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83화 (83/170)

< 저도 하나 더 확신합니다! >

우리가 오디션을 봐야 할 드라마의 제목이었다.

제목을 보면 알다시피, 주인공은 인터넷 방송인이고, 웹툰 원작인 만큼 성장과 성공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민정 씨가 할 ‘민유정’ 캐릭터는 인기 게임 BJ예요. 오랫동안 방송해서 애교가 있기보단 털털하고 객관적이고 때로는 자기합리화를 유쾌하게 하고, 웃기고 인간적이에요.”

“간단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파면 팔수록 굉장히 복잡하더라고요.”

“원래 사람이 다 복잡하잖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가 더 인기가 많은 거예요.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하고.”

연습실.

심민정과 나는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이전에 했던 분석을 짧게 되뇌는 시간을 가졌다.

심민정은 잠깐 대본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내게 시선을 옮겼다.

“낭중님, 질문 있는데 해도 돼요?”

“네.”

“솔직하게 말해주실 거죠? 캐릭터 고민하다가 좀 궁금한 점이 생겨서.”

“···? 네. 솔직하게 말할게요.”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의 눈매가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 캐릭터가 주인공 재능 알아보고 도와주잖아요. 나중엔 같이 떡상도 하구. 그 감정선을 좀 더 정확하게 잡고 싶어서 그런데요···. 혹시 매니저님은 어떤 마음이에요? 왠지 비슷할 걸 같아요. 제가 성장할수록 매니저님도 이득이 되는 건 맞는데, 정말 이득만 보고 하는 거예요?”

표정과 통통 튀는 말투를 보아하니, 이미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내가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하하! 소리내 웃으며 덧붙였다.

“농담이에요.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근데 정확한 마음은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다는 직업적 성취감? 아니면 본인 손으로 성장시키는 것에 대한 만족감? 뭐예요?”

그래, 필요한 질문일 수 있다.

애매하게 감정을 이해하는 것보단 정확히 알고 연기하는 게 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말씀하신 게 다 맞긴 해요. 성취감이랑 만족감도 있어요. 그리고 영화, 드라마,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있기도 하고. 또···.”

“네. 또요?”

눈을 크게 뜨고 잔뜩 집중해서 듣는 그녀.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을 이었다.

“나중엔 유대감이죠. 아무리 제 손으로 잘 키운다고 해봐야 유대감이 꽝이면 만족스럽지 않을 테니까요. 다행히 아직까진 그런 적이 없네요. 운이 좋은 건지.”

나를 초점으로 맞춘 질문을 더 이어가려는 듯한 그녀에게, 나는 재빨리 입을 열어 캐릭터에 초점을 맞췄다.

“민유정 캐릭터도 마찬가지예요. 주인공이랑-“

난 그렇게 분석을 이어갔고.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웠다.

“민유정이 어떤 마음인지 이제 조금은 이해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쉽다. 만약 제가 도움받는 역할이었으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역할은 정말 너무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항상, 매번이요.”

그러면서 눈썹을 씰룩거리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바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그녀가 나를 잡은 게 아니라 내가 그녀를 잡은 거였다.

이미 실력이 올라와서 비상을 앞두고 있었지 않은가.

먼저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을 뿐.

물론 비상하는 속도를 내가 더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빨리 연습이나 시작하죠.”

“네, 낭중님.”

우리는 그렇게 오디션 날이 다가올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이어갔다.

***

제작사 ‘고려 스튜디오’.

대표와 윤형진 감독, 그리고 각색 작가와 조연출, 캐스팅 디렉터까지 다섯 명이서 오늘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고작 하나의 조연일 뿐이지만 그 조연 캐릭터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이렇게 대표까지 주요 제작진들이 모인 것이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연기를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 하기도 했고.

“지원자 분들이 엄청 많네요. 이거 다 보려면 정말 눈 빠지겠는데요?”

각색 작가의 말.

다행히 그 많은 지원자들이 모두 허수는 아니었다.

어중이떠중이로 채워진 숫자가 아니라,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배우들도 몇 있었고, 이미 인지도가 쌓인 유명한 배우들도 있었다.

그리고 퍽 흥미가 가는 배우 역시.

고려 스튜디오의 임대표는 지원 서류들을 빠르게 훑어보며 말했다.

“이번에 그 친구도 온다던데. 정채희 키운 매니저가 새로 들인 배우.”

“아이돌 하던 분이죠. 음. 이름이 뭐였더라?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요.”

