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85화 (85/170)

< <더 BAD> 극장 개봉 >

구선학 감독의 영화, <더 BAD>는 이영진 감독의 <착한 역할>만큼은 아니나, 그래도 상당한 제작비를 홍보비로 썼고.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드디어 개봉을 하였다.

주연배우 최종윤, 정채희.

조연배우 박송이, 김정훈, 이석준, 현정수.

이중 현정수는 영화 개봉 첫날, 홍보차 무대인사를 모두 다녀온 뒤 뒤늦은 저녁 시간에서야 가족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정수야,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재밌다고 난리야! 네 이름도 검색하니까 계속 나와! 세상에! 어머! 어떻게 첫날부터 이런다냐. 이번엔 정말 잘되려나 보네.”

자신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리신 어머니는, 그동안 열심히도 인터넷을 살펴본 모양이었다.

관객들이 인터넷에 남긴 반응들을 읽으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신다.

얼굴에 옅게 홍조까지 띠며 좋아하는 모습.

지금까지 배우 활동을 하며 결코 본 적이 없던 얼굴이다.

“크흠. 일은 잘하고 왔냐?”

“네, 아버지.”

“잘돼도 항상 겸손해야 한다. TV에서 보니까 연예인들이 아주 별 지랄을 다 하더라. 넌 그렇게 되면 내 손에 죽어. 항상 법 잘 지키고 절대 나쁜 짓은 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아버지도 자신이 순풍을 타고 있다는 걸 아시는 모양이다.

아까 온 친척들의 연락으로 듣기로는 아버지가 계속 영화 보라고, 반응 엄청 좋다고 막 말씀하셨다는데.

현정수는 아버지의 이러한 걱정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이 영화 전까지는 ‘힘내라’, 혹은 ‘언젠간 너도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다’, 이런 격려의 말들만 들어왔으니까.

당시 아버지의 의도는 가슴에 잘 와닿았다만, 그런 말씀을 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그는 죄책감이 들었고 눈치가 보였었다.

연기를 사랑하고, 연기에 모든 것을 바치며,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잘 되지 않았었는데.

‘박한울 실장님.’

현정수는 자신을 제작진들에게 추천해준 그 이름을 다시 가슴 속에 깊이 새겼다.

절대 그렇진 않겠지만 정말 만에 하나의 확률로 자신이 건방져진다 해도, 절대 그에게 받은 은혜만큼은 잊지 말아야 했다.

“이제 가요.”

“그래.”

영화 한 편 보는 것뿐인데 그 어느 때보다도 곱게 잘 차려입으신 부모님과 함께.

현정수는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영화를 보고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말이 귓가에 꽂혔다.

“진짜 개미쳤다! 이거 한 번 더 볼래? 와. 이건 진짜 존나 재밌는데?”

“정채희 진짜 연기 개잘해. 그리고 마지막에 박형사 진짜··· 거기서 소름 쫙 돋았잖아.”

“리얼. 거기 개쩔지.”

박형사.

그건 현정수가 맡은 역할이었다.

“어머! 어머! 들었니? 정수야. 너 얘기하잖아!”

마치 저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말리느라 고생이신 듯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서도 짙은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런 모습을 갖추지 않아도 자랑스러워해주시는 부모님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가.

현정수는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울컥, 감정이 올라오려고 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인 듯, 눈시울이 벌써 붉어지셨고.

그들은 화장실에 들렀다가 입장시간이 임박해서야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들어가자.”

***

“와! 성공했다!”

커플석인 상영관의 맨 뒷좌석.

모자와 알 없는 안경, 거기다 마스크까지 쓴 채희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대인사를 마친 뒤의 저녁 늦은 시각.

채희와 나는 개봉 첫날인 오늘 직접 영화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영화는 이미 개봉하기 전에 봤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정식으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 있을 테니까.

그녀는 처음 출연하는 영화의 개봉일인 오늘을 놓칠 생각이 없었고, 그 뜻은 나도 같았다.

최근에 유명세를 탄 덕에 나까지 마스크와 모자를 써야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나는 우리가 함께 먹을 팝콘을 다리 위에 올려두고는 한눈에 보이는 상영관 내부를 확인했다.

이틀 전에 개봉한 이영진 감독의 <착한 역할>이 연신 호평을 받고 있어서 관객들이 그쪽으로 많이 쏠린 모양인지,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이고 있었다.

아직 상영 시작 전이라 점점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겠지만 아마 다 채워지진 않을 듯 보인다.

지금 인터넷에서 우리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찬이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입소문이 탄력을 받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터.

우리는 빈자리들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역시 시즌이 시즌이라 가족단위로 찾아오신 분들이 좀 보이네요?”

