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15화 (115/170)

< 1.Not To Worry – 유현지 >

HJ엔터테인먼트 연습실의 구석.

YU엔터에서 온 이효진과 최근에 들어온 송하니, 그리고 근본부터 HJ였던 성윤지와 강해정까지.

모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면 발매되는 유현지 선배의 앨범을 보고 듣기 위함.

이제는 포지션도 정해져, 팀의 리드 댄서를 맡게 된 강해정이 붉은 기가 감도는 작은 입술로 물었다.

“언니는 현지 선배랑 별로 안 친했다고 했죠?”

이효진은 동생이지만 얼굴 아래로는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강해정을 일견하곤.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분위기가 좀 그랬어. 지금 샴페인 노바랑 현지··· 선배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도 다 그 선배님들이 착해서 그런 거야. 데뷔한 다음에 다시 만나서 그런 거기도 하고.”

이효진은 유현지의 컴백을 앞두고, 여기 있는 다른 이들과는 약간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원래 HJ엔터에 있던 강해정이나 성윤지는 그저 후배로서 선배를 동경하는 마음뿐이겠지만, 자신은 유현지를 보면 함께 연습생 생활을 하며 경쟁했던 과거가 떠올랐으니까.

'이제는 하늘과 땅 차이지.'

그나마 이제는 거의 데뷔가 확정이라 다행이었지만 역시 여전히 동경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더 컸다.

‘나도 꼭 성공해야지···.’

이효진은 문득 송하니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과연 유현지를 보고 어떤 마음을 품을까?

사촌이 바로 그 송하연 선배이니,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이 안 들지 않을까?

“하니야. 넌 현지 선배 어떻게 생각해?”

그러나, 송하니의 반응은 이효진의 생각을 크게 벗어나 있었다.

“제 워너비예요.”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하는 송하니.

“···송하연 선배님처럼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아뇨. 언니 보면서 가수 꿈을 키운 건 맞는데, 전 아이돌이 목표잖아요. 현지 선배처럼 되고 싶죠, 당연히.”

언제는 사촌언니를 동경한다고 하더니만.

뭐, 둘 다 동경한다고 보면 편하리라.

“언니, 이제 1분 전!”

앨범 발매까지 1분 전.

그녀들은 하나의 핸드폰을 함께 보며 대기했고.

드디어 6시가 되자, 2개의 뮤직비디오가 채널에 동시에 업로드 되었다.

최상단에 있는 뮤비 노래의 제목은 ‘Not To Worry’.

썸네일엔 머리를 로우 테일로 단아하게 묶은 채 미소 짓고 있는 유현지의 얼굴이 보였다.

“···진짜 예쁘시네.”

“현지는··· 아니 현지 선배는 옛날부터 귀여웠어.”

모두 홀린 듯 썸네일을 눌렀고, 바로 뮤비가 시작됐다.

이전에 냈던 음악들과는 색깔이 조금은 다른 음악.

그것은 음악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드러나, 뮤비를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었다.

무표정, 혹은 카리스마 있거나, 즐기는 표정들이 이전의 곡들에서 주를 이뤘다면.

이번엔 설레고 행복해하는, 평소의 그 순수하고 러블리한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뮤비를 보는 내내, 이 넷은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컨셉이 바뀌면 보통 익숙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되며 별 감흥이 안 들기 마련인데.

역시 박한울의 손을 거쳐서 그런지, 몸에 정말 딱 맞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묘한 익숙함은 아마, 예능이나 실제 모습에서 많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일 터.

이러니 생소함이 느껴질래야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뮤비가 끝난 뒤, 모두가 입을 가만히 벌리고 있을 때.

효진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급하게 말했다.

“···윤지야, 빨리 다음 거 보자.”

“···네.”

이들 사이에서 리더로 거의 낙점되어 있는 성윤지는 효진의 재촉에 의해, 여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다음 뮤비를 틀어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뮤비까지 모두 끝났을 때.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

“···이건 무조건 대박이다.”

“워너비가 너무··· 더 높아진 것 같은데.”

“···이젠 부러운 마음도 안 들어.”

뮤비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씩은 달랐던 마음이.

두 개의 뮤비를 보고 난 이후에는 완전히 똑같아졌다.

질투조차 나지 않는 감탄.

그리고 손댈 수 없을 것 같이 저 멀리서 오롯이 빛을 뿌리는 스타에 대한 동경.

시기, 질투와 같은 끈적거리는 감정은 애초에도 없었으나.

조금씩 뒤섞여 있던 다른 감정들마저 말끔하게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이효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이 정도면··· 남자 팬들은 진짜 난리 났겠는데?”

