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38화 (38/151)

038. 이변

16.

‘왜 몬스터가 균열 밖에 있는 거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였어?’

고병갑은 정신없이 내달렸다. 한 번에 다섯 계단씩 뛰어내리면서 말이다. 빌라를 빠져나오는 잠깐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헛것을 보는 건가? 아니면 꿈?

그런 현실도피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코앞에서 몬스터와 대면했고, 지난 3년간 헌터 생활을 하며 쌓아 온 상식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만끽하게 되었다.

‘예티인가.’

방금 민간인 한 명을 묵사발 낸 괴물의 정체는 예티였다. 8척도 거뜬히 넘기는 신장을 온통 회색 털로 뒤덮은 괴인.

등급은 D로 그렇게 강한 몬스터는 아니다. 물론 헌터들 기준에서 그렇다는 말이지 일반인에게는 재앙과도 같으리라.

“······.”

고병갑은 눈동자만 굴려 옆을 보았다. 주차장 기둥 앞에 축 늘어진 사내가 있다. 방금 예티에게 당한 자였다.

이미 살리기는 글렀다. 머리가 통째로 뽑혀 나갔는데 무슨 수로 살리겠는가.

-으적! 으적!

예티는 생선 같은 눈을 하고서 사내의 머리통을 뜯어먹었다. 놈이 들고 있으니 사람의 머리가 사과처럼 작게 느껴졌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고병갑은 검을 뽑아 들고 예티에게 돌진했다.

“아으으아아!”

예티가 느릿느릿하게 괴성을 지르며 들고 있던 머리통을 던져버렸다. 고병갑은 반사적으로 베어 넘기려다가 얼른 검을 거두었다.

아무리 죽은 자의 것이라지만 사람의 육신을 베고 싶지는 않았다.

“쳇!”

그가 허리를 한껏 숙여 피했다. 예티는 큼직한 손을 깍지끼고 고병갑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내 들어 올린 주먹이 뚝 떨어졌다.

‘그딴 느린 공격!’

고병갑은 순간적으로 몸을 틀며 간단히 피해냈다.

“맞겠냐!”

그와 동시에 검을 세차게 올려 그었다. 예티의 골반부터 왼쪽까지 통째로 잘려 나갔다.

고병갑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냈다. 예티의 대가리가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우어―”

단말마의 비명.

고병갑은 예티의 사체 앞에 서서 사방을 훑어보았다. 다시 보니 민간인 사상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제기랄.’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세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머리통이 뽑혀 있었다.

‘이리도 무력하게 당하다니.’

그렇다. 고작 D급인 예티 한 마리만 떠도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은 속절없이 죽는다. 이들에게 소총. 아니, 권총만 한 자루씩 쥐여줬어도 이리 개죽음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고병갑은 사람들의 시신을 수거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사방에서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스산한 기운을 말이다.

고병갑은 당장 발을 뗐다. 그런데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뇌리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엄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까지 몬스터가 들이닥쳤을까? 만약 그렇다면 엄마는······.

고병갑은 다리가 풀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침착해! 진정하라고!’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제 뺨을 후려쳤다. 알싸한 통증이 일자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전화해보자.’

고병갑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액정을 켜기 위해 홀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부재중 메시지가 몇 건이나 떠 있었다.

[긴급문자!]

-서울시 관악구, 종로구 일대 다수의 몬스터 출현! 시민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십시오!

‘관악이랑 종로 일대라고?’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의 어머니는 현재 강남에 있었다.

그래도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고병갑은 곧장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현재 전화 대기가 많아 연결이 어렵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병원으로 전화가 가지 않았다. 통화량이 폭주한 탓이다.

그는 몇 번이나 다시 걸어 봤지만 매번 똑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그때 고병갑의 시선에 한 번호가 들어왔다.

-김유비

-010-XXXX-XXXX

‘이건······.’

얼마 전. 고병갑이 엄마 문안차 병원에 들렀을 때 일이다. 김유비라는 간호사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고병갑은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별로 유익한 담소는 아니었으나 얼떨결에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밥 먹자길래 바쁘다고 하고 나왔었지.’

그날은 귀찮게 느껴졌던 여자였지만, 지금만큼은 은인 같았다. 고병갑은 얼른 김유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자 그녀가 받았다.

-여보세―아, 잠시만요!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정신없음이 느껴졌다.

고병갑은 간략히 자기소개한 뒤 병원의 상황에 관해서 물었다. 김유비는 조금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답해주었다.

-여긴 안전해요. 괴물도 없고 헌터들이 이 주변을 지키고 있―아! 예! 지금 가겠습니다! 미안해요. 지금 통화 길게 못 해요.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유비는 그 말만 하고 뚝 끊어버렸다. 고병갑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병원이 안전하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고병갑은 예티의 주검을 보며 분노를 끌어올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 엿 같은 몬스터들은 대체 뭐람?

