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58화 (158/170)

< 각성 정채희 >

[전세계 넷플릭스 1위!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가 돌풍을 일으키다!]

[정채희 “할리우드 생각 없다. 한국 컨텐츠로 다시 세계에 도전할 것.”]

[해외에서 쏟아지는 극찬! 정채희, 박송이 때문에 일본이 난리난 이유.]

북미 1위에 더불어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1위를 한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었고, 지상파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유튜버들이 이를 가만 두고 볼 리 만무.

해외의 유튜버들은 이 드라마를 소개하고, 리액션하고, 리뷰하고, 따라하는 영상들을 쏟아냈다.

국내의 유튜버들은 이 영상들과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을 가져와 ‘해외반응’으로 영상을 만들기도 했고.

국민들은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이 순환이 지겨울 따름이었으나.

그래도 역시 아는 맛이 가장 무서운 법이라고, 이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건 사실이랑 다르게 부풀린 국뽕이 아니라서 거부감이 없다ㅋㅋ

-할리우드 안 가는 거 찬성!! 걔네 인종차별 안 한다는 애들도 은근히 함. 괜히 가서 대우 못 받지 말고 국내에서 이런 양질의 작품들 계속 찍어줘. 이게 컨텐츠 소비하는 우리들한테도 훨씬 이득임!

-김구 선생이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ㅠㅠㅠ

운이 좀 따른다면 해외에서도 초대박이 터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다만, 이렇게까지 전세계 1위를 하며 신드롬이 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라고 신은 아니니까.’

어찌 됐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한 번 키운 인지도로 인해 다음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테니까.

또한, 심민정과 박송이가 함께 찍는 영화 ‘폭설’도 그렇다.

정채희와 더불어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의 주연을 맡았던 박송이가 출연하니, 이 작품 역시 해외에서 잘될 지도 모르지.

‘기대되네.’

내가 본 바, 심민정과 박송이의 연기 합은 굉장히 잘 맞았다.

심민정의 연기가 다른 이들과 물처럼 매끄럽게 섞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스며들 듯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이 때문에 심민정과는 웬만하면 다 잘 어울리고.

또한, 역시 이영진 감독 아니랄까 봐, 디렉팅이나 촬영 진행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이 작품도 운이 좀 받쳐주려나?’

난 작게 미소를 띠우며 손에 잡히는 대로 대본을 집어들었다.

영화 ‘폭설’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정채희랑 최락현의 대본을 찾는 데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터.

사락, 사락.

사무실 안에서 홀로 동떨어진 무인도처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한 장, 한 장, 빠르게 대본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져, 이어폰을 빼고 돌아봤다.

“음?”

최팀장님과 정채희.

그들이 나란히 서서, 의자에 앉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소회의실로 갈까?”

최팀장님의 말에 우린 소회의실에 들어갔고, 최팀장님은 책상 위에 시나리오 두 개를 턱, 턱, 올려놨다.

“이건···?”

“내가 고른 시나리오야. 할리우드 작품들.”

“···?”

다크서클이 굉장히 진하게 올라온 눈두덩이.

그러나 눈빛만큼은 번뜩이고 있었다.

난 시나리오를 슬쩍 내려다보곤 채희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 할리우드 안 갈 거라면서. 이 작품들이 갑자기 하고 싶어진 거야?”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직 안 읽어봤는데 최팀장님이 추천해주셨어요. 괜찮은 작품이래요. 조연이긴 해도 비중도 크다 그러고. 생각해보니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 지 모르겠더라고요.”

난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할리우드 진출은 양날의 검이다.

손아귀에 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아니 무딘 칼이라도 갖고 있다면 양날의 검을 택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 상황은 그렇지 않다.

굳이 저 양날의 검을 갖지 않아도, 우리 손에는 이미 빛나는 보검이 들려 있는 상태.

“쓰읍···.”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팀장님이 입을 열어 말했다.

“하나는 액션이고 하나는 스릴러야. 지금 채희 드라마도 그렇고 한국 컨텐츠가 세계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긴 한데, 이건 운이 좋아서 이만큼 잘된 거지. 보통은 할리우드 작품이 훨씬 우세인 것도 맞잖아. 별거 아닌 작품에 별거 아닌 역할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해도, 이것들은 그렇지 않아. 그리고 할리우드 진출이 리스크가 있어도 그만큼 매력적이니까. 채희 인지도랑 인기 높이기에도 좋고.”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다만, 이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다.

난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물었다.

“그동안 이거 고르고 계셨던 거예요?”

“···사실 채희가 할리우드에 갈 마음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액션을 안 하려고 한다는 것도 몰랐어. 근데 얘가 갑자기 와서 그러더라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할리우드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대.”

애초에 할리우드에 가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우리끼리만 했으니 그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건 내 잘못이지.

