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의문의 여인
9.
「투르카! 막아!」
「우어어어어!」
C급 몬스터 오우거.
하위의 세계에선 가히 최강자라고 부를 만한 몬스터다. 인간형 괴물다운 간악함과 3m 장신에서 뿜어지는 괴력. 팔뚝 두께만 하더라도 웬만한 성인 여성 허리는 넘는다.
녀석이 카르마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면 분명 B급 이상에 등재됐으리라. 하위에선 견줄 몬스터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고병갑이 이끄는 공격대 역시 하위의 범주에 담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우워어어어어!」
“그라라라라!”
두 거한이 충돌했다. 투르카는 오우거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밀려나는 건 도리어 오우거 쪽이었다.
“그라라라라라라!”
오우거가 노는 주먹을 뒤로 뻗었다. 그것은 미사일처럼 쏘아져 방패 너머를 노렸다. 투르카가 재빨리 몸을 숙이며 파고들었다. 곧장 몸을 일으키며 방패로 오우거의 턱을 후려버렸다.
“크악!”
오우거 녀석이 부러진 이빨을 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벌러덩 자빠진 녀석이 서둘러 땅을 짚었다. 그 순간 전격 화살이 다발로 들이닥쳐 오우거의 팔다리를 꿰뚫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좋았어.’
고병갑이 옆쪽 상황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어우욱!”
한데 웬 호랑말코 같은 놈이 즐거운 여운을 깨트렸다. E급 짜리 스켈레톤 병사였다.
고병갑은 슬쩍 곁눈질하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 그의 발과 어깨가 강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공격을 한 차례도 적중시키지 못하니 스켈레톤 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어욱―껅!”
고병갑은 가볍게 검을 올려 그었다. 빈약한 뼈 몸뚱이가 부서지며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현재 ‘고대 검술 교본-하급’의 성취율 : 71.86%]
‘더럽게 안 오르네.’
고병갑은 홀로그램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성취율이 60%를 넘긴 이후로는 병든 강아지 오줌 줄기마냥 찔끔찔끔 올랐다.
‘빨리 중급 검술을 익히고 싶은데.’
뭐, 날로 먹는 입장에서 불평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고병갑은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전방의 스켈레톤 병사 여섯 마리. 전광석화처럼 돌진한 그가 여섯 방향으로 검을 내질렀다. 한 획에 한 마리씩 베어 넘긴다.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는 데에 잠시도 걸리지 않았다.
-쿠쿵!
균열이 붕괴를 일으켰다. 뒤쪽에 맡겨둔 보스 몬스터가 죽었다는 신호이다.
부하 몬스터도 몇 남지 않았다. 고병갑과 창식, 태식은 발 빠르게 나머지 몬스터를 해치웠다.
일꾼들을 불러내 몬스터 사체를 아스빌람으로 옮긴다. 고병갑은 담배를 피우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남은 빚이 얼마더라.’
채무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고병갑은 매달 200~300만 원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었다.
‘한 4억쯤 남았던가.’
고병갑이 평범한 D급 헌터이던 시절.
그의 월 수익은 적게 나올 때는 500만 원 전후반. 많이 나올 때는 육백에서 칠백 정도 벌었다.
그중 유지비를 제외하고 어머니 병원비로 지출되는 돈을 빼면 간신히 채무 상환금이 마련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에 몇 배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C랭크 균열 하나만 돌아도 250만 원은 건진다. 더욱이 현재는 과거처럼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매달 소모하는 포션이라 해봐야 한두 병이 고작이었다. 무장을 날붙이로 바꾼 이후에는 탄약값도 들지 않았고.
이 기세라면 매월 순이익 3,000만 원도 넘길 성싶었다.
‘이대로만 가면 내년 안에는 모든 빚을 갚을 수 있겠어. 그럼 엄마가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야.’
고병갑의 어머니인 박영옥은 환마병 환자다.
마석에서 추출한 정수를 꾸준히 투약받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녀는 현재 B급 몬스터의 마석을 투약받고 있다. 고병갑의 목표는 그녀에게 S급 몬스터의 마석을 투약게 하는 것이었다.
‘최상품질 마석을 투약받으면 완치할 수 있을지 몰라.’
고병갑은 어머니가 기력을 차리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서 그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고 고대할 뿐이었다.
「로드시여. 끝났습니다.」
「고생했다. 이만 돌아가도 좋아. 나도 좀 있다 갈게.」
「예. 로드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그리고 너희. 일하는 건 좋은데 휴식도 충분히 해둬라. 맨날 가보면 동굴에서 일하고 있잖아.」
공격대 애들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이따 보자.」
고블린들을 아스빌람에 보내고, 고병갑은 이면 세계를 빠져나왔다.
