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43화 (43/151)

043.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28.

나도 해봐도 돼요?

고병갑이 두 여인네에게 훈련 중이라고 말했더니 들려온 대답이었다. 물론 도란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는 조금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이 어여쁜 고블린은 정말 뭐든지 해 보려고 하는구나.

뭐, 의욕이 충만한 거야 귀엽게 봐줄 일이지만 세상엔 의욕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다쳐.」

「안 다쳐요.」

「이건 장난치는 게 아니야.」

고블린들은 열과 성을 다해 대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아무리 날이 없는 목검이라고 하나 여느 평범한 사람이 얻어맞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저들이 서로 치고받고 해도 멀쩡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묘약과 교본 덕분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란은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요.」

「도란. 당신 로드의 말이 맞아요. 자칫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거예요.」

「아잇! 에아는 좀 조용하고 있어!」

「미, 미안해요. 나는 도란이 걱정돼서······.」

도란이 세모 눈을 뜨고 에아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바닥에 널브러진 목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허공에 대고 휘휘 저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에요! 나도 시켜줘요. 나도 고블린이고 쟤들도 고블린인데 왜 나만 빼놓는 건데요?」

「······.」

「아아! 끼워 줘요! 끼워 달라고요!」

고병갑이 말을 삼켰다. 그는 잠시간 도란을 빤히 쳐다보다가 바람 빠진 듯한 웃음을 흘렸다.

「야, 거기 쪼꼬미.」

「응?」

그가 말하자 노멀 고블린 서른 명 정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고병갑은 그중 하나를 지목하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리 와봐. 그가 말하자 노멀 고블린 한 명이 다가왔다.

「왜. 불러?」

「너 얘랑 붙어봐.」

「어? 응. 알았다.」

「좋아요!」

노멀 고블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란도 투지 충만해서 자세를 잡았다.

‘좀 얄궂나.’

사실 말로 잘 타이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고병갑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까불거리는 친구가 있다면 현실을 직시시켜 주는 것. 그게 고병갑의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어디 잘못되면 골치 아프니까.’

고병갑은 노멀 고블린을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 뒤 귀에 대고 속삭였다.

「봐주면서 해. 너무 세게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아들었어?」

「응. 이해했다.」

「그래. 둘 다 저기 가서 서.」

도란과 노멀 고블린이 마주 보고 섰다. 고병갑은 자연스레 심판을 보게 되었다.

「자세잡아. 그럼 준비하고······ 시작.」

「하압!」

시작 신호와 함께 도란이 바닥을 찼다.

그녀는 기이할 정도로 몸을 수그리며 달려들었는데, 그 모습이 질주하는 늑대 같기도 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도란이 축 늘어놨던 검을 쏘았다.

「케, 케륵!?」

노멀 고블린이 기겁하며 방어를 시도했다. 하지만 도란의 검은 뱀처럼 휘어지며 상대방의 어깨에 그대로 꽂혔다.

「껙!」

노멀 고블린이 발라당 자빠졌다. 대련은 순식간.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났다.

「음!?」

「헐!」

나란히 서서 구경하고 있던 고병갑과 에아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그들뿐 아니라 이곳을 지켜보던 다른 고블린들도 놀란 듯이 눈을 떴다.

「뭐, 뭐죠? 도란이 이긴 건가요?」

「······그런 거지.」

「으윽!」

노멀 고블린이 어깨를 얼싸쥐면서 몸을 일으켰다. 고병갑은 얼른 그리로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쪼꼬미. 괜찮아?」

「아프다. 그런데. 괜찮다.」

녀석의 기세가 바뀌었다.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더. 할 수. 있다!」

「흥! 그냥 누워 있지?」

도란은 의기양양하게 이쪽을 내려보았다. 꼿꼿하게 세운 허리며 비릿한 조소며, 하여간 자신감이 충만했다.

노멀 고블린이 목검을 쥐었다. 그리고는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고병갑은 잠깐 뜸 들이다가 말했다.

