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49화 (149/170)

< 같이 드라마 볼래요? >

“이래야 현지지.”

난 현지가 만들어낸 광경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첫 번째 곡에 이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곡까지.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이미 처음의 무대로 관객들을 완전히 장악했으니까.

관객들의 마음을 한 번 빼앗은 이상, 그들을 계속해서 만족시키는 건 현지에게 문제도 아니었다.

인터넷에서의 반응도 현장만큼이나 빨랐다.

SNS와 커뮤니티로 엄청난 호평이 순식간에 퍼져나갔기 때문인지, 댓글창은 버벅거리며 렉이 걸릴 지경.

그렇게 무대 위에서 현지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날 때쯤엔.

현지를 모르던, 그리고 현지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던 관객들은 이미 국내의 여느 열성팬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되었다.

“우와아아!”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현지가 무대에서 내려왔고.

그녀는 상쾌함과 환희가 듬뿍 담긴 표정을 한 채로 내 앞에 마주섰다.

“오빠가 기대한다고 하셔서, 저 열심히 했어요.”

요즘 들어 더욱 기운이 난다고 했던가?

춤추고 노래하느라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 땀이 흥건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아직까지도 에너지가 터질듯이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관객들의 함성과, 주변의 뜨거운 공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마주 미소 지었다.

그리고 땀이 많이 난 그녀의 얼굴을,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저 잘했죠?”

“응. 오늘도 너무 잘했어.”

“그럼 오늘도 공원 같이 가주실래요?”

“그래, 그러자.”

언제나와 같이 훈훈한 백스테이지.

허나, 인터넷에서의 파급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

-이건 전설이야. 그룹도 아니고 여성 솔로가 이렇게 파워풀한 무대를 만들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너희들 그거 알아? 이따 송하연이 서브 스테이지에 나와. 한 번 보라고. 그쪽도 엄청난 실력자니까.

-송하연? 걔가 누구야? 잘 모르겠는데?

-너희들 방금 전까지 유현지를 몰랐으면서, 송하연도 모른다고 안 보려는 거 아니지? 송하연은 한국에서 유현지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어.

└그건 아니야, 친구. 유현지도 만만치 않거든. 둘 중 누가 더 인기 많은 지 순위를 매기는 건 그녀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둘 다 너무 천재적인 가수거든! :)

유현지로 인해 레전드를 찍어버린 무대.

유현지의 무대가 끝나자, 그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송하연에게로 흘러갔다.

무대가 생중계되고 있었고, SNS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옮겨지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리하여, 마침내 송하연의 차례가 되기 직전에.

메인 스테이지에서보다 서브 스테이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버렸다.

현장과 온라인, 양쪽에서 모두.

‘이상적이야.’

그야말로 이상적인 낙수효과였다.

그러나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송하연의 무대가 별로라면, 급하게 불붙은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급속도로 식어버릴 수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송하연은 물론 유현지 역시 아주 잠깐 반짝한 결과밖에 나오지 못할 테고, 이 화제는 더 크고 더 길게 이어나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무대가 별로일 경우에 한해서일 뿐.

만약 무대가 사람들의 기대를 채워준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날아오르는 거지.’

더군다나 우리에겐 큰 아군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애리조나 뮤직 페스티벌의 주최측.

“한울아. 이쪽은 화제에 목말라서 우리보다 더 열심히 노 저으려고 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하연이 좀 북돋아줘. 하연이도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현지처럼 평소보다 더 힘 낼 수 있게끔. 무슨 말인지 알겠지?”

최팀장님이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이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다.

최팀장님도, 나도, 주최측도, 그리고 송하연도.

모두 이 무대가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네.”

난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복도에서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현지는 무대가 끝난 뒤 로드 매니저와 먼저 들어갔기 때문에 여기에 없었고, 송하연과 스탭들만이 대기실을 채우고 있었다.

“실장님. 팀장님께서 왜 데리고 나가신 거예요?”

하연은 최팀장의 행동이 눈에 다 보인다는 것처럼,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만큼 예측도 쉽겠지.

그래서 난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돌리는 대신 그냥 대놓고 대답했다.

