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32화 (132/170)

< 누나들의 심장을 조져버리는 소년들 >

HJ엔터의 대회의실.

아버지와 윤본부장님, 그리고 최팀장님과 나를 비롯해, 영상팀과 공연팀, 홍보팀, MD, 팬 마케팅팀, 사업기획팀 등 많은 직원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모두 현지의 투어 때문.

어떤 굿즈를 어떻게, 얼마나 판매할 지, 공연 티켓은 또 어떻게 판매할 지, 홍보와 포스터는 어떻게 할 지, 공연장을 어떤 식으로 꾸미고 공연 연출은 또 어떻게 할 지 등등.

회의할 건 산더미 같이 많았지만, 공연에 대한 건 직원들도 이미 다들 베테랑이었기에 회의는 막힘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물론 오늘의 회의는 1차일뿐, 지금의 회의로 다 결정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부분에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의견을 더했다.

가뜩이나 회의할 것도 많고, 대표를 포함해 간부들이 있는 이런 자리에서 다른 이들이 이렇게 한다면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겠지만, 나도 내 위치를 잘 안다.

다들 내 의견을 경청하며, 안 되는 건 그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왠지 지금부터 내게 차근차근 알려주면, 나중에 본인들의 일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읽히는 것도 같은데···.

‘착각이겠지.’

아무튼 다음부터는 더 좋은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우리 매니지먼트팀과 회의를 하는 대신.

회사에서 나와, 집에서 쉬고 있을 현지를 데리러 출발했다.

“현지야, 집에 있지? 회의해야 할 게 좀 있어서 집으로 데리러 갈게.”

-네, 오빠. 근데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안 했지. 너는?”

-저도 아직 안 먹었어요.

“그래? 그럼 이따가 같이 먹자.”

나는 이번에 매니지먼트 실장이라는 직책을 떠나, YU엔터의 김준민 프로듀서와 함께 이번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로서.

공연용으로 맞출 퍼포먼스를 현지와 함께 짜기로 했다.

물론 회의를 토대로 작곡가나 댄서들과 같이 또 회의를 거쳐야겠지만, 그래도 방향 정도는 우리 둘이 정해도 무방하다.

편곡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 안무와 연출은 또 어떻게 할지.

다른 건 몰라도 무대 연출 같은 부분은 아직 어떻게 할지 감도 잡히지 않긴 했는데, 내가 개떡같이 의견을 내면 알아서 쳐내거나,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몰라보게 업그레이드시켜줄 테니 일단 무작정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난 현지의 집 앞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차에서 후다닥 내려야만 했다.

현지가 어머니와 함께 서서 기다리고 계셨으니까.

“어머니, 안녕하세요.”

현지는 멋쩍게 미소 짓고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반갑게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실장님,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얘한테 몇 번이나 데려오라고 말했는데, 얘가 말을 안 했나 보더라고요. 들어와서 식사하고 가세요. 제가 맛있게 차려드릴게요.”

아직 식전이긴 했다.

그리고 설령 밥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쑤셔 넣어야지.

난 반색한 얼굴로 말했다.

“와! 정말요?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네요. 그럼 실례 무릅쓰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하!”

회의는 밥 먹고 하지 뭐.

난 현지의 어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사오는 건데.

***

YU엔터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숙소.

‘스타 아이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최준성과, 같은 그룹으로 데뷔하게 될 멤버들은 거실에 모였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행동과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준성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 곳곳에 리얼리티를 위해 촬영하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

멤버들 모두 딱히 할 게 없었기에 거실로 모여든 것.

준성은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경연 무대까지 섰던 적이 있으니 긴장은 되지 않았으나, 이들은 이런 촬영이 처음일 터.

데뷔를 준비하며 이들에게 많이 의지하며 배웠으니, 이제는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준성은 리더이자 맏형인 진용에게 말했다.

“형, 드리머 선배님들 오늘 음방 무대 한 거 봤어요?”

“···선배님들 이름 말해도 돼?”