효진의 말에 멤버들이 동의하며 덧붙였다.

"우리가 봐도 반할 정도였으니까요."

“가뜩이나 팬들 충성심 높았는데 이번엔 더하겠네요.”

"너무 사랑스럽다, 정말. 우리 수록곡 다 들어본 다음에 뮤비 또 볼래요?"

그녀들의 말대로.

전국에 있는, 아니 이제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있는 팬들의 팬심은 그야말로 폭발하듯이 터지고 있었다.

***

[불티나게 팔리는 유현지의 첫 번째 정규앨범. 팬사인회 경쟁 치열!]

[소속사 후배 장찬수 밀어낸 유현지. HJ언테의 축제 벌어지다.]

[음원차트 1위까지 단 5시간! 단단히 대비 중이던 콘크리트 팬덤 밀어내.]

언제나 치열했지만 이번 경쟁은 특히나 더 만만치 않았다.

전에도 물론 곡이 좋고 반응도 좋아서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타이밍이 좋았던 덕분도 있었다.

막강한 콘크리트 팬덤들이 빠져 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다른 회사들의 아이돌이 줄줄이 컴백을 한 상태였고, 홈엔터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막강한 보이그룹 ‘더블티’까지.

쟁쟁한 상대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커뮤니티나 팬카페에서는 축제의 분위기가 만연하게 흐르고 있었다.

축제도 보통 축제가 아니지.

거의 세계적인 페스티벌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광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거다 한울아! 이거야! 이 자식 믿고 있었다고!!!!

-아··· 이제 세상 사람들 우리 현지 귀엽고 사랑스럽고 이쁘고 순수하고 단아하고 아름답고 조신하고 차분하며 골져스하고 원더풀 뷰리풀 큐티섹시한 거 다 알겠네;;; 한울 형님. 이걸 한 앨범에 다 담으면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와ㅋㅋㅋ 10곡 다 타이틀감이넼ㅋㅋㅋㅋ 차트 줄세우기 가즈아!!!!

+

1.Not To Worry – 유현지

2.두 개의 칫솔 – 더블티

3.Happy – 유현지

4.Lock – 더블티

5.긴장해도 돼 – 장찬수

+

녹화 전, 심사위원석에 앉아 차트를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고 늘 새로웠으니까.

그때, 뒤에서 김대훈 대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난리도 아니네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덕분입니다. 좋은 곡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도움은··· 제가 더 크게 받은 것 같아서요. 하하.”

그의 흐뭇한 미소의 원인은 아마 내가 추천해준 최준성 참가자 때문일 터.

방송보다 훨씬 더 빠르게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

최준성은 하루가 멀다 하고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었다.

내가 YU엔터에서 월말평가를 보며 짠 다른 연습생들과 호흡도 맞춰봤을 터.

그게 퍽 만족스러운 모양인지 요새 입가에 계속 미소를 달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다.

“축하드립니다.”

우리에게로 홈엔터 신호석 대표님도 다가와 담담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현지는 홈엔터에서 키우는 보이그룹 ‘더블티’와 1위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현지가 1위에 오른 뒤에 단 한 번도 뺏긴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대형 기획사의 수장이라고 해도 밀리면 반응이 안 좋은 게 당연한 거지.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신대표님.”

나도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지 않고, 그저 옅게 웃으며 축하를 받았다.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다 모이자 비로소 시작되는 녹화.

난 다른 얘기에 앞서 먼저 이 말부터 꺼냈다.

“김대훈 대표님.”

“예?”

“이 넥타이 핀 예쁘죠? 이거 현지가 사준 거예요.”

“···?”

“실장으로 승진한 기념으로요. 그 뒤로 양복 입을 때면 항상 차고 다닙니다. 되게 좋네요.”

“···그렇군요. 예쁘네요.”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촬영은 순조롭게 출발을 알렸다.

***

첫 번째 정규 앨범으로 컴백한 후, 첫 번째 음악방송.

컴백 출연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며.

1위도 거의 확정적이었다.

가수가 컴백했을 때의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

이제 곧 생방송이라 1등 트로피에 대한 생각이 만연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현지는 별로 들뜬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차분하게 의자에 앉아 거울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이를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본 로드 매니저 이정욱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현지야, 피곤하면 눈 좀 붙이고 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안 피곤해요.”

“진짜?”

“네.”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안심시키려는 현지.

그러나 이정욱은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음원차트에서도 1위를 하고 있고, 오늘 음악방송에서도 1위가 예상되는데 이렇게 텐션이 낮은 이유가 피곤하기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벌써 1위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건 아닐 테고.

