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42화 (42/151)

042.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26.

고병갑은 부지런히 연성했다. 연금술 장치는 잠시도 쉬지 않고 목검과 목봉을 뱉어냈다.

구경하러 왔던 두 여인네는 고병갑을 도와 완성품들을 옮겼다.

「로드. 이건 왜 만드는 거예요?」

「애들 훈련 시키려고.」

도란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싸움 훈련이요?」

「맞아.」

「왜요?」

「왜긴. 적들이랑 싸워서 이기려면 당연히 훈련을 해야지.」

「아아. 저 안개 밖에 있다는 괴물들이랑 싸우려고요?」

「안개 밖에 괴물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에아가 말해줬어요.」

「내가요? 뭘요?」

때마침 에아가 등장하며 물었다. 그녀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몇 개나 만들려고요? 나만 해도 벌써 30개는 옮긴 것 같아요.」

「글쎄. 일단 애들 머릿수만큼은 만들어 놔야지.」

「그럼 삼백 개도 더 만들어야겠네요.」

-푸쉬시시시······.

연금술 장치가 또 한 묶음의 목봉을 완성해냈다. 고병갑은 통을 열어 내용물을 모두 꺼냈다.

정말 단순한 형태의 무기들이었다. 고병갑은 시험 삼아 한 번 휘둘러보았다. 견고하게 잘 만들어진 듯했다.

「그 연금술이라는 거. 나도 배워보고 싶네요.」

「네가?」

「네. 저번에 보니까 그걸로 못 만드는 게 없더군요? 옷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고. 나는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해요. 손재주도 제법 뛰어난 편이죠.」

「호오. 그거 괜찮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여태까지는 고붕이에게 연금술을 가르쳤다만 기대와 달리 고붕이의 성취도는 그리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연금술이란 게 높은 수준의 상상력을 요구하는지라 무리인 것이다.

‘에아라면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 많은 정령 에아.

줄곧 그녀를 지켜본 바로, 에아는 일을 꼼꼼하고 야무지게 잘한다. 특유의 섬세함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 이따 저녁에 가르쳐줄게.」

「오우, 정말요? 고마워요!」

「나는요? 나도 가르쳐줘요!」

「너는······.」

도란이 불쑥 끼어들었다. 고병갑이 말끝을 흐렸다.

‘얘는 덤벙대는 스타일인데.’

도란의 행동은 다소 어설펐다. 뭘 해도 2% 부족한 느낌이랄까?

고병갑은 얼마간 뜸을 들이다가 회피하듯이 대답했다.

「너는 생각을 좀 해보자. 이거나 옮겨.」

그러면서 목봉 한 묶음을 안겨주었다. 도란은 입술을 비쭉 내밀었지만, 어찌어찌 받아들긴 했다.

그녀가 목봉을 10자루도 넘게 안고 뒤뚱대며 걸어갔다.

‘힘은 좋네.’

체구가 작고 팔다리는 가는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반면 에아는 다섯 자루 드는 것도 버거운지 낑낑거렸다.

고병갑은 잠깐 숨도 돌릴 겸 담배 한 개비 태웠다. 쌓여있는 목재를 빤히 바라본다.

“후우, 저녁때나 돼야 다 만들겠구만.”

잠시 후 꽁초를 비벼 끈 그가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연금술 장치는 낮 내내 돌아갔다.

27.

-삐비비빅! 삐비비빅!

알람 소리가 요란하다. 고병갑이 눈을 반쯤 뜨고 핸드폰을 들여보았다. 새벽 5시 반이다.

‘하루 쉬자.’

고병갑은 알람을 해제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이 아주 노곤했다. 어제 목검과 목창을 합해 400자루나 만들었고, 저녁 늦게까지 에아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주었다.

기인을 넘어 초인에 가까워진 고병갑이었지만, 피곤한 건 피곤한 거였다.

그는 한껏 늘어지게 잤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전 9시 무렵이었다.

대충 밥을 차려 먹은 그가 아스빌람으로 넘어갔다.

“흐아암.”

한껏 기지개를 켠다. 아스빌람은 늘 그렇듯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닭장이었다.

-구구구.

암탉들이 도도하게 모이를 쪼아먹고 있었다. 어째 어제보다 몸집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고병갑은 혹시 달걀이 있을까 싶어 울타리 안을 둘러보았다.

“진짜 있네?”

달걀이 있었다. 몇몇 닭은 그것을 소중하게 품고 있었다. 무정란이라 병아리가 나오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왠지 신기하네.’

세상에. 자신이 닭을 키우고 달걀까지 보리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달걀을 보니 묘한 자신감이 붙었다. 소나 돼지, 염소 등의 가축도 키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꺼꾸댁!