카메라를 흘끗 쳐다보며 조심스레 말하는 진용에게, 준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될 게 뭐 있어요. 좋아하는 선배님들 무대 얘기하는 건데. 그리고 촬영 중에 하지 말라는 것 중에 다른 선배님들 언급하지 말란 말도 없었잖아요. 만약 문제될 것 같으면 편집해주시겠죠. 우린 그냥 편하게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진용에게 한 말이었으나, 다른 멤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제서야 다들 그리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서서히 얼굴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진용은 준성에게 앞선 질문에 대해 답했다.

“나는 아까 당연히 봤지. 근데 그건 왜 물어봐? 너 혹시 몰래 무대 봤냐?”

“···아뇨. 너무 보고 싶어서요. 형이랑 애들이 자꾸 엄청 좋다고 하니까 계속 궁금해지잖아요.”

멤버들 사이로 웃음소리가 번졌다.

최준성은 멋지고 강렬한 무대를 보는 게 아직까지도 금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HJ엔터의 신인 보이그룹 ‘드리머’ 선배들의 무대를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직도 아이언 메이든 포스터는 옷장 속에 돌돌 말려 있어요. 펼쳐보지도 못했다니까요?”

그저 돌돌 말린 것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추억할 뿐이었다.

진용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박한울 실장님한테 여쭤봐. 데뷔하고 음방 돌다 보면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실장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진 절대로 안 된다? 알지?”

“어휴···.”

선생님들도 나쁜 습관은 다 고쳤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나 재발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아직까지도 금지를 풀어주지 않았다.

데뷔도 앞두고 있는데 괜히 풀어줬다가 혹여나 잘못되면 선생님들한테 책임이 생길 수도 있기에, 그저 책임질 일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긴 했지만.

“사실 멋있는 건 거울로도 매일 보고 있긴 한데···.”

“···준성아, 넌 진짜 금지다. 절대 절대 안 돼. 알겠지?”

때론 책임 회피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법.

선생님들은 매우 현명했다.

***

현지와 회의를 마치니 어느새 밤이 다 됐다.

딴짓도 최소화하며 얘기했는데도 이렇다.

얘기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녀도 단독 콘서트와 투어에 대한 기대가 무척이나 컸던 모양이다.

아이디어들이 끊이질 않아.

어쨌든 이제 회의도 끝났으니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는데.

유난히 이곳에서 그와 많이 마주치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두 번째 싱글로 컴백을 앞두고 있는 장찬수.

연습을 방금 막 끝냈는지 길게 자란 머리칼에 물기가 흥건하다.

그의 옆에 있는 1팀의 매니저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붙였다 뗐다 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보나마나 부탁일 게 뻔했다. 우연히 마주친 김에 찔러나 보자는 거겠지.

녹음과 뮤비 촬영까지 다 끝냈다 해도 앞으로 무대를 서야 하니까.

보컬과 댄스는 언제나 개선할 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얘기를 꺼낸 건 그 매니저가 아니었다.

장찬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장님. 죄송하지만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한 번 무대 하는 것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이제 컴백이라서 실장님께 점검 좀 받고 싶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현지 데려다줘야 해서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1팀의 매니저가 득달같이 내 말허리를 끊으며 말했다.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찬수야, 넌 집에 혼자 갈 수 있지?”

“네.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요. 전 괜찮아요.”

좋은 매니저 뒀네.

난 피식 웃으며 현지를 바라봤다.

그녀는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괜찮아요.”

난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저렇게 성공을 열망하는 눈빛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니까?

방금 전에 연습을 끝마쳐서 피곤하고 힘들 텐데, 장찬수의 얼굴 위로는 열의가 넘치도록 흐르고 있었다.

***

사전녹화를 위한 리허설.

장찬수는 리허설을 앞두고 며칠 전 들었던 박실장님의 말을 또다시 떠올렸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데,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아직 신인이라 그게 생각대로 되진 않겠지만, 그 마음이랑은 별개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건 조금 여유 있는 모습이 더 좋을 거예요. 집어주자면, 도입부랑 첫 번째 후렴 파트.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찬수 씨 같은 경우는 힘을 빼면 보는 사람한테 임팩트가 더 강하게 느껴질 겁니다. 이미 갖고 있는 에너지가 크니까요.’

