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37화 (137/170)

< 이 정도면 ‘우리’ 맞지 뭐 >

다음 날, 우리는 회사 내 작업실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강해정과 나, 단 둘뿐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곡을 다듬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괜히 복잡하기만 하지.’

이미 내가 멤버들의 특징을 알고 있으니까 나만 있으면 됐다.

“실장님···. 그, 제가 어젯밤에 생각해봤는데요.”

강해정은 이렇게 본격적으로 자신이 데뷔곡의 프로듀싱을 맡게 될 줄은 몰랐는지, 여전히 소심한 모양새였다.

진짜 외모랑 어찌 이렇게 대비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멜로디가 조금 식상한 것 같기도 해서 수정한 것도 새로 만들긴 했는데··· 그렇다고 막 그렇게 거창하게 고친 건 아니고요! 그냥··· 조금 편곡 정도?”

창작자의 영감이란 것은 참 신기한 측면이 있다.

아티스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면 불어넣을수록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낸다.

지금의 그녀는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인 듯했지만, 그래도 멤버들과 내가 인정해줬기 때문인지 소심하게 말하는 와중에도 어젯밤 고친 창작물을 당당히 내밀었다.

이 정도면 거의 소심과 자신감 사이, 그 어딘가일 듯하다.

창작엔 자신이 있고, 그 외 나머지엔 소심하다고 해야 할까? 모순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팬들의 덕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런 그녀가 더욱 귀여워 보였다.

물론 여자로서의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그럼 큰일나지.’

그리고, 여자로서는 뭐.

따로 스타일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럼 한 번 들어볼까?”

“네!”

난 그녀가 어젯밤 집에서 작업했다는 곡을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곡이 모두 끝났을 때.

나는 그녀의 진짜 재능이 어떤 쪽에 확 치우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편곡엔 잼병이네···.’

어쩌면 경험을 쌓아도 편곡은 잘 안 될 수도 있겠다.

전형적인, 아니 전형적이라고 하기엔 이런 표본이 드문 편이긴 하지.

그녀는 딱, 영감만 넘치는 스타일인 듯했다.

그 영감이 매우 뛰어나다는 게 희망적인 측면이었고.

‘결국 다듬는 건 내 몫이겠네.’

난 어쩐지 초조하게 두 손을 꽉 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잘했어.”

“···!”

“그런데 네 스타일은 조금 천재적인 스타일인 것 같다.”

“···네, 네!?”

화들짝 놀라는 그녀에게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이디어랑 개성이 거의 탑급으로 성장할 여지가 있어. 그런데 조금 대중들이 듣기엔 난해하달까? 천재성이 짙으면 그런 경향이 나타나잖아.”

거짓말이었다.

영감은 엄청난 수준인 건 맞지만, 대중들이 듣기에 난해하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내가 편곡을 손볼 수 있게 만들면서도 그녀의 자신감을 깎지 않기 위해 한 말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주눅들기는커녕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난 그녀에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말했다.

“음. 일단 어젯밤에 만든 거 말고, 오리지널 버전 켜볼래? 어. 거기서 멜로디 라인은 두고, 악기랑, 구성, 비트부터 손보자. 이 곡의 컨셉이 청순 발랄이니까-”

내 말에 토 하나 달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계처럼 프로그램을 만졌다.

내 말을 따르며 몇 번 만지작거린 뒤, 눈빛으로 어떠냐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잘했어. 이렇게만 가면 데뷔부터 성공할 것 같네.”

당연히 나중에 전문가의 손을 좀 더 거치는 편이 퀄리티를 높이는 데 있어 좋겠지만, 일단 컨셉 회의 때 모두에게 들려주기에는 그녀 정도의 기술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내 칭찬에 내적 비명을 지르는 듯, 작게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리고 내가 노린 건 작곡과 편곡 측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자신감을 심어주면 그녀의 끼 또한 살아날 테니까.

“···히.”

이거 봐라.

온몸으로 뿌듯해하며 수줍게 미소 짓고 있지 않나.

난 그녀를 보며 직감했다.

데뷔하자마자 덕심은 정말 꽈악 잡을 수 있겠노라고.

***

“와, 확실히 이번 애들이 대박감이긴 한가 봐.”

“그러게. 박한울 실장님이 그 정도까지 하시는 거 보면 빼박이지.”