옆쪽 닭장에선 다소 사나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병갑이 그쪽을 째려보자 닭들도 자신을 째려보았다.

‘쟤들은 왜 이렇게 밉상이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고병갑은 수탉 우리에 모이를 한 움큼 흩뿌린 뒤 걸음을 옮겼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밭이었다. 고병갑은 멀리서부터 밭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분명 어제까지는 밭이었는데······.

오늘은 밀림이 돼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의 싹이 거의 무릎까지 자라났다. 더불어서 잡초들도.

‘이거 이대로 두면 사달 나겠는데?’

고병갑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고구마 줄기 하나를 쥐고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땅속으로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아니······ 뭐가 이렇게······!”

고병갑이 자세까지 잡고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겼다. 잠시 후. 땅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게 튀어나왔다.

그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 이게 고구마야 호박이야?”

과장 조금 보태면 성인 남성 종아리만 한 고구마가 튀어나왔다. 여느 고구마 서너 개 합한 분량을 가뿐히 넘었다.

고병갑이 멍한 얼굴로 고구마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어? 로드. 왔네?」

「로드. 안녕.」

노멀 고블린 두 마리가 물뿌리개를 가지고 나타났다. 녀석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고무 대야에서 물을 퍼 날랐다.

「야야. 너희들 뭐 하려고?」

「물. 준다. 로드가. 시켰잖아?」

「에헤이. 스탑, 스탑.」

고병갑이 얼른 제지했다.

그가 자기 얼굴보다 큰 고구마를 내보이며 말했다.

「고구마로 집 지을 일 있냐. 야 쪼꼬미. 너 동굴 가서 애들 한 열 명 불러와.」

「열 명?」

「그래. 오늘 이거 다 뽑아버려야겠다.」

「아, 알았다.」

지목당한 고블린이 부랴부랴 움직였다.

고병갑은 고구마에 묻은 흙을 털어낸 뒤 반으로 쪼갰다. 하얗고 단단한 속내가 드러났다.

그가 껍질을 대충 벗겨낸 뒤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고구마를 질겅질겅 씹노라니 옆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병갑은 나머지 반을 내밀었다.

「한 번 먹어봐.」

「고맙다!」

「야야. 흙은 털어내고 먹어야지.」

「아. 알겠다.」

고블린은 고병갑처럼 이로 껍질을 벗겨냈다. 이윽고 드러난 속살을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몇 차례 질겅질겅 씹던 녀석의 눈망울이 커졌다.

「맛있지?」

「맛있다! 달다!」

「이거 구워 먹으면 더 맛있다. 오늘 점심은 고구마 구워 먹어야겠네.」

「좋다!」

얼마 뒤. 보충 인력을 데리러 갔던 녀석이 돌아왔다. 고병갑은 열두 고블린에게 일을 시켰다.

「너희는 창고 가서 수레 끌고 와. 나머지는 이리로 와봐.」

고병갑은 고블린을 둘러 세운 뒤 고구마 뽑는 시범을 보였다.

「이거 확 잡아당기면 안 된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이렇게!」

「오오!」

그의 손을 타고 또 한 덩이의 고구마가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지켜보던 고블린들이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뽑아야 줄기가 안 끊기고 알맹이가 빠져나오는 거야. 너 한 번 해봐.」

「아, 알겠습니다!」

홉 고블린이 비장한 기세로 나섰다. 그는 고병갑의 동작을 그대로 복습하며 고구마를 뽑아냈다.

「잘하네. 그렇게 하면 돼.」

「예!」

「오늘 여기 있는 고구마 다 뽑아낼 거다. 자, 시작하자.」

고병갑은 팔을 걷어붙이며 앞으로 나섰다.

「로드께서. 직접. 하십니까?」

「어. 어차피 오전 중에 따로 할 일도 없거든. 왜 나랑 같이하기 싫으냐?」

「아닙니다! 좋습니다!」

「뭣들 하고 있어? 다 달라붙어.」

「옙!」

고병갑은 고블린들과 함께 고구마를 뽑아냈다. 큼직한 고구마가 뽑혀 올라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 있으려니 아까 심부름시켰던 고블린 녀석들이 수레를 끌고 왔다.

「너희는 우리가 뽑은 고구마 수레에 옮겨 담아. 그리고 숙영지 쪽으로 가지고 가.」

「알겠습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아스빌람.

고병갑과 고블린들은 일렬로 서서 순차적으로 밭을 평정해나갔다.

알맹이를 뽑고 나온 줄기는 한 군데 잘 모아놓았다. 저것도 기름에 볶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음식이 된다.

「뭐 하는 거예요, 로드?」

한창 일을 하려니 불현듯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란이었다.

고병갑은 허리를 펴며 한숨 골랐다.

