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68화 (168/170)

< 좋은 소식은 하나만 들고 와요 >

송하연은 나날이 치솟고 있는 인기를 실감했다.

미국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기 때문에 최팀장님이 알려주는 대로 스케줄을 소화했을 뿐인데.

빌보드 순위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고, 이제는 인터넷으로만 접해봤던 유명 토크쇼의 녹화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에, 최팀장님을 비롯해 모든 스탭들은 들뜬 분위기가 꺼질 줄 몰랐으나.

송하연은 이상할 정도로, 그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상황을 보면 실감이 안 될 수가 없으나, 아직까지는 얼떨떨한 느낌이 큰 탓이었다.

‘주무시고 계시려나.’

녹화를 들어가기 전의 대기실.

송하연은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의자에 앉아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번 보내볼까?’

한국의 시각은 새벽일 터.

그러나 매니저가 정해진 밤낮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지금 가장 바쁜 사람이.

그리 생각한 하연은 박한울에게 톡을 보냈다.

[주무세요?]

메시지 옆의 숫자 1은 곧바로 사라졌다.

[안 자요. 지금 현지 스케줄 대기하고 있어요.]

하연은 반가운 마음이 들어 옅게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 바로 인터넷 통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실장님, 바쁘신 거 아니죠?”

-아뇨, 안 바빠요. 지금 대기하는 중이라 마침 심심했어요. 하연 씨야말로 지금 바쁘신 거 아니에요? 듣기로 오늘 제임스 쇼에 출연하신다고 들었는데.

“저도 대기 중이에요.”

-하연 씨는 미국 활동 어때요?

송하연의 빌보드 차트 순위가 어느새 5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1위까지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다음주면 1위를 노려볼 수도 있다는 예측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

어쩌면 이 토크쇼가 방송에 나간 날을 기점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박한울이 물어보고 있는 건 성적에 대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보다 사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

하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미국 활동도 재밌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최팀장님이나 다들 엄청 들뜬 게 보여서 웃기기도 하고요.”

-다행이네요.

“아! 그런데 실장님.”

-네?

하연은 미국 활동 중에도 꾸준히 한국 포탈과 커뮤니티들을 살펴보며 소식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박송이와 심민정의 영화, <폭설>이 개봉하고 엄청난 속도로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과, 자신의 빌보드 5위 소식과 더불어.

긴 텀 없이 연달아 터지는 엄청난 성과들로 인해, 인터넷에서 갑자기 박한울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까지.

하연은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요새 슈퍼스타 부럽지 않으시던데요? 엄청 바쁘시겠어요.”

-하아···. 갑자기 다들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대중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한숨을 내쉬는 그의 표정이 상상돼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서로의 소식과 관련하여 가벼운 얘기들을 주고받고 있자니.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갔고, 이제 녹화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버렸다.

하연은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말했다.

“저 이제 녹화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네, 녹화 잘하세요. 다음에 또 통화해요.

“네.”

통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데.

옆에서 함께 걷는 최팀장님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왜요?”

“···그냥. 좀 변한 것 같아서.”

“네?”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최팀장님은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라는 양 말했다.

“예전엔 라이브 무대 직전에 항상 신경이 예민하게 서 있었잖아. 그런데 이젠 많이 달라진 것 같아.”

하연은 최팀장님이 무엇을 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이제 곧 라이브 무대를 먼저 보여주며 토크쇼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오늘은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여유롭게 통화까지 했다.

박한울을 만나며 바뀌기 전까지는 언제나 무대 직전에 극도로 예민했던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근데··· 지금까지 많이 보지 않으셨나?’

지금까지 콘서트나 음방 무대를 앞두고도 박한울과 마음 편히 얘기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셨을 텐데, 아주 중요한 무대를 직전에 두고 있으니 이러한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나 보다.

하연은 작게 미소를 띠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신 역시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삼스럽고 신기하기는 했으니까.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불안한 느낌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유가 생겼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것은 단 한 사람, 박한울.

그는 스며들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뒤바꿔 놓았다.

아쉽게도 그와 연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있어 여전히 중요하고 소중한 인연이었다.

“이제 올라가면 돼. 떨지 말고, 파이팅.”

“네, 걱정 마세요.”

하연은 왠지 더욱 힘이 나는 것을 느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

[HJ엔터의 끝도 없는 상승세! 박한울 실장은 사실 낙하산이었다?]

