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48화 (148/170)

< 글로벌 슈퍼스타가 탄생하는 순간 >

경기도 파주시의 액션스쿨.

여기에 한 명의 여인이 파김치처럼 땀에 푹 절여진 채, 매트 위에 누워 있었다.

정채희.

그녀는 눈동자만을 움직여, 자신을 내려다보는 액션 스쿨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 저 진짜 죽음을 보고 온 것 같아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참 잘했어요.’도장은 없는 걸로-“

그때였다.

꼼짝도 안 할 것 같던 채희의 손이 선생님의 발목을 턱, 잡았다.

“그건 안 돼요! 제가 그거 받으려고 얼마나 힘들게 버텼는데···!”

“···연기 때문에 열심히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깟 떡볶이가 뭐라고···.”

“그깟? 그깟··· 떡볶···이요?”

채희는 흐흐, 실소를 흘리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희번득 뜨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저한테 남은 건 그거 하나뿐이에요. 한울 오빠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절 내팽개치고 미국으로 나돌기나 하고!”

“그거 현지 씨 투어 때문에 간 거 아니었습니까?”

“이유야 어쨌건 저 버리고 간 건 맞잖아요. 옆에서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채희는 이때다 싶었는지 쌓인 불만을 토로했으나, 액션스쿨 선생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우리 드라마도 전세계에서 인기 있는데! 안 그래요?”

“···.”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걸 그도 이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좀 뒤늦은 감이 있긴 했지만.

액션스쿨에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박한울에게 뿔이 단단히 난 듯, 채희는 불만을 토로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두들겼다.

[미국에서 많은 부귀영화 누리고 오세요. 꼭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오셔야-

-까지 적었다가, 그냥 적었던 메시지를 모두 삭제했다.

‘그래도 이건 좀 그렇긴 하네.’

아무래도 요즘 먹는 것도, 훈련하는 것도 모두 힘이 들어서 그런지, 그에게 더욱 많이 의지하고 싶어졌나 보다.

‘내가 1순위라고 했었는데···.’

어쩌면 요즘 들어 특히나 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먹는 것과 몸이 힘든 것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감정적인 걸 수도 있지.

자신 말고 다른 연예인들도 맡는 대신 언제나 자신이 1순위여야 한다고 약속했었는데, 그는 그때 했던 약속을 모두 까먹은 것 같았다.

‘파주는 안 오면서 외국은 따라다니는 게 말이 되냐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여, 채희는 그게 내심 서운했다.

***

올해 처음 열리는, 제1회 애리조나 뮤직 페스티벌.

나와 현지는 이곳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얼마 뒤면 LA에서 콘서트가 있긴 한데, 날짜가 그리 가깝지 않아 우리는 이 스케줄을 마치고 다시 귀국해야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콘서트를 마치고 곧장 이곳으로 오는 송하연과는 다르게 비효율적인 스케줄.

그러나 이 페스티벌은 미국 내 대중 인지도가 낮은 현지에게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우리는 이런 비효율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팬들도 기대하시나 봐요. 생중계 보는 거 다들 연습하시는 것 같아요.”

현지가 핸드폰을 내밀어, 팬카페의 글을 보여주며 말했다.

힙합, 팝, K팝, 그리고 락과 EDM까지 장르가 많이 섞여,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페스티벌이기 때문인지.

화제성을 잡기 위해 주최 측은 생중계도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현지의 팬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생중계를 볼 방법에 대해서 빠삭하게 다 알아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송하연의 팬들도 그렇고.

‘하연 씨도 이제 올 때 됐는데.’

현지가 보여주는 팬카페의 글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최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난 바로 그들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연 선배님 오셨대요?”

“응. 그래서 로비로 마중나가려고.”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여기서 기다려도 되는데.”

“아니에요. 그냥 오빠 옆에 있으려고요.”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의 첫 공연이라 신이 난 건지, 그녀는 유달리 텐션이 높아 보였다.

옆에 있을 때면 내내 저렇게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있다.

우리는 송하연을 맞이하기 위해 같이 채비를 갖추고 1층 로비로 내려왔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현지가 입을 열어 말했다.

“아, 저희 오늘 저녁은 뭐 할까요? 공원에 가서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해외에 갈 때마다 자주 밖을 다니고 사진을 찍으러 다녀서 그런지.

이젠 시간이 남으면 밖을 다니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럴까? 그럼 하연 씨도 같이 가자.”

현지는 고개를 저으며 나긋나긋하게 답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은데 캘리포니아에서 공연 끝나신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여기까지 오느라 또 힘드셨을 텐데, 선배님은 푹 쉬게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하긴 그도 그렇다.

난 ‘역시나’라고 생각하며 배려심이 깊은 현지를 지그시 바라봤다.

“어? 오신 것 같아요.”