“저 보고 하연 씨 좀 북돋아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연 씨가 무대에서 평소보다 더 힘 낼 수 있게요.”

“그래요? 그럼, 부탁드려요. 좀 더 의욕 나고 용기 날 수 있게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는 그녀.

난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글쎄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

“빨리 해주세요. 네? 안 해주시면 저 힘 안 날 것 같단 말이에요.”

우리는 웃음기 띤 얼굴로 대화했고.

난 머릿속을 벼락같이 스친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음···. 혹시 요즘 드라마 보세요?”

“드라마요? 심민정 씨나 정채희 씨 나온 거요?”

“아뇨. 다른 드라마들이요.”

“잘 안 봤어요. 바빴어서.”

난 그녀의 답을 듣고는,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게 그녀를 북돋아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그러고 싶을 뿐이다.

“그럼 귀국해서 같이 드라마 볼래요? 저도 보고 싶었는데 바빠서 못 본 게 많이 있어서요. 이왕 보는 거 하연 씨랑 같이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얼굴에 띠워졌던 웃음기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자그맣게 물었다.

“···둘이서요?”

“네.”

“얼마···나요?”

‘어떤’ 드라마인지 묻지 않고, ‘얼마나’ 볼 지를 묻는 그녀.

난 이에 기꺼이 답했다. 왠지 이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1회부터 끝까지요.”

그녀의 눈꺼풀이 움찔 떨렸다.

그리고 대답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슨 드라마를 볼 지는 나도 생각해놓은 게 없어서, 우리가 몇 부작을 함께 보게 될 지 모르지만.

미니시리즈는 후보에서 아예 배제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건 너무 빨리 끝날 테니까.

‘대하사극을 볼까? 아니면 일일드라마?’

50부작 이상인 것으로 보면 좀 그러려나?

***

이윽고 무대 위에 오른 송하연.

한국에서 이 페스티벌을 생중계로 보고 있던 김찬우 기자는 실소를 내뱉었다.

“HJ엔터, 여기서 더 떡상하겠네.”

옆에 있던 유기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 말을 받았다.

“에이. 그래도 고작 이런 규모의 페스티벌에서 좋은 모습 보여줬다고 그 콧대 높은 미국에서 알아주겠어요? 한국에서 국뽕 영상이나 좀 나오겠죠. 우리도 기사로 써서 국뽕에 한 몫 하겠고.”

“유기자. 너도 연예부 기잔데 감이 안 와?”

“왜요. 드라마틱하게 미국에서 빌보드 차트라도 들까 봐요? 그건 국뽕을 원하는 사람들 희망사항이죠.”

유기자는 시니컬하게 코웃음을 쳤다.

국뽕? 삶이 퍽퍽해져서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백 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도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의 엄청난 팬이니까.

요즘 무분별한 국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지만, 자부심을 느끼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유기자. 국뽕은 세계적인 트렌드야. 자연스러운 거라고. 베트남이나 태국, 중국, 일본 다 똑같잖아. 특히 우리는 그런 감성을 더 잘 이해해야 돼. 그게 우리를 먹고 살리는 거라니까? 아무튼, 우리가 이렇게 국뽕을 원하는 것처럼, 미국 사람들은 좀 다른 거에 목말라 하는 게 있어.”

“···영웅이요?”

“같은 맥락이긴 하지. 미국인들은 드라마틱한 화제에 아주 환장한다고. 그게 영웅이든, 아니면 뮤지션이든. 새롭게 떠오르는 다크호스들을 엄청 신선하게 여기고, 그걸 소비하는 걸 트렌디하다고 생각한다니까? 빌보드 차트 추이 보면 알지? 화제 한 번 제대로 타면 신인들이 더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거.”

영화도 그렇고, 뮤직 비디오도 그렇고, 곡이나 가수도 그렇고.

예시는 많다.

물론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라서 예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유기자는 김찬우 기자에게 물었다.

“으음. 그래도 무대 한 번 잘한 걸로는 화제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아요? 선배님 말이 그럴싸하긴 해도, 바로 뜨기에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그때, 화면에는 송하연의 미니앨범 타이틀 곡, ‘100Cm’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날 문득 계산해보니 우리 사이 거리는 이 정도. 한 100센치.

