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57화 (157/170)

< 할리우드···. 괜찮을지도? >

“버라이어티요?”

HJ엔터의 괴물신인 중 한 명이자, 수많은 여성 팬들에게 야수 같은 섹시미로 인기몰이 중인 노력파 천재 장찬수.

그는 예능, 그것도 버라이어티에 나가라는 강팀장님의 말에 되물었다.

“그래. 네가 버라이어티는 한 번도 안 나가봤잖아. 그게 대중들한테 어필하기에 얼마나 좋은데. 인지도 팍팍 올라가면 당장 몸값만 해도 팍팍 올라가는 거야. 이번 미니앨범 발매랑 겹쳐서 아예 급을 올릴 수 있다니까?”

급이 높아진다라.

그렇다면 계속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저 ‘괴물신인’ 라인업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네.’

장찬수의 목표는 무척이나 높았다.

지금 아디다스 미국 본사의 요청으로 듀엣곡 발매를 준비하는 중인 유현지와 송하연.

그녀들은 국내에서 이미 최정상을 다투고 있었으며, 회사 내에서도 언터쳐블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장찬수 역시 그녀들과 같은 높이에 올라설 생각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득히 높은 목표임에 분명했지만, 그래도 장찬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목표를 높게 잡고 쟁취하며 성장해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했다.

‘아··· 한 명 더 있었지. 나 믿어줬던 사람.’

박한울.

눈에 띄지 않는 연습생이었던 자신을 모두가 주목하게끔 만들어주었던 사람.

솔로로 데뷔할 수 있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도와준 사람.

장찬수의 눈에 호승심이 일렁였다.

그는 자신을 도와줬으면서도,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으면서도, 자신을 팀 안에 넣길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급이 높아지고 높아져서, 저 멀리 그녀들이 있는 곳까지 닿게 된다면.

그 틀린 적 없던 절대적인 박한울의 안목에 조금은 흠집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게 올라왔다면서.

어쩌면 팀으로 끌고 오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

“좋아요. 할게요. 버라이어티든 뭐든 저한테 이로운 거라면 뭐든지 잡아주세요.”

장찬수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며칠 뒤, 그는 자신의 말을 땅을 치고 후회해야만 했다.

“애교 삼행시! 장찬수 씨, 할 수 있죠?”

“···네.”

선배들을 모두 다 시킨 다음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물으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또한, 이왕 하는 거 대충 해서도 안 됐다.

그렇게 한다면 인지도와 대중들의 사랑을 얻기는커녕,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울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찬수 씨?”

“멋있는 것만 했던 찬수 씨가 이런 걸 어디 가서 해봤겠냐고.”

“하하하! 찬수 씨,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말씀하세요. 저희 억지로 시키는 그런 사람들 아닙니다.”

마지막 국민 MC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장찬수.

그는 홀린 듯이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요.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말씀하세요. 크흑···! 힘들면··· 어쩔 수 없죠. 흐윽!”

“하, 할게요.”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출연진들.

심지어 피디와 작가들을 비롯해 감독님들마저 웃고 있었다.

완전 장난감이 된 모양새.

잔뜩 긴장하며 비장함까지 머금고 애교 삼행시를 준비하는 장찬수에게, 모두가 웃음을 입에 달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장찬수’로 운 띄워줄 테니까 귀엽게 하셔야 돼요? 장!”

“장··· 찬수가 좋다고 했자납! 근데 지금 나.”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열심히 했는데.

MC는 웃음을 꾹 참고 정색하며 말했다.

“자기야, 한 문장으로 끝나야지. 그렇게 하면 깔끔하지 못해요. 반칙이야.”

“아···. 그럼 다시 할까요?”

“아뇨. 큭큭. 그냥 하세요.”

그의 정신은 조금씩 혼미해져갔다.

“자, 바로 다음 갑니다. 찬!”

“찬 거얌?”

“앞에서 끊었다가 다시 하니까 느낌이 안 산다. 처음부터 다시 갈게요?”

“아···.”

지옥 같았지만 장찬수는 다시 혀를 꼬아가며 다시 삼행시를 시작했다.

“마지막입니다. 수!”

“수운 거짓말쟁이!”

“땡! 반칙. 자기야, 그건 ‘순 거짓말쟁이’지. ‘수운’ 이렇게 늘리면 안 돼요. 반칙이야. 자, 다른 단어로 다시 갈게요?”

“아아···!”

다른 출연진들은 다 봐주고 넘어갔으면서 자신에게만 유독 까다로운 국민 MC.

