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바닥 영향력이 최고 수준 >
큰 호응을 얻으며 끝이 난 ‘스타 아이돌’.
한 명의 빅 스타를 조명하며 나머지가 들러리가 되는 것이 아닌, 마지막 네 명의 참가자 모두 각자 팬덤이 있었기에 결선은 더욱 흥미로웠으며 팬들을 고취시켰다.
결과 또한 근소한 차이로 결정됐으니 그 과정에서의 짜릿함은 말해 무엇하랴.
결국 이러한 관심들은 시청률로 치환되었고, 화제를 생산해냈다.
[‘스타 아이돌’ 우승자는 송하니! 송하연과 함께 빅스타의 길로?]
[준우승 최준성,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했다.” 송하니에게 박수 보내.]
[끝까지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은 3, 4위를 채가는 곳은 어디? ‘스타 아이돌’이 남긴 대어.]
[귀추가 주목되는 데뷔 일정. 우승자 송하니는 과연 언제 데뷔할까?]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사거리가 되고, 추측성 발언 또한 사람들의 입에서 쉼 없이 오르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프로그램을 시청한 사람들의 뇌리 속에 완전히 박혀버린 사람이 또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바로 박한울.
네티즌들은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기적’ 혹은 ‘빛’이라며 여러 가지 합성 짤이나, 편집 짤을 만들기도 했다.
-돌이켜보자, 박한울의 안목과 조언. 끝까지 다 본 사람으로서 박한울의 말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그저 빛.
-아닠ㅋㅋㅋ 저런 사람이 어떻게 실장임? 걍 회사 차려서 다 씹어먹으면 되는 거 아님?
└맨손으로 회사 차려서 성공하는 게 쉬운 줄 앎?ㅋ 그리고 이제 걍 HJ 박한울 거나 다름없음. 어차피 대표 될 거ㅋ
-실화냐? 결국 박한울이 진짜 괜찮다고 말한 애들만 남아서 서로 경쟁했음ㅋㅋ
-우리 기적이 형 말대로 하니까 딱딱 되는 게 개소름임. 특히 최준성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울었다. 왠지 포스가 진짜 락 스타 같았음.
이렇게 박한울의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도, 그리고 능력에 대한 평가 등 모든 측면에서 수직상승을 그리긴 했으나.
그가 소속된 HJ엔터는 오디션의 끝과 함께 약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박한울에 대해서가 아니라, 결선의 결과에 대해서.
“됐어! 고팀장님! 하니 일등입니다!”
“와아! 대박! 하하하! 팀장님, 송하니 우승이에요!”
송하니가 우승을 결정지은 순간, 생방송으로 이를 보던 2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송하니가 들어갈 걸그룹을 2팀이 맡기로 하고, 곧 데뷔할 보이그룹을 3팀이 맡기로 했으니까.
명분상으로는 장찬수가 최근에 1본부에서 데뷔했으니, 이번엔 2본부의 차례라는 거였지만.
이는 명분일 뿐,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실질적인 이유는 너무 2본부에 스타들이 치우쳐 있다는 것 때문.
2팀과 3팀, 이렇게 두 팀이 서로 비슷한 사정에 있었으니 본부 차원으로 그룹을 배정한 것이었다.
3팀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반대로 3팀에 배정됐다 하더라도 2팀이 억울해 했을 터.
사회가 늘 그렇듯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한팀장.”
고팀장은 기쁨을 터뜨리는 팀원들을 뒤로 하고, 3팀의 한팀장을 불렀다.
“고팀장님. 축하드립니다.”
아까워 죽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3팀의 인원들과는 달리, 한팀장은 꽤나 담담하게 축하를 건넸다.
어쨌건 같은 회사 식구가 잘나가는 건 좋은 일이니까.
“잠깐 담배 한 대 피러 갈까?”
“···네, 그러죠.”
옥상에 올라온 둘은 담배를 한 모금 내뱉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번에 박실장이 손 좀 보탠다면서?”
“네, 다행이죠. 한울이가 손만 대면 대박이니까 걱정은 덜었습니다. 언론으로 띄우기도 가능하고요.”
“애초에 박실장이 묶어서 만든 그룹 아냐. 애들 훤칠하고 잘생겼던데.”
“지금 데뷔 확정돼서 의욕도 넘치고 있어요. 거의 축제 분위기라니까요? 하하.”
걸그룹을 배정받기 위해 잠깐 신경전을 벌이며 경쟁을 하긴 했지만.
서로 추잡한 짓은 하지 않았고, 쓸데없이 선을 넘어 신경을 긁지도 않았다.