「고구마 뽑는다. 너는 뭐하고 있어? 에아 안 도와주고.」

「도와주다가 구경하러 왔어요. 고블린들이 이상한 거 들고 오길래.」

도란이 얼마간 뜸을 들이다가 이어 말했다.

「나도 해봐도 돼요?」

「그러든지.」

「앗싸!」

그녀는 의욕이 충만해서 밭으로 들어왔다. 고병갑은 그녀에게 고구마 뽑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이까짓 거 그냥 잡아당기면―」

-팟!

그녀가 잡아당기자 줄기가 맥없이 끊겼다.

「어라? 이게 왜 끊기지?」

「야 조심조심 잡아당겨야 한다니까. 그렇게 쥐어뜯듯이 하면 당연히 끊어지지!」

고병갑이 혀를 끌끌 찼다.

「나와 봐.」

그리고는 땅을 살살 파내며 줄기가 끊긴 고구마를 캐냈다.

「다, 다시 해볼래요!」

「내 옆 고랑 비었잖아. 거기 가서 해.」

「알겠어요!」

그녀가 의욕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팟! 팟! 팟!

그녀가 잡아당기는 줄기마다 줄줄이 끊어졌다. 이쯤 되니 고병갑은 ‘쟤가 일부러 저러나?’ 싶은 마음이었다.

「너 뭐하냐?」

「이··· 이게 왜 자꾸······.」

도란이 의기소침해져서 더듬거렸다. 고병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송해요. 난 도와주려고 그런 건데.」

「됐어.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그, 그렇죠? 그럼 다시―」

「가서 에아나 도와줘. 곧 점심시간이잖아.」

「······.」

도란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이윽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녀가 터벅터벅 밭을 빠져나갔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고구마밭은 절반 정도 끝났다.

‘오후에 애들 시켜서 나머지 끝내고. 감자는 내일 캐야겠네.’

「밥 먹으러 가자!」

「예!」

고병갑은 작업 인원들을 이끌고 숙영지로 돌아갔다. 에아가 싱글벙글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는 단출했다. 어제 먹다 남은 국밥에 구운 고구마를 곁들었을 뿐. 그래도 냄새는 죽여줬다.

고블린들이 호호 불어가며 고구마를 먹었다. 다들 한 입 베어 물면 눈동자를 빛내며 감탄사를 질러댔다.

고병갑도 그들 사이에 껴서 군고구마를 먹었다. 워낙 크다 보니 한 덩어리만 먹어도 배가 거의 다 찰 듯했다.

「아! 당신 오셨군요?」

한창 식사를 하려니 에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몹시 들떠 있었다.

에아가 숙영지 한 켠에 쌓인 고구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저렇게 멋진 작물은 태어나서 처음 봐요. 밭에 심어둔 게 뭔가 했더니 저런 보물이었군요.」

「마침 잘 왔네.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는데.」

「할 말이요? 뭐죠? 혹시 또 도란과 관련된 건가요?」

「아니야. 저기 암탉들 넣어둔 닭장 알지?」

「네, 물론 알고 있어요. 왜요? 닭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그게 아니고. 거기 가면 달걀이 있을 거야. 그것도 가져다가 요리하는 데 쓰라고.」

「아, 정말요? 그건 참 좋은 소식이네요.」

에아가 꺄르르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등 뒤로 숨기고 있던 물건을 펼쳐 보였다. 고병갑은 뭔가 싶어 쳐다보았다.

「짠! 어때요?」

「······네가 만든 거야?」

「네! 어제 당신이 알려준 연금술로 만든 거예요!」

그건 외투였다.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외투.

구조는 단순했지만, 모양이나 마감이 꽤 훌륭했다.

‘하루 만에 이정도 성취라고? 대단한데.’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좀 감탄했다.

이윽고 에아가 손에 든 것을 고병갑에게 내밀었다.

「이건 당신 거예요.」

「내 거라고?」

「네! 당신에게 좋은 걸 배웠으니 답례로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염치를 아는 정령이니까요.」

「네 거나 만들어 입지 그랬냐. 아무튼 고맙다. 잘 입을게.」

그가 외투를 받아들었다. 솔직히 입을지 안 입을지는 미지수였다. 더구나 한여름인데 두꺼운 가죽 외투라니.

그래도 선물이라니 기분이 좋았다.

「······.」

한편.

도란은 먼발치에서 에아와 고병갑이 대화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불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점심 식사는 곧 끝났다.

고병갑은 고블린들에게 작업에 나가지 말고 들판으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고블린들은 군소리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얼마 뒤. 밭과 에아 쪽에 작업 보낸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고병갑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들에게 전투술 교본을 각인케 한 것이었다.

