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67화 (167/170)

< 게릴라 콘서트 >

현지의 스페셜 무대가 방송된 건 당연하게도 앨범이 발매된 후였다.

그리고 현지가 송하연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수이다 보니, 그 스페셜 무대는 음악방송답지 않은 시청률과 화제를 낳을 수 있었다.

대중들도 본방 사수한 유일한 음악방송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 화제는 곧바로 차트에 나타났다.

다만, 여전히 송하연의 앨범의 인기는 대단했기에 단번에 1위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치열한 경쟁 중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말인즉슨.

‘···화려하네, 진짜.’

음원 차트의 상위권이 송하연과 유현지로 가득하다는 뜻이었다.

지극히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

심지어는 이번 앨범이 아닌, 이전의 곡들마저 상위권 차트를 독식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으니, 다른 가수들의 입장에선 지옥이나 다름없겠지.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우리 식구들만 잘나가면 되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이제 송하연의 국내 활동이 끝나고, 현지가 활동을 시작했으니.

송하연이 그랬던 것처럼 현지도 단독으로 차트를 독식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 일환이었다.

차 안, 곳곳에 깔린 카메라.

다만 평소와 약간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게 현지를 찍기 위함도 있지만 나를 찍는다는 목적도 있다는 거였다.

방송국이 우리에게 제안한 대로, 그녀와 함께 관찰 프로그램을 하나 찍기로 했으니까.

그녀를 메인으로 하고, 난 되도록이면 좀 더 자주 출연하는 조건이었다.

이래봬도 내가 실장인데 계속 현지 옆에 있을 수만은 없잖아?

“오빠, 차트 봐요?”

옆에 앉은 현지가 여상하게 묻는다.

역시 카메라가 익숙해서 그런지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연인 관계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는 점만이 조금 다를 뿐이지.

“어, 볼 때마다 뿌듯해서.”

“다 오빠 작품이잖아요. 송하연 선배님 앨범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내 작품은 무슨. 난 숟가락 하나 올린 거나 마찬가지지.”

내 겸손한 대답에, 현지의 입가엔 씨익-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카메라를 신경 쓰고 있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난 핸드폰을 내려놓고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컨디션은 괜찮지?”

“네. 너무 좋아요.”

방송국은 무작정 관찰 카메라를 찍지 않았다.

그들도 현지를 찍는 걸 기회라고 여겼는지, 특별한 기획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게릴라 콘서트.’

2000년대 초반에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유명 예능이었으나, 포맷이 워낙 좋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종종 예능에서 활용이 되고 있었다.

최근에도 아이돌 그룹 리얼리티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었지.

다만, 보통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직접 홍보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제작진은 우리에게 홍보를 일절 금지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홍보도 없이, 무대 위에 올라가 무작정 공연을 시작해야 했다.

금요일 저녁, 홍익대학교 안에 있는 무대에서.

“여기 축제 때 행사도 왔었는데, 그때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긴 해요.”

그녀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불안해하진 않았다.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열심히 하다가 갈 생각이라고 한다.

‘아닐 텐데.’

난 픽, 웃기만 할 뿐, 굳이 내가 예상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깜짝 놀라는 모습은 방송의 재미로 남겨두는 편이 더 좋을 테니까.

똑똑.

그때, 창문을 두드리는 제작진.

피디는 직접 와서 우리에게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어요. 이제 슬슬 내려오셔서 무대 뒤로 이동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관객석과 무대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적지 않은 이들이 조명, 음악 등 무대를 점검하고 있으니 약간의 관심이 끌리긴 했다.

허나, 그 숫자는 전혀 많지 않았다.

그저 뭘 하는지, 작은 호기심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

‘멀리 계신 팬분들은 못 와서 속상하시겠네.’

난 무대 뒤에서 관객석을 빙 둘러봤다.

관객석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아마 현지가 나와서 무대를 시작하면, 인근에 있는 모든 팬들이 어떠한 약속이라도 제쳐놓고 오지 않을까?

어쩌면 이 넓은 관객석이 꽉 차고도 넘칠 수도 있겠다.

***

청춘이 들끓는 금요일 저녁.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의 헌팅 포차 안에서는 남자 세 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입장하기 위해 가게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줄을 서기도 했고, 정말 오래간만의 헌팅이기도 한지라 모두가 들떠 있었는데.

다행이도 몇 번의 시도 끝에 다른 테이블과 합석할 수 있었다.

‘아, 설렌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최재호.

그의 텐션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었다.

그렇게 10분, 20분, 한창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을 때.

여자 중 한 명이 핸드폰을 보다가 깜짝 놀라며 말을 꺼냈다.

“야! 대박! 홍대에서 유현지 공연한대!”

“···!”

최재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유현지? 내가 아는 유현지가 지금 홍대에서 공연한다고?”

“어! 지금 막 시작해서 사람들 엄청 모여들고 있다는데?”

“홍대 어디?”

“진짜로 홍대 안에서. 학교 축제할 때 하는 무대 있잖아. 거기서 이제 시작했다는데? 게릴라 콘서트라고 하는 거 보면 한두 곡이 아니라 좀 오래 할 건가 보네.”

재호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옆에 앉은 여자에게 물었다.

“같이 보러 갈래?”

“갑자기? 싫어. 나 술 더 먹고 싶은데.”

최재호가 유현지의 찐팬임을 아는 친구들은 혹여나 그가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야, 여기 홍대 아니고 강남이야. 지금 가봐야 늦었어.”

“맞아. 그냥 다음에 콘서트 하면 그거 보러 가.”

