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고 돌아 무대 >
이른 아침의 인천국제공항.
현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들끓기 시작했다.
“현지야! 여기 봐줘!”
“잘 갔다와! 유현지 파이팅!”
“현지야! 예쁘다!”
팬들이 좋아 죽으려 하는 금발,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내가 선물해준 귀걸이.
그 외, 패션은 후드티로 무난했으나 현지를 바라보는 팬들의 눈빛에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듯 반짝였다.
현지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줬고, 공항은 더 커다란 함성으로 채워졌다.
“···손 흔들지 말까요? 너무 민폐인 것 같은데.”
현지가 손을 내리며 작게 속삭이는 말에, 난 주위를 살펴봤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적당히는 해도 될 것 같아.”
직원들이나, 현지를 보러 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일반 사람들마저 현지를 눈에 담으며 즐거워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그녀는 미모도 미모지만 현재 대중들에게 호감도가 매우 높았다.
대중들은 아이돌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엔 몇 가지의 이유가 따랐다.
일단 음악과 컨셉이 대중들의 취향과 맞지 않다는 이유가 컸다.
또한, 워낙 노래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아이돌이 그동안 너무 많이 부각되어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로 인해 아이돌 팬덤의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그런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필요한 조건은 의외로 간단했다.
음악과 컨셉이 대중들의 취향에 맞으면 되고, 실력을 증명하면 된다.
그럼 대중들에게 호감으로 들어서며 커다란 라이트 팬덤이 형성돼, 헤비 팬들도 악에 받칠 일이 사라지게 되니까.
간단하긴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결국 현지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여, 송하연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성 솔로가 되었고.
이렇게 일반 대중들이 공항에서 팬덤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오히려 구경하며 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에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아!”
“스게에에에! 카와이이이!”
“현지 짱! 현지 짜아앙!”
나와 최팀장님, 그리고 로드매니저 이정욱과 현지까지.
우리는 현지 일본인들의 격렬한 환대를 마주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화력이 센 줄은 알았는데.’
일본 콘서트 티켓이 매진되는 속도가 채 30초도 안 걸렸다고 한다.
3만 7천석의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의 티켓 역시도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그보다 수용 인원이 더 많은 ‘돔’에 공연을 잡았어야 했나 보다.
그렇게 출국할 때와 입국할 때 모두 너무 커다란 응원을 받은 바람에.
호텔에 도착한 뒤 일본 현지의 관계자들과 연락을 하고 나서도 쉽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시간이 좀 남네.’
여유롭게 와서 그런지 아직 5시도 되지 않았다.
내가 창 밖을 바라보며 내일 있을 리허설과 공연에 대해 떠올리고 있을 때.
똑똑, 현지가 방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어, 현지야. 뭐 필요한 거 있어?”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냥 심심해서요.”
채희처럼 심심할 때 언제든지 찾아도 된다고 말했던 것과.
해외에 가서 사진도 많이 찍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자고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잠시동안 고민하고는 물었다.
“그럼 밖에 나갈까?”
“네. 전 준비됐어요.”
그러고 보니, 그녀는 이미 외출을 위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같이 나가자고 말할 생각이었나 보다.
***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의 대기실.
현지는 핸드폰으로 어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자세하게도 살펴봤다.
어색한 표정과 어색한 자세의 박한울.
이를 보니 입매가 절로 올라갔다.
“현지야, 이제 가자.”
고개를 들어보니, 사진이 아닌 실물의 그가 기대감을 품은 눈빛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네.”
스탭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와 무대 밑으로 향하는데, 팬들의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며 고양감이 올라왔다.
“잘하고 와.”
그 고양감 속에서 박한울이 말했다.
걱정 없이 단단한 신뢰가 느껴지는 목소리.
그의 응원을 받으며 현지는 무대 위에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와아아아!”
“우와아아아!”
꽉 낀 인이어 속을 파고드는 팬들의 함성 소리.