그의 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그의 말을 들은 뒤에 일전에 찍었었던 연습 영상을 다시 보니, 확실히 다급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참고하며 다시 찍어서 보니, 정말로 임팩트가 더 강해진 게 보였다.

“찬수야, 잘할 수 있지? 파이팅 있게 해! 앞에 팬들이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힘내서 최대한 빡세게 해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불어넣는 강팀장님.

박실장님의 조언대로 힘을 뺄 생각이지만, 그래도 강팀장님의 말 속에 담긴 마음과 의도는 알 수 있었다.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찬수는 어깨를 한쪽씩 크게 들썩이며 굳어지려는 몸을 느슨하게 풀었다.

“장찬수 무대 올라갈게요.”

“찬수야, 파이팅! 잘하고 와!”

후- 짧게 숨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고.

무대 위로 채 올라가기도 전에 팬들의 찢어질 듯한 함성이 귀에 꽂혔다.

씨익,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무대 위로 올라가 팬들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순간 낭패감이 느껴졌다.

팬들이 응원해주는 모습에 힘이 불끈 차올라서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 번 해봐야지.’

팬들의 도움을 구하고자,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입을 열어 말했다.

“얼마 전에 힘을 좀 빼라는 조언을 받았는데··· 큰일이네요. 여러분들을 보니까 너무 힘이 나는데, 어떡하죠?”

하지만 정말로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팬들의 기운이 화산처럼 폭발해, 함성이 몇 배는 더 커졌으니까.

.

.

.

한편.

대기실에 있는 TV로 우연히 장찬수의 무대를 보게 된 최준성.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봐버렸네?”

그것도 보통 무대도 아니고.

장찬수의 팬덤을 커다랗게 부풀리게 만들, 엄청난 무대를.

“망했다···.”

***

[장찬수의 화려한 컴백! 팬심을 불지르는 무대 선보여.]

[‘스타 아이돌’ 준우승자 최준성, 보이그룹 ‘미라클’로 돌아오다!]

[HJ 신인 보이그룹 ‘드리머’ 마지막 음방무대 마쳐. 유의미했던 활동을 돌이켜보다.]

오늘을 끝으로 데뷔곡 활동을 끝낸 ‘드리머’.

두 번째 싱글로 컴백한 장찬수.

그리고 최준성과 함께 데뷔한 YU엔터의 보이그룹 ‘미라클’까지.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기에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계속 화제가 되고 있었으며, 팬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찬수야 너 이렇게 섹시하게 컴백해서 누나 마음 조져버리면 어떡해! 누나 진짜 힘들어ㅠㅠㅠ

└ㅋㅋㅋㅋㅋㅋ언니 진정하세요ㅋㅋ

-우리 드리머! 열심히 활동하느라 수고했어~ 이제 푹 쉬어!^^

-힐링할 수 있게 라이브 방송은 자주 해주고ㅠㅠ

-미라클 애들 리얼리티 좀 사람들이 많이 봐주면 좋겠다···. Hoxy··· 한 번 보고 가싈? 안구정화 100% 보장 가능!

└이렇게 쓰니까 왜 이렇게 믿음이 안 가냨ㅋㅋㅋ 음방은 봤는데 애들 열심히 하고 귀엽긴 하더라.

난 며칠 전에 한 번 봐줬던 장찬수의 무대를 보기 위해, 그리고 ‘미라클’의 무대를 보기 위해 음방을 본방으로 시청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반응을 대충 살폈는데.

역시나.

“반응이 안 좋을 리가 없지.”

장찬수는 눈에 띄게 좋아진 게 보였고.

드리머는 그간의 활동 경험이 헛되지 않았는지, 데뷔무대 때보다 한층 더 노련해졌으며.

미라클 또한 크게 성장할 싹을 보이며 데뷔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준성의 안색이 좀 안 좋긴 했는데, 처음이라 긴장해서 그런 거겠지.

‘근데 설마 내가 보지 말라고 했다고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직까지 그러려고.”

말도 안 되지.

순간 자의식 과잉이 될 뻔했다.

< 누나들의 심장을 조져버리는 소년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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