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변종 균열
15.
“꺄아아아악!”
여인의 비명이 서늘했다. 그녀는 자신을 쫓는 아홉 마리의 뇌전늑대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러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하위 능력자가 짐승형 몬스터를 속도로 따돌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병갑의 이마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뇌전늑대는 D급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몬스터였다. 총알 몇 발쯤은 버텨내는 생명력에 날쌔기는 더럽게 날쌔며 전기뱀장어처럼 자가발전까지 한다.
죽자 살자 덤비면 한두 마리와 동귀어진은 가능할 테지만, 아홉 마리 전부를 죽이거나 따돌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고블린들과 함께 싸우면?’
홉 고블린 11마리와 자이언트 고블린 1마리.
수적으로는 조금 우세하다만 전력으로 볼 때는 결코 앞서나가지 못했다. 뇌전늑대 한 마리가 홉 고블린 2마리분은 해낼 터이니.
「로드시여······.」
「쉿! 닥치고 전부 납작 수그려!」
고병갑이 낮게 으름장 놓았다. 고블린들은 즉각 엎드려 잡초 더미에 몸을 숨겼다. 고병갑은 스코프에 눈을 고정한 채 앞의 상황을 주시했다.
이름 모를 여인은 거의 따라잡혔다. 앞으로 100m도 더 못 가서 늑대 밥이 될 성싶었다.
4배율 망원경이 이번엔 다른 곳을 비추었다. 뇌전늑대의 등에 탄 새하얀 고블린이 보였다.
‘알비노 고블린.’
알비노 고블린은 드물게 관측되는 몬스터였다. 위험도는 C급으로 하위에선 강자로 군림하는 녀석이다.
알비노 고블린이 피뢰침처럼 생긴 창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여인의 뒤쪽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꺅!”
여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제일 선두에서 달리던 뇌전늑대가 껑충 뛰어올라 그 위를 덮쳤다.
‘제기랄.’
고병갑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여인을 덮치던 뇌전늑대가 한순간 휘청거렸다. 놈은 아가리에 총알이 명중했는데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털어댈 뿐이었다.
잠시 후 아홉 마리의 뇌전늑대가 고병갑을 쏘아보았다.
“크르르르······!”
놈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고병갑은 즉시 외쳤다.
「모두 일어나! 나를 지켜!」
「알겠습니다!」
「로드님을. 지켜라!」
홉 고블린과 자이언트 고블린이 아치형으로 서서 고병갑을 보호했다.
이렇게 된 이상 고블린들을 믿는 게 최선이다. 녀석들이 뇌전늑대 한두 마리쯤 막아주길 기도하며 고병갑은 저격을 시작했다.
‘거리는 충분해. 침착하게만 쏘면!’
적막한 개천에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고병갑이 쏜 총알은 앞쪽 라인의 뇌전늑대들부터 우선 요격했다.
“깨갱!”
두 놈이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나머지 놈들이 재빨리 산개했다. 고병갑은 표적을 잡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한 놈!’
-타다다당!
총구가 불을 뿜었다. 스코프에 잡힌 뇌전늑대가 휘청이더니 고꾸라졌다. 고병갑은 쉬지 않고 다음 타깃을 조준했다.
-타타당―철컥!
“염병하겠네!”
탄창 하나가 전부 소진됐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재장전한 뒤 개머리판에 뺨을 갔다 댔다.
바로 그 순간 우거진 수풀에서 뇌전늑대 두 마리가 튀어 올랐다.
「로드님을 지켜라!」
「우어어어어!」
자이언트 고블린, 투르카가 뇌전늑대 한 마리를 정면에서 막았다. 녀석은 뇌전늑대의 앞발을 잡고 버티며 연신 박치기를 해댔다.
나머지 한 마리는 홉 고블린들이 떼거리로 들러붙어 잡아두었다.
고병갑은 이를 빠드득 갈며 방아쇠를 당겼다. 뒤이어 덤벼들던 뇌전늑대가 벌집이 되어 주저앉았다.
고블린들이 막고 있는 놈들을 제외하면 남은 건 세 놈.