그녀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봤던, 무대에 관한 팬들의 반응을 떠올렸다.
-진짜 돌고 돌아서 무대다···. 하아. 진짜 일을 왜 이렇게 잘하는 거냐 HJ!!! ㅠㅠㅠㅠ
-현지 무대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음. 현지가 무대 잘하는 아이돌이라서 너무 자랑스럽다.
-역시 가수는 무대지. 컨셉 조금씩 달라지는 거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는 듯.
눈앞에 있는 팬들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그들은 자신의 무대가 곧 시작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벌써 열기를 잔뜩 끌어올리고 있었다.
‘콘서트에 대한 조언이요?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운데, 쉽게 생각하면 또 간단해요. 결국엔 무대거든요. 무대를 잘하면 돼요. 현지 씨가 평소에 하던 것처럼요.’
연습실에 찾아가서 구했던 송하연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다.
국내에서 콘서트를 했을 때 여실히 느꼈다.
그리고 박한울은 이러한 말들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의 무대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며 칭찬해줬다.
그래서 그토록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지금도, 긴장이 되거나 부담감이 들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믿음직한 사람이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눈앞에 있었으니.
오히려 자신감과 흥분만이 속을 가득히 채울 뿐이었다.
***
“와.”
“진짜 잘하신다.”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지려고 하는데···.”
“우리 데뷔해도 되는 거 맞죠···?”
뮤직 비디오까지 다 찍고, 이제 음방 데뷔만을 앞두고 있는 HJ의 신인 걸그룹 ‘피에스타’.
그녀들은 유현지의 콘서트 무대 직캠 영상을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게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예쁘고 순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콘서트장을 장악하고 있다. 노하우가 생긴 모양인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고,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다.
팬들이 실망감 없이, 그리고 불안감 없이, 그저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무대.
당연히 댓글의 반응도 찬양일색이었다. 무대, 매력, 실력, 음악, 태도까지, 사람들은 유현지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이런 댓글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송하니도 걸그룹으로 데뷔한다며. 기사 뜬 거 보면 얘네는 박한울이 엄청 신경 썼다던데 얘네도 엄청 잘할 듯ㅋㅋㅋ 기대 만빵임.
이에 그녀들의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렸다.
연습을 하고 데뷔에 가까워질수록 자신감이 붙긴 했지만, 대중들의 기대는 그보다 좀 더 높은 것 같았다.
유현지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못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심지어 계속 발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었고.
송하연은 박한울이 돕기 시작한 때부터, 음악과 성적이 모두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니, 박한울이 특히나 많이 신경 썼다고 언플을 할수록 기대감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얘들아, 우리 연습하러 갈래?”
이효진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도 충분한 연습을 하고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부담감에 삼켜진 탓인지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지금 실력으로는 연습을 해도 해도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모자라지.
“그럴까요?”
그녀들은 누구 하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어째선지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피로조차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음방을 하루이틀 동안 하는 게 아니라서, 데뷔를 앞둔 지금 컨디션 조절도 생각해야 했지만.
신인의 데뷔 활동은 컨디션 조절 따위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다.
‘다음엔 무대에 서고 싶어도 다시는 기회가 안 올 수도 있으니 매 순간마다 몸이 부서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
비록 회사마다, 그룹마다 사정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신인이 힘을 아끼는 건 더욱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됐다.
유현지의 콘서트 직캠을 본 뒤인 지금은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굳어졌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저렇게 수준 높은 무대를 보여줄 수 없을 테니까.
“가요. 연습하러.”
그녀들은 숙소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데뷔 일주일 전, 막 기사들을 통해 데뷔 홍보를 시작한 시기였다.
***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피에스타의 음방 데뷔일.
비록 같은 팀은 아니지만 이 그룹의 데뷔에 나도 많은 지분이 있으니, 난 응원차 그녀들이 대기하고 있을 공개홀을 찾아갔다.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내게 꽂히는 시선들.
