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61화 (161/170)

< 송하연과의 앨범 작업 >

후속곡으로 음방과 음원차트에서 1위를 거머쥐었던 피에스타는 어느덧 활동이 모두 끝났다.

데뷔곡으로 입지가 올라갔고, 후속곡으로 1등에 오른 엄청난 성과!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녀들이 1위에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들이 느끼기엔 1위에 오른 것 자체가 꿈처럼 느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1위에서 내려오게 됐을 때는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일어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욕심이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었으며, 그녀들로 하여금 더욱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들었다.

강해정은 모두가 평화롭게 늘어진 숙소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음원 차트를 살펴봤다.

HJ엔터의 보이그룹 드리머와, YU엔터의 보이그룹 미라클이 또 싱글을 내며 높은 순위에서 경쟁을 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들에게 ‘전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1. Enjoy Together – 송하연, 유현지

바로 그녀들이 모든 화제를 다 쓸어가고 있었으니까.

‘부럽다.’

강해정은 듣고 듣고 또 들었던 그 음악을 다시 한번 들어봤다.

귀가 황홀해지고 피가 빠르게 돌며, 머릿속에서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음악.

음악이 모두 끝난 뒤, 강해정은 뜨거운 한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과연 자신은 저런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언론과 팬들은 자신을 천재 작곡가라며 추켜세우고 있었으나, 자신의 수준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저렇게는 못 만들어.’

송하연처럼 박한울의 도움을 받아 작곡한다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나.

강해정은 지금까지 작곡을 하는 데 있어선 그의 도움을 받지 않았었다.

편곡하는 데엔 그가 열심히 개입하며 도와주긴 했지만.

“해정아, 뭐 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하니가 웃음을 머금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밝은 표정으로.

“그냥 음악 듣고 있었어요. 차트도 좀 보고요.”

“오. 이제 슬슬 시동 좀 걸게? 영감 나왔어?”

송하니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녀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

그러나 아직 그 욕심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해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영감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아서요.”

영감의 힘은 후속곡을 만들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마법과도 같았던 시간.

그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것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나설 수 없는 것이었다.

송하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 이번 후속곡 만들 때, 정채희 선배님 드라마 보면서 영감 얻었다며. 그럼 이번에도 그런 거 보면 나오지 않을까?”

해정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말을 입밖으로 뱉으려다가, 혀끝에서 말이 걸렸다.

송하니의 말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닐 것 같아서.

“그···런가?”

“혹시 모르잖아.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이번에 ‘양녕을 탐한 무녀’ 엄청 핫하잖아!”

송하니는 영화를 보러 갈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모양이다.

영감을 찾도록 돕는 게 아니라 그냥 놀 생각이 가득한 듯했지만.

강해정은 그런 언니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그럴까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양녕을 탐한 무녀>는 시사회 때부터 큰 화제가 쏟아졌었다.

일단 대배우 이성호의 작품이기도 하고, 박한울의 새로운 담당 연예인 최락현의 작품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시사회에 참석한 모든 기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최락현에 대해 극찬에 극찬을 쏟아냈다.

이에, 대중들의 호기심이 자극되었고, 그 호기심은 개봉 직후에 더욱더 큰 관심으로 바뀌었다.

‘진짜 재밌다고 했던가.’

최락현과 이성호의 연기도 입이 떡 벌이질 만한데, 그보다 먼저 박한울이 고른 작품답게 영화 자체의 재미가 엄청나다고 한다.

“그럼 지금 바로 가자! 준비해! 나 예매하고 있을게!”

멤버들 네 명이 전부 가면 너무 눈에 띌 테니, 둘이 하게 된 영화 관람.

영화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스토리가 전개됐을 때.

송하니와 강해정은 스크린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리, 오늘따라 더욱 미색이 뛰어나구나. 내 너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괜찮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걱정 마라.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는지.

캐릭터가 어찌나 매력이 있는지.

그리고 연기는 어찌나 그렇게 잘하는지.