「봐주지 말고 다시 해봐.」

「알았다! 안 봐주면. 내가. 이긴다!」

「흥! 봐줬다고? 나도 봐준 거거든?」

「······.」

고병갑은 몇 걸음 물러났다. 어느새 대련하던 모든 고블린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병갑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신호했다.

「시작!」

「하압!」

「케륵!」

이번에는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도란은 아까와 같이 몸을 한껏 수그리는 독특한 자세를 취했다. 노멀 고블린은 고병갑의 눈에도 익은 검술 교본의 자세를 잡았다.

팟!

같은 순간에 휘둘러진 두 자루의 목검이 서로 교차했다. 그러자마자 도란이 몸을 뱅그르르 돌며 기묘한 측면 공격을 감행했다.

「흡!」

노멀 고블린은 재빨리 검을 회수하며 측면을 방어했다. 곧 쩡! 하는 타격음과 함께 검이 재차 충돌했다. 노멀 고블린의 몸이 두세 걸음 밀려났다.

녀석에겐 정신을 차릴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초 근접한 도란이 명치를 찍어버린 것이다.

「커핡!」

노멀 고블린이 다시 자빠졌다. 이번 대련 역시 3합을 넘기지 않았다. 시간으로 따지면 기껏 15초였다.

「우와! 도란 무지하게 강하잖아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나 센지 처음 알았어요!」

「우으······. 저 암컷 강하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도란은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찬사를 즐겼다.

‘어이가 없네. 아무리 노멀 고블린이라지만 묘약에 교본까지 각인했는데 저렇게 쉽게 제압한다고?’

도란과 맞붙은 노멀 고블린. 녀석의 본래 등급은 F이지만, 지금은 못 해도 D급은 될 터다. 그런데 상대초자 안 됐다. 그렇다면 도란의 강함은 어느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 거지?’

도란의 몸은 분명 건강미가 넘치긴 했다만, 그게 장사의 기개가 느껴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모로 보나 힘쓰는 데 적합한 육체는 아니다.

물론 비정상적 강함을 뽐내는 여러 상위 헌터가 대개 미관상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들의 힘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카르마이지 육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란에게선 조금의 카르마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의 일반인 수준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저 폭발력과 추진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란 말인가? 그의 의문이 커졌다.

「나 잘했죠? 잘한 거 맞죠? 네?」

한창 심각한 고병갑에게 도란이 불쑥 물었다. 기대 만발의 얼굴을 하고선.

고병갑은 조금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어, 잘했다. 좀 의외였어.」

「히히!」

도란은 잘했다는 한마디에 웃음이 만개했다.

「더 해도 되죠? 나 더 하고 싶어요!」

고병갑은 시험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고붕아!」

「예, 로드!」

「무기 들고 이리 와.」

「옙! 알겠습니다!」

그가 고붕이를 불렀다. 녀석을 도란과 붙여볼 심산이었다.

고붕이는 기다란 목봉을 들고,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다가왔다.

고병갑은 뜸 들이지 않고 진행했다.

「둘이 마주 보고 자세 잡아.」

29.

「훗!」

「어어? 끄엑!」

도란이 날쌔게 움직였다. 그녀는 안면을 노리고 날아오는 목검을 가뿐하게 피해낸 뒤 검을 올려 쳤다. 얻어맞은 비스트 고블린이 팔을 부여잡고 뒷걸음질 쳤다.

놓칠쏘냐. 그녀의 목검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뚝! 딱! 뚝! 왼쪽 어깨, 오른쪽 옆구리, 그리고 명치. 물 흐르듯 3방의 공격이 내리꽂혔다.

비스트 고블린은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우와아아! 도란이 또 이겼어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군요? 그녀한테 이런 재능이 숨겨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러게. 기가 막히네.」

도란은 무패행진을 이어났다.

고붕이는 1분 만에 나가떨어졌고, 이어서 자이언트 고블린을 내보냈지만 3분을 버티지 못했다.

연달아 출전한 비스트 고블린 역시 고작 2~3분 버틴 게 다였다.

도란! 도란! 도란! 도란!

들판에 고블린들의 함성이 가득 들어찼다. 도란은 보답이라도 하듯 몸을 빙글 돌며 위용을 뽐냈다.

