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33화 (133/170)

< 좋은 평판의 이점 >

미국 일리노이.

스티브는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유튜브를 뒤졌다.

신작에 대해 소개해주는 영상들이 많으니, 여기서 끌리는 것이 나오면 다음에 볼 생각이었다.

‘이건 본 거고, 이건··· 재미없어 보이고.’

그러나 확 끌리는 걸 찾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그리 재밌을 것 같지 않은 모순적인 느낌만을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휙휙 10초씩 영상을 건너뛰며 볼 만한 걸 찾고 있었는데.

-이건 한국에서 새로 나온 신작인데, 정말 엄청납니다. CG, 음악, 의상, 소품, 뭐 이런 것도 할리우드급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랑 스토리. 제가 이번 영상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예요. 장담하죠. 한 번 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막을 봐야 한다고 건너뛰면 당신은 이 미친 신작을 놓치게 되는 거예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말이 계속되고 있는 사이, 영상에선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과, 이능력과 총, 몸을 사용하는 액션 씬, 그리고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력.

“···재밌으려나?”

스티브는 바로 영상을 끄고 넷플릭스를 켰다.

본래 계획은 볼 만한 걸 찾기만 하고 나중에 볼 생각이었으나.

흥미와 궁금증이 일어 잠깐 살펴보듯이 훑기로 했다.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를 찾아 들어갔고.

바로 1회를 틀었다.

그리고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빨려 들어갈 듯 시청하는 스티브.

잠깐 보고 끈다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좋은 작품은 늘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법.

1회가 끝났을 때, 스티브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미친!”

유튜버의 말대로였다. 다른 요소들 모두 좋았지만 스토리와 연기가 엄청났다.

특히 야수 같이 거칠며 카리스마 넘치는 ‘대장’의 연기는 가히 독보적.

표정과 몸짓, 말투와 분위기 모두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이건 절대 연기가 아냐. 분명 실제 모습도 이렇겠지.”

그녀의 연기가 워낙 강한 인상을 남겨서 그런지, 다른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스티브는 잠시 여운을 곱씹고는 바로 2회를 틀었다.

10회밖에 없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두렵고 안타까웠으나, 시즌2를 기다리기 힘들면 다시 시즌을 정주행하면 되지.

일단은 보는 게 우선이었다.

스티브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순식간에 몰입했다.

***

날이 갈수록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져가고 있었다.

아시아에선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고, 유럽과 미국, 남미 쪽에서도 서서히 반응이 오고 있었다.

‘이대로면 시즌2는 더 기대해도 되겠는데?’

시즌2의 제작이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었으나, 거의 확정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걸 투자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만약 시즌2를 찍게 된다면 유럽, 미국, 남미에서도 지금의 아시아와 같은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오빠, 뭐 봐요?”

메이크업을 끝낸 채희가 물어보는 것과 동시에, 내가 보고 있는 핸드폰을 보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었다.

“우리 드라마 반응 보고 있었어.”

해외에서의 반응들과 아직까지도 뜨거운 국내에서의 반응들.

연출과 음악, CG도 그렇지만 대개는 스토리와 연기력에 대해 극찬을 쏟아내고 있었다.

채희는 자랑스럽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아. 예쁘고 섹시하고 청순한데, 카리스마까지 있으면 어쩌냐고 하는 반응들이요?”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저런 태도에 익숙해졌다고 봐야겠지.

분명 채희가 말한대로, 그녀의 캐릭터 ‘대장’에 대한 반응이 엄청 뜨겁다는 걸 알고 있기는 하지만.

난 일부러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반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던데?”

“뭔 소리예요, 진짜! 다 그런 반응이던데!”

“난 하나도 못 봤는데?”

“있거든요! 우길 걸 우겨야죠!”

주변에 있던 스탭들이 우리의 평화로운 대화를 듣고는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오늘은 핸드폰 광고를 촬영하는 날.

그녀는 기어이 핸드폰 광고모델까지 차지해버렸다.

“오빠, 근데 저 오늘 얼굴 좀 푸석푸석해 보이지 않았어요?”

“응?”

“지금 말고, 아까요. 쌩얼일 때요.”

못 알아들어서 되물은 게 아니었다.

푸석푸석은커녕, 오늘도 속으로는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녀는 주변 눈치를 슬쩍 보더니,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소곤거렸다.

“사실 오늘 잠을 별로 못 잤거든요.”

