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고블린 로드
4.
“어머~ 병갑 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병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이지연 간호사가 아는 척을 했다.
고병갑은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보러 오셨나 봐요?”
“그렇죠. 하하······.”
“올라가 보세요~”
“네. 고생하세요.”
고병갑은 어머니인 박영옥이 입원해있는 병실로 올라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간호사들이 수군거렸다.
“효자네, 효자야.”
“그러게.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깝다니까.”
“엥? 누군데 그래요?”
“넌 모르겠구나? 403호실 아줌마 아들이야.”
“403호실이면······ 아! 혹시 그?”
“그래.”
이번에 새로 들어온 간호사 김유비가 작게 감탄했다. 그러다가 물었다.
“근데 왜 안타까워요?”
“얘는? 엄마가 불치병이라는데 그럼 안 안타깝니?”
“아아~ 하긴 그렇겠다.”
“하여간 얘는 가끔 보면 맹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너, 보호자들 앞에서까지 그러면 진짜 큰일 난다.”
“헤헤. 조심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돈 많은가 봐요? 입원 치료까지 하는 것 보면.”
“돈 많기는.”
이지연이 안쓰러운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고병갑이 이 병원으로 온 지도 벌써 3년째다. 이지연은 그가 피폐해지는 모습을 나날이 봐온 간호사였다.
달마다 간신히 맞춰내는 병원비가 그의 목숨값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지연은 고병갑이 사라진 계단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노잣돈까지 끌어와서 간신히 버티는 거지.”
5.
“엄마 나왔어.”
고병갑이 403호 병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박영옥은 잠들어 있었다.
박영옥은 국내에 1,200명 밖에 없는 ‘환마병’ 환자였다. 환마병에 걸린 환자들은 하루 대부분을 자며 병과 싸웠다.
환마병에 대한 완치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B급 이상 몬스터에게서 획득 가능한 붉은 마석, 그걸 용해 시켜 만든 특수 용액을 투약하면 병의 진행을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었다.
그야말로 돈을 퍼붓는 치료법이었다. 도저히 병원비를 감당 못 해 나가떨어지는 환자도 많았다.
하지만 고병갑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세상에 하나뿐 남지 않은 가족이니까.
또한 투약 치료를 받던 누구누구가 완치했다더라, 하는 풍문도 그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고병갑이 침대 옆에 털썩 앉았다.
그는 30분간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 나······.”
-드르륵!
무언가 말을 하려던 찰나 병실 문이 열리며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박영옥의 간병인, 최지옥이었다.
“어이구. 병갑 총각 왔구먼?”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하이구야. 하필 엄마 잘 때 와부렸구먼. 섭섭해서 어쩐댜?”
“괜찮아요. 엄마 얼굴 봤으면 됐죠.”
“그래도 아쉽자네. 간만에 왔는디.”
최지옥은 익숙하게 소변 통을 교체하며 말했다.
“병갑 총각. 너무 걱정 말드라고. 영옥 씨 요새 밥도 잘 드시고, 가끔 산책도 하시고 아무튼 기력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으니께.”
“저, 정말요?”
“그러엄. 영옥 씨도 힘내고 있는 거여. 아들내미가 병원비 번다고 쎄빠지게 일하는데 세상 어느 엄마가 힘을 안 내겄어?”
고병갑이 쓰게 웃었다.
그는 박영옥의 눈치를 흘끗 살핀 뒤 소곤거리며 말했다.
“아주머니. 혹시나 해서 또 말씀드리지만 제가 헌터일 한다는 건 절대―”
“아이고! 알았어! 내가 아무리 입방정이 심해도 그걸 영옥 씨한테 말할까 봐? 걱정은 하덜 말어.”
“예. 감사해요.”
“헌데 병갑 총각. 나도 자식 둔 부모인지라 노파심에 말하는디 언제나 몸 조심혀. 얼마 전에도 뉴스 보는데 병갑 총각 생각나더라고.”
“네. 항상 조심하고 있어요.”
“그려.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만큼 불효도 없는 것이여.”
고병갑은 얼마간 최지옥과 담소를 나누다가 일어섰다.
“엄매? 벌써 가려구?”
“예. 잠깐 들린 거라서요.”
“하기야 한창 바쁠 때지. 그려. 언능 가봐. 엄마는 아줌마가 잘 보살피고 있을 텡께 걱정은 암시롱 하지 말고. 언제나 몸 잘 챙기고.”
“잘 부탁드릴게요, 아주머니.”
