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00화 (100/170)

< 박한울 실장님. 그 평가, 정말 맞습니까? >

식서브 다이스가 프로듀싱한 랩독의 싱글곡, ‘Ambitious’.

랩독은 이번 싱글에 무척이나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다름아닌 송하연의 피처링 때문에.

그녀가 지금까지 한 번도 힙합에 피처링하지 않았다는 건 둘째 치고, 일단 곡에 녹음된 그녀의 보컬 자체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걸로 실패하면 말이 안 되지.”

녹음은 진작에 끝났었지만, 송하연의 녹음 이후 랩독과 식서브 다이스는 녹음을 다시 진행했다.

녹음 당시 그녀의 완벽주의를 보고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새비지 크루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곡은.

아무런 홍보 없이 대뜸 음원 사이트에 등장했다.

믿지 못할 피처링과 함께 떡하니 나타난 곡에, 힙합 팬들은 물론이고 송하연의 팬들, 그리고 대중들 또한 호기심에라도 한 번 들어보게 되었다.

-랩독&송하연··· 갑자기···????? 라고 생각했던 제가 있었습니다. 명곡 ㅆㅇㅈ

-칼 간 랩독과 송하연의 콜라보. 별 일억 개.

-피처링 실화냐ㅋㅋㅋ 송하연 팬질 2년짼데 너무 깜짝 놀라서 어이가 없을 정도임. 이렇게 좋을 거면서 그동안 왜 안 했을까···. 앞으론 뭐든 내줘ㅠㅠ

-ㅁㅊㅋㅋ 랩이랑 보컬이 서로 주인공 되겠다고 칼질하는 수준이네ㅋㅋ 뭐 이리 잘한담···?

그렇게 한 번 들어보면 그대로 끝이었다.

반복해서 듣거나, 뮤비를 찾아보거나, 플레이 리스트에 저장하거나.

송하연이 미니앨범으로 슈퍼스타가 된 이후, 피처링이나마 처음으로 나온 곡이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는 더욱 쉬웠는데.

힙합이라는 장르에 완벽히 녹여진 음색에 대중들은 신선하다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송하연&랩독&식서브 다이스, 홍보 없는 발매에도 첫날부터 차트 질주!]

[‘Ambitious’, 1위 차지할까? 흥미로운 차트 전쟁 시작되다.]

[송하연 효과인가. 발매 3시간 만에 3위!]

세 시간 만에 3위.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차트에서 힙합으로 이렇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방송의 힘을 얻거나, 아니면 힙합씬에서도 하늘 위의 하늘인 아티스트가 역대급 곡을 냈을 때뿐이다.

그러나 이 곡은 방송의 힘은커녕 SNS홍보조차 하지 않았다.

랩독이 힙합씬에서 유명하다지만 레전드의 위치에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진짜로··· 1위 하는 건가?”

발매 직후부터 한동안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이 뚝, 끊어졌다.

예상이 맞다면, 1위를 했을 때 축하해주기 위함일 터.

랩독은 집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인터넷의 반응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오후 11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차트를 확인했다.

1. Ambitious(Feat. 송하연) - 랩독

“일···일 위! 일등···! 일등이다아아!”

국내 최대의 음원 사이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음악.

랩독 인생 첫 1위였다.

송하연 덕이 컸지만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것.

그는 짜릿짜릿한 느낌을 받으며 두 팔 벌려 포효했고.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은 통화와 더불어 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는 흐흐, 웃음을 흘리며 오고 있는 전화를 거절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1등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에게 감사 표시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어느 정도 기쁨이 묻어있긴 하나, 통화를 하는 상대방에 비해서는 상당히 담담한 목소리.

송하연은 손으로는 마우스를 잡고 스크롤을 내리며, 눈으로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인터넷에서의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

“예, 저도 봤어요. 축하드려요. 아뇨, 곡이 좋아서 그런 거죠. 예.”

그녀는 모니터링을 쉬지 않으며 전화를 이어갔고.

잔뜩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힙합도 재밌네.”

이럴 거면 진작에 해볼 걸 그랬다.

새로운 시도에 팬들 또한 굉장히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팬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는 송하연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져갔다.

“역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녀는 인터넷을 끄고는 곡 작업을 하던 프로그램을 다시 화면에 띠웠다.

