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30화 (130/170)

< 와. 진짜 유치하다···. >

송하연과의 약속 시간은 점심 이후인데, 아침 일찍부터 준비에 나섰다.

옷은 뭘 입을 지, 머리는 어떻게 스타일링할 지, 쇼핑이 끝나고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등등.

고민할 게 많았다.

“···유난이네.”

스스로도 유난을 떨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 단지 선물을 받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그동안 너무 일만 해서 그런지, 이런 적이 너무 오랜만이라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내가 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걸 알면 송하연도 어색하게 웃으며 사이가 살짝 멀어질지도 모르지.

‘착각은 하지 말자.’

난 거울을 보며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

이건 데이트가 아니다. 그러니 선을 지키자.

손목에 채워진 시계, 그리고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지갑처럼, 이 또한 같은 거다.

본부장님에게도 미리 말을 해놨다.

보고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테니까.

어차피 돌아다니다 보면 사진을 찍힐 게 뻔하니, 홍보팀도 미리 대비를 하면 좋지 않겠는가.

난 차 키를 손에 들고 집밖을 나섰다.

***

“머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진짜!”

실장님과의 약속 시간은 점심 이후지만, 송하연은 아침 일찍부터 바빴다.

며칠 전부터 미리 어떤 옷을 입을지, 머리와 메이크업은 어떻게 할지, 식당과 카페를 어디로 갈지 다 정해 놨었다.

그런데, 머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항상 하던 대로 고데기를 했는데, 왜 오늘따라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냥 다시 감을까.”

팔이 너무 아파오긴 하나, 그래도 예쁘게 보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에게 딱히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고, 실장님이 일도 너무 잘하며, 자신이 남자를 너무 안 만나다시피 하고, 단둘이 붙어 있던 시간이 많아서 좋아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도 착각이나마 좋은 기분으로 데이트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됐으니, 이왕이면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아마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실장님은 깜짝 놀라며 거리를 둘 것이 뻔했다.

송하연은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들키지 말자.’

착각으로 찾아온 설렘이 반가운 것뿐, 좋아하는 건 결코 아니니까.

하연은 망한 머리를 반묶음으로 해결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직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이 보였지만 그래도 다시 고칠 시간은 없었다.

평소에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지켰던 습관 때문에, 그녀는 약속 시간까지 30분을 남기고 식탁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그녀를 태우고 백화점으로 향하는 길.

나는 환상적으로 예쁘게 꾸민 그녀를 슬며시 보며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어떤 거요?”

“왜 턱시도예요?”

하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입을 일 많으실 것 같아서요. 앞으로도 눈에 띌 일이나 카메라에 잡힐 일도 많을 테니까 예쁜 거 입으면 좋잖아요. 시상식 때 입으셔도 되고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긴 시상식만 해도 일 년에 몇 개나 참석해야 하는데, 그때 입으면 딱이긴 하겠다.

이번에는 집에 있던 정장 한 벌로 쭉 입었으니까.

우리는 백화점에 도착한 뒤 주차장에서 나와,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이미 선물에 관한 것은 인터넷에 쫙 퍼졌으니 상관없었으며, 회사에서도 미리 알렸으니까.

주위에 시선이 쏠리는 게 불편하긴 하겠으나, 얼굴을 숨기며 쇼핑해봤자 불편하기만 하고, 그래봤자 결국 들킨다.

그러느니 이렇게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편이 낫지.

“여기요. 여기서 한 번 입어보세요.”

“여기···요?”

주위에 한가득 쏠리는 시선 속에서 난 당황스러운 눈으로 브랜드 명을 쳐다봤다.

여유는 되지만 돈이 아까워 단 한 번도 사보지 않은 명품 브랜드였다.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솔직히 돈으로 환산하면 실장님 덕에 제가 얻은 게 더 많아요.”

옅게 미소를 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물해주는데 명품이 아니면 제 체면이 안 서잖아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이미 핸드폰 렌즈가 우릴 찍고 있기도 하고.

난 마지못해 매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주변에 썰을 풀 생각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매장 직원과, 송하연의 거듭되는 추천에 여러 벌을 입으며 패션쇼 아닌 패션쇼를 해야만 했다.

한 매장에서 몇 개를 입는 건지.

“이것도 괜찮은데··· 음. 다른 데도 한 번 둘러보고 올까요?”

그렇게 옆 매장, 옆옆 매장을 돌아다니며 몇 개의 명품 브랜드를 싹 훑었다.

벌써 두 시간이나 흘렀는데, 어째 체감으로는 다섯 시간 이상이 흐른 것 같다.

“실장님, 피곤하세요?”

“아뇨, 배가 좀 고파서요. 피곤하진 않아요, 전혀.”

“그럼 입었던 것 중에 하나 빠르게 고르고 나가요.”

“네.”

그렇게 우린 30분이라는 시간을 더 쏟고 나서야 한 벌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그녀는 고민되던 것 중에 한 벌만 더 사자고 했는데, 그 이상은 부담이었기에 에둘러 거절했다.