“그렇지. 이제 추석이니까.”

“이중에 제 팬도 있겠죠?”

채희는 자리에 앉은 관객들을 한 명 한 명 따뜻하게 바라보며 눈에 담았다.

물론 이들 중에 채희 팬이 아닌 이들이 꽤 있을 테지만, 난 한 가지 확신했다.

“영화 끝나고 나갈 땐 다 네 팬 돼있을 거야.”

“그러면 좋겠다.”

히죽 웃는 채희.

때맞춰 상영관 내부의 조명이 꺼지고, 나와 채희는 그제서야 마스크를 내리고 콜라를 먹을 수 있었다.

팝콘도 먹으며 슬쩍슬쩍 손이 스치기도 했는데, 우리 사이에 이런 건 뭐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영화에 빠져들었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에 빠져들었다.

***

정채희의 팬인 친구가 술을 산다 하여 함께 영화를 봐야만 했던 강석준.

그는 영화의 시작부터 몰입하며 빠져들었고, 보는 내내 영화에 집중해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 때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부터.

다른 이들도 다 똑같았는지, 나지막이 흘리는 탄성이 곳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와···.”

영화는 끝났는데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영화를 보며 귀에 익게 된 이 음악과 이 여운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고, 바로 영화 밖으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 느낌을 곱씹고 싶었다.

“야.”

친구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고, 얼굴 가득 즐거움을 담은 표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왜.”

“재밌었냐?”

친구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수준이 아닌데? 이건 미쳤어.”

이 영화를 보자고 해서 인터넷에 정보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기사를 봤었다.

[범죄영화의 클래식이 추가되다. 구선학 감독의 <더 BAD>]

정말 이 제목대로였다.

클래식.

어느 것의 아류도, 어느 것의 하위호환도 아니고.

그저 이 영화는 이 영화 자체로 명작이었다.

그렇게 여운을 즐기던 그들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어째선지 맨 뒤 커플석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남녀가 눈에 들어와 시선이 떠나질 않았다.

그들과 눈을 마주친 그는 살짝 당황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목격할 수 있었고, 방금 전까지 계속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그 이름이 곧바로 입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정채희다!”

“···!”

“···!”

“···!”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바로 말이 튀어나온 바람에 목소리는 꽤나 컸고, 상영관을 빠져나가려 하던 모두의 시선이 홱! 하고 자신이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쏠렸다.

커플석의 그녀는 거칠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 아니에요!”

방금 전까지도 무척이나 감명 깊게 들었던 그 익숙한 목소리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정채희야!”

“꺄아아!”

“와! 뭐야!”

이미 상영관을 빠져나갔던 사람들까지 불러들일 만한 커다란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

자정이 지난 시각.

윤본부장은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또한, 그 앞에 있는 최팀장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모두 방금 전의 사건 때문.

비상이라 하기도 뭐한 비상이 걸렸었는데, 모두 킥킥거리며 일처리를 마친 뒤였다.

[정채희와 박한울 매니저, 출연한 영화 함께 관람하다가 봉변? 커플로 오해받다.]

SNS와 커뮤니티에 사진과 동영상들이 올라오며 뜬금포 열애설이 터졌었다.

의문의 남성과 함께 커플석에서 영화를 관람했다는 내용의.

허나, 그 남성의 정체는 박한울.

그저 잠깐의 해프닝이었으나, 네티즌들이 워낙 이런 이슈에 민감한 덕분에 홍보 효과만 더 본 셈이 됐다.

“이걸 가격으로 치면 얼마야? 박실장은 진짜 운도 좋아.”

윤본부장은 피식 웃으며 영화에 대한 내용을 언급했다.

“오프닝 스코어는 대략 계산됐대?”

“아직요. 그런데 아마 15만 이상은 나올 것 같답니다.”

오프닝 스코어 15만.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스코어.

영화의 퀄리티에 자신이 넘치니, 앞으로 더욱 입소문이 날 것을 감안하면 선방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쪽이랑 딱 두 배 차이네.”

그러나 이영진 감독 영화의 오프닝 스코어는 30만.

초호화 배우진들을 동원하고 막대한 홍보비를 투입해서 이뤄낸 성과였지만, 그래도 그 관객들 중 일정 수는 웬만해서는 같은 시즌에 바로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을 테니 이쪽 입장에서는 뼈아프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장르까지 겹치니 더더욱 <더 BAD>는 보려 하지 않겠지.

윤본부장은 아쉬움에 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최팀장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인터넷 반응 보니까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입소문이라는 게 영화판에서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아시잖아요.”

입소문이라는 건 연예계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홍보 방법이었다.