이 곡을 녹음할 때 느꼈던 것처럼, 이제 박한울 없이는 앞으로도 완전히 만족할 만한 앨범은 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옆에 있을 때, 최대한 퀄리티 높은 곡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곡을 쓰긴 힘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었다.

좀 더.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좋은 곡을 뽑아내보기 위해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혀.’

그동안 그와 함께 작업하며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좋아할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자신이 먼저 토대를 쌓아보기로 했다.

어쩌면 전부 다 폐기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발전은 새로운 시도에서 나오는 법.

그에게 처음 도움받았던 정규 앨범처럼 자신이 대부분을 만든 뒤 곡을 깎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쌓은 것들을 가지고 그와 함께 소스로 활용하는 방식.

같은 방식에서 비중만 다른 것일 수도 있겠으나, 또한 용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이때 송하연은 몰랐지만, 박한울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생각으로 유현지의 앨범을 작업하려 하고 있었다.

YU엔터의 김준민 프로듀서가 만든 곡을 박한울이 깎게끔.

비록 하연이 지금 하고 있는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으나, 어쨌건 지금까지 유현지가 작업했던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긴 했다.

박한울과의 의견 나눔 하나 없이도.

그녀는 박한울이 알았다면 매우 찬성하며 미소 지었을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집중을 하며 곡을 짜던 중.

지이잉- 핸드폰에 진동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하연은 발신인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득달같이 전화를 받았다.

“아, 괜찮았어요? 하하. 실장님이 힙합 좋아하셔서 그런 거 좋게 느껴진 거 아니에요?”

곡을 잘 들었다는 박한울의 통화.

하연은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만면에 미소를 띠웠다.

랩독의 전화를 받았을 때와는 달리, 시선을 모니터에 두지도 않고, 손으로 마우스를 쥐지도 않고, 딴짓을 하지도 않았다.

“뭐하냐구요? 음···. 그냥 야식 좀 먹을까 생각 중이에요. 실장님은요?”

목소리 역시 하염없이 밝기만 했다.

***

YU엔터의 연습실.

월말평가 때라면 어느 기획사나 마찬가지겠지만, YU엔터의 분위기는 유독 더 서늘하곤 했다.

냉철함을 넘어 냉혹하기까지 한 평가와 연습생들끼리의 견제 어린 시선.

유현지 또한 YU엔터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에 폭언을 듣기도 했고, 샴페인 노바와의 관계 역시 좋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연습생들이 모두 모여 쥐 죽은 듯 조용했어야 할 연습실이, 지금은 수군거리는 소리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다른 회산데 박한울 실장님이 제대로 평가해주실까?”

“나도 유현지 선배님처럼 되는 거 아냐? 왜, 혹시 모르잖아.”

너무도 유명해, 대중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HJ엔터의 매니저, 박한울.

인터넷에 알려진 업적들부터, 뜬구름처럼 연습생들 사이에 퍼진 업적들까지.

그는 연습생들에게 소원을 이뤄주는 지니나 마찬가지였고, 그 덕에 평소였으면 견제했어야 할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기대를 숨기지 못하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

아무리 그래도 최고의 기획사인데, 다른 이도 아닌 대표가 직접 그를 데려온 거라 하니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흥미가 일었다.

어쩌면 또 한 번의 기적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유현지처럼, 이 연습생들 사이에서 누구도 못 알아봤던 인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주변이 이렇게 어수선한 와중에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이효진.

외운 가사를 다시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기대감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난 아니겠지.’

자신의 재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유현지, 그리고 샴페인 노바가 된 그녀들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보낸 그녀는 샴페인 노바가 데뷔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도 이곳에 붙어 있었다.

샴페인 노바가 최근에 데뷔한 이상, 회사가 몇 년 동안 걸그룹을 데뷔시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계속 붙어 있었다.

가수가 아니면 밖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차마 포기할 수가 없어서.

차마 포기할 수 없어서 미련하다는 걸 아는데도 계속 이곳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기대를 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과, 포기할 수 없다는 열망이 가슴 속에 함께 공존하고 있는 그녀는 흥분해 있는 주변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아.”

잠시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가사를 속으로 되뇌이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실장님. 얼마 전에 한 번 뵀었죠? 로비에서.”

“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레전드 가수, 스노우.

