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07화 (107/170)

< 이게 이렇게 시너지가 나오네 >

YU엔터의 녹음실.

김준민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그리고 나는 녹음 부스 안에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준비됐으면 말씀해주세요.”

김준민 피디의 말에 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됐어요.”

부스 안에 있는 그녀의 얼굴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으나, 부스 바깥의 사정은 달랐다.

타 회사의 아티스트와 이렇게까지 작업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현지의 노래가 기대되기 때문인지.

김준민 피디와 엔지니어의 눈동자에서는 기대감이 넘실거렸다.

나는 현지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보컬 트레이너에게 곡에 맞는 훈련을 받으며 나에게 점검을 받았다.

10곡이기 때문에 시간은 더 많이 걸렸으나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과정.

나는 그녀를 믿었고, 그녀는 내 신뢰에 멋진 실력으로 화답해주었다.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 그런데 왠지 화창한 것 같은 느낌이야.”

부드럽고 러블리한 멜로디에, 목소리를 편안하게 얹어 놓는다.

그러나 그 편안한 보컬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느낌.

그녀의 맑고 깨끗한 음색 덕분도 있겠으나,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표정을 보면 답이 나온다.

가사처럼,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고, 매일매일이 행복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는 나에게까지, 그리고 작업실에 있는 그들에게까지 그녀의 감정이 퍼지고 있다.

가볍게 리듬을 타며 미소를 띠우는 김준민 피디와 엔지니어.

그녀는 가사지를 보면서도 힐끗힐끗 이쪽을 바라봤고, 그녀의 눈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고마워, 덕분에 모든 게 다 즐겁게 느껴져서.”

그녀와 내가 함께 쓴 가사.

강렬했던 이전 활동곡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실제 모습들을 담아서 그런지 더 러블리하고 부드럽다.

그런 느낌에도 반주는 리드미컬하여 댄스마저 기대할 만하다.

그녀의 팬들이 어떤 곡들을 기대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어떤 곡을 기대했더라도, 이 곡이 안 좋게 느껴질 리는 없을 거라고.

나는 첫 번째 곡의 녹음을 마치고 부스 밖으로 나온 그녀에게 말했다.

“잘했어. 너무 듣기 좋더라.”

그녀는 내 말에 대답없이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트레이드 마크와 다름없는,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미소.

칭찬은 내가 건넸지만, 그 미소를 마주하고 있자면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이제 녹음할 곡이 아홉 개가 남았으니.

최소한 아홉 번은 더 볼 수 있으려나?

‘생각해보니 정규 앨범에 열 곡은 너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스무 곡 정도는 넣을 걸 그랬다.

아니면 서른 곡.

***

유현지가 컴백을 위해 막 기지개를 켜려고 할 때.

HJ엔터테인먼트의 신인가수는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찬수.

그의 시선은 이제 곧 자신이 오를 첫 번째 음악방송 무대를 향하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이 생각만으로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내세울 만한 무기 하나 없이, 오로지 독기로 버텨왔다.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이게 아니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불우하고 거칠며 폭력적인 가정 환경,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바짝 세워져 원만하지 못했던 교우 관계.

그가 스트레스를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음악, 그리고 스타들을 동경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고슴도치 학생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연습생으로.

또 거기에서 솔로로 데뷔하는 신인가수까지.

‘처음부터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이 마음 잃으면 발전은 거기서 멈출 테니까 명심하고요.’

얼마 전 로비에서 마주쳤던 박한울 실장의 말을 떠올리며.

장찬수의 눈은 곡에 맞는, 컨셉에 맞는, 굶주린 짐승 같은 눈이 되어 있었다.

사실은 장찬수라는 사람에 맞춰, 곡의 컨셉이 짜여진 거지만.

“이제 올라가시면 됩니다.”

“예.”

한동안 무대 위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스태프의 말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꿈을 향해 다가갔다.

조명으로 눈부신 무대 정중앙.

장찬수는 정면으로 몸을 돌려 허리를 꾸벅 숙이고 일어났다.

