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3화 (3/151)

003. 식사시간

7.

‘수정을 채굴해서 발전 자금을 마련하라고?’

고병갑은 홀로그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짤막한 문장에 어려운 단어는 없었지만,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수정을 뭐 어떻게 채굴하라는 거야?’

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가 모여있는 고블린을 향해 말했다.

「아무나 가서 나뭇가지 굵은 것 좀 가져 와봐」

「아, 알겠습니다!」

고블린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어휴. 한두 놈만 가면 되는 걸. 쯧!”

귀엽게 보려고 노력해도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고블린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했다.

그들이 나뭇가지를 잔뜩 꺾어서 대령했다.

고병갑은 배낭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데 생나무라서 잘 붙지 않았다.

그가 욱해서 소리쳤다.

「야! 마른 가지를 가져와야지 이런 걸 가져오면 어떡해? 불 안 붙잖아!」

「우으······.」

「죄송. 하다······.」

고블린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고병갑은 자신이 조금 진상 같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상대가 몬스터이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선 당장이라도 총을 가져와 녀석들을 전부 쏴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에휴.”

고병갑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끈기 있게 불을 피웠다. 잠시 후 그럴듯한 모닥불이 만들어졌다.

고블린 몇 놈이 소심하게 손뼉 쳤다.

‘불은 피웠고.’

「야. 너.」

고병갑이 한 고블린을 지목했다. 지목당한 고블린은 ‘나요?’라고 묻는 얼굴로 고병갑을 바라보았다.

「일로 와봐.」

「아, 알았다!」

홉 고블린은 최소한 존칭은 구사했는데 한 단계 낮은 노멀 고블린으로 가니 그런 것도 없었다.

「그거 벗어.」

「무엇?」

「옷 좀 벗어서 줘보라고.」

옷이라고 칭하긴 했다만 고블린이 두르고 있는 건 잘 쳐줘야 거적이었다.

고블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리와 고병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횃불 만들게 좀 벗어 봐.」

도리도리.

고블린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병갑은 인상을 쓰며 고블린이 두르고 있는 거적을 획 잡아당겼다.

고블린도 빼앗기지 않으려 버텼다.

‘어쭈?’

「아 씨! 나중에 한 벌 사주면 되잖아! 줘보라고!」

「끼잉! 끼잉!」

급기야 눈물까지 그렁그렁 차올랐다.

세상에. 고블린의 눈물을 볼 줄이야.

「우으으······.」

「로드시여 자비를······.」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블린들이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었다.

차마 말리지는 못하겠고 가만 지켜보기도 괴롭다는 반응이었다.

그쯤 되니 고병갑도 눈치가 보였다. 천하의 생 양아치가 된 기분이었다.

「에이씨! 되게 쪼잔하게 구네! 그래 필요 없어 인마! 나참 더러워서.」

고병갑은 성질을 부리며 고블린을 놔주었다. 그 뒤 신경질적으로 외투를 벗었다. 할인점에서 3장에 1만 원 주고 구매한 체크무늬 셔츠였다.

‘아유 아까워라.’

그가 굵은 나뭇가지에 외투를 묶고 불을 붙였다. 급조한 것치곤 꽤 괜찮은 횃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횃불은 완성하자마자 고병갑은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한탄했다. 그냥 집에 잠깐 들러 랜턴을 들고 왔으면 됐던 건데······.

어쨌건 횃불이 완성됐으니 그걸 들고 다시 동굴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수정 동굴]

-수정이 풍부하게 매장돼있는 동굴.

-수정을 채굴하십시오.

고병갑은 홀로그램을 무시하고 횃불로 내부를 비추며 걸어 들어갔다.

동굴은 서늘했다. 여름에 이리로 피서 오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어 그대로 수정이었다. 벽면에 불그스름한 수정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보석!”

고병갑은 수정을 보자 흥분했다. 저게 무슨 보석인지는 몰라도 돈이 될 것 같다는 강렬한 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한 손으로 수정을 쥐었다. 곧장 뽑아내려 힘을 주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쪼끄만 게······ 버티네······!”

고병갑은 주먹으로 수정 주위를 때리거나 발로 차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정이 뽑혀 나오지는 않았다.

하기야 벽에 단단히 박힌 수정을 완력만으로 뽑아내긴 힘들겠지.

‘무슨 도구가 있어야겠는데.’

