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되게 열심히 했네 >
송하연의 앨범 작업과 현지의 앨범 작업.
이 둘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고되었다.
‘이미 각오하긴 했었는데, 그래도 힘드네.’
난 뻐근한 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잔뜩 인상을 썼다.
“괜찮으세요?”
현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난 방긋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야. 괜찮아. 직장인들 다 이런 거 하나쯤은 달고 사는데 뭘.”
난 턱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A&R팀의 직원들.
그들은 모두 초췌한 얼굴로 통증과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현지의 앨범 작업으로 열정을 불태운 결과다.
“하하···.”
현지는 그들을 보더니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우리의 앨범은 저들이 건강을 갈아내어 착실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곡을 공모하고 그들이 추려낸 것들을 내가 다시 들어보고.
그 뒤에 내가 괜찮다고 말한 것들로, 회의를 통해 편곡의 방향을 결정한다.
설명만으로도 그리 간단하진 않았지만, 이 사이엔 몇 번의 수정과 커뮤니케이션이 더 거치게 되니 저렇게 지칠 수밖에.
그래도 저들에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몇 곡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내가 확실한 결정을 내리니 판단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앨범 작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송하연과 내가 같이 작업하는 속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 죄송해요. 하아. 편곡자들도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얘기하느라 좀 늦었네요.”
A&R팀의 박부장이 우리가 앉은 곳으로 다가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한바탕 하고 왔다는 거겠지.
“힘이 들어가요?”
“네. 현지 씨 곡에 참여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죠.”
현지와 송하연의 듀엣곡은 빌보드 차트 14위를 찍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미국에서 활동을 했더라면 더 높이 올라갔을 거라는 둥, 너무 겁이 많다는 둥, 이건 미국병이 아니라 기회였다는 둥, 언론이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으나, 우리는 요지부동.
그저 아무런 영향 없이 앨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앨범을 작업하는 작곡가들과 편곡가들이 힘이 들어가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아무튼 수정본 왔으니까 한 번 들어보세요.”
더블 타이틀 곡 중에 하나.
두 번의 수정을 거쳤을 때 거의 내가 원하던 것과 흡사했으니, 아마 이번엔 완성됐으리라.
그래서 현지를 데리고 이 자리에 같이 온 거였다.
그녀도 들어봐야 하니까.
난 그녀에게 눈짓했고, 그녀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오늘 그녀를 데려오며 한 가지 당부의 말을 건넸다.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치 보지 말고 말해. 타이틀이 아니라 수록곡으로 바꿀 수도 있고, 정 아니면 아예 앨범에서 빼버려도 괜찮으니까.’
괜히 A&R팀 직원들이 지쳐 있다고 이에 마음 약해질 필요 없다고도 말했다.
솔직히 아티스트가 처음 들었을 때 마음에 드는 곡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나중에 그 음악이 뜨면 결국 아티스트도 곡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는데.
업계에서 통용되는 이 논리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가 들려줬던 곡을 현지가 싫어한 적이 없었으니까.
짐작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곡이 정말 그만큼이나 좋았거나.
‘그도 아니면 나를 엄청 신뢰한다는 거겠지.’
내가 현지를 바라보는 와중, 박부장님은 재차 말했다.
“지금 여기서 들어보실래요?”
“네.”
다른 사무실과는 독립된 A&R팀 사무실.
스피커는 큰 음악을 토해냈고, 나와 현지는 이를 조용히 감상했다.
내 입가에 띠워진 미소를 보곤,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현지.
내가 묻기도 전에 그녀는 입을 열어 말했다.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스피커가 사무실을 크게 울리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함인지 시선을 돌린 채 아닌 척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던 직원들.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어어···.”
“와, 다행이다···.”
“후우.”
직원들이 내심 걱정이 많았나 보다.
하긴, 그만큼 의욕을 갖고 열심히 임했으니까.
그들이 어떤 소리를 내뱉든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현지를 보며, 나도 입을 열었다.
