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애정이 깊어요? >
오디션에 출연하면서도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송하연의 작업실에서 함께 앨범을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틈틈이 심민정이 다음에 들어갈 만한 드라마를 찾기도 하고, 채희의 촬영 현장도 찾아가며, 현지의 컴백에 대한 진척도 확인했다.
정말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따름이었으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현지의 컴백을 코앞에 앞두고 송하연의 앨범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어서.
“하연 씨, 한 번 차례대로 들어볼까요?”
이미 둘이 함께 작업하며 수도 없이 들었으나 이건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
어쩌면 세레모니와도 비슷하다고 본다.
마음이 더 뿌듯해지거든.
“좋아요.”
그녀는 홀가분한 얼굴로 1번 트랙부터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작업 과정들을 떠올리며 음악을 감상했다.
그동안 정말 바빴지만 앨범 작업을 하며 그리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녀가 홀로 만든 소스들.
우리는 함께 그 영감을 발전시켰고, 뜯어고쳤고, 이어 붙이며 곡들을 만들었다.
그 새로운 과정은 내게도 굉장히 신선한 흥분을 주었다.
내게는 아티스트적인 영감이 없었으니 더더욱.
지금이야 이렇게 몸을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듣고 있지만.
이 곡 위에 얹힌 그녀의 목소리는 절대 이렇게 들을 만큼 심심한 것이 아니었다.
녹음할 때만 해도 난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뗐다,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앨범에 실릴 음악이 모두 다 재생되었을 때.
내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미소를 바라봤다.
보통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트러블이 일어나거나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는데.
어째 우리는 유대가 더욱 깊어지기만 한 것 같다.
“실장님, 이거 처음 들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이 앨범도 엄청 성공할 거예요. 팬들이고 일반 대중들이고 ‘역시 송하연이다’라고 박수 치겠죠.”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아뇨. 팬들이랑, 대중들 말고요. 실장님은 어땠을 것 같은지 묻는 거예요.”
팬이랑 대중들 말고 나.
난 작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매니저를 안 했을 때라면 주구장창 들으면서 좋아했을 거예요. 매니저가 된 다음엔··· 역시 마찬가지였겠네요. 주구장창 들으면서 좋아했을 거예요.”
그리고 애초에 질문이 잘못됐다.
“처음 듣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전 앞으로도 계속 들으면서 좋아할 거라서.”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그녀의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고마워요. 아, 그리고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볼래요?”
“···뭘요?”
“뭐긴요. 당연히 ‘스타 아이돌’ 첫 방송이죠. 우리 실장님 얼마나 멋있게 나오는지 같이 보자구요.”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신이 나 보이는 송하연.
그녀는 한숨을 내쉬는 내 모습에 듣기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망할 방송국놈들.... 작정을 했어, 아주.’
첫 방송의 시청률을 위해서 선공개 영상과 예고편을 참 맛깔나게도 뽑아놨다.
그것도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나!
그쪽의 홍보 방식에 대해서 내가 참견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 영상들이 모두 내 중심이라면 충분히 신경이 쓰일 만하지.
송하연의 사촌동생이자, 지금은 우리 회사의 연습생이 된 송하니.
겉멋에 푹 절여진 최준성.
그들의 무대를 선공개에서 모두 다 공개할 순 없었기 때문에 내 위주로 편집했다는 건 알지만.
그들만이 아니라 그 외, 다른 심사위원들과는 다른 평가를 내리는 모습들까지 자극적으로 올린 거면 의도는 명확하지.
그냥 날 이용해 뽕을 뽑겠다는 거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거긴 하다만···.
“하아. 주인공이 될 생각은 없었는데. 원래 보통 참가자 위주로 홍보하지 않아요?”
“하하. 그런데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만드신 건 실장님이잖아요. 어쩔 수 없죠.”
“그거야, 전 솔직한 평가를 내린 건데 상황이 그렇게 된 거니까···.”
상황이 그렇게 됐다는 내 말에, 송하연이 눈짓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진 걸 누굴 탓하랴.
사실 내가 제작진이어도 나를 홍보로 써먹었을 것 같다.
그들의 생각이 아주 제대로 먹혀, 인터넷에서는 벌써부터 반응이 뜨거웠거든.
-송하연 사촌동생? 아, 이건 못 참거든요?
-???: 재능이 돋보여요. YU대표, 홈대표: !?!?!?
-김대훈 대표, 신호석 대표: 아, 재능이 좋네요. ???: 뭐··· 네···.
-ㅋㅋㅋㅋ2:1로 갈리는데 왜 정답이 소수인 쪽 같지?ㅋㅋㅋ
-사실 오디션은 미끼였다. (진)프로그램 제목은 이거임.
<박한울 매드무비>
기억에 남는 댓글들이었는데.