휴게실, 옥상, 화장실 등 온갖 곳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박한울이 강해정을 단독 케어하며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는 게 퍼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직원들의 기대감은 팽배해졌다.

‘이번 걸그룹은 진짜 초대박 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솔직히 누가 알았겠어. 강해정은 댄스나 보컬이나 다 서브였잖아. 비주얼이랑 컨셉 소화력은 탑급이긴 해도 작곡까지 재능 있을 줄은 몰랐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또 A&R팀이 곤란해지는 거 아니에요? 이번 컨셉 회의 때 둘이 충돌하면 어떡해요.”

“야,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A&R팀은 이미 예전에 실장님한테 승복했어. 게다가 영입이랑 멤버 구성, 연습 방향 잡아준 것만 봐도 이 걸그룹은 실장님이 다 했잖아. 박실장님도 A&R팀 존중해주는 면이 있어서 경쟁 빡세게 하거나 서로 감정 상할 일은 없을 거다.”

그 예측대로였다.

A&R팀은 박한울이 강해정과 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 아예 부담을 놔버렸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유망주로 확실시된 그녀들을 어떻게든 성공시키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박한울이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까.

한두 번 성공했다면 모를까, 벌써 연타석으로 몇 번이나 성공했는지 손으로 셀 수도 없는 그이기에,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망의 컨셉 회의 날이 다가왔다.

***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강해정이 잠깐 줄 게 있다고 하여 연습실에 들렸다.

그녀는 내게 초콜릿을 양손으로 내밀었다.

편의점에서 비싸게 파는 초콜릿을.

“회의··· 힘내세요!”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티 나지 않게 꽉 물었다.

회의 힘내라며 초콜릿을 주는 건 지금껏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난 웃지 않게 턱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제가 더 감사합니다.”

우리가 만든 곡은 퍽 만족스럽게 나왔다.

그녀들도 이미 다 들은 모양인지, 성윤지와 이효진, 송하니 모두 싱글벙글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회의 파이팅하세요!”

“힘내세요!”

무슨 수능 보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응원을 받을 줄이야.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시원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그래. 다들 고맙다.”

난 초콜릿을 포장 박스 채 손에 들며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대회의실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부탁을 받기도 했고, 회사에도 도움이 되기에 일을 도왔지만.

지금은 그냥 의욕이 절로 났다.

크게 성장할 여지가 눈에 보여서, 그리고 그냥 그녀들에게 조금은 정이 들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초콜릿에도.

난 의아한 시선을 못 본 체하고, 목례로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초콜릿을 하나 꺼내 입에 넣으며 회의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맛있네.’

회의 시간이 가까워져 오며 회의실의 빈 자리들이 하나둘씩 채워졌다.

A&R팀, 홍보팀, 앨범 마케팅팀, 그리고 2팀의 고팀장님을 비롯해 1본부의 김본부장님과 아버지까지도.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아버지는 A&R박부장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획한 컨셉부터 볼 수 있을까요?”

순서상 이게 맞지.

박부장님도 토를 달지 않고 앞에 나가며 직접 발표했다.

그런데.

‘으음···.’

이번엔 부장님이 방향을 조금 잘못 잡은 것 같다.

청순 컨셉은 이제 올드하고 먹히지도 않는다 생각하여 아예 배제하신 듯했다.

컨셉은 둘째 치고, 음악에 대한 방향도 멤버들과 그리 크게 어울리지 않아.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부장님의 PT를 경청했고, 발표가 다 끝나자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박한울 실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드디어 때가 됐다는 듯, 날 향하는 눈빛들에 기대감이 잔뜩 묻어 있다.

그런데 음악을 손보느라 바빠서, PPT는 만들지 못했다.

대신 음악이 있지.

형식상의 절차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시선은 받지도 않을 거다.

그런 게 있었으면 애초에 난 여기에 있지도 못 했을 테니까.

어느 정도의 형식상의 절차로 A&R팀의 PT를 먼저 듣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

“준비해온 음악이 있는데, 이거 먼저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버지는 뿌듯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 들려준 다음엔··· 말로 때워야지, 뭐.’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앞으로 나갔다.

손에 USB를 든 채로.

***

시각적 자료를 완전히 배제하고, 청각적인 자료만으로 폭풍 같이 몰아쳤던 박한울의 PT.

회의가 끝난 직후, 직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캬! 역시 박실장님 클라스 어디 안 가더라. 이 회사에 계속 붙어있는 게 진짜 정답이라니까?”