“너한테 잘 어울릴 거야. 팬들도 좋아하실 거고.”
“네.”
“다른 작곡가들 곡 받으니까 지금까지랑은 느낌이 다르지? 팬들도 이걸 느낄 거야. 지금까지는 나랑 하연 씨가 작업한 것들로만 냈으니까.”
“저는 오빠가 만든 것도 좋고, 이것도 마음에 들어요.”
지금 여기에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아 직접적인 애정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자! 아직 멀었어. 이제 한 곡이야! 다들 힘내자!”
그때 짝짝, 박수를 치며 직원들을 격려하는 박부장님.
그의 말에 직원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불만 없이 입가에 미소가 맴도는 게, 더블 타이틀 중에 하나를 완성시킨 것에 큰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
아무리 송하연과 현지의 앨범을 작업하느라 바쁘다지만, 그래도 촬영 현장에 아예 안 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너무 안 왔지.’
심민정의 ‘폭설’ 촬영 현장.
여기엔 꼭 내가 필요하진 않았다.
반면, 최락현과 채희의 차기작을 고르고, 그들의 분석을 도와주는 것은 내가 꼭 필요했던 과정들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 온 건 아니다. 가끔 촬영 현장에 들르긴 했다.
그러나 그건 가뭄에 콩 나듯.
그것도 그리 오래 있지도 못했다.
그래서 난 우리 회사 돈으로 오늘의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만회도 할 겸, 주연배우인 심민정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나 참. 금수저들이 이래서 안 돼.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니까. 자기 돈도 아니면서.”
“시라송이 씨, 그런 말하는 것 치곤 너무 맛있게 드시는 거 아닙니까?”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죠.”
난 헛웃음을 터뜨리며 옆에 앉은 심민정을 바라봤다.
박송이의 말이 영 틀린 말도 아니라서 눈치가 보였거든.
그런데, 심민정의 얼굴에선 불만은커녕 헤실헤실한 웃음만이 번지고 있을 뿐이었다.
착하기도 하지.
“민정 씨, 미안해요. 제가 너무 신경을 못 써드렸어요.”
“네? 아뇨, 괜찮아요. 저만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신데. 그래서 앨범 작업은 잘 되고 있어요?”
“네, 하연 씨 앨범은 얼마 안 있으면 완성될 것 같고, 현지 앨범도 그리 많이 남진 않은 것 같아요.”
더불어, 채희도 곧 있으면 리딩 시작이다. 그 뒤에 곧바로 촬영을 시작하고.
난 심민정의 접시에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올려주며 물었다.
“이것도 크랭크업까지 얼마 안 남았죠?”
물은 건 심민정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앞에 앉은 박송이에게서 나왔다.
“이것 봐요, 겉바속촉 씨. 그 정돈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영화가 그렇게 힘들었나 봐요? 못 본 사이에 많이 까칠해지셨네.”
“···나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시고.”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채희랑 친하게 지내면서 많이 물들었나 보다.
오늘따라 톡톡 튀네. 따갑게.
난 그런 박송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심민정에게 물었다.
“민정 씨, 이 사람이 민정 씨한테도 이렇게 까칠하게 굴진 않죠?”
“···이 사람? 아니 그런 말을 제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해요?”
“간접적으로 돌려 말한 거예요. 민정 씨한테 잘해달라고.”
“퍽이나 효과 좋겠네요.”
박송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심민정이 그 모습을 보며 편하게 웃는 걸 보니, 그래도 안심이 됐다.
나름 잘 챙겨주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박송이도 겉바속촉 재질이었지?
그렇게 회식을 하며 속죄 아닌 속죄를 하고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
심민정은 조수석에 앉은 채, 창밖을 보며 말했다.
“전 정말 괜찮았어요. 오히려 자주 오셨으면 곤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왜요?”
“혼자 생각 좀 정리할 게 있었거든요.”
날 보며 싱긋 웃는 걸 보니 자세하게 말해줄 것 같진 않았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고 있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젠 다 정리됐으니까, 자주 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연락이라도 자주 해주세요.”