방송이 다 나가면 또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무튼.
우리는 함께 방송을 보기 위해 이 작업실과 가까운 그녀의 집으로 향했고.
같이 맥주를 마시며 나란히 소파에 앉아 방송을 기다렸다.
“하니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전 차례 참가자 덕분에 안 떨 수 있었다고요. 그 사람 보니까 엄청 떨어서 무대 완전히 망쳐도 크게 상관은 없었을 것 같았대요. 어차피 실장님이 다 알아보실 수 있을 테니까.”
그 정도는 아니다.
막말로, 그냥 대화하는 정도로 노래하면 아무리 나라도 못 알아볼 테니까.
나도 연기하는 걸 보고 노래하는 걸 봐야 재능을 알아보지.
채희도, 심민정도, 현지도, 그리고 다른 연습생들도 모두 그렇게 알아봤다.
“하니 씨가 하연 씨를 많이 닮았던데요?”
“네? 저를요?”
“네, 하연 씨에서 좀 더 어린 티가 나고, 거기에 비글미까지 첨가하면 딱 하니 씨잖아요.”
“···저도 그렇게 늙진 않았는데.”
“네? 아, 아니. 제 말 뜻은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맥주를 마시며 평화롭게 기다리던 사이.
정말 좋은 타이밍에 방송이 시작됐다.
살짝 입술을 비죽이던 그녀도 방송에 내 얼굴이 비쳐지기 시작하자 금세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공개 영상으로 풀리지 않은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배경에, 다른 사람 하나 없이 나만 단독으로 찍는 작가와의 인터뷰.
평범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다가, 이내 그 부분이 나왔다.
-이번 오디션에 송하연 가수의 친척동생 분이 지원하셨어요.
-···!? 네!? 하연 씨요?
-네. 송하연 가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처음엔 깜짝 놀랐다가, 비슷하게 노래를 잘한다는 말에 헛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하하. 그럼 정말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아니, 하연 씨의 반이라도 따라간다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일 거예요.
-와. 그렇게나요? 역시 가까운 사이셔서 그런지 송하연 가수에 대한 애정이 깊으시네요.
그리고 잠시 말이 없다가, 살짝 몽롱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는 모습까지.
-애정이 깊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작가님, 하연 씨 라이브 들어본 적 없으시죠? 들어보시면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아실 거예요. 되게··· 멋있거든요. 정말로.
“···.”
“···.”
나란히 앉은 우리는 서로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단지, 아무 말도 없이, 아무 행동도 없이, 그저 입과 몸을 굳힌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
잠시 뒤.
내 모습이 아닌 다른 장면들이 보이고 있는데.
그녀는 아까의 장면을 지금에서야 언급했다.
“뭐예요. 애정이 별로 안 깊다는 뜻이에요?”
그 웃음기 띤 목소리에 나도 픽,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런 뜻 아닌 거 잘 아시면서.”
“···그럼요?”
“네?”
“···그럼 애정이 깊어요?”
“···네. 당연하죠.”
이상하다.
분명히 웃음 짓는 분위기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분위기가 한번에 확 뒤바뀔 수가 있지?
그러나, 어색해진 분위기는 도통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방송이 모두 끝날 때까지도.
***
방송이 끝난 뒤, 기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방송에 대한 기사는 물론, 지금까지 엠바고에 부쳤던 계약 기사들까지도.
[송하니, 사촌언니 송하연과 한솥밥 먹다. 첫녹화 끝나자마자 바로 계약한 HJ엔터.]
[HJ엔터 박한울 실장의 안목이 또 한 번 사건 일으키나? 홈엔터의 연습생이었던 송하니와 계약하다!]
[웃음 유발했던 최준성 참가자. YU엔터행. 박한울의 심사평이 주효했나?]
한번에 풀린 화젯거리에 네티즌들은 행복의 비명을 질렀다.
가뜩이나 재밌었던 방송에 더해, 얘깃거리가 잔뜩 생긴 셈이니까.
커뮤니티는 벌써부터 갑론을박과 함께 다양한 의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하는 게 맞음? 원래 계약 같은 건 방송 다 끝나고 하잖아. 김 샐 것 같은데?
└김이 왜 샘?ㅋ 더 흥미진진한데? 평가에 신뢰성이 생긴 거잖아. 스토리도 쌓이고. 우승 누가 할지 더 궁금해지지 않음?
-심사위원들이 편파만 하지 않는다면야 개꿀잼이지ㅋㅋㅋ
-근데 박한울 얘는 이게 벌써 몇 번째냐? 유현지랑 심민정도 다른 기획사 소속이었다가 빵 터졌는데 송하니도 그러려나?ㅋㅋ
-아니 송하니는 그렇다 치고 저 최준성은 뭔뎈ㅋㅋㅋㅋ 진짜 재능 있는 거 맞음? 아무리 봐도 아닌데???