고병갑은 검을 고쳐잡고는 힘차게 내달렸다.

17.

고병갑은 새벽 일찍부터 아스빌람에 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사달이 난 전후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정보로 하여금 현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야.’

괴물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가 최초 예티를 발견하고 30분 정도가 흘렀다. 그는 지금껏 7마리의 몬스터를 베어 넘겼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만 봐도 말이다.

-타다다다당!

‘저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건가?’

그가 총성이 난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더 가까운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악! 살려줘! 제발!”

건널목이었다.

고병갑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건널목을 돌기 전 그는 또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날카로운 것에 잡아 뜯긴 듯 심하게 훼손된 시체였다.

‘염병. 보이는 사람이라곤 시체뿐이네!’

마주치는 사람마다 죽어있다. 고병갑은 이를 갈며 코너를 돌았다.

“으아아악!!!”

이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소년. 그 뒤를 쫓는 덩치의 몬스터.

“미친! 사마나귀라고!?”

사마나귀. C급 중 대형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다. 생김새는 사마귀를 닮았다. 그런데 보통 사마귀가 아니다. 한쪽에 3개씩. 도합 6개의 낫을 든 사마귀였다.

더 큰 문제는 덩치다. 놈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높이가 4m는 가뿐히 넘었다.

‘미치겠네.’

대형 몬스터가 으레 그렇듯, 놈들은 그 역겨운 크기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 된다. 카르마 농도만 더 짙었다면 분명 B급 이상에 등재됐을 만큼.

소년은 금방이라도 따라잡힐 것 같았다.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다.

고병갑은 더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본능에 몸을 맡겼다.

사마나귀의 낫이 소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고병갑은 힘껏 도약하며 칼을 쳐들었다.

칼과 낫이 격돌하며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다. 소년은 간신히 살았다.

“아··· 아아······. 가, 감사―”

“닥치고 빨리 도망가!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숨으라고!”

“네, 네!”

“끄으으!”

4m짜리 거구에서 뿜어지는 괴력. 그것은 확실히 이 세상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퀸 아나크네에 비하면 이까짓 거!’

고병갑은 훨씬 더 엿 같은 상대와도 붙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상황은 선녀 수준이다.

고병갑이 전신에서 힘을 뿜어내며 칼을 튕겼다. 그러자 사마나귀의 몸이 휘청이며 뒤로 넘어갔다.

C급 대형 몬스터가 순수한 힘에서 밀린 것이다.

“흐아아아압!”

고병갑이 기합을 내지르며 도약했다. 두 손으로 쥔 검이 사마나귀의 가슴팍을 꿰뚫고 들어갔다.

“캬아아아아악!”

“뒤져!”

그는 꿰뚫은 상태에서 옆으로 그었다. 살점이 터져 나가며 피와 오물이 쏟아졌다.

사마나귀가 마구 발버둥 쳤다. 고병갑은 재빨리 몸을 떨쳐낸 뒤 허둥대는 녀석의 다리를 하나하나 베기 시작했다.

몸을 지탱하는 뒷다리가 속절없이 잘려 나갔다. 세 번째 다리를 절단했을 때 사마나귀가 쓰러졌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고병갑은 쇄도하는 낫을 모두 피하며 놈의 머리를 세 등분으로 쪼개버렸다.

사마나귀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허억, 허억.”

헌터 예닐곱 명이 집중사격을 퍼부어야 간신히 잡을 수 있는 사마나귀. 고병갑은 그런 괴물을 단신으로 잡아냈다. 그것도 단 몇 분 만에.

‘방해꾼들이 없어서 다행이야.’

만약 균열 내부에서 조우했다면 이만큼 쉽지 않았을 것이다. 놈을 보좌하는 부하 몬스터가 넘쳐났을 테니까.

고병갑은 잠시간 사마나귀의 주검을 쏘아보았다.

“대체 어느 등급까지 포진해있는 거야? 설마 C급보다 더 높은 것들도 있는 건가?”

사마나귀가 이번 사태의 가장 강한 몬스터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예감이 엄습했다.

뭐가 됐건 움직여야 했다.

고병갑은 저 멀리서 들리는 총성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18.

“쏴! 계속 쏴!”

“니기럴! 이게 무슨 난리야!”

헌터들의 입에선 욕이 그칠 줄 몰랐다. 총알 한 방당 욕 한마디였다.

그들은 고전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장소가 안 좋았다.

“쒸이펄. 쪼대로 쏴재낄 수도 없고!”

그들의 현 위치는 신림동에 위치한 어느 빌라촌이었다.

온 사방이 다세대 주택이다. 멋대로 총을 쏴댔다간 엄한 놈 머리가 깨질 판이다.

“키에에엑!”

“이런 썅!”

-탕! 탕! 탕!