“그럴게요, 앞으론.”
슬쩍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얼핏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
피에스타의 멤버들과 박한울이 함께 자리한 소회의실.
송하니는 멤버들과 손을 꼭 맞잡으며 꿀꺽, 침을 삼켰다.
사촌언니인 송하연의 앨범에 들어갈 곡이 거의 다 나왔고, 유현지의 앨범 작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지금 막 들은 참이었다.
‘···경쟁은 안 돼.’
언론에서 말하는 괴물신인 라인업이라면 모를까, 이쪽과 경쟁하기엔 아직 많이 무리였다.
송하연의 정규앨범 다음에 유현지의 정규앨범이라니, 그 기간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지옥이 될 테니까.
“어···때요?”
이어폰을 뺀 박한울에게, 이효진이 물었다.
강해정이 <양녕을 탐한 무녀>를 보고 영감을 받아, 내리 만들어낸 4개의 곡.
미니앨범으로 활동하기에 충분한 개수였다.
그래서 바로 어제, 강해정의 디렉팅을 받으며 송하니가 가이드 녹음을 끝낸 참이었다.
이제 그의 말이 모든 걸 결정할 차례.
만약 수정할 게 많거나 한두 곡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발매 시기가 조금 늦춰질 테고.
그럼 유현지의 활동이 모두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지금 당장 그의 입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게 최선.
그러나, 그의 표정은 미묘하기만 했다.
“하니야, 이거··· 네가 가이드 한 거지?”
“···네.”
무거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미간을 모으며 표정을 굳혔다.
‘내가··· 보컬이 망가졌나?’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
그런데 그의 입에선 돌연 피식, 하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동안 되게 열심히 했네. 많이 성장했어.”
“···!”
그는 강해정을 보면서도 말했다.
“해정아, 너도 엄청 성장했다. 이제 편곡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될 것 같은데?”
“아.”
“효진아, 윤지야. 너희도 기대해봐도 되지?”
“어··· 그···.”
“···네.”
자신없는 대답에 그는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분명히 더 잘할 거야. 지금이 아니면 다음에라도. 너네도 내가 뽑았잖아. 가능성이 충분해서 뽑은 거니까 절대 자신감 잃지 마.”
“···네!”
“네, 감사합니다···.”
그 이후, 그가 고팀장님과 이 곡에 대해 얘기하고, 편곡의 방향에 대해 말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멤버들.
그녀들은 그동안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얘기가 다 끝난 뒤, 이제 돌아갈 때쯤.
박한울은 멤버들 모두를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고생했어. 이번에도 분명 잘될 거야.”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미련 없이 휙, 뒤로 돌아 사라지는 박한울.
멤버들끼리 덩그러니 남겨진 소회의실에서.
성윤지가 꺼낸 말에 다들 동의하듯 말을 덧붙였다.
“박한울 실장님, 의외로 인기 많을 것 같지 않아요?”
“가능성 있어. 우리한테 엄청 엄하게 대하다가 갑자기 친절하게 해주시니까 적응이 안 돼.”
“···저한텐 작곡으로 칭찬 자주 해주시긴 했었는데, 그래도 혼자였으면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했어요.”
송하니는 멤버들의 말에 납득하곤, 슬쩍 걱정이 일었다.
실장님과 단둘이 작업하는 일이 많은 사촌언니가 혹여나 저런 것에 넘어가진 않았을까?
쓸데없이 솔직하고 아무렇지 않게 흘리고 다니는 저 실장님한테?
하지만, 이내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우리 언니가 얼마나 눈이 높은데.’
“아무튼, 실장님이 우리 이번에도 되게 잘될 거라니까 기분 좋네요.”
성윤지의 말에, 분위기는 한껏 들떴다.
박한울의 반응이 그렇게 좋았으니, 그녀들이 기대하는 것도 당연했다.
< 그동안 되게 열심히 했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