「모두 시작해.」

「옙!」

고블린들이 검술 교본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다들 경험이 있는지라 사전 작업은 금방 끝났다. 후유증은 별개였지만 말이다.

이어서 그는 고블린들에게 목검과 목봉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목검을 하나 쥐었다.

「모두 들어라. 아는 애들은 알겠지만, 저 안개 너머엔 그러글이란 괴물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 우리는 아마 필연적으로 그놈들과 싸워야 할 거야.」

고병갑은 안개 방향을 쓱 훑으며 이어 말했다.

「근래 들어 너희가 많이 강해지긴 했을 테지만 아직 멀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나랑 전투 훈련을 할 거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모두 함께하고, 내일부터는 순번을 정해 돌릴 거야.」

「예! 알겠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셋씩 짝을 지어라. 구성은 상관없어. 그냥 마음 맞는 놈들끼리 모이면 돼.」

고블린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병갑의 명령대로 3명씩 모였다.

「야야. 공격대 애들은 빠져.」

「저희는 빠지는 겁니까?」

「그래. 너희는 내가 안 가르쳐 줘도 알아서 잘할 거 아니야.」

「아······ 예.」

고병갑과 함께 균열을 도는 공격대. 사실 그들에게 고병갑이 가르쳐줄 것은 별로 없었다.

이미 교본의 성취율도 제법 올랐을 테고.

「그럼. 거기 너희부터 앞으로 나와.」

「아, 앗! 옙!」

노멀 고블린 2, 홉 고블린 1로 구성된 조가 앞으로 나왔다.

고병갑은 그들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훈련 방법은 간단해. 지금부터 내게 덤벼라. 아주 묵사발 내겠다는 각오로 말이야.」

「예에?」

고블린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럴 만한 게 너무도 파격적인 훈련법이었다.

‘지금은 이 방법뿐이지.’

고병갑은 전술이나 병법에 능한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가 고대에 이름을 떨친 장수도 아니잖은가?

그렇기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개인의 기량을 늘리는 거지.’

환상의 팀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환상적인 개인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뛰어난 개인이 모이면 어지간해선 멋진 팀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애들이랑 대련하면서 자연히 내 실력도 오를 테고 말이야.’

자신도 덩달아 강해지니 이만하면 꽤 괜찮은 훈련 방법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덤비라니까?」

「하, 하지만. 저희가. 어찌 감히. 로드께······.」

고블린들이 망설였다. 아무래도 로드에게 무기를 들이밀기가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고병감은 김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는 으름장을 놓았다.

「나 원. 모두 명심해! 적극적으로 훈련에 동참하지 않는 녀석들은 가만 안 둘 줄 알아!」

「히익!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고블린들이 진지해졌다.

「와라!」

「옙!」

세 마리의 고블린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결과는 예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으엑!」

「껙!」

고블린들은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고병갑의 검술 교본 성취도가 95%에 육박하는 반면 그들은 이제 막 검술 교본을 익혔을 뿐이니까.

‘다들 기본적인 전투 소양은 있어. 그런데 너무 주먹구구식이야.’

고블린들은 순전히 본능에 따라 전투를 벌였다. 그렇다 보니 쓸데없이 동작이 크고 많았다.

교본을 익혀나가며 모두 교정해야 할 부분들이다.

‘아스빌람에 있는 모든 고블린이 하급 교본을 뗄 때쯤 되면 나가도 문제가 없을 거야.’

고병갑은 그렇게 생각하며 날아오는 목봉을 가뿐히 피해냈다. 연속 동작으로 검을 찔렀다.

「으악!」

목검에 맞은 고블린이 벌러덩 자빠졌다. 힘 조절을 했기에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다.

그가 칼을 거두며 읊조렸다.

「됐어. 다음 조 준비해.」

훈련은 계속됐다. 세 마리씩 짝을 이룬 고블린이 순차적으로 고병갑에게 덤볐다.

간혹 고병갑을 몰아붙이는 팀도 있었다. 자이언트 고블린과 비스트 고블린으로 이루어진 조가 그랬다.

하지만 결국에는 고병갑이 압도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검술의 격차가 너무 컸다.

한참을 쉬지 않고 대련했다. 고병갑은 땀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잠깐 쉬고 하자.」

「로드시여. 로드께서 쉬고 계시는 동안 저희가 아이들을 봐주어도 괜찮겠습니까?」

「오, 그거 괜찮네. 좋아. 그럼 너희가 애들 좀 봐줘.」

「알겠습니다.」

6명의 공격대가 고병갑을 대신해 고블린들을 상대해주었다.

고병갑은 담배를 피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양새가 꽤 괜찮았다.

팝콘이라도 한 통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불현듯 뒤통수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요?」

도란과 에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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