└ㅇㅇㅇㅇㅇ이것 때매 더 기대됨ㅋ 진짜 확 바뀌는 거 아님? 지금쯤 YU엔터에서 명상 시키고 있을지돜ㅋㅋ
-박한울이 진짜 다 캐리했네···. 다른 심사위원들이랑 완전히 다른 말 하는데도 아무 소리 못 하는 거 보면 실력이 진짜 진짜 대단하긴 한가 봄.
└ㅇㅇ오히려 김대훈이랑 신호석이 박한울 평가 신경 쓰는 게 보이더라.
기사에는 계약한 시점 또한 나와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방금 본 방송에 더해 상상력까지 자극되었다.
더구나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과 흥미까지 모두.
-근데 이게 지금 풀렸다는 건, 지금 다른 참가자도 계약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아직 방송이 안 돼서 안 풀린 거지.
시청을 한 네티즌들은 추리까지 했고.
이는, 대중들의 더 큰 관심을 낳았다.
아무튼.
송하니로서는 뭐 어찌 되든 좋은 일이었다.
박한울 실장의 컨택을 받아 HJ엔터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입사하자마자 데뷔조라니···.”
자신을 위한 그룹까지 만들어져 있을 줄은 몰랐다.
여기서 더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다던 4명의 완전체.
이미 그녀들 4명은 한 몸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은 효진 언니도 YU엔터에서 온 건 모르겠지? 이것까지 풀리면 되게 재밌겠다.”
인터넷으로 자신에 대한 반응을 즐겁게 살피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행복해하고 있는 그때.
사촌언니 송하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마 방송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함일 터.
“언니! 방송 봤어?”
하니는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으나,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반가움보다는 다른 감정이 실려 있는 듯했다.
-하니야.
“응?”
-고마워.
“어? 뭐가?”
-그냥. 오디션에 나와줘서.
“···어? 응···.”
***
방송으로 인터넷이 시끌시끌했으니, 내 핸드폰도 한동안 시끌시끌했었다.
역시 정식으로 방송에 나가면 지금까지 쏟아지던 관심과는 차원이 다를 거라는 아버지의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내 말 또한 맞았다.
일에 치여 살기 때문에 그런 건 내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요 며칠간에도 쉴 틈 없이 일해야만 했고, 지금 역시도 나는 현지의 앨범 발매에 맞춰 모니터링을 준비해야 했다.
소회의실이 아닌, 좁은 보컬 연습실에서 현지와 나, 단 둘이서만 있었지만.
이게 노는 건 아니잖아?
모니터링 역시 엄연히 업무에 속했다.
“부모님께서는 뭐라셔?”
“응원해주셨어요. 그리고 오빠 초대하고 싶으시대요. 식사 하자고요.”
"그래? 언제 한 번 찾아봬야겠네."
마냥 헤실헤실한 미소를 띠우고 있는 그녀.
누가 보면 정말 우리 둘이 놀고 있는 줄 알겠다.
완벽한 모니터링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건데.
‘이제··· 30분 정도 남았네.’
이렇게 둘이 있으니 문득 궁금증이 올라왔다.
얼마간 핸드폰에 방송에 관한 연락이 쏟아지고는 했었는데, 그중에 현지에게 온 연락은 없었으니까.
‘방송 안 봤나?’
연락뿐만 아니라, 이렇게 만나서도 방송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방송을 봤냐고 묻기엔 좀 모양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현지가 날 비웃을 리가 없지.’
채희라면 몰라도.
“그런데 현지야.”
“네.”
“혹시 방송 안 봤어?”
“봤어요. 재밌었어요.”
아, 봤구나.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속으로 살짝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막 생겨나려는 상념을 깼다.
“넥타이 핀 잘 어울리더라고요.”
현지가 선물해준 넥타이 핀.
그걸 착용하고 녹화했었다.
난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장 입을 때마다 하고 있어. 아예 방송에서 자랑할 걸 그랬나? 하하.”
“네, 해도 돼요.”
“그럴까?”
가벼운 농담으로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에 웃는 얼굴로 되물었는데.
“네, 해주세요.”
진심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더불어 나까지 웃음기가 사라졌다.
현지가 또렷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 반사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알았어.”
뭐, 방송에서 자랑하는 게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내 대답에 밝게 미소 짓는 그녀.
난 피식 웃으며 시간을 살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현지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 발매될 시간.
우리는 그렇게 앨범이 발매되기 전부터, 발매된 다음까지도.
보컬 연습실에서 모니터링이라는 업무를 함께 해야 했다.
재밌는 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에 치여 살고 싶다.
난 정말 일 중독이라니까?
< 그럼 애정이 깊어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