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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82화 (82/170)

< 잘 안 돼도 너무 기죽지는 마요. >

웹툰과 웹소설을 드라마로 만드는 건 이제 추세라고 하기에도 뭐한, 일반적인 방식이 됐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드는 게 성공할 확률이 높은 이유를 분석해보자면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일단 원작으로 재미가 증명됐다는 점, 그리고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 원작의 팬들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점, 홍보 또한 효율이 월등하다는 점 등이 있다.

반면 이렇게 성공 요인들이 명확한 만큼 실패 요인 또한 명확하다.

원작의 팬들을 실망시키는 허접스러운 연출, 혹은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변한 설정, 캐스팅 미스, 원작의 흐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스토리.

즉, ‘드라마로 각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등의 고집과, 원작에 대한 존중이 없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꺾고.

원작을 잘 따라가고 잘 살리기만 한다면 실패할 확률은 극도로 줄어든다는 거다.

이 업계에서도 여러 시행착오들을 직접 겪어보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며, 이제 노하우가 생겼다.

그러니, 몇 년 동안이나 계속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웹툰, 와 계약한 제작사는 완전히 대박을 따놓은 셈.

원작자가 팬인 덕분에, 조연으로 내정된 배우인 김혜진 또한 완전히 살 판이 나버렸다.

원작자가 캐스팅에 끼치는 영향력이 거의 없기야 하지만, 애초에 캐릭터를 만들 때 김혜진을 떠올리며 만들었기 때문인지,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높은 게 미리 내정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단독]배우 김혜진, 한강 공원서 진한 키스~ 상대는 유부남?」

커다란 문제가 터져버렸다.

가만히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성공을 보장할 수 있었는데, 하필 이때 불륜을 들켜버린 것.

각종 권모술수가 난무한 연예계 특성상, 기자가 무작정 뒤를 캐다가 우연히 포착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이미 알던 것을 터뜨린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사진을 기자에게 건네준 것일 수도 있었으나.

그건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

제작사에게 중요한 건, 어쨌든 이 일이 터져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아무리 사랑이 죄가 아니라지만 이걸로 드라마에 피해 끼치는 건 죄지. 얼마나 큰 계약인데 이게.”

제작사 ‘고려 스튜디오’.

대표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혜진은 무척이나 깔끔한 과거와 착한 인성,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로 인기를 끌었는데, 불륜은 그 모든 걸 까맣게 뒤덮을 만큼 큰 이슈였다.

이대로 드라마에 들어갔다간 인기있는 원작의 드라마건 뭐건 가라앉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대표의 앞에 있던 윤형진 감독은 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도 촬영 들어가기 전이라 다행이죠. 배우야 새로 뽑으면 되니까.”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심장이 철렁했지만 아직 촬영에 들어가기 전이라 수습하는 것도 빨랐다.

오히려 지금 터져서 다행이라는 입장.

마치 희소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회의는 썩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캐스팅을 새로 해도 되고, 오디션을 해도 되는데 어떤 게 더 편하시겠어요? 아무래도 캐스팅이 더 빠르고 편하겠죠?”

대표의 물음에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디션으로 뽑는다고 하면 어차피 캐스팅하려는 배우들도 다 하려고 할 텐데요.”

“음. 그렇긴 하겠네요. 작품이 작품이니···. 그럼 그냥 오디션으로 하시죠.”

“예.”

아주 간단하게 결론이 도출됐고, 쉽게 결정이 되었다.

여러모로 합리적이기도 했으니.

모두가 성공을 확신하는 작품의 조연 역할.

그리고 원작의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캐릭터.

또한, 작가의 개인적인 팬심은 안타깝게 됐으나 어쨌든 그 팬심이 듬뿍 담겨, 매력이 철철 넘치게 된 캐릭터.

이 역할을 오디션으로 뽑는다는 소식은 아침 일찍부터 이곳저곳으로 쫙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사건사고가 마를 날이 없다는 연예계에서 또 하나의 이슈가 발생했으나.

정말로 연예계에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던 만큼 그리 큰 충격은 없었다.

다른 것들에 비하면 이건 양반이지.

아무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제작사가 오디션을 보기로 결정했다는 것 하나.

나는 이미 그 작품을 진작에 살펴봤었고, 이 역할을 심민정이 하기에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생각했었다.

