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로 바쁜 HJ엔터 >
이효진과 계약을 한 뒤, 강해정과 성윤지와 함께 묶어 연습을 시킨 게 바로 어제였는데.
난 오늘 또다시 YU엔터에 왔다.
요새 참 이곳에 많이 오게 되는 것 같은데, 오늘의 목적은 어제와는 달랐다.
“오셨어요? 현지 씨도 오셨네요?”
“네. 오고 싶다고 해서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현지 씨 앨범인데요. 같이 있으면 더 좋죠.”
김준민 프로듀서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오늘 그녀의 앨범에 들어갈 곡들을 편곡하기 위해 만났다.
무려 열 곡이나 되기 때문에 오늘 하루 안에 다 끝날 것 같지는 않지만.
“현지야. 너도 아이디어 있으면 편하게 말해. 알았지?”
“네, 알겠어요.”
순순히 대답하는 그녀의 눈빛에선 신뢰가 가득 묻어나왔는데.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별로 아이디어를 내보일 것 같진 않았다.
사실 나도 그리 많은 걸 만질 생각은 없다.
곡들이 원체 좋았으니까.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의 이유일 것이다.
원래라면 저 곡들로도 충분히 만족했겠지만 내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만져주기를 바라는 것일 뿐.
“오빠는 생각해두신 거 있으세요?”
언제나 그렇듯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달콤하게 울렸다.
왠지 없다고 대답해도 방긋 미소를 지어줄 것만 같다.
이게 그녀의 본래 성격.
나는 이러한 그녀의 특색을 담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녀가 가진 아티스트로서의 장점과 매력에만 중점을 뒀었거든.
그러나 이 또한 그 전에 발매했던 곡들의 색깔과 그리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본래의 성격이든, 아티스트로서의 매력이든, 결국 주체가 되는 것은 그녀니까.
그러나 내 이러한 아이디어도 그녀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으면 바로 철회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내 아티스트들이 언제나 내 의견과 생각을 따라주긴 했으나,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독선적으로 밀어붙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응. 있어. 이번 앨범에선 너를 담아보려고. 가수 유현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있는 그대로의 저요?”
살짝 놀란 듯한 눈으로 되묻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때? 괜찮을 것 같아?”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오빠가 보기엔 제가 어떤데요?”
“응?”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 해서요. 말해주실 수 있어요?”
정당한 질문이다.
내가 보는 그녀와,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은 다를 수 있으니까.
또한 앨범을 대략 어떤 느낌으로 만들지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우리를 바라보는 김준민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를 일별하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하나하나씩 나열했다.
“일단 예뻐. 그리고 귀엽고. 항상 열심히 하지. 아티스트로서 욕심도 있고, 말도 예쁘게 해.”
“그리고요?”
“착하고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편해지는 것 같아. 또, 배려심도 있고 똑똑하고 눈치도 빨라.”
“또요?”
“피부도 엄청 하얗고, 눈망울도 반짝거려서 예뻐. 웃을 때 되게 순박해 보여서 좋아. 팬들한테도 진심이고. 또··· 말수는 적어도 성격은 의외로 밝은 편이야.”
혹시나 더 물어볼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다행히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순박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걸 하나하나 다 담을 수는 없어. 그냥 종합적으로 너라는 사람의 느낌을 담아보려고 하는데, 넌 어때?”
“빨리 들어보고 싶어요.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던 김준민 프로듀서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을 꺼냈다.
“가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제가 볼 때, 한두 개는 현지 씨랑 실장님이 상의해서 짜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열 곡을 전부 짜는 건 효율도 좋지 않으며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한두 곡 정도는 뭐.
나는 현지를 보며 어떠냐고 물으려 했는데, 나보다 그녀의 말이 더 빨랐다.
“좋아요. 그렇게 할까요?”
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고.
우리의 작업은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소란스럽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밝게.
