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30화 (30/151)

030. 공격대

3.

균열을 토벌하기 위해 모인 이들을 토벌대라고 부른다. 여기서 하위 토벌대와 상위 토벌대는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하위의 세계에선 역할군이랄 게 따로 없다. 왜냐면 이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저놈이기 때문이다.

C급이나 F급이나 하는 일은 비슷했고, 할 줄 아는 것도 비슷했다.

반면 상위의 세계에선 역할군이 정형화돼 있었다. 딜러, 힐러, 탱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위 세 가지 역할군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연히 하는 일도 달랐다.

한발 더 나아가면 각 역할군에서도 뻗는 가지가 여러 개였다.

딜러는 기본적으로 근접 딜러와 원거리 딜러로 나뉜다. 거기서 다시 암살자 타입, 전사 타입, 마법사 타입으로 갈라진다.

탱커는 군중 탱커, 전담 탱커, 그리고 몬스터의 주의를 끄는 어그로 탱커로 구분된다.

힐러는 전투에 직접 가담하는 전투형 힐러인지 아니면 후위에서 지원하는 서포트형 힐러인지로 분류했다.

하여 상위의 세계에선 토벌대라는 단어 대신 공격대라는 독특한 명칭을 사용했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느냐면 고병갑이 공격대를 짜고 있었기 때문이다.

‘흠······. 이정도면 되겠어.’

앞으로 고병갑과 함께 토벌다닐 특임대가 꾸려졌다.

딜러 다섯에 탱커 둘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메인 딜러로 자기 자신을 두고, 비스트 고블린 두 마리를 더해 공백을 채웠다.

키리얀과 도르마는 원거리 딜러로서 지원사격을 맡겼다.

투르카와 다른 자이언트 고블린에게는 탱커의 역할을 부여했다. 그들의 임무는 원거리 딜러가 안정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다.

‘힐러만 있으면 완벽한데.’

힐러가 없는 것은 아쉬웠다. 갖가지 교본 중에도 치료술에 관련된 것은 없었다.

「이름 없는 애들 앞으로 나와봐.」

「예!」

너, 야, 걔 따위로 부르면 불편하니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비스트 고블린 둘과 자이언트 고블린 하나가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새로 들어온 고블린 중에 가장 덩치가 좋고 강한 녀석들로만 꼽은 것이다.

‘뭐가 좋으려나.’

고병갑이 끙 앓았다. 이름 짓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에이. 아무렇게나 지으면 되지 뭐.’

「너는 앞으로 창식이다. 너는 태식이고.」

비트스 고블린에게는 각각 창식과 태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분히 한국식인 이름이지만 뭐 어떤가? 딴죽 거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다행히 창식이도 태식이도 좋아했다.

적어도 고병갑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흠. 너는 뭐가 좋을까······.」

이번에 자이언트 고블린 차례다. 그런데 도통 영감이 안 떠올랐다. 하여간 얘들은 이름도 없어서 사람 머리 아프게 만든다.

「아유, 모르겠다. 너는 그냥 오르카 해라.」

「오르카?」

「그래. 투르카 오르카. 카자 돌림 좋잖아.」

「예!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오냐.」

이름도 다 지어줬으니 이제 정예화할 차례다.

고병갑은 미리 준비한 물품을 공격대에게 나누어주었다.

성장의 묘약과 각종 교본이었다.

「키리얀.」

「예. 로드.」

「애들 묘약 마시게 하고 교본 각인하는 방법도 가르쳐 줘. 할 줄 알지?」

「문제없습니다!」

「묘약. 너랑 투르카 것도 사놨으니까 두 병씩 마셔, 나 창고 쪽에 가 있을 테니까 끝나면 그리로 오고.」

「옙!」

고병갑은 고블린들을 놔두고 창고 쪽으로 향했다.

창고엔 각종 물자가 쌓여있다. 주워온 잡동사니부터 몬스터에게서 얻은 부산물까지.

그리고 창고 옆에는 연금술 장치인 연성소가 두 대 설치되어 있다.

「아! 로드시여. 오셨습니까!」

「어, 고붕이. 잘 돼가냐?」

고붕이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이 거적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잘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고병갑은 고붕이를 완벽한 작업반장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훗날 고붕이가 모든 일을 능숙하게 해낸다면 녀석을 시켜 후인을 양성할 수도 있을 테니까.

고병갑은 고붕이가 만든 작업물과 자기가 견본으로 걸어둔 것을 비교해보았다. 닮은 구석이라곤 같은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구상하는데 편하라고 견본까지 제작했음에도 성취율이 낮았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애저녁 뚝딱해낼 거라고 기대 안 했으니까.

「괜찮아, 인마. 원래 어려운 거야. 그리고 이 정도면 꽤 잘한 거고.」

「저···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하겠냐?」

「아, 아닙니다!」

「그래. 그러니까 꾸준히 연습해.」

「옙!」

「그리고 이거 마셔.」

「앗! 감사합니다!」

고병갑은 품에 지니고 있던 묘약 두 병을 건내주었다.

