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9화 (9/151)

009. 긴급 토벌

19.

-타다다다다당!

엄청난 총성이 지하철역 내부를 가득 메웠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려던 꺽치 떼가 물풍선처럼 펑펑 터져 죽었다. 바닥엔 피와 살점이 너저분히 깔려 비릿한 악취를 뿜어냈다.

-철컥!

30발들이 탄창은 금세 동났다. E급 헌터 김상석은 능숙한 솜씨로 탄창을 갈아 끼웠다. 재장전하는 데에 몇 초뿐 걸리지 않았다.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사격 자세를 취하려니 별안간 고성이 들려왔다.

“아저씨 조심해요!”

말을 뱉은 사람은 D급 헌터 이예림이었다.

김상석은 그녀의 시선이 자기 뒤쪽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곧장 몸을 돌려 보니 꺽치 한 마리가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날아들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김상석은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총을 쏴서 떨쳐낼지, 옆으로 몸을 던질지, 그것도 아니라면 팔을 하나 내줄지.

‘늦다!’

이예림은 즉시 김상석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하지만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꺽치와 김상석이 너무 가까웠고, 자칫하면 총알이 엄한 사람을 맞출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예림의 주변시로 날쌘 인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고병갑이었다.

고병갑은 빠르게 달려가며 두 팔을 뻗었다. 날카로운 칼끝이 꺽치의 아가리를 파고들어 등지느러미를 뚫고 나왔다.

“흐아아압!”

그가 쉬지 않고 칼을 휘둘러 바닥을 때렸다. 꺽치의 몸이 기괴한 각도로 꺾여 파닥였다. 고병갑은 도끼질하듯 한 번 더 내려쳐 머리와 몸통을 완전히 분리해버렸다.

“고, 고맙······.”

“앞에 봐요!”

고병갑은 김상석에게 주의를 주며 사선으로 올려 베었다. 쫙! 혈흔이 퍼지며 뒤이어 날아오던 꺽치가 갈라졌다.

김상석은 얼른 정신을 다잡고 사격을 재개했다. 이런 밀폐된 장소에서는 절대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어? 하는 사이 몬스터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병갑은 칼을 아무렇게나 던진 뒤 걸쳐 놓았던 소총을 다시 잡았다. 개찰구를 넘으려는 꺽치를 향해 무차별 난사를 가해졌다.

탄알집을 2개나 소진하고 난 후에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개찰구 주변으로 꺽치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허억! 허억!”

이예림이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김상석과 고병갑을 돌아보며 말했다.

“둘 다 괜찮아요?”

“문제없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고병갑은 빈 탄창을 새것으로 갈아 끼운 뒤 바닥에 던져 놓았던 장검을 주워들었다.

그에게 김상석이 다가가 고개를 수그렸다.

“아까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화를 면했어요. 아가씨도 정말 고마워요.”

“감사 인사받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요.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얼른 해치우고 돈이나 받아서 나가자고요.”

이예림은 전투 조끼에 달아놓은 탄알집 파우치를 더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탄약 얼마나 남았어요? 나는 30발들이 한 통이 다예요.”

“저도 그 정도 남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여기 널브러진 꺽치만 쉰 마리는 될 테니까요. 밖에 있는 것까지 합하면 남은 몬스터는 20마리 안팎일 겁니다.”

“그렇긴 한데······ 총알이 없으면 아무래도 좀 불안하더라고요.”

“조심만 하면 별일 없을 겁니다. 자, 진행하죠.”

세 사람은 시체를 밟아 넘으며 개찰구를 통과했다.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건 금방이었다.

“케기기긱!”

승강장에 들어서자마자 계단 뒤에 숨어있던 꺽치가 날아들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응했다.

이예림과 김상석이 각자 총구를 돌렸다. 한데 그들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았을 때는 이미 꺽치가 반 토막 난 이후였다.

이예림이 떨떠름한 얼굴로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칼 쓰는 솜씨가 보통은 아니시네요. 혹시 상위 헌터세요?”

“아니요. D급입니다.”

“에엥? D급이라고요? 나도 D급인데?”

“믿기지 않네요. 아까도 그렇고 하위 같아 보이진 않으시던데.”

하위 각성자 중에서도 D급 정도 되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일평생을 단련한 일반인 격투기 선수보다 막 각성한 D급 샌님이 육체적으로 더욱 강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날아오는 괴물을 단칼에 양단하는 것은 기예에 가까웠다.

“그냥 뭐······.”

고병갑은 대충 받아넘겼다. 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 역시 그저 그런 D급 각성자였다는 설명을 구태여 늘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고병갑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봉천 방면으로 향하는 선로의 스크린도어가 부서져 있다.