“신인가수 장찬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관객들이 한 명도 없는 조용한 공개홀에서, 스태프들만이 심드렁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장찬수는 이러한 환경에 주눅이 들거나 실망을 하기는커녕, 씨익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엄청난 노력으로 꾸역꾸역 하나씩 뚫어내며 올라온 장찬수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

그의 데뷔는 이런 자신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

주말 오후의 학원.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여기저기서 폭발적인 소음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 강의실 역시 마찬가지.

강사인 그녀는 학생들의 시끌시끌한 목소리를 들으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야! 어제 장찬수 봤냐!?”

“봤지. 짐승돌 진짜 미쳤더라. 이래서 예전에 짐승돌이 인기였나 봐.”

여학생들의 말을 들으며 픽, 웃음이 나왔다.

‘요새도 짐승돌이 유행하나?’

유행이 돌고 도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학생들이 말하는 짐승돌과 자신이 아는 짐승돌이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예전이라 그런가, 당시에는 아주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무대들이 지금 보면 영 촌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똑같이 하지는 않겠지.’

또한 요즘 말하는 남자의 섹시함은 묘하게 예전과 느낌이 달랐다.

당시엔 정말 짐승 같은 느낌을 강조했다면, 요즘은 은근히 내재된 섹시함을 추구하곤 하니까.

지금이야 연예인에 관심이 거의 없지만, 한때나마 아이돌을 상당히 좋아했던 그녀이기에 이렇게 대략적인 흐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도 인터넷을 보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머릿속 한 켠에 학생들의 대화를 묻어두고 있던 그녀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야 문득 학생들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지금 학생들에게 뜨거운 가수라는 것에 대한 흥미와, 예전에 자신이 덕질했던 짐승돌과 얼마나 다른 느낌일지에 대한 궁금증.

그녀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유튜브에 단순하게 ‘짐승돌’이라고 검색해봤다.

반가운 이름들과 생소한 이름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올라온 ‘장찬수’라는 이름을 보고, 흐릿했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이거였어, 맞아.”

일단 썸네일은 굉장히··· 흥미롭다.

얼굴이 무척이나···.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고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

그녀는 직감할 수 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리고야 말았다고.

“···이런 눈빛은 반칙이지.”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어린 남자 아이돌을 덕질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 모르는 게 아니니까.

'...몰래 하면 되지, 뭐.'

팬사인회나 음방 활동 등 현장을 뛰는 데에 있어 다른 어린 팬들의 눈치가 보이긴 하겠지만 자신만 당당하면 그만.

그녀는 그렇게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으나.

며칠 뒤.

인터넷에 뜬 기사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 역시 다들 눈은 똑같네.”

[10대, 20대는 물론 덕질 은퇴한 누나들에게도 통한 짐승돌 장찬수. 컨셉은 전략이었나? 효과는 확실.]

[필라테스 강사이자 SNS스타 임정연 “같이 운동하고 싶다.” 장찬수 팬 인증하며 글 남겨.]

[박한울 실장의 안목이 또 한번 성공했다. 장찬수의 극적인 데뷔 스토리는?]

하긴.

누나로서 절대로 가만 둘 수 없는 눈빛이긴 했다.

***

까딱까딱.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과 눈빛을 하곤,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인다.

송하연은 자신이 만들어낸 수십 개의 멜로디 소스들을 그렇게 하나하나씩 확인했고.

이내 의자에 몸을 푹 기댈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딴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취지였다.

박한울과 언제까지고 작업할 수 있을지 모르니, 지금처럼 옆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곡을, 최대한 좋은 곡들을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만든 곡을 그가 수정하거나, 그가 이끄는 대로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이 홀로 만든 소스들을 이용해 그와 함께 곡을 만들어내는 것.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건 비율과 방법.

어떤 결과물이 나오게 될지 모르긴 해도 박한울이라면 이 소스들을 굉장히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연한 생각이었으나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본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막연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기대 이상을 선물해줬으니까.

“···힘들긴 했어.”

그러나 이 소스들을 만들어내는 과정만큼은 참 힘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중간에 몇 번이나 떠올릴 정도로.

“너무 익숙해진 거지.”

그와 함께 하는 작업이, 그에게 의지하는 일이.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덕분일까.

오랜만에 다시 창작의 고통 속에 홀로 내던져지다 보니 그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고, 더욱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보면, 의지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송하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지하는 게 뭐가 나빠.’