고붕이는 좋아라하며 묘약을 받아들었다.

‘덩치가 꽤 좋아졌네.’

비리비리한 홉 고블린이던 고붕이가 어느덧 듬직해졌다. 고붕이뿐만이 아니다. 아스빌람의 모든 고블린이 때깔이 좋아졌다.

「크으······.」

고붕이가 묘약 두 병을 단숨에 들이키고 인상을 찌푸렸다. 성장통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고붕이도 이미 한 번 격통을 겪었기에 성장통은 길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애들 줄 무기좀 만들려고.」

「아하!」

고병갑은 창고로 들어가 재료를 모았다.

비스트 고블린이 사용하던 조악한 클로와 철근, 갈퀴늑대에게서 재취한 꼬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고붕이는 한참 연금술에 매진중이다. 고병갑은 그 옆 연성소에 가서 섰다.

준비한 재료를 통 안에 집어넣고 연성판에 손바닥을 갔다 댔다.

고병갑은 머릿속으로 완성품의 모양을 구상했다. 이윽고 망설임 없이 연금술에 돌입했다.

-두두두두두!

연성소의 기계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며 소음을 발산했다. 고병갑은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을 놓지 않았다.

잠시 후. 연성소가 가동을 중지했다. 고병갑은 통을 열어 완성품을 꺼냈다.

‘이야. 모양새 좀 나오는데?’

강철 덮개가 씌워진 장갑형 클로다. 공격성과 방어성 모두 우수한 양질의 물품이었다.

맹수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비스트 고블린에게 안성맞춤인 무기이리라.

‘창식이 태식이 줄 건 됐고. 키리얀이랑 도르마는 딱히 무기가 필요 없을 테니······ 방패나 한 번 만들어 볼까?’

고병갑은 멈추지 않고 다음 작품을 구상했다. 이번엔 자이언트 고블린에게 줄 큼직한 방패였다.

‘재료는 뭐가 좋으려나. 아! 그게 있었지?’

고병갑이 얼른 창고로 돌아갔다. 널찍한 창고 한 켠에 흰색 물체가 한아름 쌓여 있었다.

그것은 D급 몬스터인 혼 가브리의 머리뼈였다.

혼 가브리의 머리뼈는 무척 단단하다. 고병갑의 참격을 맞고도 굳건히 벼텨낼 정도니까.

고병갑은 머리뼈를 가득 안고 나왔다.

그것을 연성소 재료 투입구에 몽땅 집어넣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 생각에 벌써 마음이 두근댔다. 그래도 애써 진정시킨다. 침착함을 잃으면 연금술에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까.

차분히 심호흡한 그가 연성판에 손을 얹었다. 그 뒤 머릿속으로 완성본의 모습을 그렸다.

방패는 오히려 쉬웠다. 형태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팔걸이랑 손잡이 부분이 핵심이겠네.’

연성을 시작했다. 곧바로 연금술 장치가 가동됐다.

-두두두두두······. 푸쉬이이이······.

연금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병갑은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통을 열었다. 그 안에는 문짝으로 보일 만큼 커다란 방패가 들어있었다.

「와······. 역시. 로드십니다.」

「후후. 이 정도는 기본이지.」

고붕이가 넋을 잃었다. 고병갑은 어깨를 으쓱이며 방패의 자태를 감상했다.

완성도가 꽤 훌륭하다. 수백 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연금술을 단련한 보람이 있었다.

‘손잡이랑 팔걸이도 완벽하고.’

고병갑은 방패를 한 번 들어보았다. 무게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강철이 아닌 뼈로 만든 덕분이다.

‘역시 나한테는 좀 크구만.’

고병갑의 근력이면 무리없이 다룰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크기 쪽에서 불편함이 생겼다.

신장 180cm정도로는 무리다. 신장 2m가 넘고 팔이 긴 자이언트 고블린이어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고병갑은 똑같은 모양으로 하나 더 만들었다. 그 무렵이 되니 공격대가 창고를 찾아왔다.

「어, 뭐야? 벌써 끝났어?」

「그렇습니다.」

고병갑은 공격대를 쓱 훑었다. 표정을 보니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때? 뭐가 좀 변한 것 같아?」

「로드시여. 이건 정말이지 대답합니다.」

도르마가 즉시 대답했다. 고병갑은 계속 말해보라는 의미로 눈짓했다.

「주술 교본이라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였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조들이 사용던 주술이 그대로 담겨 있더군요.」

「오호. 그래?」

「예. 그것들을 잘 갈고 닦으면 로드께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가짐이 훌륭하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할 필욘 없어.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다른 애들은 어때?」

「머리는. 아프지만. 힘이 넘칩니다!」

「당장 싸우고. 싶습니다!」

「좋아, 좋아.」

고병갑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연금술로 만든 물건들을 나누어주었다.