“역시. 기사도 엄청 떴네요.”

차에 타고 나서 인터넷을 확인해 보니, 인터넷엔 이미 우리에 대한 얘기로 한가득이었다.

명품관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당당해서 그런지 사람은 그닥 몰리지 않았지만.

“실장님.”

“네?”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옆을 바라봤다.

그녀는 살짝 지어진 눈웃음으로 차분하게 물었다.

“배고프다고 하셨죠?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난 인터넷을 살피던 걸 그만두고는 입을 열었다.

시선들도 신경 쓰이고 조금 지치기도 해서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일단 식사 메뉴보다는 이게 먼저지.

“선물 고마워요. 잘 입을게요.”

그녀의 눈웃음이 더욱 진해졌고, 입가에도 진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 특별히 더 예뻐서 그런지 뚫어져라 쳐다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난 시선을 앞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그··· 하연 씨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몇 군데 알아오긴 했는데.”

“정말요? 어디요? 사실 저도 알아온··· 알고 있는 데가 좀 있거든요.”

반색한 얼굴로 되물어오는 그녀.

우리는 짧게 얘기를 나누며 식당을 정했고, 차를 출발하니 지쳤던 몸이 어느새 활력으로 꽉꽉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

“얼씨구!?”

넷플릭스 드라마,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의 제작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예상 질문지를 살피고 있던 정채희.

그녀는 인터넷에 쫙 깔린 사진들을 보고선 실소를 터뜨렸다.

“난 일하고 있는데 지금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내일 예능 촬영인 것도 까먹은 거 아냐?”

엄밀히 말하면 송하연은 담당 연예인도 아닌데, 저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아무리 둘 다 쉬는 날이라도 그렇지.

“얼마 전에 스캔들도 터진 분이 조심할 줄도 모르고.”

채희는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떡볶이 가게로 연락했다.

내일 예능과, 며칠 뒤에 있을 제작발표회에서 살쪄 보이면 전부 다 박한울 탓이다.

“나도 엄청 비싼 걸로 사줄 걸···. 이제 돈 많은데.”

채희는 떡볶이를 흡입하며 실시간으로 SNS를 살폈다.

“아니, 편의점에서 5분 동안 골라도 힘들어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무슨 두 시간이 넘도록 있어? 와, 그러면서 웃고 있네?”

냉장고에 있던 맥주까지 꺼내어 마시고는, 궁시렁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엄청 꾸며서 갔네. 무슨 데이트야? 좋아 죽네, 아주. 난 일하고 있는데, 솔로 서러워서 살겠나 진짜.”

정확히 말하면, 그녀도 지금 일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채희에게 있어 그런 사소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

밥을 먹고 카페까지 갔다가 밤이 되어서야 그녀의 집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젠 헤어져야 할 때.

그녀는 벨트에 손을 올린 채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는 벨트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실장님, 저 이제 공연 잡고 있는 거 아시죠?”

당연히 알고 있다.

팀 회의 때 다 들은 내용이니까.

국내 콘서트를 시작으로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공연하기로 했다.

단독 콘서트도 물론 하지만, 각 지역 페스티벌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무대를 가질 예정이었다.

“네, 알아요. 애리조나에서도 공연하시죠?”

이번에 1회를 개최하는 페스티벌, ‘애리조나 뮤직 페스티벌’.

처음이라 그런지 규모는 작지만, 지역에 한인들도 많고 바로 옆에 있는 캘리포니아에 공연도 있었으니 흔쾌히 수락했었다.

힙합, 팝, K팝, 그리고 락과 EDM까지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로 무대를 꾸민다고 했는데, 장르를 이렇게 막 섞으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에게는 좋은 거지만.

“아, 네···. 근데 그···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공연하면 작곡가나 프로듀서도 가끔 놀러 오기도 하더라고요.”

갑자기 해외 공연 얘기를 왜 꺼내나 했는데, 이제 알겠다.

올 수 있으면 와달라는 거겠지.

난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했다.

국내를 시작으로 투어를 도는 건 현지가 먼저다.

게다가 심민정은 한창 촬영 중이며, 채희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바에야, 못 갈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겠지.

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케줄이 없으면 국내 콘서트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외는 잘 모르겠어요.”

내 대답에 잠시 떨리던 눈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아, 하긴 그렇겠죠? 스케줄 맞으면 좋겠네요. 국내에서 콘서트 할 때라도요.”

“네.”

그녀는 바로 벨트를 풀고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늘 재밌었어요.”

“네, 저도 재밌었어요. 하연 씨도 잘 들어가요.”

문이 닫히고 걸음을 옮기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출발하려고 할 때.

지이잉-

최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데려다줬냐고 물어보려는 거겠지.

참,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네, 팀장님. 하연 씨 지금 막-“

말을 이으려 했는데, 최팀장님은 내 말을 끊으며 기쁜 기색으로 말했다.

-한울아! 애리조나 페스티벌에서 현지한테도 섭외 왔다!

“네?”