‘이제 남은 건 공격대 애들이랑 나뿐인가?’

그 자신과 공격대만큼은 차별화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고병갑은 도란의 한계가 얼마나 깊을지 알고 싶어졌다.

「창식아!」

「예!」

「이번엔 네가―」

「로드! 로드가 직접 나오는 거 어때요? 나랑 붙어봐요!」

순간 아스빌람이 얼어붙었다. 고블린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도란과 고병갑은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잠시 후 반발이 빗발쳤다.

「무례하다!」

「감히. 로드께. 그런!」

고블린들이 입을 모아 그녀를 꾸짖었다. 도란은 잠깐 당혹에 잠겼으나, 곧바로 표정을 확 구겼다.

「시끄러워 이 바보들아! 너희가 무슨 상관인데!」

「저, 저저 고얀!」

「됐어, 다 조용해!」

고병갑은 고블린들을 제지하며 몸을 일으켰다. 쉴 만큼 쉬기도 했고, 그 또한 도란과 검을 겨뤄보고 싶었다.

고병갑이 나서자 도란이 해맑게 웃었다. 눈망울에선 투지가 느껴졌고 입꼬리는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저 녀석. 역시 싸움을 즐기고 있어.’

지켜본 바로 도란은 투사였다. 자고로 천재보다 즐기는 놈이 더 무서운 법이다.

고병갑은 한층 진지해졌다.

「바로 할까? 잠깐 쉬고 해도 괜찮은데.」

「끄떡없거든요? 쟤들은 한 입 거리도 안 돼서 이제야 몸이 풀렸는걸요.」

그녀는 기세등등했다. 고병갑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목검을 고쳐 잡았다.

한데 신장 160이나 될까 싶은 소녀와 싸우려니 어째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신장 150짜리 노멀 고블린은 잘 패고 다녔으면서 말이다.

「먼저 들어와.」

고병갑이 말했다.

그리고 3초 뒤. 죄짓는 기분이 들 것 같다는 말을 전적으로 취소하게 됐다.

‘!?’

도란의 목검이 눈 깜짝할 사이 코를 노리고 뻗어왔다. 그야말로 소리소문없는 공격이었다.

고병갑은 고개를 틀어 피할까, 목검으로 올려 칠까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제3의 행동을 취했다.

이제까지 당한 고블린들의 복수, 그리고 고블린 로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가 쇄도하는 목검을 덥석 잡았다. 그 뒤 도란의 추진력을 역 이용하여 세차게 던져버렸다.

「우, 우와아악!」

도란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녀가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뭐예요! 그래도 돼요?」

따져 묻는 투였다. 고병갑은 능청 떨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때? 싸움에 규칙이 어딨다고.」

「이이!」

도란이 재차 덤벼들었다. 그녀가 가히 파죽지세의 기세로 검을 쏘았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속도였다. 더불어서 따라잡지 못할 속도도 아니었고.

탁! 탁! 탁!

고병갑은 여유롭게 공격을 쳐냈다. 그녀의 특기인 기묘한 검. 그러니까 뱀처럼 휘어지는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도란의 얼굴에 다급함이 묻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껏 몸을 수그리더니 맹수처럼 돌진했다.

사정권 안에 들어서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검을 쏘았다. 턱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이 매섭다.

고병갑은 한 발짝 물러나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직후 목검을 놓고 양손으로 도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냅다 던져버린다.

도란이 다시 한번 바닥을 굴렀다.

「이이이! 진짜―헉!」

어느새 목검을 주워든 고병갑이 필사의 찌르기를 감행했다. 그의 칼은 성문을 부수는 충차처럼 뻗어나갔다.

아무리 목검이라지만, 칼끝으로 무시무시한 살기가 묻어 있었다.

도란은 공포감에 숨을 집어삼켰다. 다행히 목검이 그녀의 안면을 강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칼끝이 그녀의 코끝에서 1c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기 때문이다.

「히끅!」

도란이 저도 모르게 딸꾹질했다. 잠시 후 고병갑은 목검을 거두었다.

