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시사회 >
기자들이 상영관 안으로 하나둘씩 자리를 채웠다.
블로거 기자들을 포함해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선 아는 사람들끼리 조용조용 대화를 나눴다.
“’착한 역할’ 시사회는 갔다 오셨어요?”
“네, 역시 그건 잘 빠졌더라고요. 덕분에 이 영화만 불쌍하게 됐지. 근데 나 같았으면 개봉 시기를 좀 조절했을 텐데 무슨 자신감인가 몰라요.”
“그래도 추석 시즌이잖아요. 2등이라도 노리고 들어오나 보죠.”
“그런 것 치곤 ‘착한 역할’이랑 장르가 너무 겹치지 않아요? 뭐로 봐도 완전 하위호환인데.”
이틀 전, 이영진 감독의 영화 ‘착한 역할’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그곳에 다녀온 기자들은 <더 BAD>를 아직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당연히 그도 그럴 게, 직접 <착한 역할>을 봤으니까.
영화가 상당히 잘 빠졌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고, 실제 올라온 기사들 또한 그러한 감상들이 대다수였다.
“근데 혹시 또 몰라요. 정채희 매니저가 또 선구안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여기 배우진들도 그 매니저가 추천해준 거라고 전에 기사도 났었고. 어쩌면 이 영화가 이영진 감독님 작품보다 더 좋을 수도 있죠.”
그 기자의 말에, 같이 대화하고 있던 기자는 살짝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영화 봤다니까요? 그건 진짜 잘 나왔어요.”
이에 가능성을 말했던 기자도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제 곧 알게 되겠죠. 뚜껑은 까봐야 아는 거니까. 그리고 정채희 연기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영화 데뷔작이 주연이면 사람들이 궁금해라서도 더 볼 수도 있죠.”
“핫한 거라면 구 감독님 영화배우들보다 이 감독님 영화배우들이 더 핫하죠.”
트렌드로 따지자면 정채희가 위.
오래도록 유지해온 인기로 따지자면 저쪽이 위.
기자들의 의견이 두 개로 엇갈린 가운데, 무대 인사 시간이 다가왔다.
무덤덤하고 별 기대 없는 기자들로 채워진 상영관.
주요 배우진들과 감독, 작가, 제작사 대표는 무대 위로 올라가며 그런 기자들 앞에 섰다.
찰칵. 찰칵. 찰칵.
시작 전의 반응과는 달리, 기자들은 사진만큼은 굉장히 열심히 찍고 있었는데.
이는 전부 정채희 때문이었다.
“···진짜 이쁘긴 오질라게 이쁘네.”
한 기자는 셔터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영화가 하위호환이든 뭐든, 정채희가 핫한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녀는 이 영화가 영화 데뷔작이자 첫 영화 주연이기 때문에 기사를 여러 개 올릴 수 있을 거다.
당연히 그 기사의 내용이 연기력에 대한 의심은 아니겠고.
‘정채희 연기력은 누구나 다 인정하니까.’
정채희와 박송이를 제외한 이들에게 가는 관심이 얼마 없기도 했는데, 그들은 전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명 배우들, 그리고 작가와 제작사 대표, 감독까지.
물론 간담회가 시작되면 감독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여러 가지를 질문하겠지만, 일단 영화를 보지 않은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 동안 간단하게 영화에 대한 소개와 역할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그들은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내려가자마자 얼마 안 있어 바로 영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 시간은.
이 자리를 채운 기자들의 생각을 크게 반전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
영화가 상영될 동안 무명 배우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긴장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제작사 대표와 감독, 작가는 이런 경험이 익숙해지지 않다 뿐이지, 어쨌든 경험해보긴 했으니까.
날 선 질문이나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한 질문이 돌아온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나, 일단은 그랬다.
“채희야, 기자들이 공약 걸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아까 대기실에서 난데없이 천만이라는 숫자를 꺼내는 바람에 다른 이들의 숨을 턱 막히게 했었다.
그래서 그건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을 하니, 채희는 그제서야 아차 하는 반응을 보였다.
간담회에 올라가기 전, 이를 다시 주지시키는 내 말에 채희는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말했다.
“···400만에 걸으라고요.”
“그래. 일단은 그렇게 해.”
채희는 나를 흘겨보며 물었다.
“만약에 기자분들이 먼저 천만 공약은 없냐고 물어보면요?”
나는 피식 웃었다.
허무맹랑해서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기자들은 영화를 봤으니까 이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이걸 기사로 접한 대중들 반응이야. 대중들은 아직 영화를 못 봤으니까. 천만은 일단 너무 먼 목표라면서 겸손하게 말해.”
