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55화 (155/170)

< 저 그린 라이트 같아요! >

일에 치이며 사느라 아이돌에 별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직장인.

물론 일에 치이고 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냥 예전부터 아이돌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 스타일도 없고.’

아이돌들은 죄다 애 같은 느낌이라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당연히 남자 아이돌은 애초에 고려 대상도 되지 못했지.

일에 치이고 퇴근해 온몸이 천근만근인 그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인터넷만 뒤적거렸다.

별로 깊게 생각하고 싶은 것도 없고, 피로도가 쌓이는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살펴보고 싶을 뿐.

그러니, 이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강해정의 티저 사진이 첨부된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게 된 것은 말이다.

게시글의 제목은 분명 자동차에 관한 것이었고, 내용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게시글에 첨부된 짤이 문제였다.

작성자는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아무 의미 없이 사진을 첨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짤에 시선이 완전히 사로잡혔다.

무대 위에 있는 것을 보니 아이돌 같긴 한데, 자신이 알고 있는 아이돌은 이렇지 않았다.

“얘 누구야.”

그는 곧장 댓글을 적었다.

-짤 누구냐?

답은 곧바로 달렸다. 신인 걸그룹 피에스타의 멤버, 강해정이라고.

흐리멍텅했던 눈빛은 총명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더 볼 것도 없이 유튜브에 들어가 강해정을 검색했다.

직캠이 뭐가 이렇게 많은지.

그러나 피로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직캠의 썸네일마다 조금씩 다른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스타일을 200% 소화하고 있는 그녀의 비주얼이.

“···어떻게 꾸며도 예쁘긴 하겠다.”

그렇게 하나하나 찾아서 보기 시작한 그는 어느새 귀에 음악이 맴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곡도 좋네.”

처음은 직캠이었으나, 다음은 뮤직 비디오였다.

그 다음은 라이브 방송이나 예능에서 따온 클립들.

그는 이렇게 서서히 피에스타에 빠져들었다.

물론 최애는 강해정이었다.

그건 정말 말이 되지 않는 비주얼이었으니까.

“포토 티저 미쳤다, 진짜.”

이는, 피에스타의 컴백까지 딱 하루가 남았을 때였다.

***

피에스타의 신곡이 음원차트에 11위로 진입한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야말로 떡상!

그녀들이 떡상한 원인은 여럿이 있었다.

데뷔곡 활동을 열심히 한 보상으로 팬덤이 커졌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단순한 이유도 있었으며.

그동안 여러번 화제가 되었던 ‘괴물신인’의 라인업 중에서 대중들이 가장 친숙하게 느껴지는 게 피에스타였기 때문이다.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이 훨씬 더 대중적인 것은 이 바닥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기도 하고, 그녀들은 그 유명한 박한울이 개입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또한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송하니 또한 있었다.

이미 대중들의 스타인 송하연의 사촌동생인 송하니가.

‘이게 전부 더해진 거였구나.’

거기다 결정적으로.

-ㅅㅂ??? 강해정 비주얼 실화냐? 보정 아님? CG거나.

-해정이 때문에 입덕ㅋ

-와···. 아니···. 강해정 뭐지?ㅋㅋㅋㅋ 대박이네.

-판사님.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강해정의 외모까지.

“크흠.”

강해정의 티저 사진을 보고 있자면 괜히 혼자 멋쩍어진달까?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주위를 살펴보게 된다.

아무튼, 그녀들은 지금 데뷔 활동 때보다 더욱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진입 11위, 그리고 지금은 3위까지 올라온 그녀들의 후속곡.

진입 순위가 높은 이유는 곡이 좋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진입 이후에 순위가 올라간 건 곡의 영향이 컸으리라.

이 와중에 장찬수 또한 미니 앨범을 착착 준비하고 있다 하니, 아마 그녀들의 활동의 막바지나, 아니면 활동이 끝난 직후에 컴백할 것 같았다.

‘우리 회사가 가요계 씹어먹겠네.’

난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국내 가요계를 씹어먹으려는 그들도 있는 반면, 이미 국내 시장을 잘근잘근 다 씹어먹고 더 큰 세계로 비상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송하연과 유현지, 그녀들의 듀엣곡.

이제 그 곡이 완성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잘하면 오늘 안에 완성될 수도 있겠어.’