「우, 우와아아아!」

「로드! 로드! 로드! 로드!」

「역시 로드는. 최강이십니다!」

고블린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다행히 위신은 지켰구먼.’

고병갑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블린들을 돌아보았다. 이후 도란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음?」

「흑. 흐윽!」

도란이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뭐야? 너 왜 울어?」

고병갑이 당황하며 물어봐도 연신 눈물만 쏟아낼 뿐이었다.

「흐윽! 더. 더 잘할 수, 흑! 있었는데······. 흐아아앙!」

이번엔 아예 대성통곡을 해버린다. 고병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야야! 울지마.」

「흐아아아앙!」

「거, 참! 뚝 그치래도! 얼른 그치지 못해?」

고병갑이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도란의 눈물은 달아날 줄 몰랐다. 오히려 더욱 거세질 뿐이었다.

고병갑은 어느 각도로 봐도 아이 달래는 데 서툴렀지만 고함치는 게 악수라는 것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타이르는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너 잘했어. 그렇게 분해할 거 없다니까? 그러니까 제발 울지 마라.」

「······흑! 지, 진짜요?」

「그래. 난생처음 해 보는 대련인데 그만큼 했으면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거야. 나한테 진 게 그렇게 분하더냐?」

「로드한테 진 게 흐윽! 분한 게 아니라······.」

도란이 울먹이며 꾸물거렸다.

「나 진짜로 잘했어요?」

「글쎄. 잘했다니까?」

「그럼 로드는 기뻐요?」

‘뭔 말이야?’

고병갑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뜬금없이 기쁜 게 왜 나온단 말인가?

도란은 확답을 받아낼 심산인지 재차 물었다.

「내가 잘해서 로드가 기뻐요? 네?」

「······오냐, 그래. 기쁘다. 기특하다! 아이고 잘했네! 예뻐 죽겠네!」

고병갑은 도란이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떠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울음이 마법처럼 멎었다.

「진짜죠? 나 때문에 기쁜 거 맞죠?」

「맞다니까 그래.」

「앗싸!」

도란이 갑자기 와락 안겨들었다. 그리고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비벼댔다.

고병갑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무섭구만.’

사실 기쁨보다는 무서웠다. 그녀에게 내포된 잠재력이 겁날 지경이었다.

묘약도 교본도 없이 이 정도 성취라니.

과연 묘약과 교본을 더한다면 얼마나 강해질까?

‘공격대에 한 명 더 늘겠군.’

고병갑이 흐뭇하게 웃었다.

30.

한반도 북쪽. 38선 이북.

과거 북한이라는 고리타분한 나라가 자리 잡았던 지대.

그곳은 현재 죽음의 땅이었다.

1997년. 딥 임팩트가 한창 벌어질 당시 북한은 격동하는 시류를 버텨내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난의 행군이니 뭐니 하며 자멸 직전인 나라였으니까 말이다.

말라비틀어진 땅 위로 주변 생기를 앗아가는 균열까지 생겨버리니, 북한은 끝내 21세기를 맞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28년이 지난 지금. 앞서도 말했듯 그곳은 철새도 걸러 가는 황무지가 돼버렸다.

한반도 이북 땅에 있는 것이라곤 수만. 아니, 어쩌면 수십만 개에 달할지 모르는 엄청난 수의 균열뿐이었다.

38선 이북이 황무지가 돼버린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멸망한 북한의 땅과 균열을 두고 벌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그사이에 낀 한국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

2011년.

한국이 전 세계 유일로 SS급 각성자를 2명이나 배출하면서 뒤늦게나마 한반도 이북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이북 땅의 온 대지가 균열로 뒤덮인 상태였다. 하여 한국 정부는 ‘사실상’ 38선 이북을 수복하길 포기했다.

이제는 죽음의 땅이라 부르는 그곳.

2021년에 조사단이 한 번 파견 되고 4년째 발길 한 번 닿지 않는 그곳.

시간이 멈춘 듯 불길한 고요함만이 가득 찼던 그곳.

그곳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기긱! 케긱!”

“케르르륵!”

“키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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