그때 마침, 최팀장님과 함께 송하연이 호텔로 들어왔다.

서로를 발견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송하연은 걸어올 때부터 내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마주보고 서서 입을 열었다.

“이번 스케줄엔 제 매니저 역할도 해주시는 거 맞죠? 저번 힙합 페스티벌 때처럼.”

전에 힙합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내가 매니저 역할을 잠깐 했었다.

‘잊을 수가 없지.’

원래 그녀는 힙합에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가 그때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 랩독과 함께 곡을 내기도 했으니까.

난 그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네. 이번만큼은 현지의 매니저이기도 하지만 하연 씨의 매니저이기도 해요.”

난 이를 증명하듯, 최팀장님과 로드 매니저가 나눠 들던 짐을 뺏어 들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현지가 조곤조곤하고 차분한 말투로 송하연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님, 공연은 잘 하고 오셨어요?”

“네. 너무 재밌었어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여기 전망대 카페 있는데, 같이 커피 마실래요?”

하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띠웠고, 내게도 제안했다.

“실장님도 같이 할래요?”

난 현지를 슬쩍 쳐다봤다.

방금 전에는 분명 송하연이 피곤할 테니 푹 쉬게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었는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커피 제안이라니.

‘···그럴 수도 있지, 뭐.’

저녁에 공원을 돌아다니는 건 좀 힘이 들 수도 있겠으나, 커피를 마시는 건 어쩌면 휴식의 영역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 이따 현지와 내가 공원 갈 때쯤엔, 하연 씨는 방에서 푹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긴 했으나, 난 송하연의 미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 하나 좋자고 공연을 앞둔 그녀를 힘들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요. 커피 좋죠.”

***

현지와 나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원을 천천히 거닐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색다른 풍경과 색다른 공기, 그리고 현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색다른 환경.

그 속에 함께 있는 사람의 친숙한 목소리.

“진짜 여행 온 것 같다.”

해외 출장을 나온 것 같지 않게,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태국도 좋았었는데, 같이 못 가서 아쉬워요.”

“그러게.”

“다른 곳은 웬만하면 같이 간다고 했죠?”

“응. 아마 대부분은 다 가지 않을까 싶어.”

우리는 곧 있을 페스티벌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얼떨결에 최팀장님까지 함께 했던 카페에서, 스케줄에 대한 것은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었으니까.

현지는 걷는 도중,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반색했다.

“오빠, 우리 저기서 사진 찍을까요?”

제법 특이한 모양의 벤치.

짚으로 만들어진 바구니에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앉는 부분이 좁긴 해도 옆에 딱 붙으면 둘이 앉을 수는 있겠다.

우리는 같이 앉아 사진을 찍었고, 독사진으로도 서로 몇 장을 찍어주었다.

이거 남들이 보면 그냥 일반 연인들의 평범한 데이트나 다를 바가 없겠다.

우린 그렇게 한참이나 더 시간을 보낸 뒤에야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씻고 푹 쉬어.”

“네. 오빠랑 시간 보내서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주무시기 전에 오늘 찍은 사진들 꼭 한 번 보세요. 저도 그럴 테니까.”

***

주최 측에서는 이 페스티벌을 크게 키울 의지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우리를 초대한 것도 그렇고, 생중계를 결정한 것도 그러했지만.

애리조나 현지민들의 참여를 상당히 많이 이끌어냈다.

1회라고 해서 현장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 줄 알았으나,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홍보에도 비용을 꽤 쏟은 모양이지.

덕분에 페스티벌의 느낌은 충분히 갖췄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리고 이곳에서 공연할 우리까지.

송하연은 푹 쉰 덕분인지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리허설도 문제없이 잘 끝나서, 그녀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공연 라인업을 체크하고 있었다.

스테이지는 메인과 서브, 써드까지 총 세 개.

공연은 사흘간 진행되지만 현지와 하연은 오늘, 바로 첫날에 배정되었다.

송하연은 서브 스테이지에서, 그리고 현지는 메인 스테이지에서.

그러나, 순서는 현지가 먼저였고 송하연이 나중이었다.

“하연 씨, 저흰 이제 올라가봐야 해서요.”

“네, 실장님. 현지 씨, 공연 잘하고 오세요.”

이제 곧 현지의 무대.

아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조금은 이른 시간이지만.

그래도 메인 스테이지에 서는 게 어딘가.

밖에선 EDM 사운드가 커다랗게 스피커를 타고 흐르고 있었고.

생중계엔 댓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댓글들 중에 한글이 많아지고 있는 걸로 보아, 현지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인 모양.

난 현지와 함께 걸음을 옮기며 그 댓글들을 보여줬다.

“팬분들이 많이 기대하고 계신가 봐.”

“오빠도 기대하고 계세요?”