짧은 기간, 위에서 거의 통보하다시피 내려온 결정이기 때문에 아쉽긴 해도 서로 감정이 상할 것은 없었다.
한팀장은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고팀장을 힐끗 보며 씨익 웃었다.
“잘해보려고요. 어떻게든 성공할 생각입니다. 한울이 부럽지 않게.”
“···그래, 우리도 박실장처럼 할 수 있지. 못할 거 없어.”
고팀장과 한팀장이 이렇게 오피스 드라마를 찍듯 분위기를 잡고 있을 때.
한팀장의 핸드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내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잠시만요, 한울이 전화라서.”
“그래.”
“어, 한울아.”
옥상 너머, 저 멀리로 삭막하고 화려한 도심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던 고팀장은.
“어···? 뭐···. 아니 진짜? 정말로!?”
점점 커지는 한팀장의 목소리에 고개가 슬며시 돌아갔다.
목소리를 따라서 얼굴 역시 점차 화색을 띠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는 아예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방금 전까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던 한팀장은 어느새 승부욕이 활활 불타오르는 눈이 되어 고팀장을 마주 바라봤다.
“희소식이네요. 저희 애들,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요.”
***
다음 달 월말평가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우리 회사의 보이그룹이 이제 데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서두르는 편이 좋았으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난 신호석 대표와 곧장 일정을 짰고.
“허··· 참. 내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박실장님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네요.”
한팀장님, 그리고 A&R 박부장님과 함께 홈 엔터를 방문했다.
“왜요. 올 수도 있죠. 그리고 최대한 협조적으로 나올 거라 말했으니까, 최대한 요구하셔도 될 거예요. 저쪽에서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타협하지 마시고요.”
“얼씨구? 잘나간다고 이런 것까지 가르치려 하네? 한울아, 내가 안목은 너보다 못해도 이런 건 전문이야. 걱정 마라. 아주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을 테니까.”
한팀장님은 악당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연습생들을 평가하는 동안, 한팀장님과 박부장님은 우리 보이그룹의 데뷔를 도와줄 메인 프로듀서와 회의를 할 것이다.
나도 나중에는 진행되는 걸 한 번 보기는 할 테지만, 굳이 저 자리에까지 내가 낄 필요는 없지.
한팀장님 말마따나, 알아서 잘하실 테니까.
로비를 걷는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 모았다.
이런 광경은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했지만, 한팀장님과 박부장님은 아니었기에, 둘은 날 새삼스레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타기획사에서 왔는데 경계의 시선이 하나도 없지? 박부장님, 이게 말이 돼요?”
“그러게요. 무슨 일반인들이 연예인 보듯이···.”
난 둘의 반응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뭐 별거라고.
“일상인데요, 뭐.”
“···이 자식 이거 인지도 같은 거 관심 없다고 한 거 뻥이지?”
“하하. 그럴 리가요.”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같은 팀 직속 상사였던 한팀장님이 날 새삼스레 보는 시선이 뿌듯하게 다가왔을 뿐이었다.
여전히 인터넷에서의 반응과 대중적인 인지도 같은 건 별 감흥도 없다.
우리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속된 미팅 장소로 올라갔고, 거기엔 신호석 대표님과 이사, 그리고 본부장이 함께 모여 우리를 반겨주었다.
서로에게 좋은 거래였기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웃으며 대화를 나눴고.
“박실장님, 이제 슬슬 내려가실까요?”
“네, 그러죠.”
마침내, 난 신대표님과 둘이 자리를 옮겨 일행들과 찢어졌다.
이제 연습생들을 보러 갈 시간.
참 내게는 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그에 비해 얻는 건 너무 많은 것 같은 느낌이다.
YU엔터에서도 그렇고, 지금 여기에서도 그렇고.
‘그분들도 다 나처럼 생각하겠지?’
자신은 준 게 별로 없는데, 준 것보다 큰 것을 받았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걸음을 옮기며 슬쩍 바라본 신대표님의 표정에서도 그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염원하던 것을 드디어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구둣발 소리만이 복도를 울리는 가운데, 저 끝 열린 문 틈 사이로 바짝 긴장하며 서 있는 연습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연습실에 들어서, 모두의 얼굴을 한눈에 담을 수 있게 되자.
멋쩍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려고, 퍼포먼스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한껏 꾸민 여자 연습생들이 도열해 있는데.
얼굴들이 말이 아니다.
거무죽죽하게 죽어가는 얼굴.
가슴에 돌이 얹힌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지 입을 오물거리며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리고 있는 이들까지.
“이쪽은 HJ엔터에서 오신 박한울 실장님. 다들 알죠?”
