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니데이 심민정 >
본인의 재능을 찾는 것은 쉬울 것 같으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본인의 재능을 찾은 다음엔 쉽게 발전하기 마련이니까.
다만,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면 바로 하나.
재능이 있는 이들보다, 재능이 없는 곳에서 매달리는 이들이 훨씬, 정말 훨씬 더 많다는 것.
그나마 연습생이 되었으면 희망이 있긴 하다는 건데.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경우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애매한 재능.
이건 희망고문을 하게 만들어 쉽게 그만둘 수도 없게 만드니까.
연습실 안.
숨이 차오르는데도 제대로 소리 내어 숨을 고르지도 못하고 있는 연습생들을 바라봤다.
이번에 내가 참여한다고 해서일까? 특히나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모두 연예인이 되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과 표정.
애타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입이 열리기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마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재능은 별로 특출난 애가 없어. 그런데··· 서로 보완해줄 수 있게 한 그룹으로 묶는다면? 시너지가 날 수 있게 하려면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꽤 길었던 탓일까.
내 입이 열리지 않자 연습생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고, 나와 같은 곳에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과, 이를 지켜보는 다른 직원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박실장.”
윤본부장님이 불렀을 때, 나는 마침 생각을 다 정리할 수 있었다.
아직 모든 연습생들을 다 보진 않았으니, 있는 그대로 평가하자고.
그래도 이왕이면 같은 말을 하더라도 조금 따뜻하게.
“음. 김현준 연습생은 목소리가 탄탄하고 흡입력이 있긴 한데, 보컬로서 발전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차라리 장점을 살려서 랩을 해보는 게 나을 거예요. 댄스를 보면 특유의 리듬감이 있어서, 처음에 랩을 할 때 좀 길을 잡기 어려워도, 많은 랩을 접하고 랩의 리듬을 몸에 익히다 보면 점차 본인이 랩을 함에 있어서도-“
한 명 한 명 아주 상세하게.
단점과 장점,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잡아주느라, 내 차례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으나.
아무도 내게 뭐라 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게 다 능력을 증명한 덕분이지.
오히려 정답지를 보고 있는 분위기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허리를 팍 굽히며 인사하는 연습생들.
표정이 밝은 이들도, 안 좋은 이들도, 애매한 이들도 있었으나.
아직 다 끝이 난 게 아니다.
나는 왠종일 그들을 보며 평가지에 끊임없이 기록했고.
결국 모든 연습생들의 평가가 끝났을 때.
대뜸 얘기를 꺼냈다.
“이걸 연습생들이 있는 곳에서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는데요. 아무래도 본인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어쩌면 돌발행동일 터이나, 나는 희망고문을 주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청춘이지 않은가.
내 머릿속엔 몇 명의 연예인들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TV에서, 인터넷에서, 재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썩히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회사에 몸을 담은 사람들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음. 김현준 연습생, 이건호 연습생, 정현진 연습생, 이동진 연습생까지 네 명, 그리고 여기서 신재준 연습생이나 박선후 연습생 중에 한 명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두 명 다 포함하면 서로 시너지가 잘 맞을 겁니다. 이분들이 뭉쳤을 때 추구해야 할 색깔은 퍼포먼스 팀이에요. 개인연습을 할 때, 같이 합을 맞춰보면서 연습하다 보면-“
내 말은 어김없이 계속 이어졌고, 연습생들은 내 말에 표정이 엇갈렸다.
언급되지 않은 연습생들과 언급된 연습생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감이 어깨를 짓눌러왔으나.
그래도 그들이 우리 회사를 믿고 이렇게 청춘을 바치고 있는데,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또한 책임감이다.
“감사합니다!”
연습생들이 모두 인사하며 밖으로 나갔고.
연습실 안엔 적막이 내려 앉았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질책의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고, 누군가는 내 말을 곱씹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는 이들도 있었다.
윤본부장님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연습생들한테 좋은 자극이 됐겠네. 그래, 항상 우리끼리 알면 뭐해. 자기들도 자기 역할을 알고 시너지 좋은 애들끼리 연습해봐야 발전이 있지. 잘했어.”
이는 아마 내 돌발행동을 감싸주기 위한 변호일 터.
이후부터는 내 역할이 아닌 신인개발팀과 다른 사람들의 역할이니.
나는 스케줄을 핑계 삼아 자리를 빠져나왔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정말 약속 시간이 임박했기도 하고.
***
나와 최팀장님은 함께 HBC 방송국에 도착했고.
입구에서부터 조연출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최팀장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쪽이 우리 박한울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유피디님. 매니저 박한울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와. 정말 능력이 엄청나시더라고요.”
우리는 인사와 같은 가벼운 말들을 주고받으며 예능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가는 곳이 그쪽인지 유피디의 발걸음과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우리의 컨텐츠’라는 로고 스티커가 여러 개 눈에 띄는 곳.