능력이 있으니 의지하는 거다.

의지할 수 있으니 의지하는 거고, 의지하고 싶어서 의지하는 거다.

오히려 쉬운 길을 놔두고,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신이 대견하게 생각됐다.

어쩌면 박한울 또한 이런 시도를 한 자신을 칭찬해줄지도 모른다.

이를 상상하자, 의자에 몸을 파묻었던 그녀의 얼굴이 달콤하게 물들어갔다.

“바로 연락해봐야겠···.”

그를 부를 생각을 하며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에 손을 뻗었는데.

문득 그 주위에 있는 빈 콜라 캔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마구잡이로 놓인 종이들과 장비들까지.

“···.”

그녀는 빙글, 의자를 돌려 작업실을 전체적으로 훑어봤고.

언젠가 ‘플랭크’라고 칭했던 행동들을 또다시 해야 함을 격하게 느낄 수 있었다.

“···큰일 날 뻔했네.”

그녀의 작업실은 빠른 속도로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

"...타이밍이 참."

장찬수의 데뷔와 맞물려, <스타 아이돌>팀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어느 쪽도 일부러 타이밍을 맞춘 건 아니었으나, 이 둘의 교집합은 확실했다.

바로 나.

[장찬수까지 알아본 안목. HJ엔터 박한울 실장, 본격적으로 오디션 심사위원 되다.]

[<스타 아이돌> 1차 오디션 영상 지원 마감 D-3. 연령, 성별, 경력 제한 없다!]

[박한울 실장의 안목으로 인생이 바뀐 아티스트들. 다음 주인공은 누구?]

'이게 이렇게 시너지가 나오네.'

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와ㅋㅋ 방송 개꿀잼이겠네ㅋㅋㅋㅋ

-형 드디어 방송 제대로 나오는구나 난 언제나 응원할게 화이팅! 그리고 우리 채희 앞으로도 잘 부탁해ㅎㅎ

-ㅋㅋㅋㅋㅋ사람들 개웃긴 게 팬질하는 연예인 소속사 대표들한테도 막 뭐라고 하면서 박한울이 케어하는 연예인 팬들은 박한울한테 절대 함부로 못 함ㅋㅋㅋ 자기 연예인 조금이라도 더 챙겨줬으면 해서ㅋㅋ

-그것도 그건데 깔 게 하나도 없기도 함. 솔직히 지금까지 아쉬웠던 활동들이 뭐 있었음? 정채희, 유현지, 심민정 보셈. 송하연이랑 이성호 팬들은 더 노심초사임ㅋ 담당 아닌데도 도와주잖아. 아! 거기에 박송이 팬이랑 샴페인 노바 팬도 추가ㅇㅇ

-우리 찬수 팬들도 마찬가지요ㅋ 데뷔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반응들이 나올 줄은 미처 몰랐는데.

팬들한테 내 존재가 어지간히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반응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방송엔 굉장히 호재인 상황.

이러한 관심은 오디션 지원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더 좋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지원하게끔 만들 것이다.

"재밌긴 하겠네."

내 입장에서도 좀 더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게 크게 기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주변에 워낙 천재들이 많아서.

"누가 나오든 우리 애들한테는 안 되지."

현지의 앨범 녹음을 모두 끝내고 집에 돌아와 대충 시간을 때우고 있는 그때.

핸드폰에 띠워진 화면이 바뀌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발신인은 송하연.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하연 씨?"

-실장님,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내일요?"

-네. 실장님한테 들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거칠었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운동이라도 했나 보지.

중요한 건, 그녀가 들려주고 싶은 게 있다며 나를 찾는다는 것.

이는 오디션보다 내게 더욱 큰 기대를 안겨주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시간 괜찮으시면-"

-아, 안 돼요! 지, 지금은 조금... 거의 다 끝나긴 했는데 운동이 아직 다 안 끝나서요. 실장님도 이제 퇴근하셨을 텐데 쉬셔야 하기도 하고.... 혹시 더 늦은 시간에 전화하면 실례일까 봐 미리 전화드린 거였어요.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운동 중이라면 어쩔 수 없지.

< 이게 이렇게 시너지가 나오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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