그리고 뭐, 채희의 생각이 바뀐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할리우드는 모든 배우들의 꿈이나 다름없으니까.

아티스트의 의견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무작정 그녀의 의견을 뭉갤 수 없었다.

“채희야, 근데 너 영어는?”

“배울 거예요! 열심히!”

의지가 대단한가 보다.

채희는 주먹을 불끈 쥐며 눈빛을 빛냈다.

그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뜻이 그렇다면 거기에 따라주는 게 좋겠지.

다만, 이들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었다.

“만약 이 작품들로 성공한다고 해도, 채희는 할리우드에서 주연을 하기는 힘들 거예요. 동양인을 주인공으로 쓰려는 시나리오는 없을 테니까요. 특히나 좋은 작품엔 더더욱이요. 차라리 한국에서 작업하는 것만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사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성공만 한다면 진짜 더할 나위가 없을 만큼 좋긴 한데.

‘그것도 입장 차이가 있지.’

채희는 할리우드에 가지 않는 게 결과적으로 더 좋을 거다.

그녀는 이미 세계적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니까.

거기선 동양인을 주연으로 쓸 작품이 아예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할리우드 행은 오히려 그녀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 될 수가 있다는 거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조연보다 북미에서의 인지도는 떨어질지언정, 북미 기준이 아닌 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지금 그녀의 위치가 할리우드 조연보다 더 높고, 더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것도 그런데, 계속 매달리는 게 아니라 한두 작품 정도만 참여하는 건 효율적이고 괜찮은 선택 아니야? 그래도 할리우드는 여전히 상징적이잖아. 혹시 또 알아? 채희를 주연으로 쓰려는 작품들이 나올 지.”

최팀장님의 말에 나는 채희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도 이 말에 동의하는 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면 됐지.’

많은 이들에게 할리우드가 상징적인 것처럼, 그녀에게 또한 할리우드가 배우로서의 목표인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나.

내 생각을 들이밀어, 그녀의 욕심을 꺾어버리는 건 죽어도 싫었다.

또한, 정말 최팀장님 말대로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또 모르는 거니까.

“그럼 일단 읽어봐도 되죠?”

“읽으라고 가져온 거니까, 편하게 읽어봐.”

허나, 아직은 시나리오를 보기 전.

만약 이 작품이 별로고 캐릭터도 별로라면, 이건 더 이상 고려할 가치가 없는 선택지였다.

‘그땐 결사반대해야지.’

최팀장님과 채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난 담담하게 시나리오의 첫 장을 펼쳤다.

***

-음···. 둘 다 대박작은 아니더라도 이쪽 시장성을 감안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채희가 오디션 볼 캐릭터도 괜찮고.

뭔가 엄청 좋은 반응은 아니었으나, 어쨌거나 그가 할리우드 행에 손을 들어줬다.

이에, 채희는 최팀장님과 함께 그 자리에서 환호를 내질렀다.

다만, 아직 완전히 끝이 난 건 아니다.

이제 영어 연습도 하고 오디션도 준비해야 한다.

할리우드 시스템은 한국과는 다르게, 오디션을 보는 게 보편적이니까.

그래도 채희는 자신 있었다.

영어만 된다면 그게 무슨 역할이든 누구보다도 더 잘 소화시킬 수 있었다.

“선배님!”

-어, 또 왜.

채희는 이 기쁜 소식을 곧장 박송이에게 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너 바보냐?

“네? 저 바보 아닌데요?”

-할리우드 가는 건 안 말려. 나도 충분히 이해하니까. 근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미 끝난 사람 때문에 그걸 결정해?

“영어 때문에 하기 싫어했던 거지, 재밌을 것 같기도 해서 그랬어요. 그리고 이미 끝난 거 아니에요. 할리우드 가면 거기서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박실장님이 계속 미국에 있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데? 유현지랑 송하연이 앨범 내겠다고 하면? 그쪽은 박실장님 도움이 꼭 필요한데 너는 그게 아니잖아.

“···!”

채희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저, 저한테도 꼭 필요해요!”

-그건 네 바람이고. 네 옆엔 팀장님이나 다른 매니저만 있을 수도 있다니까?

채희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복잡하게 꼬여갔다.

***

퇴근하고 돌아온 집.

난 방 안에서 최팀장님이 건넸던 두 개의 시나리오를 다시 번갈아 바라봤다.

오디션은 둘 다 준비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다.

그렇긴 한데.

역시 이대로 진행하기엔 조금 마음에 걸렸다.

시장이 훨씬 크다는 이유와, 할리우드에 대해 채희가 꿈을 내비쳤기 때문에 이 작품들에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퀄리티만 보자면 사실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채희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에 들어갈 수 있는데.’

물론 그 작품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뭐 어쩌겠어. 하고 싶다는데.”

