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자리
21.
고병갑의 아침은 남들보다 조금 빠르다. 아직 동이 완전히 트지 않은 오전 5시.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이다.
각성자의 여러 가지 장점 중엔 욕구의 통제가 일반인보다 잘 된다는 것도 있었다. 고병갑은 더 자고픈 마음을 빠르게 털어내며 이부자리를 벗어났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같은 상투적인 표현은 그도 좋아하지 않았다. 명언이나 속담, 관용어들이 으레 그렇듯 입에 발린 소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나, 일찍 일어난 헌터가 좋은 균열을 차지할 확률이 높은 건 비관적으로 봐도 꽤 맞는 말이었다.
고병갑은 이를 닦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지난밤 전국에 발생한 균열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균열은 되도록 피했다. 대형 길드에서 아예 지역구를 정해놓고 터줏대감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가봤자 이미 임자가 있을 것이다.
고병갑의 활동 범위는 대체로 경기도 외곽이나 강원도였다. 인구가 적고 후미진 곳일수록 균열 경쟁이 널널했다.
대관절 오늘은 양평으로 가야 할 성싶었다.
“요새 F나 E랭크 균열이 잘 안 나오네······.”
대한민국에서 하루 발생하는 균열의 개수는 대략 300~400개 정도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현재 현역 헌터의 수가 2만 3천 명을 돌파했으니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균열 하나당 65:1의 경쟁률을 갖는 것이니까.
고병갑과 같은 D급 헌터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4,800명 정도. 7,100명인 C급 헌터 다음으로 많았다.
D급 헌터의 주 사냥터인 E, F랭크 균열은 전체 균열의 15% 정도를 차지했다. 하루에 45~60개 정도가 나온다는 말인데, 이걸 두고 경쟁하는 헌터가 8,500명이나 됐다.
16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균열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더욱 일찍 일어나야 하고, 더욱 발길이 닿기 힘든 오지로 가야 했다.
물론 여러 변수가 존재했다. 헌터로 등록해놓고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알게 모르게 은퇴한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또한 헌터의 숫자에 비해 균열이 적게 발생하긴 했으나 매일 모든 균열이 토벌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미공략 균열이 생기지도 않았으리라.
몸을 씻고 채비를 마친 고병갑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의 보물 1호인 낡은 경차에 짐 하나가 더 늘었다. 장검 한 자루가 그것이었다.
고병갑은 오늘 검을 한 번 제대로 써볼 심산이었다.
“오늘은 깔끔하게 딱 하나만 마무리하자.”
점찍어둔 균열이 선점당하지 않길 기도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사당과 방배를 지나고 반포를 넘어 올림픽 대로로 진입을 앞둔 상황이었다. 고병갑은 전방 50m쯤에서 차량 진입을 막는 경찰들을 발견했다.
“뭔 일이야?”
그가 구시렁대며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로 던져 넣었다. 잠시 후 차가 교통 통제원들 앞에 섰다.
“무슨 일입니까?”
창문을 내리고 고병갑이 물었다. 형광 조끼를 챙겨 입은 젊은 경찰은 뭔가 불평불만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동작대교 인근에 A랭크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사고 위험이 있으니 우회하여 통과해주시기 바랍니다.”
균열은 역장을 발산한다. 일반인이 그 역장 안에 들어가면 마취제라도 맞은 양 무기력증에 빠진다. 심한 경우 신경 쇠약을 일으키거나 죽기까지 했다.
A랭크 균열 같으면 족히 수백 미터짜리 역장을 발산할 터. 차량 운전자가 역장에 노출되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고병갑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말단이긴 해도 그 역시 각성자였으니까.
그는 지갑에서 헌터증을 내밀며 말했다.
“각성자입니다. 문제없으니 통과시켜 주세요.”
“아! 예. 문제 없습니다. 통과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고생하세요.”
경찰관이 길을 터주었다. 고병갑은 한적한 올림픽 대로로 진입했다. 이런 일은 간혹 있는지라 대수롭지도 않았다.