성공할 수 있는 작품, 대중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남을 만한 캐릭터, 그리고 심민정이 오디션을 보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적당한 비중의 조연.

무척 욕심이 났으나, 내정된 배우가 있었기에 성공할 걸 알고서도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기회가 생겨버렸으니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출근하자마자 최팀장님에게 곧장 직행하여 말했다.

“팀장님, 김혜진 배우 뉴스 보셨죠?”

“왜? 그거 하려고?”

최팀장님의 눈빛이 번쩍 빛나는 듯했다.

최근 송하연이 대박이 나는 바람에 엄청 바쁘게 일하고 있을 텐데 아침부터 이런 눈빛이라니.

이 사람도 일 욕심이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네, 이거 꼭 해야 돼요.”

팀장님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거 노리는 사람이 많을 거야.”

내 안목으로 성공할 작품을 미리 알아봤던 전과는 달리, 이건 모두가 주목하고 침을 흘리는 작품의 역할이다.

당연히 경쟁률이 어마어마하겠지.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역할을 제대로 살리는 데에 집중한다면 경쟁률이 얼마나 되든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경쟁률 같은 숫자가 아니라, ‘그 역할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였으니까.

오히려 이렇게 오디션을 보는 게 우리에겐 무조건 좋았다.

캐스팅으로 갔으면 우리한테 답이 없었지.

아무래도 연기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그래, 되면 무조건 좋지. 오디션 떨어진다고 해서 손해도 없고.”

의욕만반의 얼굴인 최팀장님.

“그럼 바로 진행할게요?”

“그래.”

나는 바로 승낙을 받아내곤, 뒤로 돌아 심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듯, 얼굴에 화장기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순두부 같이 깔끔하고 연한 피부가 주위에 광채를 뿌린다.

아니, 표정이랑 눈빛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건가?

심민정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손을 보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곤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더니 환하게 반색한다.

대본을 찾은 모양이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곧장 물었다.

“저거 맞아요?”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수준이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서 좋긴 한데, 우리가 이제 하려는 캐릭터의 싱크로율과는 많이 떨어지긴 했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일단 읽어보세요. 역할은 ‘민유정’이에요.”

내가 대본을 건네주기 무섭게 그녀는 의자에 앉아 후다닥 대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나는 대본을 읽는 그녀를 보며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다시금 떠올려봤다.

일단 심민정은 유현지와 송하연처럼 아담하고 여리여리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정채희처럼 청바지 광고 하나로 일본 전역을 들썩거리게 만들 정도도 아니다.

원작 캐릭터의 외모는 채희 쪽과 가깝고, 원작 캐릭터의 성격과 분위기 또한 심민정과 싱크로가 잘 맞지도 않다.

싱크로율만 보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보통의 수준.

웹툰 원작 드라마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캐스팅의 싱크로율’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심민정이 오디션에서 합격할 확률은 한없이 낮기만 하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하면 얘기가 다르지.’

지금도 봐라.

역할을 알려주니, 대본을 읽으면서도 눈썹이 씰룩거리고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해서 읽으며 캐릭터가 몸에 씌워지고 있는 거다.

방금 전까지 과즙이 터지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이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엔 웹툰과 대본 속에 있던 ‘민유정’이 튀어나와 있을 뿐이었다.

한 장, 그리고 한 장.

자세하게도 읽던 그녀는 대본을 끝까지 읽고서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서는 이미 자신감과 흥분으로 충만해 있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역시 우리 낭중님.”

“마음에 들어요?”

“네! 엄청 마음에 들어요!”

“이거 웹툰 원작인 건 아시죠?”

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데, 의욕이 넘치는 표정은 여전하다.

“알고는 있는데 보진 않았어요. 그래도 자신 있어요! 대본대로만 하면 되죠! 그리고 웹툰도 틈틈이 읽으면 되고요! 우리 낭중지추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그놈의 낭중지추.

아무튼 나는 본격적으로 대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이 역할에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니까.

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여주며, 이 자리가 갑자기 비어버린 거라서 오디션까지 시간이 얼마 없고, 경쟁률 또한 엄청 높을 거라는 것까지 모두 얘기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는 말을 듣는 내내,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드글드글한 눈빛.

이미 흠뻑 빠져버린 모양이다.

‘하긴 재밌긴 하지. 캐릭터 매력도 확실하고.’

그녀는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바로 입을 열어 내가 길게 풀었던 말을 간단하게 축약했다.