누구나 이를 알지만 그저 하늘의 뜻에 맡겨야만 하는 이것.

그런데 입소문을 한 번 제대로 타기 시작하면 아예 극장에 발길을 끊은 사람조차 끌어들이게 만들고, 아이돌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을 팬으로 만들기도 한다.

“알지. 추석 시즌이라 입소문 따라서 더 잘 움직일 거고. 근데 문제는 그쪽 영화도 평이 좋다는 거잖아. 우리 퀄리티가 더 좋다고 해도 그게 효과 보려면 더 시간 걸릴 거고.”

최팀장은 물었다.

“본부장님, 마지막으로 인터넷 모니터링한 게 몇 시였어요?”

“응? 왜? 한 여덟 시쯤?”

최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입소문이 훨씬 더 빨리 효과 볼 것 같아요. 지금··· 반응이 완전히 뒤집어졌거든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빨리.

원인은 영화 자체의 압도적인 퀄리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외 자잘한 도움들도 여럿 있었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며 점점 높아지는 박한울의 명성도 한 몫 했다.

지금 송하연의 앨범에 푹 빠진 대중들에게, ‘아, 저 사람이 담당하는 연예인이 하는 거면 어느 정도 괜찮겠구나.’라는 신뢰가 생긴 것.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덕을 보긴 했다.

또한.

예능 <우리의 컨텐츠>에서 본방송 전에 미리 클립 영상을 푼 덕도 있었다.

송하연의 팬, 그리고 유현지, 샴페인 노바의 팬들은 함께 출연하는 이성호, 정채희가 나오는 클립을 봤고.

이성호와 정채희의 팬들은 물론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많은 대중들도 당연히 이 클립을 봤으니까.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영화의 입소문을 더욱 빠르게 퍼지게 하는 데에 기여한 것이었다.

***

정채희의 팬들에게는 오늘은 무척이나 바쁜 날이었다.

할 일이 산더미.

그러나 기쁨 역시 산더미였다.

“캬···! 이거지!”

영화 리뷰와 한줄평은 호평일색.

아니, 거의 찬양일색이었다.

-솔직히 다른 영화 보고 싶었어서 불만에 찬 상태로 봤었는데ㅋㅋ 이게 뭐냐?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음. ㄹㅇ 안 보면 인생 손해.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 손주, 아내, 남편, 선생님, 교수님, 친구 모두 미친듯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이거 호불호 갈리지 않습니다. 호극호만 갈림.

이러한 평을 본 그의 입꼬리는 이미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는 커뮤니티와 SNS, 팬카페 등을 모니터링하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즐겼고.

딱 선을 지키며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말이 홍보지, 사실 한 명의 네티즌으로서 정말 느껴진 대로 쓰는 것뿐이었다.

[내일 ‘더 BAD’ 한 번 더 본다. ㄹㅇ미친 영화임.]

게시물엔 자신이 정채희 팬이라는 것과 영화의 기본적인 소개,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적당히 풀어 적었다.

이 게시물에는 오늘부로 정채희의 팬이 된 이들 또한 댓글들을 달았다.

-정채희 팬카페 가입하면 뭐 있음? 가입이나 해볼까?

-얘 이쁘고 연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대박일 줄은 몰랐다. 영화 첫 주연인데 왜 이렇게 잘하냨ㅋㅋ 이 영화 보고 팬 됐음 진짜ㅋㅋ

“내가 다 뿌듯하네.”

기존 팬이던 입장에서, 새로운 팬들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우리 스타가 더 잘나갈수록 더욱 기쁜 마음이 드는 게 팬의 마음이거든.

-님 두 번이 끝? 나 오늘 봤는데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볼 거임ㅋ

-적어도 세 번은 봐야지 ㄹㅇ 팬심 다 빼고 봐도 또다시 팬이 될 수밖에 없는 기적 같은 영화자너ㅋㅋ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팬들 역시 영화를 또다시 볼 생각에 신이 나 있는 듯했다.

아마 이들도 이제 방송되는 예능을 무조건 챙겨보겠지.

“‘우리의 컨텐츠’도 진짜 재밌을 것 같던데.”

최근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영화였고, 그 다음은 예능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방송국 쪽이나 제작사 쪽이나 소속사 쪽이나 팬들 쪽이나.

모두 다 한 몸이 된 것처럼 무지하게 바쁘게 일하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입소문이 쫘악 퍼지기 시작한 지 며칠.

마침내 추석 연휴가 시작됐고, HBC의 대표 예능 <우리의 컨텐츠>는 추석특집으로 2시간 2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송이 되었다.

< <더 BAD> 극장 개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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