그중엔 방송국의 스탭들도 있었지만, 다른 기획사의 직원들이나 가수 또한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이 되고 싶은 ‘스카이 업’입니다!”
‘피에스타FIESTAR’라는 이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엄청나게 잘 지은 이름이었네, 이거.
난 마치 부대를 방문한 사단장처럼 모든 이들의 시선과 인사를 끌어모으며, 그녀들이 있는 공용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녀들과 함께 있던 다른 가수들이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인사하는 걸 보니, 으쓱거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정신 차려야지.’
이러다가 권위에 중독되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특효 치료제가 있긴 하구나.’
곧 있으면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 시즌2의 촬영이 시작된다.
채희나 시라송이와 조금만 대화하다 보면, 권위란 권위는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녀들은 내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나를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편하게 대해주니까.
아주 가끔은 열받게 할 때도 있어서 문제긴 하나, 나도 마찬가지니 큰 불만은 없었다.
“실장님!”
“시, 시, 실장님. 어떡해요!”
“너무 떨려요. 살려주세요···.”
“···실장님.”
피에스타, 그녀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일반적인 반가움과는 결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비로소 의사를 마주한 중환자’ 같은 얼굴들을 보며, 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렇게 긴장돼? 송하니, 너도?”
송하니는 울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왜 느낌이 이렇게 다른 거예요? 저 분명 관객들 엄청 많은 무대도 했었는데?”
“그러게? 왜 그럴까?”
“···?”
“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길 기대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송하니의 얼굴이 배신감으로 물들었다.
‘그런데 진짜 모르는 걸 어떡해.’
현지는 지금까지도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다른 가수들의 데뷔 직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거든.
그때, 한쪽에 서 있던 고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애들이 무대에 자신이 없대. 자꾸 유현지 선배 무대가 어쩌고 저쩌고 하더라고.”
“네? 현지요?”
“어. 이미 슈퍼스타랑 비교하지 말고 같은 급이랑 비교하라고 말했는데, 영 말을 안 들어.”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는 고팀장님.
그런데, 이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얼굴에 여유가 엿보이는 걸 보니, 긴장감 때문에 무대의 퀄리티가 떨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고 있나 보다.
‘하긴 애들이 워낙 잘하긴 하니까 걱정이 없는 거겠지.’
그래서 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영혼이라고는 1g도 담기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파이팅. 너흰 잘할 수 있을 거야.”
다들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착한 강해정조차도 눈빛이 흐려졌다.
왠지 모르게 엄청나게 나쁜놈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송하니의 눈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효진 언니, 해정아, 윤지야. 실장님은 우리한테 아무런 기대감도 없으신가 봐. 너흰 딱 거기까지라고 말씀하시는 거 봤지?”
“내가 언제-“
“우리 진짜 잘해버리자. 헤이러들 콧대를 확 눌러버리는 거야.”
졸지에, 다른 사람을 비방만 하는 사람을 뜻하는 헤이러(Hater)가 되어버렸다.
배신감은 내가 느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싸악 빠지고, 그 자리에 결연함이 차오르는 걸 보니.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랄까?
오해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지금은 저 진심 가득한 장단에 맞춰주는 편이 더 낫겠다.
무대에 대한 걱정은 별로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왕이면 더 잘하는 편이 낫잖아?
난 그녀들의 단단한 눈빛을 덤덤하게 마주하며 말했다.
“마음가짐만으로 될 것 같으면 누구나 다 스타 됐겠지.”
“···!”
“와··· 이건 좀.”
“헐.”
“실장님···!”
좀 너무 나갔나?
난 헛기침을 하곤 조용히 의자에 착석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데뷔무대는 <흔한 K-걸그룹의 데뷔무대>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와 SNS에 쫙 퍼지며 화제를 휩쓰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까지 마음가짐의 효과가 좋다니···.
이 역시 프로듀싱의 영역에 포함된다면, 난 정말 하늘이 내린 천재가 아닐까?
< 돌고 돌아 무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