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18화 (18/151)

018. A랭크 균열

40.

짐꾼. 몬스터에게서 마석과 전리품을 수거하고, 토벌 내내 짐을 운반하는 사람. 상위 랭크 균열을 토벌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다.

간혹 짐꾼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고작 짐 옮기는데 적지 않은 돈을 줘가며 사람을 부릴 필요가 있냐는 게 그들의 지론이다. 그러나 그건 뭘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업계 생리에 무지한 신입 헌터들이 그런 말을 하곤 하지.’

상위 균열부터는 이면 세계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진다. C랭크 균열은 많아 봐야 150마리쯤 몬스터가 나오지만, B랭크 이상에선 기본이 300마리이다.

마석의 무게만 하더라도 50~60kg은 될 터. 거기다가 각종 전리품, 부산물, 헌터들의 장비, 포션 등을 합치면 200kg~300kg이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누군가 그 짐을 떠맡아주지 않는다면, 헌터들은 100%의 능률을 낼 수 없으리라.

길드에서 주관하는 토벌이라면 때에 따라 4~5의 짐꾼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경력이 많은 전문 짐꾼들은 여느 헌터 못지않은 고액의 보수를 받으며 일했다.

‘그래도 한탕에 300만 원은 너무 많은데? A급 균열이면 보통 130~150만 원 정도가 평균 페이 아닌가?’

보수가 많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어딘가 켕기는 부분이 있다는 거니까.

‘그래도 가평역은 바로 근처고 짐꾼으로 하루 뛰고 300만 원이면······. 일단 찔러나 볼까?’

고병갑은 게시글을 클릭했다. 일단 상세 내용을 읽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본문에는 전화번호 하나만이 달랑 남겨져 있었다. 그쯤 되니 ‘이거 누가 장난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고병갑은 게시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대여섯 번 정도 지나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는 젊은 여인의 것이었다.

“네, 여보세요. 헌터넷에서 모집 공고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가평역에 발생한 A랭크 균열······.

-언제까지 오실 수 있으시죠?

”예?“

-30분 안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뭐야 이 여자? 아직 한다는 말도 안 했는데.’

참 성질도 급한 사람이구나. 고병갑은 그렇게 생각했다.

”네. 한 20분이면 가긴 합니다.“

-그럼 문자로 좌표 보내드릴 테니 그리로 와주세요.

여자가 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냈다. 고병갑은 재빨리 말했다.

”아! 잠시만요.“

-네.

”가기 전에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일단 페이를 300만 원이라고 기재해놓으셨던데 맞나요? 그리고 길드 주관으로 하는 토벌입니까? 아니면 팀 단위로 하는 토벌입니까? 물자는 이쪽에서 준비해가는 건가요? 참가인원 수는 몇 명이고 구성원 등급은······.

-일당 300만 원 맞아요. 몸만 오시면 돼요. 나머지는 만나서 얘기해요.

“······.”

-오실 건가요? 안 오실 거면 지금 말씀해주세요.

“······일단 그리로 가겠습니다.”

-네. 빨리 와주세요.

여자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고병갑은 핸드폰을 들여보며 황당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3년간 헌터 생활을 했고, 짐꾼으로도 몇 번 뛰어본 그였다. 그런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일단 가보자. 가서 보고 미친 여자 같으면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고병갑이 가평역 쪽으로 차를 몰았다.

가평역까지는 금방이었다. 여인이 찍어준 좌표는 가평역에서 4km 정도 떨어진 외진 산골이었다.

민가와 상당히 떨어져 있고, 주변엔 온통 산과 들판뿐이었다. 공터에 차를 세우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애들 아냐?’

인원은 총 4명이었다.

훤칠한 여인이 1명. 나머지 셋은 이제 갓 중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일제히 고병갑 쪽을 바라보았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고병갑은 일단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아까 통화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밖의 여인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댔다.

저들이 맞았다.

-빨간색 모닝 맞으시죠. 나오세요.