난 입꼬리를 귀밑까지 끌어 올렸다.

지금까지 정확했던 내 안목이 말하길, 이 곡은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가 없는 곡이었으니까.

***

송하연과 유현지가 함께 있는 작업실에서 난 눈을 감고, 녹음까지 모두 마친 음악을 감상했다.

축제, 조화, 그리고 보슬비가 내리는 거리에 모두가 맘껏 웃으며 자유롭게 뛰어노는 풍경까지.

내 머릿속에선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둘의 목소리가 한 곡에서 일으키는 카타르시스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음악이 끝나고 눈을 뜨자.

나처럼 밝은 표정을 한 그녀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럼 이제 이걸로 완성인 거죠?”

하연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대로 보낼 거예요. 믹싱 끝나고 보냈다가 수정 요구라도 들어오면 또 피곤해질 테니까요.”

믹싱과 마스터링을 제외하고 이 곡에 손을 댈 부분은 없다.

아마 광고주 또한 이 음악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할 터.

허나, 만약이란 게 있으니 믹싱 전인 지금 이대로 보내기로 했다.

“수고했어요, 하연 씨. 현지야, 너도 수고했어.”

그녀들을 피하지 않겠다며 새롭게 마음을 먹은 뒤라서, 우리는 다시 마음 편하게 미소를 나눌 수 있게 됐으나.

아직까지 난 마음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각자 따로 만나며 일상을 공유했다면 모를까, 함께 있으며 일을 하니 저울이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제 들어갈까요? 데려다줄게요.”

난 송하연과 현지를 태우고 차를 운전했다.

송하연은 조수석에, 그리고 현지는 뒷자리에 앉았다.

작업실에서 하연의 집까지는 아주 가까웠다.

송하연의 작업실에서 이동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의 집과 가까울 수밖에.

“연락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현지 씨도 잘 들어가요.”

인사를 하며 내린 그녀가 조수석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여기 올 때까지 잠자코 조용히 있던 현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오빠.”

“어, 현지야.”

“좋아해요.”

“···.”

“혹시 손 잡아봐도 돼요?”

“···어?”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스러워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오른쪽 손등 위로 그녀의 작은 손을 살포시 포갰다.

“조금만 이대로 있어도 돼요?”

차마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를 보지 못할 것 같아서, 룸 미러를 힐끗 쳐다봤는데.

그녀는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시드니에서부터, 내가 알던 현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들이 보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참 어지간히 단순한 놈인가 보다.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보면.

***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시드니에서의 고백 장면과, 차에서 다시 고백하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손등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때 차 안을 감돌았던 공기까지도.

“···내가 적극적인 여자를 좋아했었나?”

“네? 뭐요?”

난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걸 들었나 보다.

채희가 눈썹을 한없이 찌푸리며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저 찌를 듯한 눈빛에서는 의심이 잔뜩 꽃피우고 있는 듯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즌2의 본편의 공개를 앞두고 채희의 집에 와 있었는데.

다른 생각으로 정신줄을 놓고 있었으니, 다 내 잘못이다.

“적극적인 여자 좋아한다고요? 갑자기 그건 왜 말해요? 혹시 다른 여자 생긴 거예요!?”

“질문이 좀 이상하다? 다른 여자 생겼냐니. 누가 보면 내가 여자친구 놔두고 바람이라도 피는 줄 알겠어.”

“뭐야! 진짜 생긴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확 커졌다.

채희는 손을 뻗어 내 양 어깨를 움켜잡고, 정면에서 커다란 눈으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없어, 그런 거.”

“그럼 적극적인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왜··· 말하신 건데요.”

어깨를 움켜쥔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고.

그녀의 목소리는 끝으로 향할수록 조금씩 잦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말했어. 어쩌다 보니까.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런데 그녀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왠지 생각이 다른 쪽으로 뻗어나갔다.

내가 놓인 상황이 이래서 뇌가 아예 로맨스에 절여졌나?

송하연과 현지까지 이러니, 어쩌면 눈앞에 있는 채희 또한 내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정도면 도끼병 말기 환자네.’

내가 뭐라고.

난 고개를 휙휙 저으며 미친놈 같은 상상을 털어냈다.

***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의 시즌2가 드디어 넷플릭스에 풀렸다.

시즌1을 모두 본 뒤로,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제임스는 곧장 시청에 들어갔다.