눈앞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출연진들이고 스탭들이고 모두 웃음이 빵빵 터지고 있었다.

장찬수는 이 순간 굳게 다짐했다.

다시는,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버라이어티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

-앜ㅋㅋㅋㅋㅋ진짜 찬수 왜케 귀엽냐고!!!!!!!

-ㅋㅋㅋㅋ계속 소리 지르면서 보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음ㅋㅋㅋ 근데 등짝 맞으면서도 계속 소리 지르니까 미친년 보듯이 보시더랔ㅋㅋㅋㅋ

-장찬수··· 이제 하다하다 귀엽기까지 해? 당신이란 남자 대체 얼마나 더 매력적일 거냐고!

장찬수의 예능 나들이는 대성공이었다.

정채희가 처음 예능에 나갔을 때처럼,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국민 MC가 잘 살린 덕이었으나, TV를 보는 대중들은 웃기면 그만이었다.

-정채희 대장 캐릭터 빙의된 것도 개웃겼는뎈ㅋㅋㅋ HJ는 다 이러나?

“그건 그냥 그날따라 걔가 너무 예민했던 거고.”

난 댓글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그녀의 이미지와 대중 호감도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좋았고, 드라마가 엄청 성공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안 좋은 이미지를 얻을 뻔했다고.

아무튼 장찬수의 예능은 미니앨범 발매 후 하루 뒤에 방송되었고.

덕분에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날아올랐다.

1. The King – 장찬수

2. Officially I Love U – 피에스타

1위를 하고 있던 피에스타를 제치고 장찬수의 미니앨범 타이틀곡이 1위로 올라갔다.

이는 장찬수도 대단한 거지만 피에스타도 아주 대단한 거였다.

피에스타의 예정됐던 활동 막바지에 다다랐는데도 이 순위를 지키고 있었던 거니까.

반면, 장찬수의 미니앨범 발매 5일 전에 컴백한 홈엔터의 신인 걸그룹, ‘웨타’의 성적은 3위까지도 못 올라왔다.

5위.

사실 그녀들의 성적 역시 절대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좋은 편이지.

다만, 이번에 떡상한 피에스타와 장찬수에 비해 성적이 낮을 뿐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형님?”

핸드폰을 보던 시선을 들어올리니.

내 앞에 서서 히죽 웃고 있는 최락현이 보였다.

“형님 아니고 실장이요.”

“이러면 더 가깝게 느껴지고 좋잖아요. 담당 연예인이랑 매니저 사인데 빨리 가까워지면 좋죠. 하하. 형님도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영화 <양녕을 탐한 무녀>의 마지막 촬영날.

최락현 또한 내 담당이었기에 오늘 현장에 온 것이다.

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는데.

어느새 나타난 성호 삼촌이 끌끌 웃으며 말했다.

“한울아, 저놈 저거 포기하면 편해. 뺀질뺀질한 게 아주 천성이야.”

“선배님 또 말씀 이상하게 하신다. 요즘은 이런 걸 ‘인싸’라고 하는 거예요. 저만큼 성실하고 열심히 임한 사람이 누가 있다고 뺀질댄대요.”

난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럼 정말 편하게 락현이라고 불러도 되지?”

“너무 좋죠, 형님!”

둘 다 여기 있겠다, 촬영 재개까지 시간도 좀 있겠다, 난 그들 모두에게 물었다.

이제 오늘로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나니까.

“넌 차기작으로 하고 싶은 거 있어? 크게는 영화나 드라마 중에, 작게는 장르나 캐릭터까지.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내 맘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 세세하게 맞춰줄 순 없지만 그래도 원하는 게 뭔 지는 알고 싶어서. 삼촌도요. 차기작으로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내 말에 성호 삼촌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난 아직 별로 생각 없어. 이놈만 좀 어떻게 해봐라. 힘이 아주 넘쳐서 탈이다. 나이가 깡패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퍽 만족스러운 듯이 보였다.

신인 배우가 폭발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게 흐뭇한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최락현을 보자, 그는 방금 전까지 실실 웃던 모습은 어디 가고 한없이 진중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범죄, 멜로, 스릴러, 공포 등등 다 하고 싶죠. 하고 싶은 역할도 많아요. 형사, 깡패, 변호사, 재벌, 대학생 뭐 있는 건 다 하고 싶어요. 직업이 같아도 캐릭터가 다 제각각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거지? 그중에서 제일 하고 싶은 건 없어?”

