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너무 멋있잖아? >
심민정이 속했던 걸그룹 ‘레이니데이’.
아무리 이지연의 원톱 그룹이라고 해도 그룹의 인지도가 높았던 만큼, 다른 멤버의 팬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심민정의 비주얼만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니 더더욱.
실력이 모자라고 소속사의 푸시가 거의 없었으며, 방송가에서도 찾지를 않으니 묻혀졌을 뿐, 그녀의 미모와 성격을 보고 반한 팬들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떡밥이 없어서인지 열성적인 팬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 팬들 중 처음부터 심민정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입덕해버려서 아직까지도 오매불망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팬이 있었다.
떡밥이 가뭄 수준이라 팬질하기가 너무 어려웠으며, 소속사의 방치 때문에 팬질하면서 분노했던 적이 훨씬 더 많긴 했지만.
그는 심민정이 HJ엔터에, 그리고 박한울이 담당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감과 희망을 가졌었고.
마침내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대본 리딩의 영상이 올라오는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잘 되겠지?”
영상이 올라오기 전, 그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반응을 살펴봤다.
원작의 팬이 워낙 많아서인지 영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심민정에 관한 것들만을 찾아봤다.
-민유정 역할을 심민정이 한다고?? 사진 보니까 이미지 미스 매치던데.
-심민정 그래도 연기 잘할 것 같지 않음? 박한울이 픽했잖아. 박한울이 픽한 애들 지금 폼 보면 답 나오지. 송하연, 정채희, 유현지 미쳤자너.
└송하연은 박한울 픽 아님. 박한울이 송하연한테 픽 받은 거임ㅇㅇ 인터뷰에서 그랬음.
-아 씨ㅋㅋㅋㅋ 내 최애 민유정인데 개망했넼ㅋㅋㅋ 드라마 안 본다. 보이콧하실 분 구함(1/999999)
반응은 여럿으로 갈렸다.
안 좋은 반응과 기대된다는 반응들.
그러나 이를 살펴보던 그는 만면 가득 미소를 띠웠다.
박한울이 직접 컨택해서 HJ와 계약했을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땐 아무 결과물도 없었지만 지금은 연기의 실력이 곧 드러날 상황.
“이 정도 악플은 악플도 아니지.”
그의 눈에는 좋은 댓글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무려 7년 동안, 이지연의 개인 팬들과, 타그룹 팬덤들이 욕하는 댓글들은 정말 매서웠으니까.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양반이지.
또한 이미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무뎌지기도 했다.
정작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를 생각하면 덜컥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대본 리딩 영상도 홍보의 일부인 게 사실인 듯, 원작 팬들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이 번져 영상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떴다!”
막상 이때가 되니 긴장과 걱정이 기대를 앞질렀다.
만약에 연기를 못한다면?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상상이 들었으나, 이게 결코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다.
그녀의 연기 실력은 팬들도 모를 만큼 베일에 싸여 있었으니까.
유일한 자료라면, 연기를 막 배웠을 때 들어갔던 드라마가 있지만 그건 참고가 되지 않는다.
그 뒤로 한참이 흘렀기도 하고, 그땐 배운 지도 얼마 안 됐으니.
그는 총 24분으로 편집된 영상을 초집중하며 시청하기 시작했고.
심민정의 연기가 나오고서는 온몸에 전율이 흐를 만큼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
팬인 자신마저도 깜짝 놀랄 만큼 기대를 한참 웃돌았다.
화면 너머에서도 이렇게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게 보이는데, 그 시선을 받는 그녀는 긴장을 아예 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는 해당 씬을 몇 번씩이나 돌려보며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가장 압권은 역시 씬이 끝난 다음에서야 자신이 몰입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의 반응.
그는 끝까지 영상을 다 시청하고 급히 커뮤니티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선 이미 반응이 뒤집히고 있었다.
-보이콧 취소ㅋ 심민정 뭐냐?ㅋㅋㅋㅋ 왤케 잘함?
-음. 솔직히 이것만 보고는 잘 모름. 근데 좀 더 지켜봐줄 순 있을 듯?
-ㅋㅋㅋ민유정 최애 엄청 많아지겠네 떡상하겠다ㅋㅋ
-쉬는 시간 끝나고는 혼자 레전드 찍네.
-작가놈 좋아서 공중제비 돌고 있을 게 눈에 보인다. 아닌가?ㅋ 실제 모델은 불륜으로 나락 갔으니.
-역시 박한울 픽 미쳤네 와 진짜 큐빅엔터 개쌤통이다···. 이런 애를 놓쳤엌ㅋㅋㅋㅋㅋ
커뮤니티를 아무리 봐도 대체로 아주 좋은 반응들이었다.