신호석 대표님의 말에 연습생들이 허리를 푹 숙이며 인사한다.
난 그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았죠? 표정들을 보니 제가 몹쓸 짓을 한 것 같네요. 그런데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방송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준비를 제대로 했든 안 했든 별로 상관은 없거든요. 자신이 가진 걸 열심히 보여주는 정도면 괜찮아요.”
난 마련된 자리에 신호석 대표와 함께 앉았다.
“준비는 다 됐습니다, 대표님. 바로 시작하셔도 됩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이의 말에 신대표님이 내게 물었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할까요?”
난 내 격려의 말에도 여전히 죽기 일보 직전의 얼굴을 한 연습생들을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금 뒤에 하시죠. 지금 왠지 집중이 잘 안 돼서요. 커피 한잔 마시고 할게요.”
십년감수했다는 듯 연습생들의 입에서 동시에 안도의 한숨소리가 터져 나오자.
우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연습생들도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지, 슬그머니 미소가 맺혔다.
우리 회사도 아니고, 거래로 하게 된 일이긴 하지만.
앞에 있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피부로 와닿을 정도였으니, 무거운 긴장 정도는 풀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될까요?”
“네, 대표님. 이제 집중이 좀 되네요.”
그렇게 우린 커피 한잔을 마시는 정도의 쉬는 시간을 가진 뒤.
본격적으로 평가를 시작했다.
***
박한울과 A&R 박부장, 그리고 한팀장이 함께 홈 엔터에 다녀온 뒤.
사내 휴게실에서는 박한울에 대한 얘기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근데 박실장님은 담당 외적인 일을 너무 많이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게 왜요? 능력이 좋으니까 그런 거죠.”
“아니 제 말은 손해 같다는 거죠. 박실장님이 공식적으로 담당하신 일만 해도 빠듯하실 텐데.”
앨범 마케팅팀 여직원의 말에 홍보팀 여직원이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차분하게 답했다.
“지금 밖에서 박실장님 평가가 어떤 지 아세요? 여기 사내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호평이 자자해요. 스노우도 그렇고 샴페인 노바도 그렇고, 다른 아티스트들까지 YU엔터만 해도 박실장님한테 도움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직원들마저 칭찬밖에 안 한다니까요? 그리고 이젠 홈 엔터도 마찬가지겠죠.”
“음....”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에게 홍보팀 직원이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같이 작품 했던 감독님들, 작가님들, 제작사, 스탭분들까지도··· 그냥 이 바닥 거의 모든 곳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요. 또 박실장님 손이 닿았던 오디션 참가자들이나 연습생들, 그리고 신인들도 있는데, 이제 나중에 크면 박실장님한테 감사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겠죠?”
“그렇겠죠···?”
“지금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이 바닥 영향력이 최고 수준일 거라는 거예요. 흔히들 말하잖아요. 연예계 바닥은 인맥이라고. 이게 아직도 영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앨범 마케팅팀 여직원은 바보 취급하지 말라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건 저도 다 알죠. 근데 결국엔 실장이잖아요. 담당 연예인들한테 더 신경 쓰면서 팀장이나 본부장으로 승진하는 데 힘쓰는 게 본인한테는 더 나은 선택지 아니에요?”
그때, 한 쪽에서 귀를 열고 있던 앨범 마케팅팀 선배가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끼어들었다.
“남 얘기할 거면 우리 팀 망신시키지 말고 생각을 좀 해봐. 지금 박실장님한테 직책이 의미가 있어 보여? 나중에 이 회사 대표님이 될 게 뻔한데. 그런 직책에 연연하는 것보다 바깥에서 영향력 쌓는 게 몇만 배는 더 이득이라는 거야.”
담당 연예인이 아닌 팀 내부적인 일부터 시작해, 다른 팀들에까지 영향력이 뻗어 있고.
회사 외부에서의 영향력도 엄청난 수준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모두 매우 긍정적인 것들로만.
홍보팀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그분한텐 직책이 의미가 없죠. 특히 우리 회사에서는요. 이제 본인이 대표 맡기 싫다고 해도 우리가 다 같이 밀어붙여야 할 정도거든요. 우리 회사가 업계 최고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려면, 무조건이요.”
이는 휴게실에서 일어난 대화였지만, 곧 사내 전체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금처럼, 그리고 지금보다 더 회사가 잘나가려면, 다음 대표는 무조건 박한울이 해야 한다고.
대표의 아들이라는 이유를 배제하고도.
직원들은 박한울이 대표에 앉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가 싫다면 꿰어서라도.
< 이 바닥 영향력이 최고 수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