“하긴···. 알았어요. 대중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잠시 후.
쉬는 시간이 끝나고 간담회 시간이 다가왔다.
채희는 위로 올라가기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꼭 제 시야 안에 있어야 돼요? 고개 슬쩍 돌려도 바로 볼 수 있게. 왜 그런지는 알죠?”
“···알았어.”
저번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를 떠올려보며, 그저 이런 것에 긴장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전을 떠올렸다.
내가 없으면 무색무취의 평범한 연기밖에 하지 못 했었던 때를.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먼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미소가 지어진다.
채희가 내 첫 담당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얘랑 쌓은 추억들은 뭔가 좀 더 아기자기하고 소중한 느낌이 든다.
***
기사들이 마구 쏟아진다.
그런데 그 기사들이 하나같이 전부 아주 호들갑스러웠다.
[올해 최고의 영화 <더 BAD>. 홀딱 반할 만한 나쁜놈들의 잔치!]
[<더 BAD> 압도적인 퀄리티, 압도적인 연기, 압도적인 연출!]
[<더 BAD> 언론 시사회, 모든 의심을 종식시키다.]
[이 배우들을 주목하라! 무명배우들과 라이징 스타의 화려한 반란! <더 BAD>]
[범죄영화의 클래식이 추가되다. 구선학 감독의 <더 BAD>]
아무리 요즘 연예 기사들의 중립성이 떨어진다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건가 싶다.
누가 보면 팬이 올린 게시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
‘기자들 반응이 엄청나긴 했지.’
간담회 때, 기자들은 아주 열띤 태도로 임했다.
질문이 끊이지 않고 쏟아졌으며, 그 질문들은 고루고루 분포돼 있었다.
영화 내적인 것에 대한 질문, 비하인드에 대한 질문, 그리고 각 배우들과 대표, 작가, 감독에 대한 질문.
그들에게선 하나라도 더 정보를 파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졌었다.
-ㅋㅋㅋ요즘 기자들 왜 이러냨ㅋㅋ 주접 뭐냐고
-이거 회사 홍보팀에서 뿌린 거 아님???
└어떤 미친 소속사가 이렇게 기사들을 뿌려요. 그것도 이렇게 많은 언론사에. 절대 아님.
-아 ㅅㅂ 궁금해지네ㅋㅋ ‘착한 역할’은 이런 기사들 안 나오지 않았음?
-정채희 원툴 영화 아니었나? ㅈㄴ궁금해지네ㅋㅋ 기자들이 전부 더위 먹은 건 아닐 거 아냐. 혹시 상영관에 에어컨 안 틀어줬나?
└킹능성 있다···!
-대체 어떻길래 이렇게 호들갑들인 거야.
기사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부분 ‘뭐 이리 주접들이냐’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물론 기사로 접했기 때문에 확 기대감이 들게까지 만들 수는 없었으나, 언론 시사회가 가진 목적을 생각해보면 목표는 이미 초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홍보를 하고, 어느 정도 볼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러한 반응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개봉한 직후에 추석 특집으로 찍은 예능 <우리의 컨텐츠>가 방송되고, 성호 삼촌과 만든 특별한 예고편까지 유튜브에 올라가면.
정말 추석 시즌 관객들을 전부 쓸어모을 수도 있을 거라고.
***
“이제 슬슬 팬미팅 준비하자.”
나는 채희에게 말했다.
저번에 채희는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뒤에 팬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여, 개봉 뒤에 팬미팅을 잡자고 했었다.
이미 팬들에게 선물할 슬로건과 팬미팅 장소 등 여러 가지는 이미 준비 중이긴 했는데, 이제 얘도 준비해야지.
연습하려면 지금부터 해야 한다.
이제부터 팬미팅을 준비해야 딱 적절한 타이밍에 질 좋은 팬미팅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 네. 이제부터 준비해요.”
채희는 왜 그걸 이렇게 말하냐는 듯 의아함을 담아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는데, 난 저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들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설마 팬미팅 때 아무 준비도 안 할 생각은 아니지?”
“뭐···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Q&A 하고 막 얘기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배우 팬미팅에는 소통하는 게 전부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기서 보여줄 영상들도 찍어야 하고, 어떤 배우들은 노래도 부르기도 하는데··· 넌 일단 노래는 빼자. 대신 다른 거 찾아보자.”
“아, 그렇게 하는 거구나. 근데 노래는 왜 빼요? 저번엔 저보고 잘 부른다고 했잖아요.”
당연히 거짓말이지.
그때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보여줄 것들을 결정하고 연습에 임하기 시작했다.
