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79화 (79/170)

< 이게 방송에 나가면... >

너무 바쁘게 일하고 있다 보니,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찌뿌둥하다.

“으어···.”

앞으로도 얼마간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처럼 바쁘겠지.

그런데 어쩔 수 있나.

바짝 바쁜 시즌이 꼭 있기 마련이니.

그래도 이때만 지나면 또 괜찮아질 것이다.

곧 영화 홍보를 다닐 채희의 스케줄은 로드 매니저와 부담을 나누면 됐고, 현지의 활동은 이미 로드 매니저들이 많이 부담을 하고 있었으며, 심민정은 대본을 골라주기만 하면 그 뒤부터는 별 걱정이 없으니까.

성호 삼촌이 영화를 촬영하는 것과 송하연이 미니 앨범으로 활동하는 건 내가 케어할 일이 아니기도 하고.

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나갔다.

그런데, 아침부터 아버지의 표정이 영 별로였다.

“왜 그래요?”

마침 잘 물어봤다는 듯이 아버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

“큐빅엔터 이대표 말야. 아주 지랄도 그런 개지랄이 없어. 원래 심민정한테 잠깐 휴식 기간 줬다가 재계약하려 했다고 개소리를 하더라고. 해체 기사 나간 지 하루 만에 그렇게 홀라당 가져가는 게 말이 되냐고 상도덕 운운하더라니까. 아주 그냥 전화로 잡소리를 늘어놓는데 열이 확 뻗쳐가지고 말이야.”

진정 개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내 물음에 아버지는 입매를 길게 말아 올리며 킬킬 웃었다.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슈퍼스타로 잘 키울 테니 놓아줘서 고맙다고 했지.”

역시 아버지였다.

내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닮은 모양이다.

그쪽은 뒷목 잡았겠는데?

“아, 그리고 있잖아.”

“네.”

“김대표가 너랑 같이 식사 한 번 하고 싶다는데?”

언제 열받았었냐는 듯 이젠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그런데 김대표면 설마 YU엔터?

“김대훈 대표님이요?”

“그래. 샴페인 노바 일로 고맙다고 하더라고.”

이번에 추석특집 ‘우리의 컨텐츠’에서 샴페인 노바를 게스트로 부른 것 때문.

어떻게 할 것인지 기획까지 전달했으니 아마 그 의도와 이로 인한 결과까지 예측할 수 있었을 터.

‘그릇이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니.’

큐빅엔터는 심민정을 데려간 걸로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YU엔터는 그 일을 마음에 품고 있지도 않는 듯했다.

당연히 배가 아프고 후회가 되긴 할 터이나, 김대표님은 애꿎은 곳으로 원망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다.

현지가 두 개의 후속곡을 발표하며 더욱더 큰 폭으로 성장한 뒤에 마주친 YU엔터의 팀장과 실장은 심기가 매우 불편한 티를 내긴 했는데, 아무튼 대표의 그릇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알겠어요.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이 기회로 거물이랑 알게 되면 저야 좋죠.”

아버지의 얼굴 가득 함박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아티스트들의 성장에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처럼, 아버지도 나를 보며 그런 감정을 느끼시는 듯했다.

사실, 나는 내가 알아서 성장했는데.

***

송하연의 촬영을 맡은 촬영팀은 무척이나 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할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심플한 동선.

작업, 고민, 작업, 고민의 반복.

미니 앨범 컴백이 임박했기 때문에 그녀도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긴 했는데, 그건 촬영에 포함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나 관찰 예능과는 성격이 달랐으니까.

다만 동선이 심플하다는 게 촬영분이 심플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스탭들은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으로 곡을 만드는지 피부로 느끼며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뿐이랴.

그녀의 작업을 계속 촬영한다는 것은 그녀의 노래를 계속 들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

스탭들은 근래 들어 가장 편하게 일을 하면서도 가장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와···.’

조연출 유피디는 그녀의 기타를 들으며 눈빛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처음에 그녀가 박한울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 때는 조금 의아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피디는 그녀가 어째서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리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작업실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 노트의 가사를 보며 가볍게 기타를 튕긴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힘을 뺀 것이 느껴지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꼭 이겨내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 강해질 필요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모두가 꿈을 이루는 건 아니니까.”