「자, 창식이 태식이. 받아라. 너희 거다.」

「흡? 저, 정말입니까?」

「한 번 껴봐. 손에 맞을지 모르겠네.」

창식이와 태식이는 장갑형 클로를 받아들고 손에 껴보았다. 다행히도 맞춤 제작인 양 딱 맞아떨어졌다.

「멋집니다!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드!」

「자, 그리고······ 읏차! 이건 투르카랑 오르카 거.」

고병갑이 한쪽에 기대놓은 방패를 넘겨주었다.

자이언트 고블린 두 녀석이 몹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너희 둘은 그거로 키리얀이랑 도르마를 잘 지켜줘야 해. 할 수 있겠지? 」

「문제없습니다!」

고병갑은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자 옆에서 은근한 시선이 쏘아졌다.

‘음?’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키리얀이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고병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병갑은 어련히 눈치채고 담담히 말했다.

「네 건 없는데, 키리얀.」

「······.」

「야. 어차피 너는 멀리서 싸우니까 저런 거 필요 없잖아. 도르마도 마찬가지고.」

「예······. 맞습니다······.」

「로드시여 저는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르마는 덤덤했지만, 키리얀은 조금 섭섭한 모양이었다.

고병갑은 나중에 호신용 단검이라도 하나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너흰 오늘 푹 쉬어. 내일 첫 출정이 있을 테니까.」

「옙!」

고병갑이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슬 해가 저물고 있다.

그도 내일 있을 토벌이 기대되었다.

4.

고병갑은 이른 아침 일어났다. 세면 세족을 마친 뒤엔 얼른 채비를 갖추었다.

무기와 장비를 챙긴다. 전보다 준비할 것들이 적었다. 총과 탄약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작업복으로 환복을 마친 그는 곧장 차에 올랐다. 그 뒤 어제저녁부터 점찍어 두었던 균열의 좌표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목적지는 파주. 그곳에 C랭크 균열이 있다.

‘드디어 C랭크구만.’

고병갑은 슬슬 C랭크 균열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만약 이번 토벌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그의 먹잇감은 한동안 C랭크 균열로 고정될 것이다.

C가 만만해질 무렵 B로 올라서고,

B도 우습게 느껴질 때쯤 A에 도전하자.

그렇게 한 계단씩 오르다 보면 어느새 S에 닿아있으리라.

파주까지는 금방이었다. 물론 시내에서 한참을 더 가야 했지만 말이다.

높은 건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 그를 맞이했다.

그가 차를 세운 곳은 어느 캠핑장이었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는 캠핑 명소다.

여름철이다보니 텐트도 꽤 많았다.

균열이 있는 곳은 계곡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가 차 트렁크를 열어 장비를 챙기고 있으려니 곁으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와. 헌터인가 봐. 허리에 칼 차고 있어!”

“저 위쪽에 균열이 생겼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몸 엄청 좋다. 싸인 해달라고 할까?”

“어? 나 저 헌터 TV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진짜? 누군데 누군데? 유명한 사람이야?”

“몰······ 라? 그렇게 유명하진 않을걸?”

‘웃기고 있네.’

고병갑이 속으로 코웃음쳤다. TV에서 보긴 뭘 본단 말이야?

그는 일부러 사람들을 못 본 체하며 채비를 마쳤다. 이윽고 그들의 시선을 지나쳐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지형이 점점 험난해졌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강의 상류인 탓이다.

고병갑은 그곳에서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선점자는 없는 듯했다.

고병갑은 망설임 없이 균열로 몸을 담갔다.

이면 세계가 그를 맞이했다.

덧붙여 몬스터도.

“꾸륵! 꾸륵!”

“여름 계곡이라고 개구리야? 완전 테마 파크네.”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D급 대형 몬스터 자이언트 러그였다.

생김새는 그저 황소 개구리를 수백 배로 늘려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녀석이 입을 벌리면······.

“꾸르륵!”

입안을 가득 메운 수천 개의 이빨을 구경할 수 있다.

자이언트 러그는 치악력이 어마어마하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씹어 삼키는 데 3초가 걸리지 않는다고 전해질 정도다.

-팟!

자이언트 러그가 긴 혓바닥을 쏘았다. 그것은 화살만큼이나 빨랐다.

그러나 빠르다는 것은 상대적인 값이었다.

고병갑은 허리춤의 검을 뽑음과 동시에 내질렀다. 분홍빛 혓바닥이 맥없이 잘려 파닥거렸다.

“꾸, 꾸륵!?”

자이언트 러그가 당황했는지 주춤거렸다.

고병갑은 거대 개구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잠시 보류하고 아스빌람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얘들아, 나와라. 오늘 개구리 반찬이다.」

그의 부름 아닌 부름을 받고 공격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