허나, 친구들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재호는 한없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에 보는 거라면, 친구들을 다음에 보는 게 정답이다.

유현지의 게릴라 콘서트는 절대 놓칠 수 없지.

“미안하다. 나 먼저 간다.”

“오빠! 이대로 진짜 가게? 진심으로?”

“응. 진심으로.”

옆에 앉은 여자가 붙잡았으나, 최재호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택시를 타고 곧장 홍대로 가는 길.

그는 마치 출근길 러시아워를 보듯, 홍대로 향하는 인파의 물결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 모습에 재호는 불안함이나 아쉬움을 느끼기보다는, 외려 미소가 지어졌다.

유현지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장면이었기에.

그렇게 도착한 홍대.

이미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는 그곳은 광란의 현장을 방불케 했다.

날뛰는 사람들, 커다란 음악소리, 그리고 비현실적인 무대를 펼치고 있는 유현지까지.

“우와아아아!”

“현지야아아!”

“유현지 이쁘다!”

최재호는 관객석이 아닌, 아주 멀리서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율이 온몸을 타고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군인이었을 때부터 유현지의 무대를 보는 이 순간을 얼마나 소원해왔던가.

그는 지금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지야아아아! 최고야아아!”

이제, 아까 옆에 앉았던 여자의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이,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황홀한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

콘서트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관객석이 꽉 차고도 남아, 저 멀리까지 보이는 사람들.

유현지는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그들을 애정이 잔뜩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온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쏟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힘이 되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샘솟고 있었다.

하지만 정해진 순서가 있고, 갈아입을 의상이 있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현지야.”

무대에서 잠시 내려오자마자, 자신과 관객들처럼 열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다가온 박한울.

현지는 웃는 얼굴로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 힘들진 않지?”

카메라가 이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으나, 그는 촬영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을 쏟아내고 있다는 걸 알아봤기 때문에, 그게 걱정이 돼서 묻는 거였다.

“네, 조금도 안 힘들어요. 오히려 더 힘이 나요.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또한 카메라를 의식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정말로 힘이 펄펄 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물었다.

“혹시 조금 더 열심히 해도 될까요? 조절하지 않고 무대하고 싶어요.”

아낌없이, 계산하지 않고 모든 걸 다 쏟아내고 싶었다.

팬들이 크게 보내는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단독 콘서트를 처음 했던 그날처럼.

이에, 박한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도 돼. 내일 또 콘서트 있는 건 아니니까.”

“네.”

현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 지었고.

그 모습은 하나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

유튜브와 SNS, 커뮤니티 등.

게릴라 콘서트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었기 때문일까.

음원 차트에서 현지는 마침내 송하연을 제치고, 최상위권을 독식할 수 있었다.

송하연도 같이 국내에서 경쟁을 계속했더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현지를 위협하는 가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본방송은 재차 대박을 터뜨렸다.

-와ㅠㅠㅠㅠ 아니 원래 이게 이렇게 감동적인 프로그램이 아닌데···.ㅠㅠㅠㅠ

-진짜 현지는 전설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대···. 리얼 천사 아님?

-무대 뒤에서 이랬었구나 어쩐지 진짜 무대 초대박이긴 하더라···.

-조절하지 않고 무대하고 싶대ㅠㅠ 이미 무대 폭파시켜놓고 더 열심히 하고 싶대ㅠㅠㅠ 이게 나라지!

그러나, 이 대박 소식을 모두가 반기는 건 아니었다.

“이젠 하다하다 현지 씨랑도 경쟁해야 되네···. 아니, 겉바속촉 씨. 우리 영화 경쟁을 너무 심하게 만드는 거 아니에요? 타이밍이라도 잘 잡으시던가. 이게 뭐예요, 시사회 날에. 우리 기사가 어떻게 하나도 안 보여?”

영화 ‘폭설’의 시사회.

박송이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살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게, 이 바닥은 화제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게 영화가 됐든, 드라마가 됐든, 아니면 노래가 됐든.

화제가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은 당연히 힘을 못 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채희의 드라마와 최락현의 드라마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와중에, 현지까지 이렇게 화제를 다 휩쓸고 있으니.

혹여나 영화가 묻힐까 봐 불안해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또다른 주연인 심민정은 그저 태연하기만 했다.

눈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박송이에게 말하는 그녀.

“괜찮을 거예요. 우리한테도 실장님 계시잖아요. 대박 보증수표!”

난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과장스레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것들이 다 제가 대박을 예견한 것들이거든요. 이러니까 오히려 더 믿음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 작품도 실패보단 성공할 확률이 훨씬-“

“아! 됐어요. 누가 보면 다 자기가 만든 줄 알겠네. 주연 두 명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예요?”

그녀의 말이 너무나도 적절하고 타당한 말이긴 했다.

대박이 터지면, 당연히 내 몫보단 심민정과 박송이의 몫이 수십 배는 더 크긴 하겠지.

“···누가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요? 그럼 애초에 따지지를 말던가. 그쪽이 걱정을 사서 하길래 그러지 말라고 이러는 거잖아요.”

옆에서 심민정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불안해하는 박송이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

인터넷이 다른 화제들로 아주 난리인데도 이렇게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한대로 나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일 터.

그녀가 이렇게 생각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새삼스레 그 신뢰가 피부로 느껴졌다.

난 그녀의 미소를 눈에 담으며, 똑같이 미소 지었다.

“이 영화도 잘될 거예요.”

처음엔 속도가 그리 만족스럽게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시사회인 오늘을 기점으로, 이 영화는 대박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게 분명했다.

< 게릴라 콘서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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