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18화 (118/170)

< 그쪽은 저희가 세계 제일 스페셜리스트거든요 >

HJ엔터테인먼트의 월말평가가 끝난 뒤.

연습생들이 모두 나간 연습실에서는 공식적이지 않은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보이그룹 먼저 데뷔하는 편이 낫겠죠?”

신인개발팀장의 물음에 내 쪽으로 시선이 모였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명확했다.

오늘 보인 무대에서 걸그룹 연습생들보다 보이그룹 연습생들의 호흡이 더 잘 맞았으니까.

내 눈에도 보인 게 이번엔 저들의 눈에도 다 보였나 보다.

‘포텐은 걸그룹 쪽이 더 높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걸그룹을 데뷔시키기에 이르다.

그녀들은 아직 호흡을 더 맞추며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하니까.

더구나 오늘은 송하니도 없었지 않은가.

오늘 본 것은 결선 무대를 앞둬 바쁜 송하니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무대였다.

‘보이그룹도 잘만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어.’

포텐이 걸그룹 쪽에 밀린다고는 하나 성공하기에 모자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 또한 내가 짠 멤버들이기도 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땀을 아낌없이 쏟아냈다는 것이 오늘 무대에서 뚜렷하게 보였으니까.

또한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르는 것 아닌가.

예능이나 매력 때문에 팬들이 또 푹 빠질 수도 있는 거고.

난 판단을 내린 뒤, 여기 모인 이들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대표님, 이제 보이그룹은 슬슬 데뷔를 준비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그룹을 데뷔시키라는 내 말을 두고,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다른 실장이 했다면 건방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나도 내 위치를 알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떠나, 이 회사의 핵심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는 게 나다.

비록 매니지먼트팀의 실장이지만··· 대표의 자리 또한 이제 따놓은 당상이라고나 할까.

“벌써? 하하. 올해는 아주 신인 풍년이네?”

이제 올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날 터.

아버지의 말대로 올해 우리 회사는 풍년이었으니 시상식도 기대해볼 만했다.

어쩌면 우리 회사가 알짜배기 상들은 다 휩쓸지 않을까?

“그럼 데뷔 준비는··· 음.”

아버지가 말을 끌기 무섭게, 2팀의 고팀장님과 3팀의 한팀장님이 침을 꼴깍 삼키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1팀에는 장찬수가 갔으니 이제 나머지 두 팀 중 한 팀이 보이그룹을 맡아야 하는데, 걸그룹의 포텐이 더 기대가 되니 보이그룹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반면, 1본부의 김본부장님과 2본부의 윤본부장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본부야 우리 막강한 4팀이 있고, 김본부장님은 말해 뭐 하겠나.

우리 회사의 개국공신이자 기둥인데.

둘은 어느 그룹이 밑으로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렇다고 2팀장과 3팀장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뜩잖은 반응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저런 욕심이 권장되는 직책이기도 하고, 미덕으로 볼 수도 있는 거니까.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매니지 팀은 다음에 정식 회의로 결정하자고.”

“네, 대표님.”

“네, 대표님.”

“그리고 박실장은 잠깐 시간 좀 내지.”

그렇게 회의 아닌 회의가 끝이 나고, 난 아버지를 따라 대표실로 향했다.

소파에 마주 앉자,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며 물으셨다.

“한울아, 혹시 안 되겠냐?”

“···.”

무슨 말일지 알 것 같아서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쟤네 데뷔만 좀 맡아서 해줘. 보이그룹이 초기에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잖아.”

“아버지, 우리 회사 A&R팀도 능력 엄청 좋아요. 절대 무시하실 만한 분들이 아니라니까요?”

“그걸 내가 왜 모르냐. 그래도 손 좀 보태달라는 거지. 방향만 잡고 해주면 되잖아. 응?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네 회사 될 거야. 너 말고 누가 이 자리에 앉겠냐.”

“···바쁜데··· 쩝. 알겠어요.”

우리 팀에 들어올 예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묶은 그룹이고, 우리 회사의 소중한 인재들이다.

내가 도맡아서 프로듀싱하라는 것도 아니고, A&R팀에 손을 보태며 방향만 잡는 거라면 어렵지 않을 터.

게다가 어차피, 이제 오디션도 며칠 뒤가 마지막이었으니.

