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04화 (104/170)

<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

웹툰 ‘BJ김만수’는 워낙 인기가 많았다.

애초에 그 인기 때문에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던 것.

그 웹툰의 팬들은 요새 드라마의 엄청난 재미에 행복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는데, 동시에 드라마가 끝을 향해가고 있어 아쉬움의 탄식을 흘리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 또한 마찬가지.

“아, 진짜 미치게 재밌네.”

방송이 막 끝나자, 그는 TV를 꺼버리고 여운을 즐겼다.

방금 전 본 장면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했다.

‘심민정 진짜 미친 거 아닌가?’

1회부터 그랬다.

마지막 즈음에 등장해놓고서는 첫 회의 임팩트란 임팩트는 다 가져가버렸다.

당시에는 신기한 느낌마저 받았다.

분명히 임팩트가 있을 만한 내용이 아니거늘, 임팩트가 너무나도 잘 느껴졌으니까.

물론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끝내줬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캐릭터에 대한 싱크로가 잘 맞지 않았으나 그건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무튼 그땐 단지 원작에서도 인기 있던 캐릭터가 등장했기 때문에, 원작 팬의 입장에서 임팩트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치부하며 넘어갔었지만.

회차를 거듭하며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아니, 사실 진작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흔히 말해, ‘입덕부정기’라고들 하잖은가.

이미 빠져들었는데 자신은 아직 빠진 게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는.

그런데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드라마의 회차가 중반을 채 지나기도 전의 시점엔 이런 댓글들이 달렸었다.

-싱크로보다 그냥 비주얼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심민정 진짜 왜 이렇게 예쁘고 귀여움? 이 정도면 원작 캐릭터를 바꾸는 게 나을 수도ㅋ

-아니 비주얼은 둘째 치고 연기 미친 거 아님?ㅋㅋㅋㅋ 와 이게 데뷔작이라고? 말도 안 돼.

└엄밀히 말해 데뷔작이 아니긴 함. 근데 거의 데뷔작이나 마찬가지긴 함ㅇㅇ 그냥 그렇다고.

사람들이 서서히 입덕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

그것이 마지막회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에서는 거의 다들 스스로 심민정의 찐팬을 자처할 정도였다.

-BJ김만수 팬 = 심민정 팬. 이거 맞다. 이 정도면 제일 수혜자 아님?ㅋㅋㅋㅋ

-이상한 소리 하고 있는 분들 계신데, BJ김만수 팬=심민정 팬이 아니라, 갓민정 팬>BJ김만수 팬임.

-ㅋㅋㅋ일단 BJ김만수 팬은 죄다 민정이 팬이니까.

어느 정도의 과장은 있었으나 팬들이 흔히 하는 주접이기에 딴지를 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정말로 이런 경향이 짙은 것도 맞긴 하고.

팬들은 아이돌로 활동할 때엔 심민정의 팬이 되지 못했지만, 배우로서는 그녀도 이번이 첫 발자국과 마찬가지.

팬이 되는 순서조차 뒤처지기 싫어하는 대한민국 사람들답게, 팬들은 그녀의 첫 작품만에 팬이 되었다는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부심은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BJ김만수’ 마지막 촬영날 커피차 지원 모금합니다.]

-입금완료했습니다.

-입금완료.

.

.

-이미 지원 숫자 넘긴 했는데 그래도 입금완료. 이걸로 디저트라도 얹어주세요.

-저도 추가입금완료요. 디저트도 빵빵하게 부탁드립니다.

-디저트? 밥차도 가즈아!!

-ㅇㅋ밥차 ㄱ 입금완료.

이제 곧 마지막 촬영인 만큼.

팬들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

이제 곧 있으면 심민정의 마지막 촬영날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의미 있는 날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전에 채희가 조언해줬던 대로, 의미를 담아 선물을 건네주기 위해 어떤 걸 선물할지 고민 중이었다.

‘똑같이 목걸이 선물하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종류 선물하면 그것도 좀 그렇고.’

고민이 깊어졌다.

채희의 선물을 고르는 건 그녀가 지나가듯 예쁘다고 한 게 떠올라 샀을 뿐이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말한 게 없었으니까.

‘신발? 이건 빨리 닳잖아. 핸드백? 음. 핸드백도 좀 그렇고···.’

그렇게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거듭했지만 좀처럼 완벽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팔찌 정도면 괜찮겠지. 목걸이처럼 악세서리니까.”

그러나 아무래도 팔찌는 목걸이보다 선호도가 낮은 경향이 있으니, 팔찌를 고르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기로 했다.

일단 비슷한 가격대, 그리고 그녀와 잘 어울리면서도, 너무 화려하지는 않은 것.

난 눈이 빠져라 살펴보다가 이내 한 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전국적으로 소문난 내 안목은 이런 데엔 발휘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확신이 안 들어, 확신이.

***

마지막 촬영이라 그런지 다들 얼굴이 초췌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줄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초췌한 얼굴 위로는, 몸이 호소하는 피로와는 다르게 밝은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과 드라마의 반응이 매우 좋다는 이유 때문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땐 내 옆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심민정 때문인 듯했다.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요?”

카메라 감독님과 조명 감독님, 그리고 헤드 감독님들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스태프들과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또 한 상큼 하잖아요. 이래봬도 아이돌 출신이라니까요?”