물론 몇몇 악질들은 여전히 설치고 있었으나 결과물이 이미 무척이나 좋게 나온 만큼 악플은 정말 무시해도 좋았다.
그는 커뮤니티와 SNS, 그리고 기사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폈다.
“이런 게 진짜 팬질하는 맛이구나.”
아무래도 이 팬질은 앞으로 더 오래 갈 것 같았다.
너무 좋아서 그만둘 수가 없을 것 같았으니.
***
이영진 감독의 <착한 역할>이 충분히 좋은 성적이나 당초 예상보다는 저조한 400만 스코어에 머무르고 있는 사이.
구선학 감독의 <더 BAD>는 어마어마한 입소문을 타고 1000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가히 열풍이라 해도 과하지 않은 분위기.
우리는 채희에게 쏟아지는 광고주들의 수많은 러브콜들을 받고 몇 개의 광고만을 선택해 찍기로 했다.
채희와 상의 끝에 우리가 고른 것은 두 개.
바로 나이키 신발과 핸드폰이었다.
두 기업의 이미지는 극명하게 나뉘었는데, 이렇게 이미지가 다른 두 기업이 모두 채희에게 광고 모델이 되어달라고 한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각 기업이 추구하는 다른 이미지에 완전히 부합하진 않더라도 모델을 요청할 만큼 그녀의 이미지가 좋다는 거니까.
우리는 나이키 CF를 촬영하기에 앞서 핸드폰 CF 촬영 현장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분장을 받으며 광고 콘티를 재차 살폈다.
“화질, 더 선명하게. 손 안에 세상을 담다.”
목소리 톤과 어조를 이리저리 바꾸며 갖은 폼을 다 잡고 있다.
이미 그녀의 옆에 붙어 분장하는 분들은 웃음을 대놓고 흘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참더니만 채희가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그냥 편하게 웃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거 후시 녹음이라니까. 지금 여기서 바로 안 쓴다고.”
내 말에 그녀는 정면의 거울을 통해 나를 째려봤다.
“그래도 톤이랑 어조를 미리 정해야 입모양이랑 표정 맞출 거 아니에요. 광고 찍어본 적도 없으면서.”
“뭐라고?”
“···뭐요.”
기세 좋게 말했으면서 또 살살 눈치를 살피며 금방 움츠러든다.
광고주가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 의심하지 않을까.
대중들과 언론은 영화와 그녀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며 띄우고 있었으나, 내가 보기엔 정말 영락없는 애나 다름없었다.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착하고, 순수하며, 때로는 귀엽고 예쁘고 청바지도 매진시킬 만한 몸매를 가진.
난 모든 분장을 마친 그녀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에서 재벌 이미지였어서 그런지, 드레스와 분장은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있었다.
힙하게 꾸미면 정말로 평소에 힙한 사람처럼 나오고, 고급스럽게 꾸미면 고급스럽게 나오는 외모.
배우로서는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훌륭한 재능이었다.
나는 이번엔 그녀가 묻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이쁘다. 많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
평소에 매일마다 묻는 질문이었으면서 이런 반응을 보이니, 난 절로 떨떠름한 표정이 지어졌다.
“···왜 그렇게 쳐다봐.”
채희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당연한 걸 굳이 말하시길래.”
“···.”
“제가 이쁜 거 하루이틀이 아니잖아요. 근데··· 오늘은 진짜 엄청엄청 예쁜가 봐요?”
그래, 얘가 이러는 게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먼저 선수를 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으니, 그래도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춰주기로 했다.
안 맞춰주면 맞춰줄 때까지 계속 이럴 테니.
“맞아. 평소에도 예뻤는데 오늘은 특히나 더 더 예쁜 것 같네.”
그렇게 잠시 대기를 하다가 촬영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CF감독으로부터 무수한 칭찬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최고예요! 최곱니다! 더! 기분 좋은 미소! 상쾌하게! 그렇지! 좋아요!”
내가 보기에도 오늘 그녀의 표정은 훨씬 더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천만 관객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언론과 대중들이 엄청 띄워주고 있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은 듯했다.
***
얼마 전 있었던 채희의 팬미팅은 많은 후기 글들을 남겼는데.
이 후기 글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팬미팅에 참여했던 모두가 무척 만족해했다는 게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이에, 정채희의 팬들이 기쁨과 아쉬움을 함께 공유했다면.
이와는 반대로 그 팬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강 건너에서 지켜보며 이를 가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열렬함으로는 그 어느 팬덤에게도 뒤지지 않는 유현지의 팬덤.
그들은 커뮤니티에 유현지의 팬미팅도 진행해달라는 무수한 글들을 남겼고, 회사로도 전화해 정말 팬미팅 계획이 없는 건지 여러 번 묻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도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했다.