[회사를 먹여 살리는 낙하산. 박호진 대표의 아들은 한량 출신.]

[박한울 실장의 믿을 수 없는 업적들! 송하연 마침내 빌보드 1위를 거머쥐다.]

[전세계 음악계는 송하연 앓이. 박한울의 저작권 수입은 얼마나 될까?]

[정채희 <주점 칙칙폭폭> 끝없는 시청률 상승! 정채희에게 홀릭된 대중들.]

[최락현의 드라마, <돈이 최고야> 재벌 빌런으로 여심 사로잡다.]

.

.

.

끝없이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연전연승, 승승장구.

연예계가 전부 HJ엔터를 중심으로, 그것도 매니지먼트4팀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듯한 기류였는데.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 것만은 아니라서,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와서? 이거 이미 한 번 화제 되지 않았었나?”

갑자기 한량 출신이니, 낙하산이니···.

내가 대표 아들인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말이야.

그냥 나를 중심으로 기사를 내고 싶은데 마땅히 낼 게 없어서 이걸 또다시 낸 모양이다.

그게 또 대중들한테 새로운 맛을 주는지 반응이 퍽 괜찮은 거고.

하긴, 그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또다른 위치이기도 하니 느껴지는 게 다르긴 하겠다.

‘송하연의 빌보드 1위도 그렇고.’

다른 성과들도 성과들인데, 이건 좀 차원이 다른 일이긴 하지.

‘진짜 대단하다니까?’

그녀는 어딜 가든 내 덕분이라고 말하며 날 추켜세워주고 있었지만.

내가 그녀의 앞에 있었다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아티스트의 음악 작업에 참여해 왔었다.

작게는 YU엔터의 레전드 가수 스노우와 샴페인 노바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장찬수, 피에스타까지.

그 외에도, 난 참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개입했었다.

‘소극적이냐 적극적이냐’의 차이는 있겠으나, 나는 도움을 주는 데 있어 그렇게 커다란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허나, 내 도움에 따른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다들 잘되기는 했으나, 송하연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건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쟁취한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 도움만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이미 빌보드 차트는 한국 가수들로 도배가 됐을 테니까.

난 미국에서 무대를 하는 그녀의 표정을 캡쳐한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제 여유는 여기까지.

또다시 바쁘게 일을 시작해야 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으니까.

영화 <폭설>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날.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난 사무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걸음을 옮겼다.

‘천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폭설>은 차근차근 대중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가, 가속도가 무척이나 빠르게 붙었다.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 이는 내게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맡은 아티스트들이 연이어 대성공을 하다 보니, 이 영화에까지 대중들의 관심이 뻗친 덕분이겠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랬듯이.

난 문득 피식, 실소가 새어 나왔다.

방금 전까진 내가 중심적으로 화제가 되어 기사가 나오는 게 조금 떨떠름했었는데, 이 네임밸류의 도움을 받으며 좋아하고 있으니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래도,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난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라타, 심민정의 집으로 향했다.

“실장님!”

집 앞에 도착하니, 그녀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게 그리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얼굴에서도 함박웃음이 폈다.

“축하드려요, 민정 씨. 결국 천만 돌파했네요.”

“그러게요. 진짜 누가 알았겠어요. 레이니데이의 병풍 멤버가 천만 영화의 주연이 될 지. 하하!”

씁쓸한 과거를 입에 담으면서도 얼굴엔 기쁨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계속 말하기 좋은 주제는 아니라, 난 천만을 돌파한 것에만 초점을 맞춰 물었다.

“공약 이행할 준비는 됐어요? 그거 쉬운 거 아닐 텐데.”

“괜찮아요. 이 한 몸 부서져라 하면 되죠. 쓰러질 때까지 해도 웃으면서 기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실장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천만 달성의 공약은 바로 배우들과 감독, 그리고 제작사 식구들의 연탄 봉사와 쌀 기부였다.

원래 거기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서의 여론에 이끌려 나도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우린 오늘 죽는 날이었다.

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올 때 내 손으로 운전은 못하겠지만, 그땐 로드 매니저가 다른 스케줄을 끝내고 오기로 했으니 괜찮을 터.

“저도 쓰러질 때까지 해야죠, 뭐.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하자고요. 좋은 일이기도 하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눈매를 반달처럼 휘며 말했다.