헌터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총을 쏘았다.

몬스터들은 간악했다. 헌터들이 망설인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일부러 건물이나 주차된 차량 뒤로 숨었다.

그러면 헌터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엄한 건물이나 차를 맞췄다간 큰일이니까.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뭘 그런 걸 따지느냐고 묻을 수도 있다. 하나, 그건 모르는 소리다.

‘시발. 괜히 차나 건물 쏴댔다가 덤터기 쓰면 어떡해? 나만 손해잖아!’

몬스터가 길거리에 나타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에 관련된 법률도 없었다. 헌터들은 혹시 모를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정의니 뭐니 해도 결국은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던가.

돈이 아니라면 이 땡볕에 몬스터들과 시가전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위 헌터들은 왜 안 보이는 거야! 니기럴 것들!”

“김형 못 들었수? 봉천 난리 났다잖어. 신림은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야. 상위 헌터들 다 그리로 가 있겠지.”

“옘병. 암만 그래도 여기도 몇 명 와줘야 할 거 아니야! 이런 데서 어떻게 싸우―”

“어어! 김형 조심해!”

“뭐? 끄앍!”

꺽다리 귀신 한 마리가 빌라를 타고 헌터들의 뒤를 기습했다.

김석민은 촉수에 맞아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끄아아악!”

“저 씨팔롬이!”

정용태가 재빨리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총구가 불을 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로 환장하겠구만!”

꺽다리 귀신은 빌라의 외벽에 딱 붙어 있었다. 가정집 창문과 바로 맞닿아 있는 곳이다.

꺽다리 귀신은 이곳에 있으면 자신이 안전할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놈이 약 올리는 것처럼 촉수를 휘적거렸다.

“저 씨팔 것이! 에이, 몰라 썅!”

-타다다다당!

열이 뻗친 정용태가 마구잡이로 총을 난사했다. 김석민이 곧장 제지하고 나섰다.

“야 이 미친놈아 뭣 하는 거야! 안에 사람 있으면 어쩌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수!”

방심하던 꺽다리 귀신이 전신에 관통상을 입고 추락했다.

그건 분명 호재였다. 하지만.

-카장창!

“으아아아악!”

총탄이 휩쓸고 지나간 가정집은 난장판이 되었다. 깨진 창문 너머로 끊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헌터님들! 앞에 보세요, 앞에!”

그때 안경을 쓴 헌터, 유병석이 버럭 외쳤다.

나머지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범상치 않은 아우라의 몬스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창백해졌다.

“저, 저거!?”

“크러울이야!”

크러울. B급의 인간형 몬스터다.

2m 정도의 신장. 숯처럼 새까만 몸은 굉장한 근육질이다. 얼굴에 이목구비는 없으며 악어를 닮은 주둥이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놈이 몸을 낮추며 자세를 잡았다. 돌진할 기세였다.

“싸, 쏴야 해! 쏴!”

“으아아아!”

-타다다다다당!

헌터들이 미친 듯이 총을 쏘았다. 그들에게 좀 전의 망설임은 없었다.

돈이고 뭐고 그딴 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팟!

크러울이 땅을 박찼다. 놈은 한 덩이의 포탄처럼 헌터들에게 돌진했다.

헌터들이 쏟아낸 총탄은 크러울에게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놈이 전개한 카르마 베리어에 모조리 막혔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저리 꺼―껅!”

유병석의 가슴에 거대한 바람구멍이 생겼다. 크러울은 피 묻은 손을 뽑아낸 후 다음 희생양을 찾았다.

“아··· 아아······.”

바로 지척에 선 두 헌터가 전의를 상실했다.

역시 상위 몬스터에게 총 따윈 통하지 않았다. 저 베리어를 조금이라도 깎아내려면 RPG 미사일 정도는 있어야 했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

“그라라라!”

“껅!”

김석민과 정용태는 총까지 벗어 던지고 달음박질쳤다.

크러울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그들을 쫓았다. 당연한 말이다마는 도망은 불가능했다.

김석민은 열 걸음도 가지 못해 죽었다.

남은 건 정용태뿐이었다. 설상가상 그는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그의 아랫도리가 축축해졌다.

“그라라라······.”

“아, 안 돼. 제발 살려―!”

“그라라라!”

몬스터는 자비가 없다.

크러울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손날 비수를 쏘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정용태는 죽음을 직감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길드의 호출을 거절했을 텐데!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음!?’

그때였다. 의문의 사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크러울의 공격을 받아내고도 담담했다.

‘상위 헌터가 온 건가?’

그런 의문에 젖어있노라니 의문의 사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일갈했다.

“살고 싶으면 멍청히 자빠져 있지 말고 도망치십시오!”

“아!”

정용태는 대답도 잊고 몸을 내뺐다.

다음 순간. 의문의 사내와 크러울의 육탄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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