시간이 나는 타이밍도 꽤 적절하다.

‘그래도 좀 피곤하긴 하겠네.’

A&R팀이 나와 작업하며 스텝업을 할 수 있다면 시간을 얼마라도 더 들여도 아깝지 않겠으나, 내 노하우는 다른 사람이 보고 배울 만한 게 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대뜸 보이그룹 명가, 홈 엔터테인먼트에서 보이그룹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라도 하면 모를까.

그럴 리 없을 테니, 내가 이 한 몸 열심히 굴리는 수밖에.

***

갈수록 화제와 관심을 더해가는 ‘스타 아이돌’.

탑10이 발표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이 이어졌고.

드디어 탑4만이 남아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었다.

조용한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최준성은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정말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폼페이에서 공연한 핑크 플로이드의 불후의 명곡, ‘Comfortably Numb’ 라이브 영상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고, 그만 영혼까지 뺏겨버리는 줄 알았다.

그 기타 솔로는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며, 최준성을 무대에 열망하게 만들었다.

시시한 무대가 아닌, 핑크 플로이드처럼 아주 멋진 무대를!

하지만 기타를 치지 못하는 그로서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가장 만만하다고 생각했던 보컬이었다.

‘무대는 기술이 아니야.’

음정이 높게 올라간다고, 그리고 성량이 크다고 다가 아니다.

그보다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준성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여러 무대 영상들을 찾아보며 멋지다고 생각한 아티스트들을 닮고자 했다.

종래엔 힙합과 락이 섞여버리고 말았으나, 그것 또한 자신의 개성.

최준성은 보컬 연습을 정석대로 하지 않아 실력이 조금 떨어질 지언정, 스타가 될 생각에 만연해 있었다.

여러 번 본 오디션에서 모욕과 같은 대우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하하. 지금 웃기려고 하는 거예요?’

‘그만! 장난할 거면 나가세요. 오디션이 물로 보이나.’

‘네, 잘 봤고요. 다음이요. 아니, 다음 거 보여달라는 게 아니라 다음 분이요. 그쪽은 됐으니까.’

최준성에게 ‘스타 아이돌’은 마지막 기회였다.

아니, 사실 스스로도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좌절을 맛봤고, 이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다만 지원을 한 건 일말의 미련이었을 거다.

그런데.

-최준성님. <스타 아이돌> 1차 예선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2차 예선은···.

덜컥 합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미련이 남아 지원한 것일 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 웃음 담당인가?’

만약 박한울 실장이 2차 예선부터 심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아예 합격을 해도 가지 않았을 터.

이 또한 미련이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그 사람이라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은 정말 말도 안 되게도 들어맞고 말았다.

‘지금까지 봤던 참가자들 중에 가장 재능이 뛰어난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박한울 실장님이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해줬다는 것을.

‘박실장이 확실히 안목이 엄청나. 최준성도 원래 1차 예선 탈락인데 박실장이 붙여준 거 아냐.’

‘아, 그거요? 저도 들었어요. 사무실에 회의하러 왔다가 탈락자 영상들 몇 개 보고 살려준 거라면서요.’

‘그러고 보면 그 친구도 운이 좋긴 하지.’

그래서 그가 조언해주는 것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철저하게 지켰다.

2차 예선에서 그가 붙여줬을 때부터 이미 다 지키고 있었지만, 아예 약간의 의심마저 완전히 떨쳐내버렸다.

그러니, 어느덧.

이렇게 우승이 걸린 결선 무대까지 앞두게 되었다.

꽈악.

최준성은 주먹을 움켜쥐며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그 주먹을 꽉 쥔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파란 들판, 파란 들판 꿈이 드리운-‘

작게나마 율동을 따라했다.

속으로 동요를 되뇌이면서.

멋지게 보이려는 마음을 쭉 빼는 데에는 이만한 게 또 없더라고.

***

생방송이 진행되는 공연장.

장내엔 프로그램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는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열광적으로 소리치며 자신이 응원하는 참가자의 이름을 연호한다.

최준성과 송하니를 포함한 네 명의 참가자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그들에게 가는 관심이 무척이나 뜨겁다.

난 심사위원으로서,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다만 냉정한 눈으로 평가를 내릴 뿐이었다.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최준성.