“왜? 스케줄도 없었잖아.”

“자려고 누웠는데 귓가에 엥- 소리 나더라고요. 모기라고 확신해서 그냥 빨리 잡고 나서 자려고 그랬거든요? 근데 불 키니까 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막 일부러 날숨도 훠어어, 내쉬면서 입냄새로 유인도 해보고, 심박수 떨어뜨리면 올 것 같아서 유튜브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거든요?”

특히나 막 잠에 들려고 할 때면 귓가에 앵앵거린다는 점 때문에, 심박수를 낮추면 벌레를 유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날숨은 왜 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인 방법은 둘째 치고, 그림을 상상해보니 되게 웃겼을 것 같다.

“그런데 자꾸 벌레가 안 나타나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참고 기다리면서 계속 유튜브 봤죠. 근데 마침 또 재밌는 거 발견해서 쭉 보다 보니까 시간이 엄청 지나 있더라고요!”

“···.”

“그래서 딱 3시간밖에 못 잤어요. 나중에 보니까 모기도 아니더만요. 그냥 무시하고 잘걸. 이게 벌레의 날갯짓 하나가 만든 나비효과거든요. 전 이걸 벌레날갯짓효과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난 널 천하의 바보라고 부르기로 했어.”

만약 광고주가 지금 그녀의 말을 들었다면, 심각하게 재고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 광고를 하는데, 그녀는 스마트와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았으니까.

“너 내 앞에선 그래도 되는데, 다른 데 가서는 그러지 마. 사람들이 바보라고 무시할 수도 있어.”

“인간적인 거지 이게 무슨 바보예요! 그리고 좀 귀엽게 봐주면 안 되나?”

“귀엽긴 개뿔.”

솔직히 좀 귀엽다고 느끼긴 했는데, 그래도 대놓고 말해주기는 싫었다.

주변에서도 다 칭찬만 하는데 나까지 그랬다간 자뻑이 너무 심해질 것 같아서.

“채희 씨, 준비됐어요?”

준비가 다 됐다는 걸 알리는 스태프의 말에, 우린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그만두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준비 다 됐습니다.”

곧이어 그녀는 카메라 앞에 섰고, 난 카메라 뒤에서 촬영을 지켜봤다.

역시 배우라서 그런지, 촬영에 임하는 그녀는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왠지 모르게 똑똑해 보이고, 신뢰감 있어 보이잖아.

배우가 안 됐으면 사기꾼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건 바보라서 안 되려나?

***

다음 날, 오늘 분의 촬영을 마친 심민정과 ‘수세미’의 스탭들과 함께 우린 삼겹살 가게로 들어갔다.

오늘이 바로 첫 방송이라서, 촬영을 일찍 마치고 함께 보기로 한 것이다.

일정 또한 여유로웠다.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촬영이 빨리 끝난 덕에, 계획돼 있던 일정이 당겨지기도 했고.

촬영장소의 대부분이 사무실이라 엄청 빠른 속도로 찍고 있었으니.

“실장님, 저희 잘될 수 있겠죠?”

제작사 김정연 대표가 소원이라도 빌듯이 간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내가 잘될 거라 말한다고 해서 잘되고, 안 될 거라 말한다고 해서 안 될 리는 없을 텐데.

마음이 조마조마한 모양이다.

나 또한 이런 데 있어 노하우가 생겼기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률 잘 나올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아무튼 내 말에 비로소 안정을 얻은 모양인지,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옆에 있는 조수연 작가는 왜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지 모르겠네.

“작가님은 계속 성공하셨는데도 불안하세요?”

“아··· 네. 어쩔 수 없나 봐요. 다들 너무 잘해주시고 실장님도 계셔서 잘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쉽게 편해지진 않네요.”

“홍보도 잘 되고 있고, 인터넷 반응도 좋잖아요. 유튜브 홍보 영상 조회수도 엄청 높던데.”

특히 저번에 방송됐던 예능, ‘달려라 인간아’가 홍보 효과를 정말 톡톡히 했지.

“그러니까요. 걱정 안 해도 되는데··· 하하.”

이제 명실상부 스타 작가가 됐는데도 권위적인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운도 좋지. 이런 작가랑 연을 쌓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편, 배우들은 긴장을 아주 통째로 삼켰는지 숨이 턱턱 막혀 보인다.

고기에 시선만 줄 뿐, 손도 대지 않거나 깨작거리기만 한다.

