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13화 (113/170)

< 찾았네, 메인보컬 >

다음 참가자의 지원서를 본 우리의 표정은 서로 엇갈렸다.

나는 이 참가자에 대해 작가에게 미리 들었기 때문에 놀랍진 않았으나.

“음?”

신호석 대표는 미처 몰랐던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신대표님 회사 연습생이었네요?”

흥미로운지 김대표가 살짝 웃음기를 띠며 말을 건넸다.

“그러네요.”

“홈 엔터에 합격하고 1년반 동안 연습생으로 생활했으면, 어느 정도 기본기는 확실하게 다져졌겠어요.”

“음. 보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긴 좀 그러니까, 무대부터 보고 얘기 나누시죠.”

신대표님과 김대표님이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모두가 집중하고 있기는 했다.

‘잘했으면 좋겠다.’

난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작가님과의 인터뷰에선 어느 누구의 친척이 오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었으나, 그건 평가의 형평성에 관한 것일 뿐.

마음 속으로 응원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하연의 친척이니까.

혹여나 방송을 통해 안 좋은 모습이 나가기라도 하면 마음 아파할 거 아냐.

잠시 조용해진 사이.

사뿐사뿐 가볍고도 여유가 묻어나는 걸음걸이로 그녀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송하니.

걸음걸이뿐만 아니라, 표정도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무대 위에 서는 송하연과 비슷하게, 송하니 또한 전혀 긴장을 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어서 내심 안도가 되었다.

동글동글한 눈에 젖살이 빠지지 않아 귀여운 얼굴.

아무래도 사촌이라 그런지 외모가 그리 비슷한 느낌은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녀의 사촌이란 사실을 알고 보기 때문인지 어렴풋이 그녀와 비슷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 사는 19살 송하니입니다.”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마이크를 들었다.

이대로 무대를 보기 전에 대화부터 나누는 게 제작진 입장에서는 분량을 더 많이 뽑을 수 있을 터.

허나, 눈앞에 있는 그녀와 송하연을 위해서라면 먼저 무대부터 보는 편이 낫다.

이대로 얘기를 나누면 필히 송하연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만약 그녀가 사촌언니를 언급하며 커다란 자신감을 내비친다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보이겠나.

본무대를 잘한다면 몰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안 좋은 그림도 없는 거다.

“반가워요. 바로 준비한 무대부터 시작할까요?”

“네.”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는 피디와 작가.

난 그들을 못 본 체하며 송하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아니면 타고난 강심장인지.

그녀는 진지하게 임하되 편안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오늘도 밤을 샜어-”

귀가 쫑긋 기울여지고 집중한 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번뜩 스친다.

“널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렜나 봐. 못생겨 보이면 어쩌지?”

눈썹을 살짝 모으며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 퍽 귀엽게 보인다.

마치 가수가 자기 곡으로 무대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입꼬리를 올리며 편안하게.

정말 다행이다.

송하연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어서.

그녀가 걱정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나는 그렇게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눈빛과 표정으로 쉼 없이 응원을 보냈고.

그녀는 조금의 들뜸도 없이, 제 실력을 차분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외모를 빼곤 제 사촌언니랑 꼭 닮긴 한 것 같네.

'노래 실력도 그렇고.'

곧 노래가 끝나고.

이어서 댄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난 노래를 들으며 떠올렸던 머릿속 생각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댄스를 보는 다른 이들의 얼굴이 미묘해지는 것과는 반대로.

내 입꼬리는 씨익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댄스는 좀 그렇긴 해도 뭐....'

솔로 아이돌이 무리라면, 그룹으로 데뷔하면 그만이니까.

그것도 자신과 딱 어울리는 아이들과 말이다.

'찾았네, 메인보컬.'

***

지금의 실력으로는 송하연의 반도 따라올 수 없으나.

갖고 있는 잠재력만큼은 송하연에 비견될 만했다.

'이래서 피가 무섭다니까?'

그 재능 만큼이나 반가운 건, 회사에 있는 걸그룹 예비 멤버들과의 시너지.

송하니가 그 그룹에 들어가 메인 보컬을 맡게 된다면, 이 4인으로 멤버는 확정이다.

더 추가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하나의 조화로운 그룹.

'문제는 춤인데, 그건 연습하면 되지.'

노력 말고 따로 답이 있나.

재능으로 안 되면 노력으로 때워야지 뭐.