흠뻑 빠져들도록 영화를 보다가, 마침내 영화가 끝나자 그제서야 정신을 퍼뜩 차린 강해정.

“아.”

그녀는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범람하듯 넘실대고 있는 영감을.

***

“최락현, 준비는 잘 했어?”

그가 출연할 넷플릭스 드라마의 대본 리딩장으로 향하는 길.

내 물음에 그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굽니까? 데뷔부터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대박 터뜨리고 있는 슈퍼신인배우인데. 준비야 당연히 완벽하게 끝냈죠.”

그의 허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영 거짓말은 아닌지, 대본은 한눈에 보기에도 너덜너덜해져 있었으며.

덕지덕지 포스트잇이 붙어 대본집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이번 드라마는 한국 현대사회의 빈부격차 갈등을 다루는 드라마로, 그는 재벌 3세 악역을 맡았다.

퍽이나 잘 어울리는 역할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요, 형님. 저··· 양녕도 그렇고 이번 것도 그렇고, 이러다가 계속 악역만 하게 되는 건 아니겠죠? 그런 경우 꽤 많다던데.”

다양한 작품의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어했던 그가 걱정할 법도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공개되면 그땐 또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그러했듯이.

난 픽, 웃으며 말했다.

“양녕이 일반적인 악역은 아니었잖아. 이번 것도 그렇고.”

“그래도 나쁜 쪽인 건 맞지 않아요?”

데뷔작부터 국내 최고의 대배우 성호 삼촌과 함께 주연으로 호흡을 맞춘 신인.

화제성과 연기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그를 주연으로 쓸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양녕대군의 이미지가 엄청 강렬했기 때문에.

거기다 사극 영화이기도 했으니, 현대가 배경인 작품에서 악역이 아닌 역할로 그를 원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악역이 아닌 역할로 그를 원하는 곳이 몇 곳 있긴 했지만, 그 작품들은 별로 내 눈에 차지 않았다.

‘그중에서 대박작이 있었으면 이 작품이 아니라 그쪽을 고려해봤겠지만.’

안타깝게도 없었다.

채희가 들어간 드라마에서도 그와 어울리는 역할은 없었고.

그러니 이 작품을 해야지.

이 작품은 대박이 날 테고, 최락현과 딱 어울리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으니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해. 그래도 일반적인 악역이 아닌 게 어디야.”

“쩝··· 아니, 만족 못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말해봤죠. 저도 이 역할 좋아요. 재벌 3세, 제 평생 꿈이거든요.”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재벌 3세의 꿈은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거야?

***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간 느낌이다.

텅 빈 리딩장.

그 안엔 감독과 작가, 그리고 제작사 대표를 비롯해 촬영 감독 등의 스탭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들끼리 리딩이 끝나고 이곳에서 얘기를 나누기로 미리 말했었기 때문에.

다만, 지금의 이 모양새를 보자면, 미리 얘기를 나눠서 떠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캐릭터가 튀어나왔어. 난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까진 기대하진 않았는데.”

감독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감독이 누굴 두고 말하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다 함께 대본 리딩을 지켜봤으니까.

“박한울 실장님 안목이 어디 가겠어요? 이러니까 담당으로 데려오지.”

제작사 대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주연배우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 건, 깜짝 놀랄 만한 일이긴 했으나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작가는 아직도 벙찐 얼굴로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사실 제가 만든 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의 연기가 주는 임팩트가 너무도 강했다.

감독은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나 튀어나왔다고 말했으나, 이것을 쓴 자신은 안다.

최락현의 연기가 완전하지 않았던 캐릭터에 비로소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하여간 박실장님 주변엔 괴물밖에 없다니까.”

말을 내뱉은 제작사 대표는 잠시 멈칫하고는 생각했다.

‘하긴··· 박실장님이 그중에서 제일이긴 하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미끄러짐도 없이 오로지 성공만을 해온, 믿을 수 없는 사람.

그리 생각하니 더욱 힘이 난다.

그말인즉슨, 이 작품은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

할 일들을 어느 정도 마쳤다.