그가 고개를 빠르게 돌리며 사냥감을 찾았다. 그때 눈앞이 번쩍이더니 지척에 전격이 내리꽂혔다.
-콰직!
“끄앍!”
고병갑은 두세 걸음 정도 밀려나 넘어졌다. 귀가 멍한 와중에도 얼른 다리를 살폈다. 다행히 직격당한 게 아니라서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만약 제대로 꽂혔다면 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었으리라.
“크라라라라!”
“썅!”
-타다다다당!
그림자가 지는가 싶더니 뇌전늑대의 아가리가 뚝 떨어져 내렸다. 고병갑은 즉시 총탄을 쏟아부었다. 뇌전늑대의 아가리로 총알이 파고들어 머리를 터뜨려버렸다.
뇌전늑대의 시체가 그를 깔고 뭉갰다. 어지간한 황소 크기의 고깃덩이가 짓누르자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으으으아아아아!”
고병갑은 뇌전늑대의 시체를 간신히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고블린들이 고전 중이었다. 전기를 발산하는 뇌전늑대의 특성상 상성이 좋지 않았다.
홉 고블린 몇 놈은 끙끙 앓으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감히!”
고병갑은 다친 고블린을 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당장이라도 총탄을 퍼부을 기세로 견착했다. 그때 별안간 고함이 들렸다.
「돌아와!!!」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고병갑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잊었다. 말을 뱉어낸 주체는 알비노 고블린이었다.
알비노 고블린이 일갈하자 고블린들과 대치하던 뇌전늑대가 꼬리를 말고 돌아갔다.
고병갑은 총구를 돌려 알비노 고블린을 겨누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당장이라도 쏠 태세를 갖춘다.
반대로 알비노 고블린은 싸울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는 뇌전늑대의 등에서 내려와 고병갑과 마주 보고 섰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선.
「대체 어떻게······.」
알비노 고블린이 이번엔 고블린 무리를 쳐다보았다.
「나약한 놈들아! 내게 설명해 보아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고블린 로드시다!」
고붕이가 버럭 소리쳐 대답했다. 부여잡은 어깨에선 선홍색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왜? 어째서 고블린 로드가 인간이란 말인가?」
「우리의. 로드시다! 아스빌람을. 재건해주실 거다!」
「허······.」
알비노 고블린이 고병갑을 똑바로 보았다.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정녕 우리의 로드십니까?」
「보면 모르겠냐?」
「우리를 다시금 이끌어주시는 겁니까? 우리가 아스빌람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겁니까?」
고병갑은 총을 쥔 손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고블린을 책임진다거나, 그들의 왕국을 재건해 번영을 갖다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고블린 로드라는 능력을 잘 이용해 돈벌이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가 짧게 고민한 뒤 대답했다.
「그렇다고 하면 내게 복종할 거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게 있으면 쏴버릴 심산이었다. 하나, 알비노 고블린이 뱉어낸 대답은 예상보다 더 호의적이었다.
「어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비노 고블린이 고병갑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 순간 고병갑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알비노 고블린 ‘키리얀’이 아스빌람에 귀속되었습니다.]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보필하겠습니다.」
키리얀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녀석에게선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곤 해도 고병갑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마음이었다. 알비노 고블린 뒤에 선 뇌전늑대가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
뇌전늑대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키리얀의 말 한마디에 꼼짝 못 하던 놈들이 대뜸 이빨을 보이며 살기를 내뿜은 것이다.
키리얀이 아스빌람에 귀속됐다는 홀로그램이 떠오른 순간부터 저랬다.
키리얀이 당황하며 뇌전늑대를 돌아보았다.
「이, 이것들이 어딜 감히 이빨을!」
“크라라라라!”
「으힉!?」
뇌전늑대 4마리가 일제히 키리얀을 덮쳤다.
고병갑은 즉각 총을 쏴 한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놓았다. 탄창 하나가 또 빈집이 되었다. 서둘러 재장전을 하려니 눈앞이 번쩍였다.
키리얀이 발광하더니 전방으로 벼락 줄기를 뿜어냈다.
“께겡!”
“캬걁!”
전기를 다루는 뇌전늑대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가공할 전력이다. 그렇지만 그게 결정타가 되지는 못했다.