“그러게요. 음악 딱 듣는 순간 그 애들이 어떻게 할지 딱 떠오르더라고요. 이미지 완전 찰떡.”

A&R박부장은 직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클라스라···.’

이젠 호승심도 일지 않는다. 직원들이 말하는 그 ‘클라스’를 자신도 이미 옛적에 인정했으니까.

오히려 배울 기회가 많아서 좋을 뿐이었다. 음악으로만 듣는 게 아니라, PT를 통해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기도 했고.

‘그래도 뒤처지는 건 안 되지.’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그가 내세운 것과 방향이 달랐다.

‘신인 걸그룹’ 하면 가장 떠오르는 청순 발랄 컨셉은 자칫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음악이 모든 걸 다 증명해주었다.

음악을 들으며 멤버들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어울리며, 심지어 그 음악 자체가 너무 좋다면, 고리타분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다.

‘대중성은 엄청 폭발적이겠네.’

직원들의 반응만 봐도 안다. 이 곡은 대중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터.

이제 한동안 또 바쁘겠다.

뮤비, 홍보, 심지어는 의상,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까지, A&R이 관여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모든 부서와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일해야 했고, 이는 자신의 역할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박부장은 의욕 넘치는 걸음걸이로 발을 움직였다.

부장이나 돼서 타 팀의 실장에게 일을 배우고 있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오히려 힘이 펄펄 나면 났지.

“흠흠~”

박부장은 아까 들었던 멜로디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

한편.

2팀의 고팀장은 음악을 듣자마자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뒤.

김본부장님과 대표님과 함께 대표실에 들어와 앉았다.

대표님과 자신의 얼굴에 띠워진 미소.

대표님은 박한울의 아버지이기에 자신과는 그 의미는 조금 다를 지언정, 지금 기분이 좋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김본부장은 그저 입꼬리만 슬쩍 올린 채로 말했다.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심민정 배우를 마지막으로 그렇게 엄청나게 기대되는 아티스트가 없었잖아.”

대표의 반응에 고팀장은 말을 덧붙였다.

“다 박실장님께서 도와주신 덕입니다. 멤버들 구성한 것도 그렇고, 곡도 그렇고.”

“그래?”

대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누가 봐도 이건 자식의 칭찬에 기뻐하는 아버지로서 웃는 모습이었다.

“김본부장도 그렇게 생각해?”

“예. 저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아부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김본부장이 이렇게 말을 보태자, 대표는 기분 좋은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다 김본이랑 고팀장이 잘해서 그렇지! 내가 이렇게 직원 복이 있다니까?”

팔불출이 따로 없는 모습이었으나, 고팀장은 전혀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았다.

박실장의 도움이 지대했던 게 정말 사실이었으며, 자신 역시 저렇게 노골적으로 기쁨을 터뜨리는 걸 꾹 참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

회의가 끝난 뒤.

나는 회의실을 함께 빠져나온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곧장 연습실로 향했다.

어서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전해줘야 하지 않겠나.

아마 지금쯤 기대와 걱정으로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있을 거다.

그녀들이 있는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들 모두 앉아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거의 전력질주하듯이 내 앞으로 뛰어온 송하니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잘 됐어요?”

타이밍상 장난 치기가 딱 좋았지만, 그녀들의 눈이 너무 간절해 보여 나만 재밌고 말 것 같았다.

만약 비슷한 상황에 놓인 채희가 이렇게 물었으면, 난 아마 2절, 3절, 4절까지 장난 치며 놀렸을 텐데 좀 아쉽다.

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데뷔곡 해정이 곡으로 확정났어.”

“···!”

“와···! 와!”

“우와아아!”

“꺄아아아!”

이미 이럴 거라 예상했었으면서도, 그녀들의 얼굴엔 벅찬 감정이 잔뜩 묻어났다.

“실장니이임!”

그 감격스러움을 함께 나누려는지, 나를 확 껴안는 송하니.

그리고 하니를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 또한 내 주위를 둘러싸며 얼굴을 파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쁨은 눈물이 되어 내 옷을 적셨다.

“흐어어엉!”

“흐윽···.”

난 꼼짝도 못하고 그녀들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내가 방금··· ‘우리 데뷔곡’이라고 했었나?’

난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아무렴 어떠리.

이 정도면 ‘우리’ 맞지 뭐.

< 이 정도면 ‘우리’ 맞지 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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