고병갑은 꾸벅 인사를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최지옥은 고병갑이 떠난 뒤 측은지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참 신도 야속하시다니께. 이 모자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가혹한 처사를 내리냔 말이여. 쯔쯔쯧.”
6.
고병갑은 6평 남짓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그도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으나, 병원비 때문에 처분한 지 오래였다.
좁고 볕도 잘 안 드는 자취방에서 그는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천천히 호흡하며 심신을 진정시킨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고병갑은 떨떠름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아스빌람’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의 명치에 반짝이는 구멍이 생겼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소용돌이치는 구멍.
“으얽!”
고병갑의 몸뚱이가 구겨지듯 구멍에 모여들었다.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단 몇 초 뒤. 고병갑은 허름한 자취방이 아닌 광활한 바위산에서 눈을 떴다.
“허억, 허억!”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고병갑.
미지의 문을 통과할 때 기분은 도통 적응되지 않았다.
고병갑은 주위 경관을 쓱 훑은 뒤 탄식했다.
“허······.”
높이 솟은 바위산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는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시선을 내렸다.
30여 마리의 고블린이 우두커니 서서 고병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미어캣 같다.
고블린을 보니 다시금 마음이 답답해졌다.
‘어쩌다 나한테 이런 일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시작됐다.
사흘 전.
고병갑은 변종 균열에 갇혀 죽을 위기를 맞이했다.
탄약이 떨어지고 적에게 포위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고병갑은 기지를 발휘해 이면 세계의 보스인 고블린 샤먼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한데 그때부터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자신이 고블린 로드가 돼버린 것이다.
후에 고블린 샤먼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고블린들이 오래전부터 고블린 로드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적임자로 선출된 자이언트 고블린이 고블린 로드의 숙명을 이어받을 예정이었다.
하나 고병갑이 예기치 못한 소동을 벌인 탓에 계획이 틀어졌다.
수십 년 세월 모은 ‘고블린 로드의 정수’가 그만 고병갑에게 흡수돼버린 것이다.
그 여파로 고병갑은 팔자에도 없는 종족의 지배자가 돼버렸다.
당황한 건 고병갑뿐만이 아니었다.
고블린들. 사실 그들이 최대 피해자였다.
수십 년을 기린 계획이 수포가 된 것도 억울한데, 새 지도자가 고블린을 마구 학살하던 인간 사내라면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하지만 고블린들은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모든 걸 내려놓고 고병갑에게 종족 재건을 요구했다.
-로드시여! 부디 저희 종족을······ 쿨럭!쿨럭! 꺼어억!
-야야! 죽지 마! 야!
고블린 샤먼은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 죽어버렸다. 그를 죽인 게 고병갑 자신인지라 어디 화풀이하지도 못했다.
고블린 샤먼이 죽자 이면 세계가 분열했고, 살아남은 고블린들은 고병갑에게 저절로 흡수됐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 일이 있고 해가 두 번이나 뜨고 졌건만 고병갑은 아직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 되지 않았다.
아스빌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자신의 몸 안에 생겼다는 것도,
자신이 고블린 종족의 로드가 되었다는 것도,
고블린들이 자신이 찾아오기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린다는 것도,
하여간 하나도 현실 같은 게 없었다.
고병갑은 긴장을 유지한 채 고블린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슬픔에 잠긴 얼굴로 한 곳을 바라보았다.
움푹움푹 솟아있는 땅덩이들.
고블린 샤먼을 비롯한 망자들의 무덤이었다.
엉엉엉······.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블린 로드가 되기 전에는 그저 짐승의 울음처럼 들렸는데 지금은 그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아······.’
마음이 착잡했다. 몬스터를 죽이고 마음이 불편했던 건 갓 헌터가 됐을 당시를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마치 평화로운 가정을 풍비박산 낸 듯한 기분.
자신은 그저 헌터로서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고병갑이 한숨을 내쉰 후 챙겨온 배낭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최하급 힐링 포션 300mL. 시가 45만 원어치다.
「다친 놈들 이리로 와.」
고병갑이 고블린의 언어로 유창하게 말했다.
이것도 고블린 로드가 된 이후 생긴 능력이었다.
고블린들은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군소리 없이 몰려왔다.
노멀 고블린 21마리. 홉 고블린 11마리. 자이언트 고블린이 1마리. 합계 33마리였다.
원래 이보다 2배는 더 많았다. 하지만 지난 3일 동안 우후죽순으로 죽어 나갔다.
총상을 입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병갑은 그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병갑은 제일 먼저 자이언트 고블린을 치료했다.
녀석은 총을 열댓 발도 넘게 맞은 터라 상태가 제일 안 좋았다. 특유의 질긴 생명력이 아니었다면 진즉 숨이 넘어갔으리라.