“시간이······ 아직 열두 시도 안 됐네.”
새벽 일찍 나온 덕분인지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다.
“아우 배고파. 국밥이나 한 그릇 때려야지.”
고병갑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렁크에서 클렌징 티슈를 꺼냈다. 그걸로 몸에 묻은 오물을 떨쳐냈다.
토벌을 끝내면 항상 이 귀찮은 짓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차 시트에 몬스터의 피가 잔뜩 묻을 테니까.
“누가 휴대용 샤워장 같은 거 안 만들어 주나. 매번 뭐 하는 짓이야, 이게.”
그가 얼굴에 묻은 피를 벅벅 닦으며 불평했다. 문득 상위 헌터들이 부러워졌다. 그들은 이 귀찮은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몸에 두르는 카르마 베리어는 비단 공격만 막아주는 게 아니었다. 피며 타액이 몸에 직접 묻는 것도 막아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바탕 전투를 치러도 몸이 오염되지 않았다.
‘······잠깐만. 그러고 보면 휴대용 샤워장이 있잖아?’
물티슈로 머리를 감는 기행을 하던 중, 고병갑은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의 몸 안에 휴대용 샤워장이 있다는 사실을!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도 참 바보다.’
그는 여벌의 옷을 챙겨 아스빌람으로 넘어갔다.
고블린들이 죄다 동굴 밖에 나와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음? 로드시여? 벌써 오셨습니까?」
때마침 옆을 지나치던 도르마가 짐짓 놀라며 물었다. 고병갑은 팬티를 흔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목욕하러 왔어. 밥 먹으려고 준비 중인가 보지?」
「예. 같이 드시렵니까?」
「됐다. 나 오늘 국밥 먹으러 갈 거야.」
「국······ 밥?」
「뜨끈하고 든든한 가성비의 귀재라고 할 수 있지.」
「아······ 그, 그렇습니까? 기회가 되면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군요.」
도르마가 어색하게 웃었다.
「암튼 맛나게 먹······ 어우씨, 놀래라!」
-꺼꾸댁! 꺼꾸대애액!
모르는 사이 장닭 한 마리가 고병갑의 발치로 다가왔다. 고병갑이 움찔 몸을 떨자 닭도 놀랐는지 역정을 질러댔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라고 항의하는 듯했다.
「이놈들은 무슨 사람을 보고도 겁을 안 내? 아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고병갑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닭은 쏘아보다가 도르마에게 말했다.
「도르마. 얘들 절대 밭으로 못 가게 해. 기껏 고구마랑 감자 심어놨는데 이놈들이 다 쪼아먹게 둘 순 없잖아.」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고붕이가 울타리를 만들 거라고 하더군요.」
「울타리? 고붕이가?」
「예. 지난밤부터 뭔가 열심히 만들더군요. 총명한 아이인지라 손재주가 좋은 것 같습니다.」
고병갑은 속으로 조금 놀랐다.
‘얼마나 대단한 것을 만드는지 한 번 볼까?’
그는 모르는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르마와 작별 인사를 하고 강가로 향했다. 지난번에 가지고 온 세면도구도 챙겼다.
강가에 몸을 담그고 몸을 씻어나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누칠하니 아주 개운했다.
“조강지처가 좋더라~ 썬연료가 좋더라~ 친구는 오랜 친구 죽마고우······.”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사타구니를 벅벅 닦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강과 맞닿아있는 숲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안개 방향이 아니라 들판과 이어진 부근이었다.
고병갑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 씻고 있다. 오지 마라.」
고블린들이 뭘 알겠냐마는, 그래도 녀석들에게 알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부스럭! 부스럭!
「야! 나 씻고 있다니까? 물 뜨러 온 거면 좀 있다가 떠가.」
「······.」
부스럭거림은 계속됐고, 대답은 들려오지도 않았다.
그쯤 되니 이상함을 감지했다. 고블린들이 자신의 말을 무시할 리가 없는데?
‘닭인가?’
그가 몸을 수그린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숲을 응시했다. 왠지 조금 긴장됐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을 가르며 거대한 몸뚱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꼬꾸댁!
“아오. 하여간 저 티라노 새끼들. 다 잡아 먹어버리든지 해야지.”
쌈닭 세계 선수권 대회 정도는 가볍게 섭렵할 체급의 장닭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가왔다.