내가 핀 포인트로 집어준다고 해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룹으로 어울리게 할 정도는 될 것이다.

"아, 박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되게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박실장님 활약만 믿을게요. 하하!"

녹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김피디를 찾아가자, 그가 바로 말을 건네왔다.

오늘 녹화가 만족스러웠는지 그의 얼굴에선 기분 좋은 미소가 띠워져 있었다.

"피디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난 얼마 전 한팀장님으로부터 들었던 조언들을 떠올렸다.

'한울아, 거기서 괜찮은 애 있으면 김대표한테 양보하지 말고 건져와. 알았지?'

'괜찮다 싶으면 낚아채버려. 뜸 들이다간 뺏길 수도 있으니까.'

'하연이처럼 하지 말란 소리야. 막말로 걔 자존심이 더 셌으면 지금 같은 관계가 됐겠어?”

망설이지 말라는 것.

내가 피디를 찾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방송 다 끝나기 전에 먼저 컨택하는 거 상관없다고 했죠?"

내 물음에, 피디님의 입에 걸려 있던 미소가 더욱 크게 만개했다.

"그럼요.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녹화에 지장만 없으면 저희는 상관없어요. 대신 계약하게 되면 바로 알려주세요. 적절할 때 풀어야 화제도 모을 수 있으니까."

이미 회의할 때 듣기도 했고, 계약서에서도 봤던 내용이지만, 그래도 한번 물어본 거였다.

김피디는 미리 말했던 대로 참가자와 계약을 해도 괜찮으니, 그 사실을 밖으로 알리지 말라는 것 또한 말했다.

보통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일 년 이상까지도, 오디션으로 이름을 알린 이의 활동 수익을 방송국과 나눠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패악을 저지르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다 사라져서 계약에 있어 매우 자유로웠다.

설사 그렇다 해도, 보통은 오디션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야 계약에 대한 얘기가 언론에 공개되곤 하지만.

이제는 대중들에게 오디션도 물릴 대로 물려버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대.

그에 맞춰, 방송국은 새로운 자극이 되면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계약한 참가자들과 아직 계약하지 못한 참가자들을 경쟁하게 만드는 것.

방송 내적으로의 포맷 변화는 없더라도, 계약에 대한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면 시청자들은 매우 흥미롭게 시청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김피디의 확인 대답을 듣고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하연 씨, 지금 통화 괜찮아요?"

-네, 실장님. 녹화는 잘 끝났어요? 식사는 하셨고요?

***

행동에 들어간 건 박한울만이 아니었다.

녹화가 끝난 직후.

홀로 대기실에 있던 신호석 대표는 지그시 눈을 감고 아까의 장면을 떠올렸다.

'이렇게 다시 뵙네요. 무대는 잘 봤습니다. 여전히 노래도 잘 부르고 매력도 있어요. 댄스는 다소 아쉽긴 해도, 전체적으로 괜찮았습니다. 합격입니다.'

얼마 전 데뷔조에 떨어뜨렸던 그녀에게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연습생을 했던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같이 참가할 수 있는 이 오디션을 기준으로 하면, 송하니의 실력과 재능은 돋보이는 수준인 건 맞으니까.

그래서 칭찬을 보내며 합격을 시키긴 했지만, 회사로 다시 데려오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 전에 결정을 내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재능 넘치는 팀원들과 한 팀에서 데뷔시키기엔 댄스가 발목을 잡았으니까.

메인 보컬을 할 만한 멤버 또한 따로 있었고.

'저도 신대표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댄스는 부족해도 노래가 굉장히 훌륭하네요.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했을 때, 많이 우위에 있습니다. 합격입니다. 축하해요.'

김대훈 대표의 심사평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칭찬이 대부분이었으나, 그 어조는 담담했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확실히 눈에 띄긴 해도, 그녀의 배경을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박한울 실장.

그만은 달랐다.

'댄스가 좀 부족하네요? 하하. 그래도 노래는 너무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재능이 넘치시네요. 축하드립니다. 합격이에요.'

평가의 내용 자체는 비슷했으나.

평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확연하게 달랐다.

보석을 발견한 듯이 반짝이는 눈빛과, 즐거운 표정.

누가 봐도 탐내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에, 신호석 대표는 덜컥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자신 역시 심민정을 잃은 큐빅엔터의 꼴이 날까 봐.

그리고 유현지를 잃은 YU엔터의 꼴이 날까 봐.