-어느새 이렇게 가까이 왔지? 난 모르겠어. 내가 왔는지 네가 왔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노래는 저도 되게 좋아하긴 해요. 엄청 잘하잖아요. 현장 관객들 눈에서도 하트 쏟아지고 있네.”

유기자가 말을 잇자, 김찬우 기자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치. 그게 중요한 거야. 무대도, 노래도 좋다는 거. 이제 약간의 화제까지 얻었으니까, 어떠한 사람들한테는 송하연이랑 유현지가 블루칩처럼 보이지 않을까?”

실력도 좋고 약간의 화제도 얻었으니, 분명히 이를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이 나타날 거다.

예를 들면, 빌보드에서 활약하는 뮤지션들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잡지사의 편집장, 혹은 광고주일 수도 있겠지.

“혹시 알아? 이 화제가 물꼬가 돼서 큰 기회라도 들어올 지.”

김찬우 기자는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

매우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약속했던 대로 송하연의 집에 와 있었다.

“···.”

“···.”

소파나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거실에 마주보고 서 있는 우리.

어색한 공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분명히 집 안에서 드라마를 보기로 했는데, 난 어디 데이트라도 나가는 것처럼 열심히 꾸미고 왔고.

그녀 또한 그런 듯했다.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었을 텐데, 곧 화보라도 찍는 것처럼 화사하다.

“하연 씨.”

“네?”

연하기 때문에 더 청순해 보이는 메이크업.

갑자기 말을 걸자 화들짝 놀란 듯 크게 떠진 그녀의 눈이, 어쩐지 귀여워 보여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저희 커피라도 마시면서 어떤 드라마 볼 지 얘기해볼까요?”

“아! 네! 좋아요.”

공연이 끝난 뒤 호텔에 돌아와서 현지와 함께 공원으로 갈 때, 하연 씨도 함께 갔었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가 밝기만 했는데, 지금은 목이 뻣뻣하게 굳어진 듯 무겁게만 느껴졌다.

식탁에 앉고 커피가 앞에 놓이자, 묵직했던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했지만, 당장은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는 다른 얘기를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왠지 피가 빨리 돌고 머리가 쌩쌩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직 화제가 안 그쳤더라고요. 인터넷에서 그 공연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고.”

“네, 저도 봤어요. 해외반응 리액션 같은 것도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하하! 그쵸.”

그런 걸 보는 것도 팬들의 즐거움 중 하나일 테니.

“현지한테는 여러 곳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하연 씨는 거의 다 거절하셨다고 들었어요.”

일과 관련된 얘기를 시작해서 그런지, 송하연의 표정도 비로소 편안해졌다.

“네, 별로 흥미가 안 가서요. 이렇게 잠깐 화제된 걸로 예능이나 인터뷰에서 말해봤자 별로 좋을 것 같지도 않더라고요. 할 거면 좀 더 임팩트 있는 걸 하고 싶어요. 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걸로요. 예를 들면,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피처링이라든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해외반응 영상들이나 인터넷에서 화제되는 걸로 충분했다.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많이 소비되고 있는데, 엄청나게 커다란 화제도 아닌 걸로 가수가 직접 여러 곳에 나가서 떠들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빌보드에서 활약하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교하며 조롱을 받을 수도 있고.

역시 이래서 베테랑인가 보다.

하긴, 최팀장님도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었지.

“아, 그렇다고 현지 씨가 예능이나 인터뷰한다고 해서 안 좋게 생각하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다급하게 덧붙이는 그녀의 모습에 난 작게 웃음을 흘렸다.

“현지도 안 나가요. 원하는 데는 많은데, 하연 씨 생각처럼 좀 더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걸 기다리고 있어요. 이번에 그런 기회가 없더라도, 하던 대로만 하면 또 그런 기회가 찾아오겠죠. 저흰 항상 좋은 음악이랑 좋은 무대를 사람들한테 보여줄 테니까요.”

아무튼,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일에 관련된 얘기를 하러 온 건 아니니까.

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떤 드라마 볼 지 얘기해볼까요?”

“···네.”

분위기가 편안하게 풀렸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우리 사이에는 다시 어색하고 긴장된 공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 같이 드라마 볼래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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