그가 자이언트 고블린의 환부에 힐링 포션을 나누어서 묻혔다.
녀석을 치료하는 데만 힐링 포션 1병을 다 썼다. 그런데도 완치하지는 못했다.
‘몬스터니까 한 열흘 푹 쉬면 다 낫겠지.’
그는 남은 2병을 가지고 나머지 고블린들도 치료했다.
“후우. 아슬아슬했네.”
치료를 마친 후 고병갑은 빈 포션 병을 내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미친놈이지. 병원에 갖다줄 돈도 딸리는데 몬스터한테 45만 원을 꼴아박다니.’
탄식해봤자 이미 써버린 포션이었다.
그래도 말끔해진 고블린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한결 후련해졌다.
고병갑은 허리를 쭉 펴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참으로 신비롭고 미스터리 했다.
그가 밟고 있는 곳은 이름 모를 산의 중턱이었다.
조금 걸어가면 개울물이 흘렀고, 나무도 곳곳에 펴서 생기발랄함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고병갑이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개울 너머는 뿌연 안개로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 가볼까?’
호기심을 느낀 그가 걸음을 옮겼다.
무성한 나무를 지나치고 껑충껑충 뛰어 개울을 넘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고블린 무리가 눈에 물음표를 띄운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뭘 봐? 구경났어?」
「우으······.」
광기와 살육에 젖어 목을 물어뜯으려고 벼르던 고블린들은 이제 없었다.
고병갑 앞에 저들은 순한 양이었다.
진짜 그 짐승 같던 고블린이 맞나?
“저놈들 진짜 어떡해야 좋냐.”
고병갑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안개 쪽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원래 아무리 짙은 안개라도 근접하면 가시 범위가 늘어나기 마련인데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안개로 뒤덮인 영역 코앞까지 당도했다. 고병갑은 황당함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뭐야?’
어떤 보이지 않는 막을 경계로 안개로 싸인 지대와 그렇지 않은 지대가 나누어져 있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명백한 층을 이룬 채.
-쾅! 쾅!
고병갑은 투명막을 주먹으로 두들겨 보았다. 그러자 물결파 같은 파문이 일었다. 깨질 기미는 조금도 없었다.
더 건질 단서가 없음을 깨달은 그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고블린들은 스무 걸음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따라다녔다.
이번에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암벽이 위치한 곳이었다.
드넓은 들판을 지나자 암벽이 바로 보였다.
“우와······.”
고병갑은 꽤 커다란 규모의 동굴을 발견했다. 딱히 특별한 동굴은 아니었지만 살아생전 동굴을 볼 일이 없으니 그 자체만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동굴에 다가가다가 번뜩 정신 차렸다.
‘이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해 잊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까지나 미지의 공간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특히나 저리 컴컴한 동굴은 어떻게 봐도 수상했다.
고병갑이 몸을 획 돌리더니 고블린 무리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야. 한 놈 와봐.」
「우으으······.」
「빨리 와보라고!」
고병갑이 소릴 높여 말하자 홉 고블린 한 마리가 주뼛거리며 다가왔다.
「로드시여······.」
「너 저기 들어가 본 적 있냐?」
「들어간 적. 없습니다.」
고블린들은 ‘로드시여.’라는 말은 유창하게 했어도 일반적인 언어 구사 능력은 떨어졌다.
고블린 샤먼쯤 되면 인간과 무리 없이 의사소통 할 수 있었지만, 그 미만의 놈들은 어설픈 수준의 어휘밖에 구사하지 못했다.
고병갑은 동굴 쪽을 턱짓하며 말했다.
「들어가 봐.」
「로드시여?」
「뭘 자꾸 로드로드 거려? 들어가 보라고.」
지목당한 홉 고블린은 애처롭게 시선을 돌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동굴로 걸어갔다.
고병갑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동굴 입구를 응시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동굴 안에선 어떤 소란도 들려오지 않았다.
홉 고블린은 1~2분 뒤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왜 벌써 나와? 아무것도 없어?」
「막혀.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 거짓말이면 각오해.」
「거짓말. 아닙니다.」
「그니까 거짓말이면 각오하라고.」
고병갑은 랜턴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조심스럽게 동굴로 들어갔다.
내부는 컴컴하고 습하고 조용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하기야 이런 동굴에 무슨 보물이라도 있을까 봐.’
김이 새는 것을 느끼며 몸을 돌리려던 찰나.
고병갑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수정 광산에 들어오셨습니다.]
[수정을 채굴해 발전 자금을 마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