뻥 뚫린 도로를 타고 내달리려니 좌측으로 한강이 보였다. 경찰관의 말대로 동작대교와 반포대교 사이, 수상 2m 정도 위치에 균열이 발생해 있었다.
A랭크 균열인지라 크기도 꽤 컸다. 저 안에는 이미 헌터들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A짜리 균열 한 번이면 얼마랬지.”
A랭크 균열에서 얻을 수 있는 순수한 수익. 그러니까 마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화폐적 가치는 4,500만 원 정도뿐 되지 않는다. 거기다 전리품을 전부 합쳐 봐야 6,000~7,000만 원 정도일까?
보통 A랭크 균열 하나당 S급 헌터 대여섯 명이 투입되니 넉넉잡아도 인당 1,000만 원이다. 상위 2%의 일당치고는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S급 헌터쯤 되면 한 해 수십억의 수익을 올린다. 그들은 마석을 일일이 수거해다가 협회에 팔아 수익을 발생시키는 ‘프리 헌터’와 돈을 버는 체계부터 달랐다.
TV만 틀어도 심심찮게 유명 헌터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는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고병갑은 남은 채무가 얼마나 됐던가 떠올리다가 이내 관두었다. 토벌을 앞두고 사서 기분 나빠질 필요가 없었다.
서울을 빠져나와 한참을 달리니 어느새 양평군이었다. 목적지 인근에 도달하니 오전 9시 무렵이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버려진 공터였다.
고병갑은 공터로 차를 몰고 들어가다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흘러나왔다.
“아이 씨······.”
균열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몇 대나 서 있었다. 여덟 명의 인원이 그 앞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모두 40대의 중년이었다. 생김새가 말끔하고 장비에선 부티가 났다.
‘취미꾼들인 것 같은데.’
보아하니 헌터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은 아니었다.
E~F급 각성자 중에는 취미로 헌팅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약한 몬스터는 총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고, 헌터에게는 총과 탄약의 규제가 널널하니 재미 삼아 균열을 도는 것이다.
말자하면 일종의 레저 스포츠인 셈이다. 사격으로 스트레스도 풀고 습득한 마석으로 뒤풀이도 하니 본업이 따로 있는 하급 각성자들에겐 이만한 취미도 없었다.
물론 고병갑처럼 헌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고병갑은 일단 안쪽으로 차를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밀리터리 문양의 활동복을 차려입은 중년이 팔을 휘휘 저으며 다가왔다.
“자리 있습니다. 돌아가세요~”
고병갑은 창문을 내리고 몸을 반쯤 빼며 대꾸했다.
“선생님들 헌터증은 다 발급받고 토벌 도시는 겁니까?”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던 고병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저 중 한 명이라도 헌터증이 없으면 불법 무기 소지, 대여죄로 싹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걸 협박 소재 삼아 균열의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이었다.
중년이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예예. 다 있으니까 다른 데 알아보세요.”
“한 번 보여주세요. 확인해 보게.”
고병갑이 차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장비를 점검하던 대머리 중년이 심히 거슬린다는 눈빛으로 고병갑을 노려보았다.
“아니, 당신. 뭐 협회에서 나왔어? 왜 남의 헌터증을 보여달라 마라야? 당신이 뭔데?”
“선생님들 중에 헌터가 아니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혹시나 해서 여쭙는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당신이 뭔데? 무슨 권리로 그걸 요구하냐고? 당신 뭐 대단한 사람이야?”
고병갑은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그에게 남의 헌터증을 볼 권리는 없었다.
“아유 김사장님 됐어요. 진정하세요.”
“아니 최사장. 내가 지금 괜히 화내는 거야? 아니잖아? 저 사람이······!”
“아유. 그래도 화내면 김사장님만 손해에요. 허허허.”
그 옆에 있던 순한 인상의 남자가 대머리 중년을 말렸다.
그리고는 허허 웃으며 사람들을 다독였다.
“자, 괜히 분란 만들지 말고 헌터증 보여주면 될 일 아니겠어요? 좋은 자리 갖자고 나온 건데 얼굴 붉히지 말자고요. 허허. 자, 봐요. 제대로 된 헌터증 맞지요?”
