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90화 (90/170)

< 혹시 솔로에 관심 있어요? >

오늘 나는 또다시 월말평가 심사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현지의 거대한 재능을 봐서 그런지, 연습생들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기대가 하나도 되지가 않았다.

“왜 그렇게 심드렁해.”

한팀장님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씨익 웃었다.

새로 만들어진 4팀은 기존에 있던 팀인 1, 2, 3팀과는 달리 사무실을 따로 쓰고 있기도 하고, 서로 워낙 바빴기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나는 한팀장님의 물음에 솔직하게 속내를 내비쳤다.

“재미없을 것 같아서요.”

다른 이라면 이렇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한팀장님과 난 이미 두터운 친분이 쌓여 있었다.

현재 4팀의 팀장인 최팀장님보다도 더.

한팀장님은 큭큭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옆에서 보는 애들 수준이 다른데. 그래도 잘 봐줘. 애들은 오늘만 보고 진짜 미친듯이 연습했을걸?”

“열심히는 볼 생각이었어요. 흥미가 안 가서 그렇지.”

우리는 연습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나눴다.

“3팀은 요새 어때요?”

비록 다른 사무실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들리는 건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1, 2, 3팀 모두 퍽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죽을 쑤고 있었다면 이렇게 묻지도 않았겠지.

한팀장님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름 반응이 나쁘지 않아. 너희 팀보단 아니겠지만.”

우리가 하늘을 훨훨 날며 높이높이 비상하고 있어서 다른 팀들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는 해도, 다른 팀들이 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근데 역시 있다가 없으니까 빈자리가 크긴 하더라. 요즘 제일 부러운 사람이 최팀장이야. 너랑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편하겠냐?”

볼멘소리를 내뱉지만, 얼굴에서는 나름 흡족한 기색이 띠워져 있었다.

애초에 3팀에 남기를 자처한 건 한팀장님이었다.

기존 3팀 아티스트들에게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며 책임지겠다고 했지.

내가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는 머쓱하게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이쯤 되면 대박도 좀 터지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이번 신인이 중요해. 지금 팀이 개편돼서 다음 신인이 어느 팀으로 갈지 안 정해졌거든.”

하나 분명한 게 있다면 4팀에는 절대 가지 않을 거라는 것.

우리 팀의 아티스트는 성호 삼촌과 송하연, 유현지, 정채희, 심민정까지 다섯 명이었으나 바쁜 걸로 따지면 다른 팀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분명 새로운 신인은 1, 2, 3팀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겠지.

한팀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갈진 모르지만 네가 오늘 원석 같은 애들 좀 잘 다듬어줘라.”

“예.”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로서도 예전의 나를 떠올리면 어색할 정도로, 지금은 일이 너무 좋았다.

억지로 일하게 된 김에 이왕이면 성공해서 편하게 생활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성공 따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애들의 재능이 좀 더 잘 드러나도록, 이 재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함께 더욱더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장인정신이라고 하기엔 여러모로 차이점이 있지만, 공통점 또한 있는 것 같았다.

나와 한팀장님은 함께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에 있던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내가 들어오자 음소거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소리가 멎었다.

정적이 내려앉은 가운데, 연습생들의 간절한 눈빛은 한없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래. 흥미는 없어도.’

이런 마음을 보고 어떻게 대충 하겠는가.

고작 실장이 짊어지기엔 과한 책임감.

나는 마치 회사의 대표가 된 것처럼, 우리 팀과는 그리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도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응당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

‘음. 김현준 연습생, 이건호 연습생, 정현진 연습생, 이동진 연습생까지 네 명, 그리고 여기서 신재준 연습생이나 박선후 연습생 중에 한 명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두 명 다 포함하면 서로 시너지가 잘 맞을 겁니다. 이분들이 뭉쳤을 때 추구해야 할 색깔은 퍼포먼스 팀이에요. 개인연습을 할 때, 같이 합을 맞춰보면서 연습하다 보면-‘

아직도 그때의 말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생생하게 떠오른다.

목소리의 톤, 표정, 분위기, 눈빛까지 모두.

마치 치트키와 같고, 연습생들에겐 자신들의 운명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저 너머의 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박한울 실장.

그가 첫 월말평가에서 꺼낸 말이었다.

그때 연습생들이 준비한 무대가 모두 끝나고 추가적으로 했던 말에, 연습생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었다.

언급된 연습생들은 환희를, 언급되지 않은 연습생들은 절망과 불신, 분노를.

그중 장찬수는 언급되지 않은 연습생에 속했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불신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다.

아니, 분노는 조금 했을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박한울 실장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지만.

‘이까짓 거.’

독기 하나로 버텨왔다.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이게 아니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매달려왔다.

어리석고 미련한 걸 스스로도 알았으나, 이렇게 무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걸 어떡하겠나.

불우하고 거칠며 폭력적인 가정 환경,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바짝 세워져 원만하지 못했던 교우 관계.

그가 스트레스를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음악, 그리고 스타들을 동경하는 마음이었다.

‘뚫어내면 돼.’

그날의 월말평가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흘렀으나, 자신은 그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의 고난은 자신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할 수 있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를 넘어, 독보적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집중해왔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박한울 실장의 시선과 모두의 시선을 같이 받으며 자세를 잡았다.

솔로 퍼포먼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무대를 펼치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여 산처럼 높이 쌓여버린 울분을 담아.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열정과 희망, 의지를 담아.

***

송하연이 그러했다.

그녀는 재능이 많았으나 그리 특출나지는 않았다.

정채희가 가진 연기 재능과 송하연이 가진 음악의 재능을 수치로 환산하여 재보면, 눈에 띄게 차이가 날 정도로 말이다.