“저기로 가보죠. 혹시 랜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저 있습니다.”

김상석이 혁대에서 랜턴을 꺼내 총기에 부착했다.

김상석이 선두에 섰고 고병감과 이예림이 양측에 서서 그를 엄호했다.

몬스터는 몇 걸음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로 깊숙한 곳에서 번쩍이는 눈알이 통통 튀며 다가왔다.

열댓 마리가 넘는 꺽치 떼였다.

“쏴!”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똑같은 말을 뱉었다.

곧 선로에 총성이 가득 찼다. 꺽치들은 기껏 스무 걸음 바깥까지밖에 접근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져 죽었다.

탄창이 모두 비었다. 총열은 뜨겁게 달구어져 모락모락 김을 뿜어냈다.

김상석이 고성능 랜턴을 앞으로 비추었다. 죽어 으깨진 꺽치떼의 시체가 보였다.

“보스 몬스터는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걸까요? 몬스터들이 이쪽에 밀집한 거 보면 이 근방에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고병갑은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육감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그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위쪽입니다!”

천장에 몬스터 한 마리가 매달려있었다. 꺽다리 귀신이라 불리는 E급 몬스터였다.

인간의 몸통에 거미의 다리가 달린 흉측한 모습의 괴물.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습성을 가진 녀석이다.

꺽다리 귀신이 팔에 돋아난 촉수를 방출했다. 뾰족한 촉수가 김상석의 팔을 곧장 꿰뚫었다.

“끄악!”

이예림이 즉시 위를 겨냥하며 총을 쏘았다.

하지만.

-철컥!

“이런!”

탄알집이 텅 빈 총은 총알을 뱉어내지 못했다.

꺽다리 귀신이 벽을 자유자재로 타며 아래로 촉수를 쏘았다. 이예림은 그것을 피하려다 선로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녀를 향해 촉수 다발이 쇄도했다. 고병갑은 야구 배트처럼 칼을 휘둘러 촉수를 모조리 잘라냈다.

“끼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드는 꺽다리 귀신.

칼을 거두고 다시 총을 집어 난사했으나, 놈은 이미 어둠 속으로 숨은 뒤였다.

-철컥!

‘제길. 장소가 너무 안 좋아!’

상대가 고작 E급 몬스터임에도 어두운 데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으니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고병갑은 김상석의 총에 부착된 랜턴을 빼 들었다. 그것을 입에 물고 다른 손으론 칼을 잡았다.

그가 꺽다리 귀신이 도망친 방향으로 내달렸다. 랜턴이 벽과 천장을 비출 때마다 놈의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흡!”

순간 오싹한 기운에 번뜩 뒤를 돌아보는 고병갑. 꺽다리 귀신이 송곳 같은 다리를 찌르며 덮쳐오고 있었다.

그는 옆으로 몸을 던져 공격을 피했다. 꺽다리 귀신의 다리가 바닥을 움푹 파고들었다.

고병갑은 재빨리 일어나 달려들었다. 촉수가 곧장 날아들었지만, 포착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칼날을 휘젓자 촉수가 엿가락처럼 잘려 나갔다.

“끼에에에엑!”

꺽다리 귀신이 비명 지르며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또 도망치게 놔둘까 보냐!’

고병갑은 아예 칼을 던져버렸다. 칼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가더니 꺽다리 귀신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벽에 박혀버렸다.

고병갑은 끝낼 심산으로 검 손잡이를 쥐자마자 위로 그었다.

“끼아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은 잠시뿐이었다. 꺽다리 귀신은 가슴팍부터 정수리까지 갈라지며 죽었다. 놈이 흘린 오물이 온 바닥을 적셨다.

보스 몬스터가 죽자 이면 세계가 붕괴를 일으켰다. 곧 탈출 포탈도 생겨났다.

20.

신림역에 나타난 균열은 발생한 지 50분도 되지 않아 공략되었다. E급 헌터 1명, D급 헌터 2명이 투입된 것치고는 꽤 빠른 속도였다.

김상석은 관통상을 얻었으나 협회 직원들이 챙겨온 상비 포션으로 즉시 치료했다.

고병갑과 이예림은 달리 다친 곳이 없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포상금은 금일 내로 입금될 겁니다.”

일당 100만 원을 약속받은 고병갑은 기분이 좋아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같이 공략에 나섰던 이예림이 그를 붙잡았다.

“저기요. 잠깐만요.”

“무슨 일이세요?”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요. 아까 고마웠어요. 그쪽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돕고 사는 거죠, 뭐.”

“그런데 정말 D급 맞아요?”

“아까 서명할 때 보지 않으셨나요? D급인 거.”