최사장은 자신의 헌터증을 내밀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 헌터증을 도발적으로 내보였다.
“······.”
그걸 본 고병갑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다 헌터로 등록된 정신 헌터였기 때문이다.
“그쪽 마음은 이해하는데 우리도 이 자리 잡는다고 며칠 기다렸어요. 다른 데 찾아봐요.”
“나 원 참! 젊은 사람이 쿨하지를 못하네. 이 바닥도 매너를 지켜가면서 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아이구. 김사장님 그만하면 됐다니까요. 허허허.”
“······실례했습니다.”
고병갑은 순순히 꼬리를 말고 차로 돌아갔다.
“하아. 재수 옴 붙었네.”
그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이라도 다른 균열을 탐색해야지만 공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손가락과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적당한 균열을 찾아내기란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집어 옮기는 일만큼이나 까다로웠다.
“이건 멀고, 이건 서울이랑 너무 가깝네. 아마 벌써 누가 들어갔을 테고······. 쯧! 이건 C랭크네.”
핸드폰 액정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고병갑. 그러던 중 20분 거리의 어떤 균열이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스읍. D랭크라······.”
D랭크 균열.
D급 보스 몬스터와 E급 이하 부하 몬스터로 이루어진 균열이다.
고병갑은 어지간해선 D랭크 이상의 균열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독 토벌 시 위험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E~F랭크의 균열은 한두 번의 실수 정도는 용납됐지만, D급부터는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어쩐담.’
잠시 뜸 들이던 그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현재의 그는 과거의 그와 분명히 달랐다.
수족으로 부릴 고블린도 있었고, 성장의 묘약을 통해 여느 하위 각성자보다 큰 힘을 얻게 됐다.
‘지금 나는 어느 정도인 거지? C급? 어쩌면 B급까지 되는 걸까?’
글쎄. C급과 B급 사이 격차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B급까지 노려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C급은 충분히 될 성싶었다.
‘해보자.’
어차피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힘들어도 계단을 타 넘어야 한다.
결심을 굳힌 그가 D랭크 균열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22.
또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는 마음에 고병갑은 속도를 냈다. 국도를 빠르게 가로질러 도착한 목적지에는 다행히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폐공장인가?’
형체만 간신히 남은 공장 건물이 즐비했다. 흙바닥에서 찌든 기름 냄새가 났다.
고병갑은 담배를 입에 물고 서둘러 토벌을 준비했다.
무기도 포션도 그 외 장비도 전부 이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카르마 측정기를 균열에 갖다 댔다. 측정기는 저만의 계산 과정을 마치고는 ‘이건 D랭크 짜리 균열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스읍. 하······.”
담배를 태우면서도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자의로 D랭크 균열에 몸을 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옛날에는 많이 들어갔었는데.’
고병갑도 과거엔 어떤 팀의 팀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정정한다. 팀원이 아니라 노예였다. 멋 모르는 신입 헌터들을 꼬셔 노예로 굴리는 악덕 팀!
갓 헌터가 됐던 22살의 고병갑은 그곳에서 사람에게 데이고, 돈에 데였다.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남은 것이라곤 돈도 사람도 함부로 믿어선 안 된다는 교훈뿐이었다.
그게 고병갑이 홀로 활동하는 이유였다.
“다 지난 일이지 뭐.”
고병갑이 꽁초를 털어 끈 뒤 균열 앞에 섰다.
심호흡하며 심신을 진정시켰다.
어떤 몬스터가 나올까? 그게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꺽다리 귀신이려나? 아니면 우드 데빌? 가시도치 같은 거지 같은 놈만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기합을 뱉은 고병갑이 균열로 몸을 던져 넣었다. 시야가 아주 잠깐 번쩍였다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중충한 하늘과 무거운 공기가 그를 반겼다. 이면 세계는 도대체가 화창한 날이 없었다.
그가 사격지향자세를 유지한 채 전방을 빠르게 훑었다. 단 몇 초 뒤. 그는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 나 참.’
그가 씩 웃었다. 그 뒤 앞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전부 꿇어 이 귀여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