아니, 시청하려 했다.

“헤이! 제임스! 나 왔어!”

친구가 갑자기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제임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친구에게 말했다.

“빌, 미안한데 지금은 한가하게 놀 시간 없어. 나 바쁘다고.”

빌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넷플릭스? 동양인이네? 한국 건가 봐?”

‘동양의 컨텐츠’라고 하면 당연히 한국.

이미 세계적으로 메이저한 취향 중에 하나였기에 빌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맥주나 마시면서 같이 볼까?”

“아니. 넌 아직 시즌1도 안 봤잖아. 이건 시즌2라고.”

“괜찮아. 다른 드라마들도 그렇게 몇 번 봤어.”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야. 이대로 보여주지? 그럼 넌 분명히 나중에 날 원망하게 돼 있어. 왜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냐고 난리 칠 게 뻔해.”

빌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고 물었다.

“제목이 뭐랬지?”

“지금 시즌1 보려고?”

“아니, 일단 유튜브로 볼 만한 지 확인해보게.”

제임스는 조소를 흘리며 제목을 알려줬고, 빌은 바로 유튜브에 드라마를 검색했다.

제목을 검색하니 가장 최상단에 나오는 건 시즌2의 예고편.

빌은 별 생각 없이 그 예고편을 틀었다.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2분 20초의 예고편.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예고편을 모두 본 빌은 표정이 싹 바뀔 수밖에 없었다.

시즌1을 보지 않았음에도, 이 드라마가 재밌을 거라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으며.

여자 주인공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일드한 섹시미. 이건 단순히 멋있고 예쁘고 연기 잘한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온정신을 집중하게 하고, 확 몰입시켜버리는 ‘대장’역의 그녀.

“제임스! 이 여자 대체 뭐야! 누군데!”

제임스는 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컴퓨터로 아예 영상을 틀지조차 않고 있었다.

“여자는 누굴 말하는 거야? 대장?”

“당연하지!”

“대장은··· 대장이지. 앞으로 나한테 대장은 그녀뿐이야. 그녀는 아마 역할 때문이 아니라, 진짜 성격도 엄청 과격하고 멋있고 카리스마 넘칠 거야. 대장은 그런 사람이거든. 내가 장담해.”

제임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친구의 격한 반응이 기꺼워, 당장의 즐거움을 조금 미루기로 결정했다.

“시즌1부터 같이 볼까?”

“넌 이미 봤잖아.”

“난 이미 3번을 봤어. 4번 봐도 상관없지.”

제임스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빌, 넌 오늘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거야. 난 아직도 이게 대체 왜 세계 1위를 하지 못한 건지 모르겠거든.”

***

얼마간 반응들을 함께 모니터링하다가 집으로 돌아간 박한울.

채희는 그가 돌아가자마자 허겁지겁 박송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어, 우리 드라마 나온 거 나도 알아. 난 영화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끊는다?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 저 그린 라이트 같아요!”

-···뭔데?

채희는 상기된 얼굴로 아까의 일을 주욱 늘어놓았다.

그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린 말, 그리고 여자가 생긴 게 아니라고 대답했던 것까지.

“그럼 저잖아요! 제가 집으로 오라고 해서 그런 말 한 거 아닐까요?”

박송이의 입에서 긍정의 말이 나오길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핸드폰 너머로는 긍정이 아닌,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박송이는 낮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너 아무래도 끝난 것 같다.”

“네?”

-그린 라이트는 개뿔. 그거 레드 라이트야, 이 둔한 곰탱아. 다른 여자 생긴 거라고. 그 여자가 적극적인 거겠지. 너 옆에서 그 여자 생각하면서 넋 놓은 거 보면 이미 늦었어. 그냥 깔끔하게 포기해. 다 끝났는데 뒤늦게 질척거리면 너만 꼴 사나워져.

“···헐. 그, 그럼 어디까지···.”

-너도 성인이면서 왜 그래? 갈 데까지 갔겠지. 그러게 내가 하란 대로만 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왜 그런 간단한 걸 못 해가지고···. 쯧.

채희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핸드폰을 든 팔을 축 늘어뜨렸다.

“말도 안 돼···. 정말로?”

< 저 그린 라이트 같아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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