“역시 실장님은 너무 착하시다니까. 이러니까 여자들이 줄을 서지.”

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를 움직였다.

***

난 공약을 이행하기 전에 온몸이 부서질 걸 각오했고, 결과적으로는 각오한 대로 됐다.

그러니까, 온몸이 부서져버릴 것처럼 아팠다는 말이다.

“으으윽!”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려주던 현지가 내 신음에 행동을 멈췄다.

“죄송해요. 아팠어요?”

“아, 아냐. 괜찮아.”

억지로 미소를 띠우며 안심시켰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채희가 혀를 차며 한심스럽게 쳐다봤다.

“하여간 엄살은. 누가 보면 초등학생인 줄 알겠네.”

“야! 이게 엄살 같아?”

“엄살 맞죠! 현지 씨 손 봐요. 쬐끄만한 솜주먹으로 두들기는데 그게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그것도 세게 한 것도 지인짜 어엄청 약하게 했구만. 현지 씨, 잠깐 나와봐요. 내가 해야 진짜 아픈 게 뭔 지 알지.”

“야! 야! 하지 마라 진짜!?”

내 병가 소식에 우리 집으로 찾아와준 현지와 채희.

아버지는 대표님이시라 회사에 있으셔서, 어머니가 그녀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셨는데.

몹시 안타깝게도, 둘 중 한 명은 날 죽이려고 온 자객이었다.

“하아. 진짜 우리 엄마가 이거 봤으면 너 쫓겨났어.”

“···진짜 이렇게까지 유치하다고?”

그녀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신 후,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며 집을 서둘러 나가신 어머니.

그래서 점심은 우리 셋이서 간단히 배달을 시켜 먹기로 했다.

난 자장면을 비비며 채희에게 말했다.

“이제 곧 막방이네?”

<주점 칙칙폭폭>의 마지막회가 다가왔다.

쪽대본으로 진행되지 않아 촬영은 진작에 끝나버린 상태였다.

한창 촬영 중이었으면 지금 여기 있지도 못했겠지.

채희는 짬짜면의 비닐을 벗기기도 전에, 탕수육을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쵸. 근데 느낌이 이상해요. 이맘때쯤 되면 컨디션 떨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먹는 모습 보니까 많이 건강해 보이긴 해.”

“···? 무슨 뜻이에요? 갑자기 마사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엄청 드는데?”

원래 이 촬영이 끝나고 좀 쉬게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팔팔한 모습을 보면 또 바로 작품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차기작 들어가고 싶으면 말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탕수육을 흡입하는 채희.

자기 앞에 있는 짬짜면은 탕수육을 다 먹은 뒤에 먹으려나 보다.

난 시선을 옮겨 현지를 바라봤다.

볶음밥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천천히 씹고 있는 게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현지야, 맛있게 먹어.”

입안에 든 내용물 때문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하는 현지.

반면, 채희는 입안에 내용물이 들었다는 것에 아랑곳않고 입을 벌리며 물었다.

“저는요? 여친 아닌 사람 입은 입도 아닌가?”

“넌 이미 엄청 맛있게 먹고 있잖아.”

“···.”

“농담이야. 너도 맛있게 먹어. 짬짜면 비닐 벗겨줄까?”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서 난 황급히 말을 고쳐야만 했다.

보아하니, 입안에 있는 내용물을 튀기는 걸 상관하지 않고 발끈하며 금방이라도 말을 쏟아낼 것 같았으니까.

“아, 근데 미국은 언제 간다고 했죠?”

채희의 물음에 현지가 대답했다.

“일주일 뒤에 가기로 했어요.”

그녀의 말대로, 일주일 뒤에 현지와 나는 미국으로 향하기로 했다.

[ 71. On That Night – Hyeonji Yu ]

송하연이 1위를 하고 있는 빌보드 차트에서.

마침내 현지도 탄력을 받고 순위가 상승하고 있었으니까.

“···가서 좋은 소식은 하나만 들고 와요.”

채희가 날 흘겨보며 말했다.

“음?”

“둘이 갔다가 셋이 돼서 오지 말고요.”

“···뭔 미친 소리를 하는 거니, 채희야.”

가끔 정신이 어질어질하기는 했으나.

미국으로 향하기 전에, 우리는 나름대로의 평화를 만끽하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냈다.

< 좋은 소식은 하나만 들고 와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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