좀 더 부드럽고, 좀 더 러블리하게,
신이 나서 앨범에 그녀를 담고 있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밤이 다가와 있었다.
***
다음날.
강해정과 성윤지, 이효진의 연습을 봐준 뒤.
나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대표실로 향했다.
남들이라면 대표실로 가는 게 부담이 되고 눈치가 보이겠지만, 어차피 다 아는 거, 나는 집 안방에 가듯 편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삼촌도 계셨네요?”
“어, 한울아! 일 다 끝났으면 한잔 할래?”
방금 막 배달이 왔는지, 족발이 용기에 푸짐하게 담겨 있었는데.
소주는 벌써 한 병이 비워져 있었다.
‘초반에 끼면 큰일 나지.’
나는 아버지의 옆에 앉으며 성호 삼촌에게 답했다.
“아니에요. 아직 일이 남아서요.”
이제 또 YU엔터에 가서 편곡 작업을 마저 해야 했으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더라도 하루이틀 안에 끝날 일은 아니다.
“근데 왜 부르셨어요?”
아버지께 묻자,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어보셨다.
“오디션 나가는 거 괜찮겠어? 시간도 시간인데, 사람들 관심이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 될 거야.”
“흐흐. 얘도 연예기획사 실장인데 그걸 모를까. 그냥 냅둬. 김대표랑 이미 얘기 다 끝났다잖아.”
“짜식아, 네가 이러면 어떡해?”
아버지의 핀잔에도 성호 삼촌은 그저 웃기만 했다.
커다란 유명세에 고생 깨나 하고 계신 삼촌을 우군으로 둬서, 나를 오디션에 나가지 않게 하려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대표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마음일 터.
내가 유명세로 인해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유명세를 제외하고 사업적으로만 봤을 때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욱 많은 게 사실이거든.
“아버지, 저 괜찮아요. 어차피 남들이 알아보나 안 알아보나 지금 제 생활을 보세요. 맨날 일만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큭큭. 너처럼 미녀들한테 둘러 싸여서 행복하게 일하는 매니저는 이 바닥에 또 없을 거다.”
성호 삼촌을 노려본 아버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방구석 컨텐츠 전문가, 그러니까 한량이었을 적엔 나보고 회사에 나오라며 강경하게 말씀하시던 아버지였는데, 지금은 내 의견을 존중하고 계셨다.
아무렴, 어엿한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된 걸 넘어서 일을 이렇게 잘하고 있으니 이제 부모님 품속에서 나올 때도 됐지.
‘여차 하면 도움을 받긴 하겠지만.’
어지간히 내 편한대로 하고 있긴 하나, 문제될 건 없다.
나는 여전히 속으론 별로 탐탁지 않아 하시는 아버지를 못 본 체하며 화제를 돌렸다.
“삼촌은 이제 곧 개봉인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예요?”
성호 삼촌이 찍은 영화, <구원자>는 이전에 채희와 함께 예능에서 대놓고 B급을 표방하는 예고편을 찍은 적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성호 삼촌의 영향력 때문인지, 공식 예고편이 공개된 것만으로도 인터넷에서는 꽤나 화제가 되고 있었다.
대중들의 현재 반응으로 보건대, 아마 개봉 첫날부터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릴 듯했다.
그리고 그 기세를 타고 쭉쭉 오르겠지.
“안 그래도 모레 예능 하나 잡혔어. 난 이번에 그거 딱 하나 하기로 했다.”
하긴.
지금 화제도 그렇지만 성호 삼촌이라면 그 정도만 해도 된다.
“저도 보러 갈게요.”
“당연히 보러 와야지. 4팀 애들 다 데리고 와.”
그건 안 될 것 같고.
누구 한 명 시간 맞으면 같이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수보단 배우, 그러니까 민정 씨 아니면 채희랑.
나는 아버지와 삼촌과 오랜만에 별거 아닌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가 적당한 때 나왔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여전히 걱정이 깃들어 있었지만, 사실 그리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일만 주구장창 할 거라서 사생활은 문제될 게 없을 테고, 방송으로 인한 악플 같은 것도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잘하면 아무 문제없기도 하고.’