허나, 지금 송하연의 위치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슈퍼스타.

그녀는 이번 정규 앨범으로 완전히 대중들의 마음 속에 슈퍼스타로 자리잡았다.

그녀는 완벽주의다.

깐깐하며 자기 작품에 간섭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고집쟁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만나며 많이 바뀌었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 중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애초부터 갖고 있는 재능과 실력이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은 노력과 경험, 영감, 혹은 환경 등의 이유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요소다.

눈앞의 장찬수 연습생 또한 그러했다.

그는 재능이 있었으나 다른 이들 사이에서 그렇게 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로만 따지자면.

다른 이들이 이 연습생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내 입에서는 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입꼬리는 말려 올라갔고, 흥미가 돌며 눈에 힘이 들어갔다.

저 악에 받친 퍼포먼스를 과연 아이돌 같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저 퍼포먼스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손볼 곳은 많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감명 깊게 하는 게 예술의 본분이라면 훌륭한 게 맞다.

나는 내 눈을 흡사 노려보듯 보고 있는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혹시 솔로에 관심 있어요?”

“···!”

“···!”

“···!”

홱! 하고 나와 나란히 앉아있던 직원들의 고개가 돌았다.

그리고 연습생들은 모두 헛숨을 집어삼켰다.

나는 그를 바라봤고, 그는 나를 바라봤고, 그 외 모두는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는 그 묘한 대치 속에서.

그는 입을 열어 당돌하게 물어왔다.

“실장님께서 관리해주시는 겁니까?”

다른 팀의 매니저들에게 있어 초미의 관심사일 터.

나는 그들이 덜컥 걱정을 집어먹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마 다른 팀에 갈 거예요. 왜요. 그럼 싫어요?”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솔로든 뭐든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장님이랑 다른 팀에 들어간다고 해도 성공할 겁니다. 무조건이요.”

“무대에서 보여준 것처럼 각오도 좋네요.”

그 말을 끝으로 내 차례가 끝이 났고.

이날, 신인개발팀과 매니지먼트 1, 2, 3팀은 부랴부랴 장찬수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며, 회사에 바람이 불어왔다.

***

“어떻게 그렇게 능력이 좋으세요?”

심민정의 집앞.

첫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데리러 왔는데,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회사요. 연습생 평가 한 번 좋게 한 걸로,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잖아요.”

뭘 말하는 건가 했더니 그거였구나.

나는 픽 웃으며 답을 하지 않고는 그녀의 손에 든 쇼핑백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뭐예요?”

“간식거리 같은 거요. 목 베개랑 담요도 있고요.”

꽤 무게가 나가 보여서, 나는 그녀의 손에 든 걸 뺏어 들며 걸음을 옮겼다.

내 옆으로 붙어 같이 걷고 있던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왜 답 안 해주세요? 어떻게 그렇게 능력이 좋으시냐니까요.”

“제가 좋은 게 아니라, 그 친구가 실력이 좋은 거예요. 전 그걸 말해준 것뿐이고. 아무리 저라도 실력 없는 사람을 말 한마디로 실력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어쩌면 나는 굉장히 편하게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실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것만으로 과분한 시선들을 받고 있으니까.

연습생 건은 심지어 그가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을 사실대로 평가했을 뿐이었다.

심민정은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실장님 말 한마디로 사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맞잖아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랬다고 들었는데요? 저도 그렇고.”

차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는데, 그녀의 말이 따라붙었다.

“아마 그 연습생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건 아닐 것 같았다.

뭔가 느낌이 달랐거든.

그 친구는 설령 내가 혹평을 했더라도 견디고 노력해서 다음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연습생의 인생을 바꾼 건 내가 아니다.

자기자신이지.

“그렇다고 치고··· 첫 촬영인데 컨디션은 어때요? 얼굴은 꽤 좋아 보이는데.”

첫 촬영이라 긴장될 만도 한데.

역시나 대본 리딩에서도 떨지 않고 실력을 가감없이 선보였던 그녀답게 얼굴은 더없이 좋아 보이기만 했다.

“좋아요. 준비한 대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리딩 영상에 달린 댓글들 봤죠? 저 엄청 잘한다고 칭찬 많이 올라온 거. 확실히 실장님이 봐주셔서 훨씬 더 깔끔해진 것 같아요.”

캐릭터 분석과 대본 분석을 도와주고 연기를 다듬어주긴 했었지.

많이도 아니고, 약간 정도.

“어? 잠시만요. 전화 좀 받을게요.”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어, 지수야. 응, 나 지금 촬영장 가는 길이지.”

내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함께 출연하는 박지수.

저번에 밥을 먹는다고 하더니만 어느새 친해진 모양이다.

나는 그 밝은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실장님 말 한마디로 사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맞잖아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랬다고 들었는데요? 저도 그렇고.

과연 그녀의 인생을 내가 바꿨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렇다고 말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원래 얽힌다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그녀는 원래도 혼자서 배우를 하려고 했고, 실력은 홀로 쌓아왔다.

아직까지는 내 말 한마디로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이제부터는 다르지.’

말 한마디로 극적인 변화를 보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고른 이번 드라마를 시작으로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홀로 배우를 시작하려 했을 때와는 큰 격차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원래 스타가 될 재목이었다면 더 큰 재목으로.

원래 스타가 될 운명이었다면 그보다 더 빨리.

첫 촬영.

그녀의 인생을 바꿀 행보의 공식적인 첫 걸음이 되는 오늘.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내 자신감과 긍정적인 기운 역시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 혹시 솔로에 관심 있어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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