤프디어와 충돌하기 일보 직전에 몸을 비틀며 놈의 우족을 노렸다.
하나, 놈도 만만치 않았다. 샤프디어는 베이기 직전 동물적인 감각으로 다리를 빼 피해를 최소화했다.
‘제길. 얕은데.’
다리를 일격에 절단하지 못했다. 샤프디어가 곧바로 뒷다리를 차서 고병갑을 노렸다.
“흡!”
고병갑은 유연성을 발휘해 간신히 피해냈다.
‘하마터면 맞을 뻔했네.’
그와 샤프디어가 다시금 마주 보고 섰다. 녀석은 한쪽 다리에 상처를 입어 신체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다.
“쿠어어어!”
샤프디어가 재차 달려들었다. 좀 전에 비하면 그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고병갑은 보다 쉽게 빈틈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하압!”
비장하게 내지른 검. 샤프디어의 오른 다리가 맥없이 잘려 나갔다. 그뿐이랴? 그대로 옆구리를 그어 뱃가죽을 벌려놓았다.
“쿠아앍!”
벌어진 틈으로 내장과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고병갑은 놈에게 단 1초도 여유를 줄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매서운 공세가 이어졌다. 기동력을 잃고 치명상을 입은 샤프디어는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반항할 수 없었다.
얼마 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샤프디어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의 승리였다.
43.
「부산물 따로 정리해 놔.」
「옙! 고생하셨습니다!」
「오냐. 욕봐라.」
고병갑은 목욕을 마친 후, 고블린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스빌람을 빠져나왔다.
오늘도 B랭크 하나에 C랭크 하나를 돌았다. 몸은 무거웠지만 반대로 마음은 날 듯 가벼웠다.
“아, 보람차다!”
그는 개운한 몸을 차에 싣고 서울로 돌아갔다. 도착하면 대여섯 시 무렵이리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려니 어느새 빌딩 숲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고병갑은 서울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야경은 좋아했다.
“아스빌람에도 이런 예쁜 야경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스빌람의 밤은 캄캄하기만 하다. 언젠가 아스빌람에서도 서울과 같은 야경을 볼 수 있을까?
“글쎄. 나 늙어 죽기 전까지는 안될 것 같은데.”
고병갑은 아스빌람에 빌딩을 세우는 상상을 하며 협회에 들렀다.
매번 하는 것처럼 마석과 전리품을 팔아치웠다. 그 일은 금방이면 됐다.
“고생하세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협회 직원이 그를 붙잡았다.
“아, 고병갑 헌터님. 잠시만요!”
“네? 뭐 빠뜨린 게 있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헌터님들께 공지사항이 있어 알려드리려고요. 10분이면 되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10분쯤이야 뭐.’
고병갑은 쩝 입맛을 다시며 도로 앉았다.
상담원 김슬기는 데스크 아래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책자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책자를 내보이며 지극히 업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이번에 협회와 여러 길드가 합작하여 한반도 북부를 수복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거든요. 혹시 알고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