나는 주인공이 될 생각이 없다.
그저 오디션 참가자들의 무대를 똑바로 심사하기만 하면 그만.
방송에 정식으로 출연한다고 해서 설레이며 떨린다기보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참여할 생각이다.
내 평가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들의 인생을 뒤흔들 정도로 무겁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이 친구처럼.
“안녕하세요, 실장님.”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장찬수.
대표실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는데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데뷔 준비는 잘 돼가요?”
“예. 내일 뮤직 비디오 찍으러 가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반면, 눈빛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곡 또한 그와 딱 어울릴 만큼 강렬한 노래라고 들었다.
“1팀에서 기대가 클 텐데,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진 마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
흔한 격려처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고 말하려 했는데, 말하다가 문득 내 주변이 전부 처음부터 잘한 사람들로 포진되어 있다는 걸 상기했다.
역시 그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고 있었다.
“저도 처음부터 잘해볼 생각이라서요. 열심히 할 겁니다.”
눈빛이 번쩍거린다.
이런 열정이라니, 강팀장님은 참 살 판 났겠다.
1, 2, 3팀이 장찬수를 데려가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던 게 무색하게도, 정작 회의가 열렸을 땐 아주 싱겁게 결론이 내려졌다.
2팀의 고팀장님도, 그리고 3팀의 한팀장님도 내가 이효진을 데려오고 강해정과 성윤지와 함께 맞춰보는 걸 보더니 생각이 달라진 모양.
각자 전략이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의 뜨거운 포부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이 마음 잃으면 발전은 거기서 멈출 테니까 명심하고요.”
인사는 이쯤이면 됐고.
이제 그를 스쳐 지나가려고 했는데, 귀에 장찬수의 목소리가 꽂혔다.
“···감사합니다. 기회 주신 거,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게요. 무조건 성공하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고,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게 아니래도.’
분명히 기회는 내가 준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거라고 전에 말했었는데, 그에겐 조금도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
한편.
박한울이 막 연습을 다 봐주고 대표실로 올라갔었을 때.
연습실에 남은 강해정과 성윤지, 이효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언니, 언니는 어떤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저희 정말 잘 맞는 것 같은데.”
성윤지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물었고, 이중에서 가장 맏언니인 이효진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잘 맞는 것 같아.”
옆에 있던 강해정 또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밝게 말했다.
“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데뷔가 요원해 보였다가 갑자기 데뷔가 반쯤 확정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으니, 그녀들 모두 이렇게 함박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소심했던 강해정도, 누구보다 가수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현실을 시니컬하게 바라봤던 이효진도.
그리고 강해정의 데뷔를 반쯤 확신하면서도 자신감 없어 하는 그녀를 보듬어, 함께 열의를 불태우던 성윤지도.
지금은 모두 운명이 바뀐 것에 감사해하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언니, 나타나줘서 고마워요. 언니 아니었으면··· 아, 상상도 하기 싫다. 며칠밖에 안 됐는데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하는 성윤지의 너스레에 이효진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도 너희가 있어줘서 고마워. 정말 우리 잘 맞을 것 같아.”
“네. 성격도 잘 맞는 게, 실장님이 정말 안목이 좋으신 것 같아요. 저희 친하게 지내요.”
강해정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말했고, 성윤지가 픽, 웃으며 덧붙였다.
“같이 오래 붙어 있을 거니까?”
“···응.”
데뷔를 언제 할지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그녀들은 이미 한 그룹이 된 것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했으며, 서로가 서로의 운명을 바꾸게 했으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다시 연습 시작할까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는 성윤지.
“응.”
“그래.”
모두 휴식을 끝내고 일어나 연습을 시작했고.
정면의 거울에 비친 그녀들의 얼굴에선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준비로 바쁜 HJ엔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