그녀의 실력과 재능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최팀장님의 말대로 한두 작품에 참여하는 건 그렇게 나쁜 선택지가 아니긴 했다.

상징적이기도 하니, 그녀의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할 테니까.

‘효율이 나쁘지 않긴 하지.’

난 쩝, 입맛을 다시곤 시나리오를 펼쳤다.

이미 한 번 본 걸로 어느 정도 파악은 했지만 좀 더 자세히 분석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때.

채희에게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채희야.”

-···저, 실장님.

심심해서 전화했나 싶었는데,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뚝뚝 끊어지듯 힘이 없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뇨.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라 오빠는 할리우드 진출 어떻게 생각하시나 해서요.

“음.”

난 작게 침음을 흘리며 말을 골랐는데, 그녀의 말이 나오는 게 좀 더 빨랐다.

-막상 하려니까 걱정돼서요. 새로운 환경에서 울렁증이 다시 도질 수도 있고.

“아.”

그걸 깜빡했다.

울렁증. 그것 때문에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미국은 완전히 다른 환경과 시스템.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안 될 건 아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오빠도 거기서 계속 저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죠···?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계속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거겠지.

난 이제 그녀만 관리하는 게 아니다.

심민정이나 최락현이라면 모를까, 유현지나 송하연에게는 내가 바로 옆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요즘은 화상통화로 해외에서도 같이 작업하곤 한다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

내가 진짜 전문 작곡가가 아니다 보니, 의사소통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효율이 많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미안해, 채희야. 한국이랑 미국 왔다갔다 할 수는 있는데, 쭉 같이 있는 건 힘들 것 같아.”

혹시나 그녀의 울렁증이 다시 도지지 않을 수도 있고, 처음에만 위태로울 수도 있지만.

그건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태는 최악으로 번질 수도 있다.

미국행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바에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다시 그녀에게 말해보기로 했다.

“우리 할리우드 말고 한국에서 계속 작업할까? 이 작품들이 네 재능이나 실력을 살리기에 부족한 작품들이기도 하고, 우리가 지금 넷플릭스 1위 하고 있는 것처럼 국내 작품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할리우드도 상징적이지만 어쩌면 한국 작품으로 세계에서 이름 날리는 게 더 상징적일 수도 있어.”

-알겠어요. 그럼 할리우드 안 갈게요.

“괜찮겠어?”

-절 위해서 말씀하신 거잖아요. 괜찮아요. 제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

그녀의 실망스러운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목소리도 그녀답지 않게 조금 위축되어 있었다.

-죄송해요. 자꾸 왔다갔다해서.

“아냐. 괜찮아.”

우린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상심이 크겠지?”

할리우드를 꿈꾸는 건 배우로서 품을 수 있는 마땅한 욕심.

그러나,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내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욕심이었다.

내 몸이 두 개가 아니라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언제는 할리우드 가기 싫다더니···.”

그녀에게 울렁증이 있는 게 내 탓은 아니다만, 그래도 너무 마음이 쓰였다.

지금 우울해하고 있을 게 뻔하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나? 효율이 떨어져도 원거리에서 앨범 작업을 아예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

“아! 나 진짜 바보 같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정채희는 전화를 끊고 머리를 잔뜩 헝클었다.

사실 울렁증은 이제 걱정도 되지 않았다.

같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고픈 욕심은 딱히 없었다.

이번 작품처럼, 한국 작품으로도 충분히 승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애초에 할리우드 작품들보다 더 잘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또한 영어 공부가 너무 하기 싫기도 했고.

‘···이거 알면 진짜 정 떨어지겠네.’

그녀의 얼굴이 울상으로 물들었다.

“하아. 나 진짜 엄청 찌질하다···.”

박송이의 말이 맞았다.

뒤늦게 질척거리면 나만 꼴 사나워진다고 했던 말.

역시 선배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다행히 그가 진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게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될지도 모르지.

“짜증나.”

채희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자책했다.

자괴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런데.

점점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긴 하지만···.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추하고 찌질하며 꼴 사납다.

어쩌면 그에게 미움까지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차피 사람은 다 그런 거라고 배웠다.

노래 가사에서도,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결국 인간은 커다란 감정 앞에서 다 찌질해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채희는 엎어져 있던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세상 사람들 다 찌질하게 사랑한다 그러는데 나라고 그렇게 못할 게 뭐 있어.”

그녀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찌질하고 추잡스럽게 하면 안 된다는 법 있나? 결국 쟁취하면 되는 거 아냐.”

머릿속에서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긴 했으나, 그 힘은 한없이 미약하기만 했다.

“좋은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채희는 결심을 굳혔다.

이제부턴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겠다고.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

그녀의 머릿속에서 ‘할리우드’라는 네 글자는 이미 깨끗하게 사라진 뒤였다.

< 각성 정채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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