배우인 채희야 보여줄 게 없어서 많이 준비해야 했는데, 현지의 사정은 아무래도 다르니까.
평소에 하던 무대를 보여주고 VCR을 어느 정도 찍고 Q&A 등을 진행하면 되니, 나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그녀가 크게 준비할 건 없었다.
‘팬들이 이렇게 강하게 요구하는 건 들어주는 게 맞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팬들이 무언가를 강하게 요구했을 때는 이런저런 사정들을 따져가며 선을 긋고 길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
팬들이 있기에 아티스트가 있는 거고 회사가 있는 거니까.
팬들을 개돼지로 보고, 그들의 요구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결국 심민정이 있던 기획사인 큐빅엔터처럼 팬들의 주적이 되는 거다.
나는 이에 대해 당사자인 현지와 얘기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하고 그녀가 연습하고 있는 연습실에 들어갔고.
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땀범벅인 채로 나를 맞이했다.
“하아. 오셨어요?”
요즘 안무 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녀.
아무래도 계속 안무 창작을 해보라는 내 말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도통 쉬지를 않고 매일마다 몇 시간씩을 하고 있다.
아무리 감을 잡았다고 해도 좀 적당히 하지.
나는 혀를 짧게 차고는 그녀에게 냉수를 내밀었다.
“원래 지금 휴식하고 있어야 하는 시기인 거 알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
마침 목이 말랐는지 그녀는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간단하게 답했다.
“알겠어요. 조절할게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대답이다.
애초에 그렇게 쉽게 수긍할 사람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겠냐고.
그녀는 지금까지 데뷔곡에 이어 바로 후속곡을 준비하고 활동하느라 쉴 틈이 없었기에 이번엔 정말 휴식 기간을 가져야 했다.
바쁜 스케줄과 힘든 무대를 쉬지 않고 하며 혹사를 당해온 아이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정신과 몸이 약해지는지는 여러 사건들로 인해 알 수밖에 없게 됐으니,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지금 그녀가 한창 안무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어 당분간 휴식이 요원해지긴 했지만, 성장하고 있는 걸 무턱대고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가장 이상적인 것은 휴식과 연습을 적절히 병행하는 것이었다.
"우리 너무 빨리 하려고 욕심내지는 말자. 앨범 작업도 들어가야지."
적당히 연습하며 안무 창작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될 때쯤, 비로소 휴식 기간을 주고 천천히 앨범 작업을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연습에 몰두하면 그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게 하는 건 절대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부러 더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 정식으로 팬미팅 하려고 했는데, 무리하면 스케줄을 더 시킬 수가 없-“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마음이 급했는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이제 연습 안 할게요. 팬미팅 하게 해주세요.”
"...."
"아."
그녀는 아차, 하며 손을 떼어내고는, 땀냄새가 날 것을 의식했는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냄새 전혀 안 나는데.'
아무튼 그녀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마음을 피력하고 있었다.
'이러면 내가 정말 나쁜놈이 된 것 같잖아.'
이렇게까지 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네.
살짝 언질이라도 해주지.
난 피식 웃으며 최대한 부드럽게 들리도록 말했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어. 오래오래 탑스타에 머물러야 하는데 일찍 몸 상하면 아깝잖아. 팬들한테도 오래 보여줘야 하니까."
"네.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어서 계속 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더 신경 쓰면서 할게요. 그런데 저 이제 정식으로 팬미팅하는 거예요?"
이미 얼굴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대로 고개를 끄덕이면 저 표정은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표정이 되겠지.
보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순박한 미소.
물론 그 표정을 좋아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 날짜 잡고 기획하려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어차피 이제 스케줄도 안 잡고 있고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아서."
그런데,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대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팬미팅 때 제가 만든 안무로 무대 하나만 하면 안 될까요?"
"...어?"
"무리할 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미 거의 다 만들어놓은 게 있어서요."
그녀는 그제서야 환하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연습하다 보니까 저번에 만들었던 게 조금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솔로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봤어요."
'저번에 만들었던 거'라고 하면 샴페인 노바랑 같이 만들었던.
"마이클 잭슨의 'Bad' 말하는 거야?"
"네. 그때처럼 마지막 후반부만요."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볼 수 있었다.
그저 평범할 줄 알았던 팬미팅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줄 깜짝 선물 같은 무대를.
그녀가 재밌어서 매일마다 연습을 멈추지 못 했다는 것 또한 이제서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재능이 크게 발전하는 순간은 지치지 않는 법이거든.
'그런데 이거 너무 빨리 느는 거 아냐?'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재능을 키우는 데 좋은 방법이라며 안무 창작을 계속 해보라고 말한 게 나이거늘.
역시 천재는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천재인 모양이다.
'이건 너무 멋있잖아?'
< 이건 너무 멋있잖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