몸에서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던 뇌전늑대가 키리얀의 어깨를 깨물었다.
「끼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신음.
「우어어어어어!」
키리얀의 어깨가 떨어져 나가기 전에 고블린 무리가 달려들었다.
투르카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뇌전늑대의 아가리를 비틀어 짰다. 턱이 속절없이 떨어져 나갔다.
홉 고블린들은 뼈 몽둥이로 나머지 놈들을 흠씬 두들겨 팼다.
「다 비켜!」
-타다다다다당!
마무리는 고병갑이 했다. 그는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뇌전늑대들을 향해 탄창 하나를 전부 퍼부었다.
총알 폭풍이 지나가고 남은 건 차게 식은 늑대고기뿐이었다.
16.
「일단 이거 들고 돌아가서 치료해. 충분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심하게 다친 애들부터 우선해서 치료해.」
「알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고병갑은 고붕이에게 최하급 포션 한 병을 내준 뒤 고블린들을 아스빌람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키리얀도 포함해서.
다행히 숨이 넘어가거나 중상을 넘어설 만큼 다친 고블린은 없었다.
고블린들을 돌려보낸 후. 고병갑은 홀로 마석 해체 작업을 했다. 그래 봤자 뇌전늑대 9마리가 전부인지라 금방 끝났다.
‘왜 이면 세계가 붕괴하지 않는 거지?’
이면 세계는 아직 건재했다. 분명 이곳의 보스는 키리얀이었을 터인데······.
‘새로운 보스 몬스터가 임명되기라도 한 건가?’
그가 이면 세계 깊숙한 곳을 응시했다.
별다른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들여다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능숙하게 마석 해체를 마친 고병갑이 짐을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이름 모를 여인이 쓰러진 방향이었다.
‘죽었으려나.’
우거진 수풀을 젖히며 나아갔다. 얼마 안 가 의식을 잃은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몸이 만신창이였다. 옷은 넝마나 다름없이 해졌고 온몸이 자잘한 찰과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이는 고병갑 또래거나 조금 어려 보였다.
헌터라는 직종에 남녀노소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만, 이렇게 젊은 처자가 혼자 토벌다니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고병갑은 여인이 죽었나 싶어 호흡을 확인해보았다.
‘살아는 있어.’
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호흡이 미약했다. 출혈이 많은 탓이다.
고병갑은 그녀를 둘러업기 위해 일으키던 중 여인이 깔아뭉갠 작은 가방을 발견했다.
뭉툭한 윤곽이 꼭 포션 병 같았다. 열어보니 정말로 포션이 들어있었다. 하급 포션이었다.
그는 급한 대로 여인에게 2/3가량을 먹이고 남은 건 자기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뒤 서둘러 이면 세계를 빠져나왔다.
“살았다.”
바깥 공기를 맡으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염병. 일주일도 안 돼서 변종 균열 두 개라니. 재수가 없어도 유분수지.”
“으으······!”
고병갑에게 업힌 여인이 정신을 차렸다. 고병갑은 그녀를 적당한 곳에 내려주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미친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면 세계 밖이니까요.”
“저, 저 살아있는 거예요?”
“예.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쪽이 구해주신 거예요?”
“그런 셈이죠.”
“흑! 흐으윽!”
그녀는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가방 안에 있던 포션은 제가 사용했습니다. 그쪽이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돈으로 갚으세요.”
“······예?”
“뭐,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사례금을 주시겠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여인은 잠깐 말을 잊었다. 그러다 이내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례해야죠. 당연히 해야죠!”
고병갑은 여인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이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졌다.
그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협회에 들렀다.
마석도 팔아야 했고, 포션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병갑은 50만 원을 지불하고 하급 포션 200mL를 샀다.
고블린들에게 줄 것이었다. 조금 아까운 마음도 들었으나 녀석들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너무 쪼잔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는 알림 문자였다.
사례를 약속했던 여인이 정말로 돈을 넣었다. 얼마인가 보니 500만 원이었다.
목숨값치고 약소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공짜 돈인 것을.
“요번 달 할당금 벌써 채웠네.”
왠지 콧노래가 흥얼거리고픈 고병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