“아프고 힘들 때면 여기로 와서 기대. 잠깐 쉬어가도 괜찮아.”

그렇게 호화스러운 순간순간을 보낸 유피디는 그녀가 잠시 쉬는 틈을 타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만들고 있는 곡은 어떤 곡이에요?”

유피디는 첫 번째로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그녀는 어째선지 이런 간단한 질문에 머뭇거리며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겨우 입을 떼어내며 말을 꺼냈는데.

지금까지 그녀의 모습을 쭉 지켜본 유피디의 입장에선, 그녀의 대답이 이미지에 대한 조금의 계산도 없이 100%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란 걸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게’라는 곡의 직캠 영상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학생분들의 댓글을 봤어요. 한두 개도 아니고 꽤 여러 개나요. 그런데··· 그 노래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로하는 곡은 아니거든요. 저는 그런 의도로 만든 게 아닌데··· 대체 얼마나 힘들면, 저를 얼마나 좋아하면 이 곡으로 그런 위로를 받을까 생각하니 너무 고맙더라고요. 또 너무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힘들어하는 학생분들이나 그리고 학생이 아닌 분들까지 조금이나마 더 위로가 될 수 있는 곡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어요.”

가사를 들어보면 그 의도는 이미 짐작을 하고도 남았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그녀가 더 멋지게 느껴졌다.

‘이게 방송에 나가면···.’

유피디는 그녀가 앨범 홍보와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모습이 방송에 나가면 이어질 파급효과 또한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난리 나겠네.’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한울 실장님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글쎄요. 그건···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퀄리티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만들고 싶어요. 하하. 고생을 사서 하죠? 요즘 매니저님 덕분에 음악을 너무 쉽게 만들어서 그런가 봐요.”

그리고 송하연의 인기 역시, 또 한 번 치솟을 것도 예정된 수순이었고.

***

나는 대본으로부터 예고편으로 제작할 대사들을 모두 뽑아 성호 삼촌과 채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연습할 시간도 필요하고, 장소 선정이나 의상 같은 문제도 있었기에 당장 바로 컨텐츠를 제작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미 찍은 것을 토대로 만드는 것이기에 그리 큰 창의성은 요구되지 않았으나, 이렇게 준비하는 것까지 내가 다 하면 나는 정말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다.

하여, 나는 일단 우리가 찍을 장면들을 전달해주기만 하고, 현지의 옆에 붙어 컨텐츠 제작을 돕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샴페인 노바입니다!”

“안녕하세요, 샴페인 노바입니다!”

YU엔터의 연습실.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

우리 회사의 연습실보다 더 넓고 쾌적하다.

이곳에는 나와 현지, 그리고 샴페인 노바밖에 없었다.

물론 카메라는 곳곳에 다 설치가 되어 있었지만, 여타 다른 댄스 컨텐츠들과 우리가 만들 컨텐츠의 차별점은 그녀들 사이의 관계성과 스토리.

신피디님은 이 작업에 있어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나를 제외한 모든 스탭들을 이 안에 들어올 수 없게끔 했다.

방송국 스탭들이나 회사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으면 신인인 그녀들이 신경 쓸 게 뻔하잖아?

우리는 그녀들의 편안하고 리얼한 모습이 담기기를 원했다.

“오랜만이에요. 오늘 모인 이유는 다들 아시죠?”

나는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경청하는 그녀들에게 설명을 이었다.

섭외를 할 때 이미 기획사로 많은 것을 전달을 해서 그녀들도 알고 있긴 할 텐데, 이것도 엄연히 방송이거든.

필요한 과정이라는 거지.

“현지까지 일곱 명이서 댄스 영상을 제작할 거예요. 여러분들이 다 같이 자유롭게 안무를 만들고 찍으시면 돼요. 그렇다고 짧은 기간 동안 노래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만들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2분 안쪽으로만 해주시면 돼요. 이 정도의 길이로도 안무만 잘 짜면 컨텐츠로서의 가치는 충분할 테니까요.”

막내 이민지는 손을 번쩍 들며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질문 있습니다!”

“네.”

“자유롭게 만들라고 하셨는데, 그럼 실장님의 도움은 받을 수 없는 건가요?”