그녀의 물음에 난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현지는 이에 눈매를 싱긋 휘며 말했다.

“그럼 정말 잘하고 와야겠어요. 요즘에 조금 더 기운이 나기도 하거든요.”

메인 스테이지에 도착한 우리는 아직 그리 무르익지 않은 분위기를 직접 눈에 담으면서도 별로 실망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 이 분위기를 뒤바꿀 자신이 있었으니까.

‘인지도가 낮은 게 흠이긴 하다만.’

그래도 음악을 즐기기 위해 여기까지 몸소 온 사람들이기에, 낮은 인지도 역시 그리 큰 흠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좋은 무대를 보여주면, 그들은 언제라도 날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을 테니.

***

애리조나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존스.

존스는 타 지역에 잠깐 가본 적은 있어도, 인생의 대부분을 애리조나에서 지내왔다.

그런 존스에게 ‘애리조나 뮤직 페스티벌’의 탄생은 흥분을 최고조로 높이기에 무리가 없었다.

“우리 애리조나에서도 거대한 페스티벌이 생기는 거야!”

존스는 기꺼운 마음에 온가족과 함께 페스티벌을 즐기러 왔고.

당연하다는 듯이 메인 스테이지에 자리 잡았다.

아직 전미에 유명한 스타들이 나올 차례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와 있어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겠는가.

“존스. 이 다음 차례가 누구라고 했지?”

에이미가 물었다.

“유현지. K팝 스타래.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쪽에선 유명하다더라고.”

“하아. 여기서도 K팝이야?”

“컴 온. 페스티벌의 흥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K팝 무대도 꽤 볼 만하다고? 다른 K팝 스타들 무대를 생각해 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에이미.

존스는 쩝, 입맛을 다시고는 무대 위를 바라봤다.

‘잘해야 할 텐데.’

유현지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잘하는 가수라는 건 알아왔다.

부디 그녀가 이번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 분위기를 바꿔줬으면 싶었다.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모두가 좋은 추억을 안고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유현지의 무대.

그녀의 첫 번째 곡은 데뷔곡 이후에 냈던 두 개의 후속곡 중 하나.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싶다는 유현지의 의견에 맞춰, 송하연과 박한울이 함께 작업했던 이었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국내 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흥분과 고조감, 함성과 열광이 뒤섞여 혼란스러울 정도로 뜨거웠었다.

-벌써 지치면 어떡해. 아직 음악이 나오고 있잖아.

그리고, 가뜩이나 라이브 무대로 따라올 자가 없던 현지의 실력이 더욱 발전한 지금.

이 무대는 유현지를 처음 접하는 현장의 관객들의 가슴을 불태우기에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What the···?”

“Holy Shit.”

‘익숙해져야 좋은 음악’, ‘나중에 들으니 좋은 음악’, ‘그렇게 좋진 않은데 주기적으로 찾아 듣게 되는 음악’ 등등, 사람들은 음악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

이 음악에 대해서는, 그리고 이 곡으로 하는 그녀의 무대에 대해서는, 대중들 대부분이 똑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저 미친듯이 즐기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 The radio is playing.

“The radio is playing!”

-The radio is playing.

“The radio is playing.”

떼창을 강제해버릴 정도로 온몸을 옥죄는 흥분.

유현지가 무대에 오르기 전의 그 미지근했던 분위기는.

첫 번째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180도 달라져 있었다.

“워어어어어!”

“이야아아!”

쏟아지는 환호와 들끓는 열기.

이는, 화면 너머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이긴. 엄청 실력 좋은 가수가 자기 무대를 하는 거지. 이게 음악의 힘이야. :)

-한국 사람으로서 알려주자면, 저 가수는 신인이야. 이 곡은 데뷔 싱글 이후로 처음 낸 곡이고.

-말도 안 돼. 이 사람이 신인이라고? 농담이지?

화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미국.

이 페스티벌에 향하는 관심은 전미를 기준으로 따졌을 때 그리 크지는 않았다.

별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큼 신선한 화제가 없었기 때문에.

허나, 바로 지금.

뜨겁고 신선하며, 충격적이기까지 한 화젯거리가 발생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또 한 명의 글로벌 슈퍼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인 건가? 전설적이군. Haha!

-지금 당장 SNS에 이 소식을 올려야겠어.

-대체 이런 가수는 어디 있다가 튀어나온 거야? 왜 이 사람을 지금까지 몰랐지?

-어이가 없군.

첫 곡을 끝낸 유현지는 극명하게 바뀐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 마주한 자로서, 큰 환희를 느낀 모양이었다.

그녀의 만면에 가득히 띠워진 미소.

그 달콤하고도 지독할 정도로 귀여운 모습에 댓글창은 또 한 번 격렬하게 출렁였다.

< 글로벌 슈퍼스타가 탄생하는 순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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