여인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까닥거렸다.

고병갑은 떨떠름함을 느끼며 차에서 내렸고, 여인에게 다가갔다.

“준비하세요. 바로 들어갈 거니까요.”

20대 후반 정도의 여인. 남자처럼 짧게 자른 흑발에 인상은 차갑다. 목소리도 냉랭했다. 상위 각성자 특유의 미모 때문일까. 인간미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병갑은 그녀와 마주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카르마 농도······. 최소 S급이야.’

며칠 전 식당에서 이소리, 허길남과 마주쳤을 때보다 더욱 큰 위화감이었다.

그녀 곁에 있는 아이들도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하나 같이 괴물 같은 카르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조합이란 말인가?

여인은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고급 밴의 트렁크를 열었다. 거기서 한 자루에 수억을 호가하는 마공학 무기를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배낭 챙겨 오셨나요.”

“있긴 합니다.”

“이거 쓰세요.”

그녀는 고병갑에게도 배낭 하나를 건넸다. 아주 커다란 배낭이다. 얼떨결에 들쳐 메니 배낭이 저절로 꿈틀대며 몸에 밀착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았다. 이것 역시 값비싼 마공학 장비였다.

“그쪽은 마석만 수거해주시면 돼요. 전투 중엔 휘말리지 않게 잘 피해 계시고요.”

“잠시만요. 제가 상황 파악이 잘 안 돼서 그러는데 토벌 인원은 이게 다입니까?”

“네.”

여인이 너무 담백하게 대답하니 할 말을 잊는 기분이었다. 뭔가 따져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쉽사리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짐꾼은 저 혼자인 겁니까?”

“마석만 수거해주시면 돼요. 혼자서도 충분한 일일 거고요.”

“혹시 등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제야 조금 사람다운 느낌이 들었다.

“S급입니다. 느끼고 계실 텐데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고병갑이 여인과 아이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국에 S등급 헌터는 모두 450명. 어지간한 인물은 고병갑도 얼굴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과 아이들은 전혀 눈에 익지 않았다.

“그······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고병갑이 묻자 여인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하나예요.”

‘김하나? 김하나?’

고병갑은 속으로 김하나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그러나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김하나가 말했다.

“오늘 함께 하기로 한 짐꾼이 갑작스레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구인을 한 거죠.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 그쪽은 그냥 마석을 수거해주시고 일당을 받아 가시면 돼요. 어렵나요?”

“아니, 어렵고 안 어렵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키지 않는다면 돌아가셔도 좋아요.”

여인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니, 단호하다기보단 차가웠다. 그야말로 얼음 같은 여자였다.

고병갑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피어올랐다.

돌아갈까, 말까, 돌아갈까, 말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는 고병갑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300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잖은가. 그녀의 말마따나 돈만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여인은 물론이거니, 아이들 또한 강력한 S등급으로 판단됐다. 토벌 중에 위험한 일은 없을 성싶었다.

“그럼 출발하죠. 애들아, 가자꾸나.”

“네. 마스터.”

‘마스터?’

아이들은 김하나를 마스터라고 불렀다. 고병갑은 그 호칭에 의문이 들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고병갑은 균열에 들어서기 전 장검을 착검했다. 배낭만 달랑 들고 A랭크 균열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심적으로 부담됐기 때문이다.

김하나와 아이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A랭크 균열.’

균열 앞에 섰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껏 먼발치에서만 바라봤지 직접 몸을 담그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희가 들어가고 1분쯤 뒤에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김하나와 아이들이 균열로 입장했다. 고병갑은 속으로 1분을 센 뒤 인생 첫 A랭크 균열로 몸을 던졌다.

41.

‘여기가 A랭크 균열.’

고병갑은 넋을 잃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회색빛 하늘엔 불길한 힘의 파동이 넘실거렸다.

공기는 무거웠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전신의 털이 솟아올랐다.