녀석은 초당 12번 정도 부리를 놀리며 들판의 벌레를 쪼아먹었다.
고병갑은 한 10초 정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거 한 마리만 튀겨도 치킨 세 마리 분은 나올 듯했다.
“이참에 헌터 때려치우고 닭 장사나······.”
-스슥!
“꺼껅! 꺼구―끍!”
“야, 야 이 씨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쏜살처럼 닭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말릴 틈도 없이 닭의 모가지를 꺾었다.
으드득! 으드득! 찌걱찌걱!
놈은 게걸스럽게 닭의 살점을 탐하기 시작했다.
“껅! 꺼걹! 꺼꾸······ 댁!”
자지러지는 닭의 비명. 닭은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으며 부들부들 떨다가 축 늘어졌다.
‘미친!’
고병갑이 기겁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검은커녕 아무것도 집히지 않았다.
당연하지!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알몸 차림이니까!
그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급한 대로 짱돌이라도 하나 주워들었다.
다시 앞을 보았다. 깃털도 뽑지 않은 생닭을 뜯어먹는 저것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사람? 고블린? 몬스터? 염병! 저게 뭐야?’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였다.
기본적인 생김새는 사람과 흡사했다. 다 찢어지긴 했다만 옷 비스무리한 것도 차려입고 있다.
다만 생김새는 인간도, 고블린도 아니었다.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곤 놈이 여성이라는 것 정도였다. 머리가 길고 몸이 굴곡졌다.
고병갑은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저 정체불명의 인영은 닭을 먹는 데만 혈안이 되어 고병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덜렁이는 사타구니를 가릴 생각도 않고 자세를 잡았다. 그때 움직임을 감지한 괴인이 고개를 반쯤 돌렸다.
고병갑은 재빨리 돌팔매질했다.
“껅!”
짱돌이 괴인의 머리에 명중했다. 힘 조절을 했기에 머리통이 통째로 터져나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괴인이 휘청이더니 철퍼덕 쓰러졌다.
“허억, 허억. 뭐야 저 새끼?”
고병갑은 한동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10.
「로드시여? 이, 이 자는 대체?」
「나도 몰라.」
고병갑은 팔짱을 끼고 바닥을 내려보았다.
바닥에는 고병갑이 들고 온 괴여인이 누워있었다.
「몸이 걸레짝이군요. 로드께서 하신 겁니까?」
「아냐. 원래부터 이랬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괴여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안 죽고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다.
일단 비쩍 말랐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몸뚱이에 거죽밖에 없었다. 고병갑이 이 여인을 보고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앙상한 뼈가 툭툭 튀어나와 있으니 기괴할 수밖에.
둘째로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있다.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완전히 뒤틀렸다. 고병갑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서 저렇게 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런 몸으로 닭을 잡은 게 용하다.’
그 밖에 자잘한 찰과상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뭐가 됐건 이대로 두면 죽을 게 자명했다.
아파 죽든, 굶어 죽든.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도르마가 물었다. 고병갑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고붕아. 가서 포션 가져와.」
「앗! 예! 알겠습니다!」
「이 자를 살리실 생각이십니까?」
「죽일 때 죽이더라도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내고 죽여야지.」
고병갑이 고개를 들고 고블린들에게 명령했다.
「전부 들어! 지금 당장 가서 안개 부근을 샅샅이 뒤져라. 혹 안개 너머와 연결됐거나 넘나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내게 즉각 보고해. 또 우리 외에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절대 대적하지 말고 나를 불러라!」
「알겠습니다!」
고블린들이 일사불란하게 퍼졌다.
잠시 후 포션을 가지러 갔던 고붕이가 돌아왔다.
「고붕아. 번거롭게 해서 미안한데 창고 가면 나무판자랑 붕대도 있을 거다. 그것도 좀 가지고 와라.」
「알겠습니다! 바로. 갔다 오겠습니다!」
고병갑은 괴여인의 팔다리부터 짜 맞추었다. 헌터 3년 차면 부러진 뼈 정도는 맞출 수 있어야 했다.
괴여인의 신체 구조는 인간과 흡사했다.
“으으윽!”
몸을 만질 때마다 괴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괴여인을 정갈하게 만든 뒤에는 입안으로 포션을 흘려 넣었다. 그녀는 꿀떡꿀떡 잘 받아 마셨다.
최하급 포션 한 병을 다 털어 넣었으니 적어도 죽지는 않으리라.
“하아······.”
고병갑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복잡미묘했다.
‘이건 대체 뭐야?’
그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