보아하니, 날 기다리고 있다가, 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전해 듣고 마중나온 것 같은데.

‘왜?’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나 짐작이 가는 거라곤, 김대표님에게 전했던 피드백.

그러나,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엔 그의 위상이 너무나도 높았다.

그때부터 며칠 지나지 않았기도 하고.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긴 채, 그와 함께 발맞춰 걸음을 옮겼고.

로비에 들어서서는 김대훈 대표님이 환한 미소로 날 맞이해주셨다.

“오셨습니까?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세심하게 보겠습니다.”

옆에 있던 스노우가 내게 말을 건넸다.

“박실장님, 혹시 시간 되시면 이따 잠깐 연습하는 것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게 아니라, 전달해주신 조언이 되게 잘 먹혀서요. 눈으로 직접 보면 또 다른 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피곤하실 것 같으면 다음에 날 잡고 한 번 봬도 전 괜찮아요.”

역시 그것 때문이었구나.

참, 위상에 걸맞지 않은 태도다.

한 시대를 호령했다고 하기엔, 특유의 고집이나 권위가 일절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가장 이상적인 아티스트의 태도였다.

‘···나도 애들 이렇게 키워야지.’

당장은 걱정 없으나, 앞으로는 또 성격이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것 아니겠나.

항상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아니에요. 피곤해도 미룰 수 없죠. 끝나고 바로 뵙는 걸로 해요.”

다음에 날 잡고 만나면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끝나고 보면 잠깐의 시간이면 족할 테니까.

굳이 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나,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는 YU엔터에 그렇게 딱 선을 그어 행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전에 내가 건넸던 조언들처럼 별로 수고스러운 일도 아니었고.

“네.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 많으시겠네요. 연습하고 있을 테니까 일 마치고 찾아주세요.”

스노우는 씨익 미소 지으며 떠났고.

나는 김대표님과 함께 월말평가가 치러질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역시 내가 처음 월말평가를 봤을 때와 비슷한 시선들이 쏟아졌다.

다른 회사라서 날 보는 시선들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는 눈빛들이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김대훈 대표님의 말에 월말평가는 바로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김대표님의 부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연습생들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평가했다.

‘그런데 별로 특출난 애는 없네.’

연습생들도 다 상향평준화가 됐기 때문일까.

HJ에 있는 애들과 엇비슷한 수준들이다.

그러나.

“이효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준은 고만고만할 지언정, 모두가 다 똑같은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아. 하아···. 그··· 가, 감사합니다!”

무대를 마치고 침을 꿀꺽 삼키는 그녀의 눈은 이리저리 바쁘게 흔들리고 있었다.

또한, 실내는 지금까지 달리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의 적막이 내려 앉았는데, 모두의 눈이 나를 향해 꽂히고 있었다.

그 이유는 뻔했다.

내가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입꼬리를 끝까지 말아 올리며 웃고 있기 때문이겠지.

‘얘라면···.’

내 머릿속에 우리 회사의 연습생 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름이 뭐랬더라? 해정이랑 윤지라고 했나?’

그룹이란 것은 특출난 개개인을 마구잡이로 때려넣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특출난 이의 개성을 누르더라도 전체의 조화와 시너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저··· 박실장님?”

묘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신인개발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대로 냉정한 평가를 시작했다.

“기본기는 괜찮네요. 발성이 잘 잡혀 있어서 음정도 안정됐고요. 기본기가 탄탄해서 댄스도 정돈된 느낌이에요. 보컬이 좀 허스키한 편인데, 이것도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서 그리 특출난 편은 아니네요. 요즘은 다 그 정도는 하죠.”

좋은 평가를 내리는 이들에겐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까지 내가 했던 대로 평범하게 평가를 했지만.

“박한울 실장님. 그 평가, 정말 맞습니까?”

의아하다는 시선들이 꽂히고, 김대표님 또한 황당하는 얼굴로 물었다.

당사자인 이효진 연습생은 거의 뒤통수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

그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너무 평범했기 때문.

‘하지만 이게 맞는데?’

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개성을 끌어올릴 수 있긴 한데, 그리 빛나는 재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인과 딱 맞는 멤버들을 만나지 않는 이상은요.”

본인과 시너지가 딱 맞는 멤버들을 만나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

< 박한울 실장님. 그 평가, 정말 맞습니까?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