그 질문에 모두가 숨을 딱, 멈추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만, 현지만이 생글거리며 내 입을 바라볼 뿐이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곡 추천도 드릴 수는 있고, 각 멤버마다 어필했으면 좋을 것 같은 부분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긴 한데, 그건 여러분들이 선택하시면 돼요. 강요는 아니라서 원치 않으시면 안 들으셔도-“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샴페인 노바의 리더인 박수현은 크게 눈을 뜨며 손과 고개를 함께 저었다.

“아, 아니에요! 강요해주세요! 시키시는 대로 할 테니까···!”

이에 다른 멤버들의 고개가 위아래로 격하게 움직였다.

“맞아요! 그럼 혹시 장단점 같은 것도 봐주시는-”

그 반응들이 너무 격하고 귀여워서 난 웃음을 참으며 슬쩍 장난을 쳤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 지적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혹시 영향이 갈 것 같으면 안 할게요.”

뭐, 반응은 역시 뻔했다.

“아뇨! 영향 최대한 많이 가게 해주세요!”

“영향받고 싶어요!”

“얼마든지 지적해주셔도 돼요! 계속 지적해주세요!”

그녀들의 격한 반응에 현지의 입에서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니, 왜 웃어요. 우리 진짜 진심인데.”

“현지야, 너 이게 익숙해서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거야. 우리가 평소에 널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맞아. 그래서 섭외 소식 듣고 혹시나 하면서 얼마나 기대했는 줄 알아요?”

“현지가 웃을 수도 있지! 이게 누구 때문에 생긴 기횐데!”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맘껏 웃어요. 박장대소해도 인정.”

그래, 이런 모습들.

스탭들이 있으면 이렇게 자연스러운 모습들은 나오지 않았겠지.

나는 그녀들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대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제가 다 정해드릴게요.”

안무는 단 한 동작도 짤 수 없었지만, 나머지는 전부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이클 잭슨의 ‘Bad’. 2분 26초부터 곡이 끝나는 4분 8초까지, 1분 42초간의 안무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클래식한 곡.

마이클 잭슨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거의 전연령대에 통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자, 그리고···.”

나는 그녀들의 얼굴을 스윽 훑어보며,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이제 샴페인 노바가 변신할 시간이 왔다.

청순 걸그룹에서 대중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 댄서들로.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더욱 살리며 한 단계 위의 레벨로.

“누구부터 말씀드리지?”

낮게 흘리는 말에 손 여섯 개가 동시에 번쩍 올라갔다.

***

연습실 안에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가진 힘을 모두 쏟아낸 샴페인 노바와 현지.

몇 명은 바닥에 철푸덕 앉았고, 몇 명은 아예 드러누워버렸다.

다들 똑같이 지친 것처럼 표정 또한 모두가 똑같았다.

힘든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밝디밝은 얼굴들.

누가 보면 연습을 열심히 안 한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상쾌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옷과 머리칼을 보면 그녀들이 얼마나 힘을 들여 연습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땀으로 푹 젖어 있었으니.

“와, 진짜 실장님 말씀하신 거 신경 쓰면서 하니까 움직임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야, 몇 시간 해놓고 벌써부터 무슨. 이제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지.”

“기뻐할 수도 있지. 표정만 보면 언니가 제일 행복해하는 것 같거든요?”

막내 이민지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아까 진짜 웃겼는데. 실장님이 말씀하시니까 막 핸드폰으로 허겁지겁 받아적고. 하하!”

그만큼 그녀들의 향상심은 대단했다.

그렇게 귀담아들으며 연습에 녹여낸 덕분에, 마법과도 같은 경험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즐겁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그녀들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한 곳으로 모였다.

리더인 박수현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최소윤.

그녀는 현지에게 툭, 건네듯이 말했다.

“고마워. 우리 신경 써줘서. 안 그래도 요즘 조금은 힘들었거든.”

“아니에요. 혼자 채우긴 부족할 것 같아서 도와달라고 한 거예요. 열심히 도와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려요.”

말은 이렇게 했으나, 모두 현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인터넷에서 자꾸 비교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이었으니까.

막내 이민지는 애교 넘치는 말투로 현지에게 말했다.

“언니 고마워요. 끝까지 배려해주시구. 진짜 평생 잊지 않을게요. 언니가 우리 은인이에요. 아, 박실장님도요.”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따사로워지는 그녀들의 이러한 모습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 이게 방송에 나가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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