“봤죠. 그런데 그쪽처럼 칼 잘 쓰는 D급 헌터는 처음 봤거든요.”

“그런가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활동하는 팀 있으세요? 만약 없으면······.”

“죄송하지만 저는 혼자 활동합니다.”

고병갑이 딱 잘라 거절했다. 이예림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세요? 그럼 뭐 하는 수 없죠. 아무튼 오늘 고마웠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길 바라요.”

“네. 들어가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병갑은 근처 정육점을 들렀다. 돼지고기라도 좀 사갈 생각이었다.

“어서 오세요. 뭐로 드릴까요.”

“돼지고기 뒷다리. 구이용으로 한 근······.”

“후지 한 근이요?”

고병갑은 머뭇거리다가 정정했다.

“20kg 주세요.”

“이, 이십 키로그람이요? 아이구 예.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한 근만 구이용으로 주시고 나머지는 뭉텅이로 잘라 주세요.”

“예예!”

정육점 주인은 신이 나서 고기를 썰어대기 시작했다.

20kg이라고 해도 뒷다리는 부위가 싸기 때문에 15만 원밖에 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많이 산다고 2만 원을 깎아 주었다.

고병갑은 돼지고기 20kg이 든 비닐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집으로 걸어갔다. 총에 장검까지 들고 있는데도 전혀 무겁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프라이팬, 소주 몇 병을 챙겨 아스빌람으로 넘어갔다.

고블린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두 동굴에 있는 듯했다.

‘해도 저물어 가는데 아직 일하고 있는 건가?’

「야! 다들 나와! 밥 먹자!」

고병갑이 고블린들을 불렀다. 몇 번이나 더 고함치고 나서야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하고 나와서 밥 먹으라고. 고기 사 왔으니까.」

「고기!?」

「그래. 너희가 먹는 쓰레기 고기가 아니라 진짜 꿀맛 고기다.」

고병갑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고기를 구웠다. 자신이 먹을 것을 빼놓고는 전부 고블린에게 던져 주었다.

‘캬. 술맛 나네.’

바위산의 절경을 감상하며 먹는 술과 고기 맛은 남달랐다. 이따금 집에서 혼자 구워 먹던 것과는 비교를 불허했다.

고블린들은 날것으로도 잘 먹었다. 그러다 고병갑이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보고는 따라 하기 시작했다.

투르카가 강가에서 넓적한 돌판을 들고 왔다. 홉 고블린과 노멀 고블린들이 장작을 모아왔고, 키리얀은 전격 능력을 이용해 불을 피웠다.

그들은 넓적한 돌판 위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모양새가 꽤 그럴듯했다.

고병갑은 부르스타로 고기를 구워 먹는 자기 모습이 조금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야이 싸가지 없는 놈들아. 너희끼리 돌판에 구워 먹으니까 맛있냐?」

「예! 맛있습니다!」

「로드시여!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저······. 에잉.」

그가 소주 나발을 불며 고블린들에게 다가갔다. 고블린들은 나뭇가지로 고기를 건져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 가운데 알비노 고블린 키리얀도 있었다.

고병갑이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말을 걸었다.

「야. 키리얀.」

「예. 로드님.」

「어때. 좀 지낼 만하냐?」

키리얀이 아스빌람으로 온 지 3일째였다.

그는 홉 고블린보다도 지능이 높았고, 어휘 구사력도 뛰어나 대화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키리얀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스빌람으로 돌아온 이래 하루하루가 꿈만 같습니다. 무척 행복합니다.」

「참나. 온종일 곡괭이질만 하는데 뭐가 행복해?」

「저와 동포들의 노고가 아스빌람 재건의 발판이 된다고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로드께서도 저희를 이렇게 잘 챙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병갑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남들은 줘도 안 먹는 돼지고기 뒷다리에 이토록 고마워하다니. 복지라도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간식으로 빵 쪼가리 몇 개 던져 주는 게 전부니까.

오히려 고마운 쪽은 고병갑이었다. 고블린들 덕분에 여러모로 일이 편해졌다. 또한 ‘성장의 묘약’을 통해 하위 각성자의 한계를 벗어날 길을 보게 됐다.

「그래. 열심히 해라. 내가 조만간 식구도 더 늘려주고······ 어? 언젠가는 그 아스빌람인지 뭔지 그것도 재건해주든지, 볶아주든지 할 테니까.」

「예! 믿고 있습니다.」

고병갑은 술김에 아무렇게나 떠들었다.

「야! 거기 쪼끄만 놈! 춤 좀 춰 봐라!」

「꺄르륵!」

이날 고병갑은 고블린들과 함께 고기와 술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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