‘얼떨떨한 건가···?’

어쩌면 피곤한 게 아니라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현지 정도 되면 이 또한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말이긴 하나, 1위를 당연하게 여겨 무덤덤해졌다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하지.

“그런데 현지야, 귀걸이는 왜 뺐어?”

매니저 옆에서 현지를 바라보던 스타일리스트가 거울 앞에 놓인 귀걸이를 보며 물었다.

분명히 아까까진 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빠져 있었다.

아무리 사전녹화를 했더라도 이제 곧 생방송이 시작되면 무대에 올라 음악방송을 찾아와준 관객들을 위해 잠깐이나마 무대에 서야 한다.

1위를 수상할 때에도 무대 앞에 서야 하고.

“약간 불편해서요. 조금 이따 껴도 될까요?”

“그래? 불편해? 다음에 다른 걸로 바꿔줄까?”

“아니에요. 아까 인이어 때문에 귀가 답답해져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때, 슬슬 본방이 가까워지고 있는지, 대기실 바깥으로 어수선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따가 낀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현지는 바로 귀걸이를 껴야 했다.

“현지야, 아직 시간 좀 남았어. 조금 이따 껴도 돼.”

“아니에요, 언니. 지금 바로 낄게요.”

***

“늦었네.”

방송 녹화 전에 미리 현지에게 연락했었다.

리허설을 할 땐 못 가겠지만, 늦어도 관객 입장 전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데 녹화가 예상보다 훨씬 더 늦게 끝나버렸다.

방송이 뭐 그렇지, 젠장.

시간은 이미 음악방송이 모두 끝나버린 뒤.

신호가 걸릴 때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현지가 1위를 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서 바로 축하해줬어야 했는데.'

이래서 확실히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거다. 제길.

그래도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공개홀을 떠나진 않은 것 같다.

아까 녹화가 끝나자마자 출발한다고 톡을 보냈으니, 먼저 갈 거였으면 나한테 다시 연락을 줬겠지.

비로소 공개홀 앞.

아티스트의 퇴근을 기다리는 팬들로 인산인해인 곳에는 현지의 팬들로 보이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난 재빨리 주차를 하고는 공개홀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양복을 입고 이곳에 오긴 처음인데.

얼굴이 너무 팔린 건지, 날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대충 인사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빠르게 올라, 4층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현지의 단독 대기실.

“어? 실장님?”

“하아. 하아. 어, 정욱아.”

문을 벌컥 여니, 이정욱의 놀란 얼굴이 날 반겼고, 난 숨을 몰아쉬며 현지를 바라봤다.

1위를 한 게 굉장히 기쁜 모양인지 얼굴에 아주 웃음꽃이 활짝 폈다.

“뛰어오셨어요?”

현지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풀썩 앉았다.

“당연히 뛰어왔지. 늦었는데.”

“아니, 실장님 오늘 못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황당해하며 묻는 이정욱에게 난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늦은 것처럼, 원래 방송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기 때문에 굳이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나 때문에 괜히 스케줄에 지장을 줄 수도 있으니까.

대신 현지한테는 말했다.

그래도 그간의 경험으로 보건대, 일찍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하필... 최준성이 오늘 울음을 터뜨릴 줄은 몰랐지.

그것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체됐다.

김대표님한테 좀 더 나중에 추천해줄 걸 그랬나.

아무튼 그래도 이 정도면 세이프다.

“정욱아, 현지 오늘 스케줄 더 없는 거 맞지?”

“네. 집에서 잠깐 쉬었다가 또 음방 준비하러 가야 합니다.”

우리는 타 회사들처럼 그리 빡빡하게 일정을 잡지 않았다.

하루를 온종일 잡아먹는 음악방송 특성상, 대기시간에 예능이나 다른 스케줄을 뛰는 아티스트들도 있으나.

정말 그건 못할 짓이지.

하루이틀이면 모를까 짧으면 2주, 길면 몇 달이나 그런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 체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혹사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방송이 잡힌 날엔 아무 스케줄도 잡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활동이나 인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거든.

“그럼 이제 너도 스탭들이랑 같이 퇴근해. 현지는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네? 괜찮으시겠어요? 실장님도 녹화 끝나고 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피곤은 무슨. 앞으로 너보다 더하겠냐? 가라고 할 때 그냥 가. 지금 바로.”

입꼬리를 살짝 씰룩이던 그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다른 스탭들과 함께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 팀에 로드 매니저가 많긴 하나,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일이 안 피곤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의 말대로 내 사정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나름 짬을 좀 먹었다고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몸이 조금 무거울 뿐이지, 눈꺼풀은 전혀 무겁지 않았으니까.