“아! 댄스가 너무 어렵잖아요! 제가 무슨 아이돌이냐구요! 그냥 노래한다니까요?”
“노래는 더 어려우니까 이걸로 해. 내 말 믿어. 팬미팅 현장에서 팬들 자리 박차고 나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음악에 맞춘 간단한 댄스.
그리고 성대모사.
“오! 방금 진짜 똑같았다. 그쵸? 대부님, 대부님은 대부님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와. 괜찮죠?”
“···.”
그래, 이건 조오오금 귀엽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노래는 용서 못하지만 이 정도라면 팬들도 피식 하겠지.
그리고 그 외의 각종 하찮은 개인기들.
우리의 첫 팬미팅이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될지 제법 가닥이 잡히고 있었다.
***
개봉 날짜까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시기.
나는 현지와 함께 행사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빠 많이 바쁘시지 않아요? 전 괜찮은데.”
대본 리딩을 앞둔 심민정과 연습을 이어가고, 채희의 팬미팅을 준비하느라 바쁘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바쁜 건 아니었다.
더구나 현지가 활동할 동안 신경을 별로 못 써준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현재, 현지는 이미 후속곡 활동을 끝낸 거나 다름없었다.
요샌 가수들도 활동 중에 음방을 안 나가거나 적게 나가곤 했기에, 그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어서 어느 날을 기점으로 활동이 끝났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으나.
이미 음방을 포함하여 홍보를 위한 활동은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스케줄을 아예 중지한 건 아니라서 이렇게 행사를 나가고 있었지만.
“나도 괜찮아. 별로 안 바빠. 바쁜 건 네가 더 바쁘지.”
내 말은 사실이었다.
현지는 후속곡을 내고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곳이 너무 많았다.
행사, 인터뷰, 화보, 광고, 예능 등.
현재 차트에서는 송하연이 거의 제패를 해버리듯 싹쓸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현지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한창 뜨겁지.
나는 운전을 하며 그녀의 옆얼굴을 흘깃 보았다.
순한 얼굴 위로 맑은 미소가 띠워져 있다.
“많이 못 챙겨줘서 서운하진 않았어?”
내 물음에 그녀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졌다.
그녀는 앞을 보며 운전하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답했다.
“전 괜찮은데, 오빠가 신경 쓰이시면 다음에 더 챙겨주세요.”
“알았어. 약속할게.”
그런데 다음 활동은 어떻게 하지?
기세를 이어 싱글을 또 낼 수도 있고, 미니앨범을 낼 수도 있고, 아예 정규를 내는 방법이 있다.
모든 선택지엔 장단점이 있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 판단으로 이중에 하나를 선택하자면···.
“현지야.”
“네.”
“다음엔 정규앨범으로 나올까?”
언제나 열렬한 그녀의 팬들의 기세로 봐서는 그 인기가 금방 식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비록 컴백까지 시간은 좀 더 걸릴지라도 정규앨범으로 1집을 내는 것도 좋을 듯했다.
우리 회사는 투자에 인색한 회사가 아니거든.
다른 기획사들처럼 데뷔한 지 4년, 5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앨범을 내주는 그런 쪼잔한 회사가 아니라고.
“어때?”
사실 정규앨범을 물어본 데에는 송하연의 영향도 적지 않게 차지했다.
비단 지금 그녀의 미니앨범이 초대박을 터뜨리며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송하연이 보여준 성장 때문에.
내가 처음 그녀를 도왔을 때는 한창 정규앨범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녀는 그때부터 점점 성장하더니 이번 미니앨범에서 이렇게 빵! 터뜨리며 진정한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성장엔 그 외의 여러 가지 요소가 따로 있기도 했다.
직접적인 내 도움뿐이 아니라, 현지의 곡을 같이 만들기도 했고, 경험도 더 쌓이고, 그녀 스스로 더 노력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들을 제외하더라도, 앨범을 낸 가수와 그렇지 않은 가수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
나는 당장 눈앞의 이득보다는 현지가 더 성장하기를 바랐다.
내 물음에 현지는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왠지 어떠한 제안을 던졌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겠다고, 그 말대로 하자고.
우리는 그 뒤로, 계속해서 앨범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저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하며.
이젠 그녀가 뭘 해도 다 장점을 뽑아내며 좋은 앨범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눌 얘기는 더욱 많았다.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거듭하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주위를 온통 자신의 색깔로 물들이는 진짜 가수.
나는 그녀가 열광의 색깔로 바꾸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미소 지었다.
“진짜 천재는 천재라니까.”
< 언론시사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