미간을 찌푸린 조연출의 말에 캐스팅 디렉터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심민정이요. 그런데 별로 기대할 것도 없겠더라고요. 예전에 드라마 출연한 거 봤는데 영 별로였어요.”

조소하듯 입꼬리를 한쪽만 올린 그의 말에 스멀스멀 피어나려던 모두의 기대감이 팍 식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늘 오디션 지원자들 중에 기대할 만한 배우들은 따로 있었으니까.

애초에 이 오디션이 급하게 잡힌 만큼, 모든 배우 지망생들에게 기회가 열린 것은 아니었다.

심민정도 HJ소속이 아니었다면 이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오디션 시작할까요?”

대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오디션장 안으로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

차례를 기다리는 복도.

박한울은 심민정에게 연습할 때 했었던 얘기들을 다시 한번 주지시켜줬다.

주의해야 할 것,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디테일 같은 것들.

심민정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심적으로 굉장한 안정감을 느꼈다.

이미 부담과 긴장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더더욱 마음이 편해진 것.

‘어떻게 연습실에 있는 것보다 더 편하지?’

아마 자신의 앞에 있는 매니저와 함께 완벽하게 준비한 덕분일 터.

다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이들의 표정은 너무 달랐다.

애써 긴장을 하지 않는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을 가장하거나, 잔뜩 긴장하며 겁을 집어먹거나.

이렇게 박한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오디션은 계속 진행되었고.

마침 그녀의 차례가 되어, 번호가 불렸을 때.

심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불렀다.

“낭중님.”

“네.”

“저 지추라고 불러주세요. 지금이야말로 낭중지추의 힘이 필요할 때예요.”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내세요, 지추 씨.”

“고마워요.”

환한 미소를 띠우며 그녀는 몸을 돌렸다.

자신감이 더더욱 충만해진 채로 걸음을 옮겨, 오디션장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심민정입니다.”

그녀는 오디션을 평가할 그들을 눈으로 찬찬히 훑어봤다.

오디션장엔 그리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지 않고 있었다.

이미 앞선 배우들에 만족했는지, 아니면 애초에 이쪽에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건지.

일견 일을 다 마치고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신인배우라면 예상을 벗어난 이런 광경에 당황했을 수도 있겠으나.

자신은 이래봬도 웬만한 굴욕은 다 겪었던 병풍 아이돌 출신.

이런 건 정말 눈 하나 까딱할 만한 일도 아니다.

애초에 박한울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자신에게 기대를 걸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16번 씬 해주시면 되세요. 대본 보고 하셔도 됩니다.”

일말의 기대 없이 건조하기만 한 목소리와 눈빛들.

심민정은 이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몰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어갔다.

눈매는 자신을 바라보는 저들처럼 나른하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하고 총명하게.

온몸에 힘을 다 빼는데, 허리와 어깨는 똑바로 펴지게.

그녀는 마찬가지로 힘이 쫙 빠진 목소리로, 그러나 어딘가 굳은 심지가 느껴지고 귀에 또렷하게 박히는 목소리로 대사를 내뱉었다.

“방송하는 거 재밌어요? 그럼 좋죠. 그런데 저한테 조언 구하지 마세요. 제가 뭐 방송 오래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막 조언할 지위가 생기는 건 아니라서요. 그런데··· 참고는 하셔도 돼요. 저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씀드릴게요.”

그녀의 바뀐 분위기처럼.

느슨했던 이곳의 공기 또한 순식간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

마지막 배우가 탁,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기지개를 켜거나 굳은 목을 뚜둑, 풀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전히 한 사람의 얼굴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있었으니.

그녀의 연기를 본 뒤부터는 대체 어떻게 오디션을 봤는지 모르겠다.

거의 정신을 반쯤 놓아두고 있었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건 임대표였다.

“전 한 명이요.”

확신에 찬 목소리에, 다른 이들도 정신을 차리고는 한 명씩 입을 뗐다.

“저도 한 명입니다. 심민정.”

“저도 심민정이요. 이렇게 보니까 그 매니저에 대한 말들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네요.”

“9점은 세 분, 그리고 8점은 다섯 분 계시고요. 10점은 한 분, 심민정 배우입니다.”

그렇게 모두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지자, 그제서야 이들 사이로 피식피식 웃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기회는 우리가 잡은 것 같은데요?”

윤형진 감독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의 손엔 이미 심민정의 지원 서류 하나만이 들려 있었다.

지원 서류를 샅샅이 훑은 감독은 문득 생각난 말에 캐스팅 디렉터를 쳐다봤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하셨죠?”