김하나와 세 아이가 고병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고병갑이 넘어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지체 않고 걸음을 옮겼다. 고병갑은 얼른 따라붙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멀찍한 곳에서 가만히 계세요. 병갑 씨에게 접근하는 몬스터는 제가 쳐낼 거예요. 괜히 움직이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명심하지요. 그나저나 그쪽 분들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고병갑이 묻자 아이들이 김하나의 눈치를 살폈다.

“······통성명이 필요한가요?”

“하루라곤 해도 함께 일하는데 서로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병갑이 능청을 떨었다. 사실 정말로 이름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들이 자신의 머릿속 사전에 등재된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김하나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이 아이는 제인. 그리고 도은호, 강한철이에요.”

고병갑과 아이들은 가볍게 묵례하며 인사했다.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대략 2~3분 정도 거닐었을 때였다. 선두에서 걷던 김하나가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제인이 전방에 서. 은호는 좌익, 한철이는 우익으로.”

“네. 마스터.”

“제한 시간은 1분. 출력 제한은 50%.”

김하나가 손목시계를 조작했다. 곧 손목시계가 ‘삑!’하는 기계음을 뱉어냈다.

“시작해.”

그녀가 말한 직후 아이들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카르마가 방출되었다.

어찌나 농밀한지 눈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이윽고 푸르스름한 카르마가 아이들의 몸을 뒤덮었다.

저것이 바로 하위와 상위 헌터를 구분 짓는 척도. 카르마 베리어다.

카르마 베리어는 카르마를 담지 않은 공격에 어마어마한 저항력을 가진다. 저 베리어에 흠집이라도 낼라치면 탄창 5개는 쏟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고병갑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S등급 각성자가 진심으로 힘을 개방하자 몸의 세포가 아주 비명을 질러댔다.

현재 저들은 영락없는 상위 포식자였고, 고병갑은 잡아 먹히는 피식자였다.

“크르르르······.”

뿜어지는 카르마를 감지했는지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도스. 어깨높이만 2.5m에 이르는 도마뱀 형상의 괴물이었다.

척추를 따라 가시가 잔뜩 돋아있고, 발톱은 낫과 같다. 보행하는 데 쓰이는 4개의 다리 외에도 사마귀의 것을 닮은 2개의 다리가 더 있었다.

초장부터 B등급이다. 저놈 한 마리만 떠도 C급 헌터 열댓 명은 꼼짝없이 죽어 나간다. 그런 괴물이 족히 40마리는 있었다.

“갸아아아악!”

가도스 떼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당연히 녀석들도 카르마 베리어로 무장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면 고병갑은 가도스들의 움직임을 쫓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런 상황에서 오체분시한 채 하늘로 치솟는 가도스의 시체를 바라보자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끄에에에에엑!”

가도스들은 맥도 추리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건 싸움도 뭣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김하나는 고병갑의 곁에 서 있을 뿐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들 셋이서 모든 가도스를 상대했다.

고병갑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전투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때 옆에서 ‘삑!’ 소리가 났다. 1분이 지났다는 신호다.

가도스는 아직 서너 마리 남아 있었다. 김하나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제인이 참격을 날려 마지막 가도스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1분 14초.”

김하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러자 아이들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였다.

“다들 모여. 병갑 씨는 마석을 수거해주세요.”

“······아, 네.”

고병갑은 덤덤히 마석 해체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김하나 앞으로 모여들었다. 고병갑은 마석 수거에 집중하는 척 저쪽을 곁눈질했다.

보아하니 방금 전투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김하나는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언성 높여 나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한소리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고병갑은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꼈다.

‘뭐가 문제인 거야? B급 괴물 마흔 마리를 1분 14초 만에 잡았으면 존나 대단한 건데. 더군다나 아직 애들이잖아? ······제길. 최상위의 세계는 이것조차 불만족스럽게 여겨야만 도달할 수 있다는 건가?’

고병갑은 가도스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생각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빌어먹게도 많이 남았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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