-원래 예정돼 있던 래퍼 한 명 있었는데, 인종차별 발언이 논란돼서 페스티벌에서 제외됐다네? 하하! 근데 거기 직원 중 한 명이 현지 팬인가 봐. MBS 가요축제 무대 보여주면서 강력하게 추천해서 섭외한 거래.

오래 활동한 송하연은 해외 곳곳에 두터운 팬층이 있지만, 현지는 아직 송하연의 해외 팬덤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이라면 거대한 팬덤이 있긴 하나, 아직 미국 쪽은 아니지.

현지도 LA에서 콘서트를 열 계획이긴 하나, 거긴 한인들과 K팝 팬들을 위해 가는 거지, K팝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을 위한 공연이 아니다.

그러니, 이건 현지에게 있어 미국 내의 팬덤을 늘릴 기회인 셈.

비록 페스티벌의 규모는 작을지라도, 거기엔 직접 찾아 듣는 K팝 팬들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관객들이 올 것이다.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나 일단 첫 발을 내딛는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그때 저도 같이 갈게요.”

-그래. 나중엔 나 없이도 혼자 갈 수 있게 잘 봐둬.

통화를 끝마치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곡가나 프로듀서로는 못 따라간다고 했지만, 같은 팀 매니저로서 못 따라간다고는 말 안 했지.

난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가는 걸 느끼며 핸들 위로 손을 올렸다.

***

다음 날.

넷플릭스 드라마 홍보차 예능을 촬영하기 위해 채희와 함께 방송국에 도착했다.

박송이와 더불어 다른 배우들도 같이 출연하기로 했으니 채희도 더욱 편하게 녹화에 임할 수 있을 터.

아니, 분명 그랬어야 할 텐데, 녹화 직전인 지금까지 그녀의 얼굴은 불만으로 크게 얼룩져 있었다.

“야. 내가 그렇게 크게 잘못한 거냐?”

이미 차에서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녀가 이렇게 표독스러운 얼굴을 한 이유는 어제 하루종일 송하연과 돌아다닌 것 때문이었다.

“큰 잘못 맞죠! 제가 괜히 그러는 줄 알아요? 다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 사람들한테 오해 안 받는다니까? 인터넷 반응들도 다 호의적이구만.”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스크린 샷으로 저장해둔 사진들을 하나씩 넘기며 읽었다.

“’저거 다 위장이다. 사실 연애 중일걸?’, ‘박한울 대체 왜 저러냐 진짜. 매니저면 연예인한테 껄떡대지 말고 일에나 충실해라.’ 등등. 제가 차마 마음이 아파서 못 읽는 거지, 더 심한 악플도 꽤 있거든요? 세상에 다 착한 사람들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삐딱하게 보려면 얼마든지 삐딱하게 볼 수 있다니까요?”

-라고 지금 가장 삐딱하게 보고 있는 사람이 말했다.

“악플 때문에 또 어떻게 일이 커질지도 모르고, 분위기 어수선해지면 오빠 마음도 불편할 거고, 그럼 같이 있는 저도 영향 받잖아요. 진짜 걱정돼서 그렇다니까요?”

그런 걸로 고생했을 거였으면, 이미 얘랑 선물 주고받은 것도 크게 문제가 됐겠지.

“그리고 이제 드라마 홍보도 하는데 엄청 나쁜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악플 남기고 그러면 어떡해요.”

이때다 싶어 쓸데없는 걱정을 줄줄 쏟아내는 채희.

입에 기관총이 달려 있는 듯했다.

심지어 옆에 박송이가 팔짱 끼고 서 있는데, 온 줄도 모르고 있다.

“채희야···. 우리 쉽게 쉽게 살자. 선플 백 개 있으면 그중에 겨우 악플 한 개 달린 거잖아. 그 정도는 예수님한테도 달려.”

“뭐라고요!? 선배님! 선배님도 들었죠! 저보고 세상 참 어렵게 산다고 한 거 똑똑히 들었죠?”

옆에 박송이가 와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보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날 갈구느라 인사를 뒤로 미룬 거였어.

근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아주 왜곡도 수준급이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잖아.”

“방금요! 방금 그랬잖아요! 선배님도 들으셨잖아요. 그쵸?”

제 편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모양인데.

박송이는 그저 한심하게 우리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왜곡을 하는 채희와 더불어, 정확한 사실만을 말하는 나까지도 함께 묶어서!

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시라송이 씨는 왜 또 그렇게 보십니까?”

그녀는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가 뭘요. 이렇게 착한 눈빛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지금 역시 전혀 착한 눈빛이 아니다.

그래, 뭐 이런 상황에 놓여본 게 어디 한두 번인 것도 아니고.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이를 본 그녀 또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좀 더 강하고 빠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

그제서야 비로소 패배를 인정하고 자조적으로 혀를 차며 줄행랑을 치는 시라송이.

난 그 뒷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훗. 내가 이겼어.”

박송이와도 상당히 친해졌기에, 그저 가볍게 친 장난이긴 했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내 귀에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와. 진짜 유치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채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죽고 싶어졌다.

< 와. 진짜 유치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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