최락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금은 그냥 좋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지금 이 영화처럼요.”

결론적으로는 아무거나 하고 싶다는 거였지만, 그 뉘앙스가 조금은 달랐다.

가볍지 않은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말하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좋은 배우, 좋은 스탭들, 좋은 대본까지··· 많은 면에서 배울 수 있고 넘치는 열정을 불사지를 수 있는 작품을 말하는 것일 터.

물론 배우들이나 스탭들까지 내 맘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

몇몇 특별한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특별한 경우이니 장담을 할 순 없지.

다만, 한 가지.

좋은 대본만큼은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고를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제한을 둘 게 없으면 내게는 고르기 더 쉬울 터.

난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희의 차기작과 최락현의 차기작까지.

이제 다시 대본과 시나리오에 파묻힐 시간이었다.

***

아시아 전체를 비롯해, 유럽, 그리고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북미에서까지.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는 커다란 화제를 등에 업고 드디어 드라마 부문 전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인터넷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 TV뉴스에까지 이 소식이 보도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가히 신드롬이라고 칭할 정도로 거대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정채희는 소속사 휴게실에서 기자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채희 씨.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죠?”

소속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자다 보니, 정채희도 이 기자와 안면이 있었다.

채희는 옅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마주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에 봬요, 기자님. 기사 잘 써주세요.”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일단 전세계 1위 하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인터뷰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드라마의 내용은 어떤지, 액션 씬이 많은데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는지, 박송이와 또 호흡을 맞췄는데 그녀와 연기 스타일이 잘 맞는지.

기자는 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채희는 이에 하나하나 성의 있게 답변했다.

“전세계 1위를 했는데 이렇게까지 성적이 잘 나올 줄 예상하셨나요?”

“전혀 예상 못했어요. 1위 했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채희는 조신하게 웃는 모습으로 1위를 한 소감을 말했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박한울!’

심민정과 박송이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이영진 감독의 영화, <폭설>.

박한울은 촬영장에 심민정과 함께 가 있었고, 아까부터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해정 씨가 아니라 민정 선배인 거 아니야!?’

아무리 오늘이 첫 촬영일이어도 그렇지, 몇 시간 동안 씹는 건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심민정이 박한울의 핸드폰을 검사해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거나···.

이렇듯 온갖 의심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었지만, 기자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채희 씨, 이번에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혹시 할리우드에 진출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선 이미 박한울에게 말한 바 있었다.

영어를 잘하면 모를까, 이제 와서 부족한 영어 공부를 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할리우드에 진출할 생각 또한 전혀 없었다.

“아직까지는 할리우드에 진출할 생각이 없어요. 전 한국 컨텐츠에도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저희 작품 전에도 많은 작품들이 세계에서 크게 사랑받았었잖아요? 전 이번 작품처럼 다음 작품도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멋진 생각이시네요. 그렇죠. 채희 씨가 이번에 증명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한국 컨텐츠가 세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자는 잠시 녹음을 일시정지한 뒤, 이 부분은 오프더레코드라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 가면 고생밖에 더 하겠습니까? 음식도 안 맞고 주거 환경도 안 맞고, 박한울 실장님이랑 같이 가서 고생고생하면서 적응 안 되는 곳에서 힘겹게 찍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찍는 게 훨씬 낫죠. 거긴 또 콧대가 높고 인종차별이 있기도 해서 대중들도 할리우드 진출을 안 반기는 추세잖아요.”

“···!”

정채희의 숨이 딱 멈췄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방금 전 기자의 말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주거 환경도 안 맞고, 박한울 실장님이랑 같이 가서 고생고생하면서.

-박한울 실장님이랑 같이 가서 고생고생하면서.

-박한울 실장님이랑 같이 가서.

‘···오빠랑 같이?’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해외 투어가 처음이라면서 한동안 자신에게 소홀하고 유현지의 해외 투어를 따라다니지 않았나.

할리우드 진출 또한 같은 맥락일 거다.

거기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는지,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등등.

할리우드 작품 참여가 결정이 되어 같이 미국에 가게 된다면, 박한울은 항상 자신의 옆에 붙어 있으며 한 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리라.

‘같이 가면 아무 방해도 없이 한동안 쭉 같이 있을 수 있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그리고 같은 원리로,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지는 법.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꾸며낸 미소를 짓고 있던 정채희는.

씨익-

비로소 진심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울 수 있었다.

‘할리우드···. 괜찮을지도?’

< 할리우드···. 괜찮을지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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