저걸 채굴하려면 하다못해 곡괭이라도 있어야 했다.

‘곡괭이는 얼마쯤 하려나.’

그가 쓴 입맛을 다시며 동굴을 빠져나왔다. 횃불의 수명도 막바지였다.

고블린들이 우르르 모여 동굴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고병갑이 나오자 ‘우으으······.’거리며 한 발짝 물러났다.

고병갑은 왠지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니들 곡괭이 같은 거 없냐?」

「곡괭이?」

「무엇?」

「······쯧. 됐다. 옷도 그지같이 입고 다니는데 곡괭이가 있을 리가 없지.」

「우으······.」

고병갑은 고블린들을 지나쳐 배낭을 놔둔 곳으로 걸어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간 뒤 곡괭이를 챙겨 다시 올 심산이었다.

「저, 저······ 로드시여······.」

그때 홉 고블린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었다. 고병갑은 시큰둥한 태도로 대답했다.

「뭐? 왜?」

「그, 그······.」

「뭐 인마! 어물거리지 말고 빨리 말해!」

「배가. 고픕니다.」

「······뭐?」

홉 고블린은 송구해 죽겠다는 얼굴로 쩔쩔맸다.

「배가. 고픕니다.」

「로드님. 밥. 먹고 싶다.」

「배고프다. 힘들다.」

「먹을 거. 달라.」

뒤에 있던 고블린들까지 웅성거렸다.

고병갑은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3~4초 정도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저기 강 있더구만. 가서 물고기라도 잡아먹든가.」

「어제 가봤습니다. 물고기 없습니다.」

「물고기가 없다고? 내가 가서 있으면 어쩔래?」

「자, 작은 물고기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물고기 부족합니다.」

홉 고블린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보아하니 정말로 배가 고프긴 한 모양이었다.

‘시발. 하다 하다 고블린 밥까지 챙겨 줘야 돼?’

토벌 다니느라 바빠서 자기 끼니 거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던 고병갑이었다.

그런데 고블린들 밥을 챙겨 주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지.

홉 고블린은 울먹울먹한 상태로 계속 호소했다.

「어제,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아니 잠깐만? 너희들은 밥 안 먹어도 되는 거 아니야?」

고병갑은 번뜩 의문을 느꼈다.

몬스터. 그러니까 이면 세계에 서식하는 괴물들이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면 세계엔 기본적으로 먹을 게 없다.

더구나 균열 중에는 몇 년째 공략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난도가 높아 헌터들이 시도조차 안 하는 곳이다.

만약 몬스터가 굶어 죽는다면 미공략 균열이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공략이고 나발이고 그 전에 몬스터들이 죄다 굶어 죽을 테니까.

하나, 고병갑의 상식을 파괴하기라도 하듯 홉 고블린은 허기짐을 어필했다.

「전에는. 배 안 고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배고픕니다.」

「환장하겠네.」

고병갑은 이마를 짚으며 고블린들을 둘러보았다.

한 놈 두시기 석 삼 너구리······.

자그마치 33마리다. 더구나 저놈의 자이언트 고블린은 적어도 5인분은 처먹을 것처럼 생겼다.

‘빅맥 하나씩만 해도 돈이 얼마야?’

한 끼는 어찌어찌 해결해준다 쳐도 그 뒤가 문제다. 고병갑의 지갑은 서른 개도 넘는 주둥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빌어먹을 병원비와 빚 이자만 하더라도 등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란 말이다.

고블린들 치료한다고 쓴 포션만 해도 아까워 죽을 판국인데 밥은 무슨!

······이라고 생각하다가도.

‘하아 씨······. 그렇다고 굶겨 죽일 수도 없고.’

굶겨 죽일 것 같았으면 포션을 사다가 놈들을 치료해주는 일도 없었으리라.

「물고기 진짜 없어?」

「큰 물고기. 없습니다.」

「······쯧! 너희들 뭐 먹는데?」

「아무거나. 먹습니다.」

「아무거나?」

‘소여물 같은 것도 먹으려나? 요새 개 사룟값도 만만치 않던데.’

고병갑은 심각한 내적 갈등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한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분명 아무거나 먹는다고 했지?」

「아무거나. 먹습니다.」

홉 고블린은 바로 대답했다.

고병갑이 씩 웃었다.

「반찬 투정하면 뒤진다.」

8.

고병갑은 작은 소형차에 몸을 실었다.