장난치듯 뽐내는 허세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래, 이런 면 때문이겠지.

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핸드폰에 기다리고 있던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예, 거기 정문 지나서 쭉 오셨다가-”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으로 차량 두 대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녀의 팬들이 직접 돈을 모아 조공한 밥차와 커피차.

촬영을 준비하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향했고, 윤형진 감독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심민정 배우한테 감사 인사 하고 드세요!”

웃음기 어린 감독님의 말에 심민정에게 시선이 모였고, 그녀는 손으로 브이 자를 하며 의기양양하게 활짝 웃어 보였다.

“저희 팬분들이 보내주신 거니까 남기면 안 돼요?”

“잘 먹을게.”

“인증샷 안 찍어? 조명 필요하면 말해!”

“고마워! 그래, 야외촬영은 이런 맛도 있어야지.”

비록 드라마 안에서 그녀의 역할은 조연이었으나.

촬영장에서나, 인터넷에서나.

그녀는 주인공처럼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중이었다.

“와, 진짜 맛있겠다.”

인증샷을 찍은 뒤.

밥, 커피, 디저트까지 화려하고 빵빵한 메뉴를 보며 그녀는 히죽히죽 웃음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되게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당연히 좋죠. 너무 좋아서 그래요. 마음이 너무 고맙잖아요.”

나는 수저를 들려다가 멈칫하고는 물었다.

“그렇죠?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하죠.”

덕분에 안심했다.

설령 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왠지 기쁘게 받아줄 것 같다.

역시 마음이 중요한 거지.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마쳤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행복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를 비롯해, 현장의 스태프들 또한 웃는 얼굴로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막방 때 봐요!”

촬영은 끝났으나 아직 편집이 남았으니, 쫑파티는 마지막 방송을 함께 보며 하기로 하고 인사했다.

“실장님, 우리도 이제 가요.”

“네.”

***

그녀의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야외 촬영이었던 만큼, 이게 아까 내렸으면 정말 재앙이었겠지.

어떻게 보면 타이밍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쏴아아-

하늘은 흐리고 주변이 물로 가득하다.

사위가 고요한 가운데, 와이퍼 돌아가는 소리와 차와 땅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활발하며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도, 조수석에 앉아 입을 다물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지막 방송이어서, 그리고 연기를 제대로 알게 된 뒤 제대로 참여한 첫 번째 드라마여서.

그리고 한낱 병풍 걸그룹 멤버에서 스타 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작품이라서.

감상에 젖기엔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나는 억지로 입을 열거나 하며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얄팍한 생각이라면,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배우에게 있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냥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이 보기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천천히 뚫고 도착한 그녀의 집 앞.

그녀의 고개는 내 쪽을 향해 돌았고, 나는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뻔했다.

힘들었던 예전을 떠올리는 것일 터.

나는 이에 대해 묻지 않고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실장님.”

“네.”

그녀 또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몇 번 말했는지 잘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래도 또 고마워요. 제 앞에 나타나주셔서.”

“네 번 정도 말했을 거예요. 그리고 저도 또 말하는데, 제가 아니었더라도 민정 씨는 성공했을 겁니다.”

나는 조금씩 부담스러워지는 그녀의 눈빛을 슬그머니 피하며 말했다.

“민정 씨, 앞에 글로브 박스 열어보실래요?”

“···?”

고개를 갸웃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조수석 앞의 글로브 박스를 열었고.

거기에 놓인 하나의 작은 케이스를 발견하곤 몸을 흠칫, 굳혔다.

그러기도 잠시.

그녀는 나를 힐끔 바라보곤 다시 케이스로 시선을 옮겼다.

글로브 박스를 열었던 거침없는 손길과는 달리, 천천히 손을 움직여 케이스를 손에 올린 그녀.

눈매는 어느새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이게 뭐예요?”

진한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곧장이라도 열고 싶은지, 손은 케이스를 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선물이에요. 저랑 첫 번째 드라마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그녀는 풋,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케이스를 열었다.

아깐 마음이 중요하다 했으나, 그래도 혹시나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케이스에서 팔찌를 빼낸 그녀의 얼굴은 다행히 화사한 미소만을 띠우고 있었다.

“···이쁘다.”

“어떤 걸 좋아하실 지 몰라서 그냥 잘 어울릴 것 같은 거 샀어요. 작품 보는 안목은 있어도 이런 안목은 없어서 마음에 드실 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내 말에 답하지도 않고 내게 팔찌를 건넸다.

“실장님이 채워주실래요?”

얇고 매끄러운 손목.

나는 내가 산 팔찌를 받아들고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목에 팔찌를 채워줬다.

예상했던 대로 너무 잘 어울린다.

“너무 예뻐요.”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손목이 예뻐서 뭘 찼어도 예뻤을 터.

팔찌 자체가 이렇게 많이 좋아할 정도로 예쁜 건 아닐 텐데.

역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녀는 팔찌를 낀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쥐고는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너무 예쁜 것 같아요. 팔찌도 그렇고···.”

역시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해야, 주는 사람도 기분 좋은 법이다.

“잘 들어가요.”

“실장님도 조심히 운전하세요.”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

흐린 하늘과 장대비 속에서도 내 입가엔 옅은 미소가 계속 맴돌았다.

<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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