그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눈이 부실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당사자나 주변이나, 인터넷에서나, 모두 내 덕이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피드백을 준 사람들만 해도 지금까지 수십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성향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다시피 한 것 아닌가.

이건 모두 그의 노력과 열정이 이뤄낸 성과였다.

난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그를 바라봤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중 이 무대를 준비하는 데 가장 어려웠을 것이리라.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의 편곡 버전.

보통의 다른 참가자들이 아이돌을 뽑는 프로그램 결선에서 이 곡을 들고 나왔다면, 우승할 생각이 없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모두가 최준성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덕분에 그 어떤 무대보다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리 편곡으로 댄스를 조금 넣었다지만, 과연 이런 명곡을 이런 무대 위에서 노래하면서도 겉멋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

‘제일 중요한 건 절제지.’

난 겉멋을 빼길 원했을 뿐이지, 앞으로도 멋진 공연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그를 두르고 있던 겉멋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었으니, 이젠 이런 무대도 한 번 세워봐야지.

난 그의 성장을 위해 조언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와아아아!”

“최준성! 미쳤다아아!”

그는 무대를 꾸미는 동안 완벽한 절제를 발휘하며.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그 속에 내재된 열정을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음 지었다.

‘이런 게 바로 포텐이지.’

담담하게 춤추고 노래하는데,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야 꽃을 피네.’

공연장은 관객들의 함성으로 가득 채워졌고.

최준성이 내려가며 스크린에 VCR이 비쳤다.

이젠 송하니의 차례다.

***

“우승 축하드립니다.”

프로그램이 완전히 막을 내린 뒤, 제작진들과 우리는 뒤풀이 자리를 가졌고.

나는 홈엔터 신호석 대표님이 넌지시 대화를 요청하는 말에 잠시 가게를 함께 빠져나왔다.

“제가 우승한 것도 아닌데요, 뭐. 하하, 그래도 감사합니다.”

송하니의 우승.

결선이며, 대중들이 원하는 스타를 뽑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100% 시청자들의 투표로 진행됐고.

결국 아주 근소한 차이로 송하니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사촌언니 노래 부르는 건 반칙이긴 한데··· 그래도 뭐 잘했으면 된 거지.’

마찬가지로 최준성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도 저마다의 스토리를 이용한 무대를 꾸몄으니까.

난 신대표님의 축하를 옅은 미소로 받아들이며, 그를 빤히 바라봤다.

고작 이런 축하인사를 건네려고 부른 것 같진 않아서.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왠지 어두워 보였고, 그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저도 욕심이 좀 있어서 말이죠.”

“예.”

“걸그룹으로도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팬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보이그룹을 키우는 것도 보람이 있긴 한데,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걸그룹을 키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하하, 그게 참 마음처럼 되지가 않더라고요.”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작게 혀를 찼다.

사실 말이 좋아 ‘보이그룹 명가’지, 다른 말로 하면 보이그룹밖에 성공시키지 못한 거였다.

시도는 많았는데 전부 다 안 되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실장님께 부탁이 있어요.”

그는 방금 전 그 어두운 얼굴을 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은 사람답지 않게.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며, 소문대로의 그 욕심 많은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 번 저희 회사에 와서 걸그룹 연습생들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YU엔터에서 했던 것처럼 저희 회사에 있는 걸그룹 연습생들과 어울릴 만한 분이 생각난다면 추천 좀 부탁드립니다.”

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그가 뚫어져라 쳐다보는 바람에, 차마 숨길 수가 없어서 아예 힘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씨익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다행이네요. 저도 마침 부탁드릴 게 하나 있었거든요.”

“말씀하시죠.”

내가 해도 되기는 하지만, 우리 회사의 성장을 위해선 내가 모든 걸 도맡아 해서는 안 된다.

결국엔 직원들이 성장해야 한다.

능력 있는 직원들에게 더 큰 기회를.

나는 짧게 요구사항을 말했고, 신대표님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띠며 내 손을 굳게 맞잡았다.

“보이그룹 프로듀싱이라면 걱정 마시죠. 그쪽은 저희가 세계 제일 스페셜리스트거든요.”

< 그쪽은 저희가 세계 제일 스페셜리스트거든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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