심민정의 촬영 현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채희의 대본 분석과 캐릭터 조형을 도와주기도 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가장 커다란 두 개.

송하연과 현지의 앨범 작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바로 송하연의 작업실로 향했다.

현지의 앨범은 A&R팀과 협력해야 하니, 그들은 나와 현지와 함께 회의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 힘이 빡 들어간 걸로 보아 단단히 준비하겠지.

하지만 송하연의 앨범을 만드는 데엔 그러한 과정들이 필요가 없었다.

그녀와 나, 단 둘이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하연 씨 앨범이 먼저 나오겠네.’

혹여나 벽에 부딪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녀와 작업하며 벽에 부딪힌 적은 없었다.

“오셨어요?”

“네. 좀 늦었죠? 처리할 일들이 있어서요.”

“아니에요. 앉으세요.”

단정하게 꾸민 송하연은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작업실은 여전히 깔끔했고, 그녀는 의자에 앉은 내게 이번에도 과자와 음료를 내주었다.

“하연 씨, 혹시 고민해보셨어요?”

“네? 어떤 거요?”

“이번 앨범 컨셉이요.”

정규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요즘엔 그런 게 아예 없거나, 그저 형식만을 갖추는 모양새긴 하나.

그녀는 예외였다.

내가 나타나기 전엔 혼자 작업하는 걸 고집했듯이, 이런 면에 있어선 한없이 철저하니까.

난 내 앞에 놓인 음료와 과자를 조금씩 음미하며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내 눈을 지그시 마주했다.

“생각해놓긴 했어요. 같이 회의하면서 확실하게 정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건데요?”

“슬픔이요. 선택받지 못한 여자의 슬픔.”

“풉!”

입안에 들어가 있던 과자와 음료가 테이블 위로 튀었다.

난 당황한 눈으로 눈을 바쁘게 굴렸는데, 그녀는 태연한 자세로 티슈를 뽑아 이를 닦아냈다.

“···.”

“···.”

그리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말을 이었다.

“왠지 아이디어가 조금씩 떠오르더라고요. 감정이입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곡마다 주제는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좀 더 자신의 마음을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있겠고,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괜찮을 것 같아요. 또, 그 남자를 원망하는 느낌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혹시 다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그 남자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아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그런 자신이 너무 싫기도 하고, 계속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데 티를 내면 멀어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는 마음을-“

말이 더 이어지는데, 난 그녀의 눈빛을 피할 수 없었다.

괜히 시선을 피했다간 어색해질 것 같았으니.

그런데,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다가.

이내 풉, 하고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실장님, 어디 불편하세요?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네? 아, 아니에요! 저 괜찮은데요?”

“아···. 실장님은 괜찮으시구나···?”

“···! 아, 그, 막 좋다는 건 아니고···.”

계속 나를 궁지에 몰아넣던 그녀는 다시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농담이에요. 그냥 조금 놀리고 싶어져서요. 앨범 주제를 이걸로 할 생각은 없어요.”

그녀는 이번 장난으로 모든 걸 털어내려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소소한 복수였을 수도 있고.

‘···맞겠지?’

연애경험이 빈약해서 확신할 수 없긴 하나, 일단 내 추측으로는 그랬다.

썸이 깨지고 우리 사이는 예전과 같은 줄 알았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약간의 거리감은 생겼었나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렇게 농담으로라도 얘기를 꺼내게 되니,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거리감이 서서히 허물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 또한 나처럼 좀 더 얼굴이 편안해 보였고.

내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좀 전보다 더욱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큰 주제는 정했는데, 일단 설렘이나 사랑, 기쁨 쪽으로 하고 싶어요.”

방금 전에 말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주제.

난 옅은 미소를 띠우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이번에도 멜로디부터 만들어볼까요?”

“네, 좋아요.”

명확한 주제는 일단 곡을 만든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맞춰왔던 호흡대로.

차근차근, 그리고 빠르게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 송하연과의 앨범 작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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