캐스팅 디렉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고, 임대표는 감독의 질문에 대신 대답했다.

“기대할 것도 없고, 영 별로였다고 하셨죠.”

오디션을 보기 전, 심민정을 두고 그가 한 말이었다.

“저, 그게···.”

캐스팅 디렉터의 한껏 당황한 모습을 보며, 임대표는 대소를 터뜨렸다.

그녀의 재능을 다른 누구라도 알아봤으면 그녀는 애초에 HJ엔터에 없었을 테니, 사실 캐스팅 디렉터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알아본 사람이 대단할 뿐이지.

임대표는 웃는 얼굴 그대로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합격 통보하죠. 더 고민할 것도 없겠네요.”

***

심민정의 합격 소식을 오디션 당일에 통보받았고, 우리는 기쁨을 제대로 즐길 틈도 없이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완벽 위에 완벽을 더하는 연습.

그녀는 이미 그 찬란한 재능을 가지고서 오래도록 연습을 거듭해왔었기 때문에, 내가 기본적인 연기 실력까지 손댈 필요까지는 없었으나.

가뜩이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좀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만들 수는 있었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돼.’

나는 요새 기대할 것들이 너무 많아 입이 항상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것 하나.

“오빠, 저 괜찮아요? 좀 이쁜 것 같아요?”

<더 BAD>의 언론 시사회.

전에 자신감을 가지라 했던 말에 정말로 불안감을 싸그리 지워버린 모양인지, 채희는 밝은 표정으로 허리와 어깨, 다리를 배배 꼬며 포즈를 취했다.

다소곳하게 꾸민 자신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든 모양인데, 과연 스타일이 성격까지 다 커버해주지는 못하나 보다.

참 외모는 이렇게 예쁠 수가 없는데.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돌렸다.

“예상 질답은 다 외웠어?”

“네, 한 번 체크해보실래요? 그리고 거기 안 나온 질문들 받아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래봬도 제가 드라마 제작발표회 경험이 있잖아요?”

그게 내가 더 안심이 되는 이유였다.

채희가 이렇게 안 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전에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막상 들어가니 하나도 안 떨고 잘 대처했던 기억이 있다.

중간중간 나랑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아직도 그때 그 여유로웠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오히려 웃고 있었지.’

우리가 이렇게 대기실에서 평화롭게 대기하고 있을 때, 구선학 감독님과 조수연 작가님, 그리고 제작사 대표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는 바로 그들이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고.

우리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이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음···. 채희 배우는 답변 준비 잘 하셨습니까?”

정장을 입은 구선학 감독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었다.

한창 땡볕 여름이라 밖이 많이 덥긴 하다만, 땀을 흘리는 게 꼭 더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표정만 보면 무슨 청문회를 앞둔 사람이라 해도 되겠다.

그리고 그건 작가님과 대표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짜 이 사람들이 왜 이럴까.

“어··· 저··· 혹시 긴장되세요?”

채희가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묻자, 감독님은 기계적인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네. 제가 긴장을 좀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하하. 말은 더듬으면 안 될 텐데···.”

기자들의 질문이 벌써부터 두려운 모양이다.

하긴 엄청난 스타 작가들 가운데에서도 제작발표회만 되면 사시나무처럼 손을 떠는 작가도 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생각에 떨릴 수도 있지.

또한 같은 시기에 경쟁하는 이영진 감독 영화에 대한 질문도 날아올 수도 있어서 더 떨릴 거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이미 완전히 패배했다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대표님과 작가님도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을 어깨에 짊어진 사람으로서 부담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더구나, 배우들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으니 잘 되지 않으면 온전히 자신들 책임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

내가 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수연 작가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불렀다.

“···박실장님.”

“예?”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서며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실장님 예측이 지금까지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요. 저희 오늘 잘할 수 있을까요? 바보 같이 보이진 않겠죠?”

내가 그런 부분까지는 예측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변을 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일 테니까.

“그건 모르겠는데, 하나는 알 것 같아요.”

질문은 작가님이 하셨는데, 감독님과 대표님까지 숨죽인 채 내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진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 사람들아.

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를 보면 기자들이 극찬밖에 안 할 거라는 거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요.”

내 말에 채희가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도 하나 더 확신합니다! 우리 영화 천만 돌파할 거예요!”

“···!”

“···!”

“···!”

내 말에 살짝 안색이 펴지려던 그들의 얼굴은.

갑자기 몹시 파리해져갔다.

< 저도 하나 더 확신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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