“그니까 열심히 잘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너무 심하게 축약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입꼬리를 시원스럽게 말아 올리며 말했다.

“알겠어요. 한 번 해봐요.”

“그럼 바로 분석부터 시작할까요?”

“네.”

***

추석이 다가오며, 이영진 감독의 영화 <착한 역할>과 구선학 감독의 영화 <더 BAD>의 홍보가 시작됐다.

두 영화 모두 범죄를 다루는 나쁜 캐릭터들의 영화.

관객들의 수요가 겹칠 테니, 양쪽 모두 초장부터 기세를 가져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데 사실 감독이나 배우들이나, 이름값에서 우리가 찍은 <더 BAD>가 밀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저쪽은 주인공 원톱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출연진들이 정말 짱짱하거든.

그러니, 양측의 예고편을 모두 본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들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 급 차이 너무 심한데?

-스타급 배우진들 VS 영화 처음 출연하는 정채희랑 박송이+듣보잡 배우들ㅋㅋ 가슴이 웅장해진다.

-정채희 항상 작품 잘됐었는데 이번엔 타이밍이 안 좋은 듯;; 그래도 예고편 보니까 ‘더 BAD’도 재밌을 것 같긴 함.

-정채희가 아무리 빨리 컸어도 저 라인업엔 못 비비지ㅋ

우리의 영화에서 다른 배우진들은 대부분 내가 아버지께 전달한 리스트에서 뽑은 배우들.

그러니 인지도 측면에서 비교가 되겠나.

우리를 응원해주는 팬분들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는 이미 시작부터 지고 들어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어떡해요? 반응 너무 안 좋은데.”

유튜브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녹화하러 가는 길.

채희는 잔뜩 심각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 채희가 있는 뒤쪽으로 슬쩍 돌아보는데, 중간에 시야에 걸친 로드 매니저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로 경직돼 있었다.

영화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흥행을 자신했으나, 막상 이렇게 네티즌들의 반응을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되니 느껴지는 게 또 다른 모양이다.

“우리 관객들 다 뺏겨서 100만도 안 나오면 어떡해요? 100만도 낮은 건 아니긴 한데···.”

그런데.

나는 침울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는 그녀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이런 반응을 봤다고 해도 그렇지.

“채희야, 너 맷돌 손잡이를 뭐라고 하는 줄 알아?”

“···하지 마요, 진짜. 하나도 안 똑같으니까.”

“어이라 그래. 어이.”

“진짜 농담 아니거든요?”

미간을 찌푸리며 날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이가 없다고. 지금 네 반응이. 우리 촬영했던 거 기억 안 나? 너 포함해서 다른 분들 연기했던 거 다 까먹었어?”

정작 가장 감탄을 자아냈던 연기를 선보인 장본인이 이러니 더욱 어이가 없는 거다.

얘는 자기가 했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나 보다.

“네?”

“그런 걱정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에서 해야 한다는 거야.”

지금 저쪽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넷상에서의 반응을 보며 ‘그럼 그렇지’하며 자만하고 있을지,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흘리고 있을지, 그도 아니면 불안함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지.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예상했었잖아.”

“그렇긴 하죠···?”

“우리가 노린 건 애초에 개봉한 다음이었어. 관객들 입소문 타는 거.”

그때부터 양상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할 거다.

촬영하는 걸 직접 지켜보기까지 했으니, 이는 예상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행복하게 기다려. 그리고 원래 반전이 더 재밌는 법이야.”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채희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하긴 오빠 말 틀린 적 없었으니까···. 근데 이렇게 하고 진짜 폭삭 망하면 다음 작품은 진짜 완전 잘되는 거 골라줘야 돼요?”

그래도 고르지 말란 말은 안 한다.

“폭삭 망하면 다음부터는 내가 고르면 안 되지. 내 감도 끝났다는 건데.”

그만큼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반드시 대박날 거란 걸.

“그렇다고 그런 말까진 하지 말고요! 그냥 알았다고만··· 아니야! 이거 잘될 거예요! 진짜 무조건!”

“···귀청 떨어지겠네.”

나는 갑자기 커다래진 그녀의 목소리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말에 크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만약에 잘 안 돼도 너무 기죽지는 마요. 다음에 잘 고르면 되죠.”

하여간에 정채희.

정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 잘 안 돼도 너무 기죽지는 마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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