"그건 절대 안 되지."

어떻게든 다시 데려와야겠다.

데뷔를 100% 보장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데뷔 준비가 거의 다 끝난 걸그룹에 어거지로 집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재능이야 천천히 개발하면 되니까."

녹화가 끝난 뒤 혼자 있는 대기실.

신호석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핸드폰을 들었다.

"유팀장님, 얼마 전에 나간 송하니 연습생 연락처 좀 주시겠어요? 지금 바로요. 빨리."

그의 눈빛은 욕심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

"...네? 뭐라고요?"

송하니는 제 눈과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만장일치로 합격해서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있었는데, 신호석 대표님께 직접 전화가 걸려와 얼떨결에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다.

"다시 계약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1년 내 데뷔를 보장해드리고, 푸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명시하겠습니다.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데뷔조 친구들을 하니 씨 중심으로 개편할 수도 있어요. 여러모로 지금 결정된 멤버들에 하니 씨를 메인 보컬로 추가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겠지만요."

아까까지만 해도 혹평하듯이 호평하던 심사위원이 맞나 싶다.

자신이 알던 신호석 대표가 맞나 싶다.

무대에서는 얼떨결에 평온한 마음으로 임하게 되어 전혀 떨리지 않았으나.

그건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

녹화가 끝나고 신호석 대표의 제안을 직접 듣고 있는 지금은 마음을 도통 차분하게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어.... 좋긴 한데... 그... 자, 잠시만요. 제가 머릿속이 하얘져서요, 대표님. 조건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요. 잠깐 생각 좀 정리하려고요.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하하. 네, 지금 여기서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오디션에서 신호석 대표님의 말은 무시하고 박한울 실장님의 말만 잘 듣기로 생각했었지만.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잖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조건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황금 같은 기회!

송하니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았다.

'그래! 계약서에 명시까지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그렇게 바랐던 데뷔잖아. 홈 엔터면 푸시도 빵빵할 거고.'

가장 좋은 선택지는 박한울 실장님의 컨택을 받고 HJ엔터에 들어가는 거긴 한데.

'말로만 칭찬하고 정작 계약은 안 하려고 하실지도 모르잖아.'

가능성이 미지수인 최선의 선택에 매달리느라 기회를 잃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100%인 차선의 선택을 바로 고르는 게 백 번 나았다.

이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

신호석 대표에게 등을 보인 채,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송하니는.

다시 몸을 돌려, 세상에서 가장 해맑고 순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허리를 꾸벅 숙이려 했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리지 않았다면.

액정을 슬쩍 바라본 송하니.

눈은 살짝 커졌으며,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어... 대표님, 잠시만 전화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가족한테 온 전화라...."

"그래요. 이참에 바로 회사로 오시라고 말씀도 드리시고요."

"하하."

살금살금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언니?"

동경하는 사촌언니, 송하연의 전화를.

가만히 언니의 말을 듣기만 하던 그녀의 눈은 이내 둥그렇게 커졌고, 헛숨이 삼켜졌다.

"헉...!"

잠깐의 통화를 마친 그녀는 다시 신호석 대표의 앞에 섰다.

그리고 매우 기계적인 미소를 띠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계약은 못 할 것 같아요."

가능성이 미지수였던 최선의 선택지가 마침 시기적절하게도 손 안에 들어와버렸으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선이었던 선택지는 짧은 전화통화 이후 최악의 선택지가 되어버렸으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

한편.

김대훈 대표는 미간을 확 찌푸리고 있었다.

고민을 한지도 벌써 한 시간째.

아직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진짜 걔라고?"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던 그 참가자가.

자신의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연습생들과 잘 어울릴 거라고?

가슴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박한울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톡. 톡. 톡.

대표실의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던 김대훈 대표는 결국.

"김피디님.... 그... 연락처를 알고 싶은 연습생이 있는데요."

자신의 감보다는 박한울의 감을 믿기로 했다.

짧은 시간 그가 이뤄낸 실적으로 봐도, 통계로 봐도.

그의 말을 듣는 게 정답에 훨씬 가까웠으니까.

'일단... 계약한 다음에 천천히 지켜봐도 되잖아.'

박실장의 말에 따라, 힙합과 카리스마 있는 모든 것들을 멀리 하게 하고.

태교에 좋은 음악과 차분한 음악을 듣게 한다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

< 찾았네, 메인보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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