긴장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오직 민정 씨와 원로 배우뿐.

뭐, 어차피 시청률과 반응을 보면 알아서 풀어지겠지.

“민정 씨, 우리끼리라도 많이 먹어요.”

“네. 실장님도 많이 드세요.”

고기를 신나게 구우며 침을 흘리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장덕호 배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민정 씨는 안 떨려요? ‘BJ김만수’ 때 잘되긴 했는데 그땐 조연이었잖아요. 이건 주연이고. 내가 민정 씨였으면 지금 토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심민정은 씨익 웃으며 눈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신뢰의 아이콘이 여기 계시잖아요. 실장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앞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별로 안 떨려요.”

“만약에··· 아니다, 아니에요.”

만약 잘 안 되면 어쩌려는 건지를 물으려 했던 것 같은데, 황급히 입을 다물며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럼 주변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을 테니까.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신뢰가 가득 담긴 눈빛.

장덕호 배우의 끝맺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저 눈빛이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마지막 광곱니다!”

스탭의 말에 식당 안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그 팽배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그녀의 앞접시에 올려줬고.

제작사 대표의 말에 잠깐 정적이 깨졌다.

“다들 천천히 먹으면서 봐요.”

“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잘 뽑힌 장면들의 연속에, 모두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걸렸다.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보람.

이 험난하고 고된 드라마 판에서 일하는 스탭들이 일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였다.

그들의 얼굴 위로 자부심이 올라오는 만큼, 분위기도 점차 활기를 띠웠다.

그리고 마침내 첫 방송이 다 끝났을 때.

“···허억!”

“왜! 몇 프로라는데! 속 터지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커다랗게 내질러진 제작사 직원의 말이 모두의 귓가를 때렸다.

“13프로랍니다! 13프로! 대박이에요!”

주변에서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첫방송 13%.

그 믿기지 않는 수치에, 모두의 얼굴엔 기쁨 대신 의심이 담겼다.

“···진짜야?”

결국 김대표가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야, 모두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하게 담겼다.

쾌거를 넘은 대박!

이에, 배우고 스탭이고 다들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오늘 마시고 죽자!”

“어차피 내일 아침에 나와야 하긴 하는데··· 에이! 몰라! 그냥 마셔!”

“크하하하! 미쳤다! 첫방송 시청률이 13퍼라니! 이게 말이 돼요!?”

A급 스타들이 몇이나 나와야 이룰 수 있는 시청률이거늘, 이들끼리 이루니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스타급이라고는 이제 막 첫 작품을 끝낸 심민정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봤자 아직은 A급에 미치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이렇게 시청률이 잘 나오게 된 이유는.

인터넷에 노골적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나도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솔직히 첫방이 이렇게까지 잘 나올 줄은 몰랐거든.

[실패한 적 없는 박한울의 Pick. 꿀잼 확신하는 네티즌들.]

[믿고 보는 조수연 작가의 신작. 이번엔 정채희 대신 심민정이 한다!]

-반응 터질 때까지 언제 기다리냐고ㅋㅋ 그냥 박한울 따라가면 그게 바로 꿀잼이잖아.

-캬! 역시 기가 막혔다. 개재밌네 진짜.

-심민정 연기는 진짜 빠져들게 하는 뭔가가 있네. 그냥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됨.

-배우들 시너지 엄청 잘 맞는다는 느낌 나만 듦? 저 회사 분위기 미쳤는데 그냥?

“···앞으로는 더 편해지겠네.”

이런 평판이 생기면 당연히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한 번이라도 고꾸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까짓 거 실패 안 하면 되지.’

그건 내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 안목은 둘째 치고, 일단 주변에 천재들이 득시글거리잖아.

오히려 실패를 하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다.

“역시 오빠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요?”

민정은 내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싱글벙글 웃었다.

시청률 대박에, 인터넷 반응까지 너무 좋으니, 기분 또한 날아갈 것 같은가 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긴 하지···. 진짜 기분 째지네.’

난 그녀의 잔에도 맥주를 따라주곤, 서로 잔을 부딪혔다.

스탭들도, 배우들도, 죄다 축배를 들고 있으니 우리도 들어야지.

“축하해요, 민정 씨.”

“고마워요. 그리고 저도 축하해요, 낭중님.”

“···.”

“하하.”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곤 술잔을 기울였고, 나도 피식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역시 축배라서 그런지 더욱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 좋은 평판의 이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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