“그럼 우리도 이제 갈까?”

“네.”

표정을 보니 역시 1위를 한 게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하긴, 지금 난리도 아니지.

차트도 그렇고 인터넷 반응도 그렇고.

뮤비 조회수도 한국팬들과 일본을 비롯한 해외팬들 덕분에 기세가 죽지 않고 쭉쭉 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대성공.

“현지야, 창문 열어줄까?”

“네. 인사할게요.”

이정욱이 현지를 태우고 온 차를 타고 먼저 훅, 빠져나갔기 때문인지.

현지의 팬들은 어리둥절해하거나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언제나 퇴근길에 인사를 하고 갔었는데, 오늘은 인사도 해주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이번 앨범을 통해 얻은 것들 중 나를 가장 흐뭇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팬들의 반응.

우회전으로 방송국을 느릿느릿하게 빠져나가는 길에 창문을 활짝 열자.

“어···? 어어! 우와아아!”

“현지야! 수고했어어!”

"1위 축하해요!"

언제 시무룩했었냐는 듯이 표정들이 환하게 펴져 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 현지의 너머로 날 발견한 팬들이 이젠 나에게까지 말을 걸어왔다.

“형이다! 형! 나 커서 형이 될 거야!”

“어? 형이야? 한울이 형! 우리 현지 좀 많이 편애해줘! 사랑해!”

이에 현지의 웃음도 크게 터져버렸다.

그녀가 시원하게 소리를 내며 웃는 모습은 굉장히 희귀했기 때문에.

이를 코앞에서 직관한 팬들은 눈을 크게 뜨며 땡잡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직접 드립을 친 팬은 굉장히 흐뭇한 얼굴이다. 저 사람 여잔데, 형이라니.

아무튼, 그래도 운전 중이었기에 인사는 그리 길게 나눌 수 없었다.

우린 그렇게 웃음과 함께 앨범 발매 후 첫 번째 스케줄을 마쳤고.

“어휴.”

“오빠더러 형이래요. 저희 팬분들이 오빠 되게 좋아하나 봐요.”

“···난 그분들 동생으로 둔 기억이 없어. 그리고 저 중에 솔직히 나보다 형들도 많았을걸?”

“하하.”

우리는 그리 빠르지도 않게, 그렇다고 그리 느리지도 않게 현지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주차를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현지는 안전벨트를 풀지도 않았다.

“오빠, 저 1위했어요.”

일부러였다.

일부러 난 지금까지 1위에 대한 축하의 말을 하지 않았다.

원래는 바로 하려고 했는데 늦어버린 바람에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거든.

난 축하의 말을 해달라는 요구를 거의 직접적으로 하는 그녀에게 바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벨트를 풀고 직접 손을 뻗어 그녀의 앞에 있는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 든 건,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작은 케이스.

그걸 손에 들고 있으니 동그랗게 떠진 그녀의 눈이 이 케이스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살펴봤는데 오늘은 귀걸이도 하지 않은 듯 귀에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아니, 녹화 끝나고 바로 뺀 건가?

아무튼 선물을 건네기에 마음이 편했다.

내가 준 것보다 더 예쁘고 비싼 게 귀에 달려 있으면 좀 머쓱할 것 같았거든.

난 포장된 케이스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1위 축하해. 앨범 준비하느라 수고 많았고, 열심히 따라와줘서 고마워.”

“뜯어주세요.”

“···어? 내가 뜯어?”

“네.”

기쁨과 단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

예상한 대답이 아니라 잠시 당황했다가, 그녀의 요구대로 포장을 뜯었다.

케이스도 내가 열어야 하는지 슬쩍 눈치를 봤는데.

그녀의 눈이 여전히 케이스에 박혀 있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케이스도 열었다.

드롭형이나 링보다는 버튼형이 좋다던 그녀의 말을 참고해 골랐다.

그녀와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귀걸이.

예쁘지만 그리 튀지도 않아서 언제 어느 때나 끼기 좋은 걸로 샀다.

가격은 꽤 비쌌지. 채희에게 준 목걸이와 민정 씨한테 준 팔찌와 가격을 맞추느라고.

난 케이스에서 귀걸이도 직접 빼서 줘야 하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난 뚜껑이 열린 케이스를 그대로 그녀에게 건넸고.

현지는 천천히 손을 뻗어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받았다.

“···저도요.”

“응?”

현지는 귓가에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저도요. 저도 고마워요.”

< 1.Not To Worry – 유현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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