중고에다가 주행거리는 27만 킬로미터도 넘은 낡은 차였다.

볼품없지만 그래도 그의 보물 1호였다.

빚 갚기도 버거운데 차를 끌고 다닌다고? 라며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헌터들에게 차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균열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녀야 하고, 짐도 한두 개가 아닌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수는 없잖은가?

길드에 소속된 헌터들이야 이동부터 물자 준비까지 길드에서 다 알아서 해주지만, 고병갑처럼 프리 헌터인 이들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주절주절 길었는데 요약하자면 차는 무조건 필요하다는 소리다.

출발하기 전 고병갑은 핸드폰 확인했다.

협회에서 만든 ‘헌터넷’이란 앱에는 전국에 발생한 균열의 정보가 실려있었다.

헌터들은 그것을 토대로 공략할 균열을 정한다.

고병갑은 위험도 F랭크 균열을 위주로 탐색했다.

D급인 그가 단신으로 토벌할 수 있는 건 위험도 최하급의 E, F랭크 균열밖에 없었다.

곧 마땅한 것을 찾았다. 목적지는 가평군에 위치한 현리라는 마을이었다.

‘2시간이나 걸리네.’

네비게이션에 찍어보니 거리가 꽤 됐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가까운 균열은 죄다 선점당했기 때문이다. 요새는 토벌도 속도전이다.

막상 갔는데 엄한 놈들이 자리 차지하지 않았길 바라며 고병갑은 액셀을 밟았다.

“앤 유우우우우 암 유어 걸 유우우우 아돈 언덜 스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드라이브를 만끽하는 고병갑.

평일 낮인 만큼 국도는 한적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다.

고병갑은 예정보다 20분이나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적당한 공터에 주차를 마치고 짐을 챙긴 그가 균열로 다가갔다. 시골 마을인지라 주변은 한적했다.

‘이 균열에서 죽으면 며칠이나 뒤에나 발견되려나.’

고병갑은 균열에 들어가기 전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다.

단독으로 토벌을 뛰는 그로서는 이면 세계에서 객사하면 시체조차 찾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담배를 연달아 두 개비나 태우고 나서, 고병갑은 다시 한번 상태를 체크를 했다.

소총 상태, 탄약, 준비물. 모두 이상 없었다.

‘카르마 측정기’를 통해 균열의 등급도 재확인했다.

영락없는 F랭크 균열이었다. 덧붙여 이미 입장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또 변종이면······. 에이. 재수 없는 생각 말자.’

준비를 마친 그가 균열로 몸을 던져 넣었다.

바깥세상과 생김새는 똑같으나 몬스터가 서식하는 이면 세계.

고병갑은 차분하게 이면 세계를 살폈다. 화창한 밖과는 달리 하늘이 우중충하다.

F랭크 균열이니만큼 그리 넓지는 않을 터.

기껏해야 1km 정도 범위다.

최병갑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키익! 키익!‘

몬스터는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이 균열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땅귀신‘이라 불리는 놈들이었다.

F랭크 균열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몬스터다.

생김새는 원숭이의 몸에 개의 얼굴을 단 것처럼 생겼다. 전체적으로 회색빛을 띠고 있으며 털은 하나도 없어 민둥민둥했다.

’엿 같이도 생겼네.‘

위험도 G짜리인 만큼 크게 위협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동네 똥강아지로 생각하다간 큰코다칠 수도 있다.

놈의 치악력은 웬만한 들짐승에 버금갔다.

”키에에에······.“

-탕!

”껅!“

팔을 허우적대며 달려들던 땅귀신.

고병갑은 얼른 조준사격 하여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땅귀신은 총알 한 방에 곧장 자지러졌다.

총성을 듣고 곳곳에 숨어 있던 땅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병갑은 콧바람을 한 번 내뿜고 총구를 내렸다.

오늘 저 몬스터들을 상대할 이는 자신이 아니었다.

고병갑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스빌람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곧 그의 명치로 빛의 소용돌이가 하나 생겼다.

「다들 튀어나와!」

그가 소리쳤다. 그러자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고블린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조잡한 손도끼나 몽둥이 따위를 든 고블린 일동. 그들은 땅귀신을 발견하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그건 먹잇감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고병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 식사 시간이다. 마석은 빼놓고 다 먹어버려.」

「케르르륵!」

「케륵!」

말 끝나기 무섭게 고블린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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