그럼 저기서 책상에 대충 걸터앉아 얼굴이 흥미로 잔뜩 물든 이가 메인 피디인 신피디일 터.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그가 그 앞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레이니데이가 해체하기로 했대? 이지연은?”
나는 문득 들려온 그 말에 몸이 딱, 굳어버렸다.
“···!”
그리고 크게 뜬 눈으로 신피디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들리길 기다렸다.
“이지연은 재계약할 것 같다는데요? 그런데 나머지는 뭐 나가리죠. 원래 이지연이 혼자 먹여살린 그룹이잖아요.”
“···.”
‘나머지는 나가리.’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전율이 느껴졌다.
이런 나를 조연출인 유피디와 최팀장이 이상하게 보고 있다.
‘···표정관리 해야지.’
나는 짐짓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태연하게 걸음을 마저 옮겼고.
“어! 어이구, 오셨구나. 최팀장님인가요 이제? 승진 축하해요?”
신피디가 우리를 발견한 덕에 물 흐르듯이 넘어갈 수 있었다.
허나.
내 머릿속만큼은 무척이나 바빴으니.
‘레이니데이가 해체한다고? 재계약은··· 이지연만?’
그럼 심민정은?
심민정은 놔주는 건가?
내 심장은 증폭되는 기대감에 크게 두방망이질 쳤다.
내가 오늘 연습생들의 평가에 최선을 다하며 희망고문하지 않도록 말한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한 연예인.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연예인들을 떠올리며 가장 첫 번째로 생각났던 연예인.
심민정.
그녀는 아이돌이 아닌, 배우를 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앞으로도 쭉 유효할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배우를 해야만 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자연스러운 척 치밀하게>라는 드라마의 그 억지로 끼워넣은 듯했던 역할을 잊을 수 없었다.
대사, 캐릭터의 역할,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 모두 별로 의미가 없었으나.
그녀의 연기만큼은 그야말로 압도적.
물론, 그건 그때 당장의 연기력이 아닌, 재능으로 봤을 때의 얘기였다.
한창 그룹 내 멤버의 인성 논란으로 인해 대중들의 눈초리가 따갑기도 했고, 처음 연기 데뷔를 한 그녀도 이러한 환경에 위축이 됐는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긴 했지만.
‘욕이 어마어마했지.’
‘랩이랑 춤 연습이나 시키지 진짜 개나 소나 연기한다’라고 하는 댓글은 그나마 양반이었을 정도로.
원래 아이돌이 연기하면 대중들이 항상 더 냉정하게 보며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거의 연기를 배우자마자 급하게 투입된 듯하기도 했고, 한창 논란으로 시끌시끌했던 때였으니 재능이 발휘가 안 될 수밖에.
게다가 그룹 내에 한 명만 큰 인기를 얻어, 악성 개인팬들이 활개를 치는 바람에 팬덤의 힘도 등에 업을 수 없었다.
그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나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케이스라 생각했지.
‘그런데··· 이제는 FA라 이 말이네?’
FA시장에 나온 S급.
그러나, 아무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초특대어.
어쩌면 이건 댄스팀에 있던 유현지의 케이스보다 더 순조로울지도 몰랐다.
***
제작진 미팅은 예상대로 흘렀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이 원래 출연진의 자율적인 선택을 보장하는 것이었으니.
또한 고민하며 여러 가지 계획을 짜는 것 또한 방송의 일부.
그렇기에 우리의 미팅은 녹화 날짜와 제작비, 그리고 주의해야 할 사항과 권장할 만한 행동 등을 얘기하는 데에 그쳤다.
아, 아니. 딱 하나, 그들이 은근한 듯 강력히 권유하는 게 있긴 했다.
“듣기론 박실장님이 평소에 연예인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하던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겠죠? 방송에 얼굴 나와도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이미 팔릴 대로 팔렸기도 하고.”
안도한 듯이, 그제서야 그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예상했던 거다, 이건.
“그런데 채희 영화 홍보는···.”
“걱정 마세요. 아주 빵빵하게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연 씨 앨범도 곧 나오거든요. 한창 바쁜데 출연을 결정한 거라.”
“당연히 홍보해드려야죠. 괜찮아요, 그 정도는.”
기브 앤 테이크.
얼굴 팔릴 걸 각오하고도 얻는 게 더 크니까 출연을 결심한 거지.
“기획 같은 건 혹시 미리 생각해두신 건 있으세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특집이니만큼 쿡방이나 먹방, 브이로그는 좀 자제해주셨으면 해서요.”
신피디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걸 고민하는 것도 방송의 일부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후보를 보통 정해두긴 하거든요.”
그런데 나는 안목이 좋은 거지, 이렇게 컨텐츠를 기획하는 데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아티스트의 다음 앨범의 컨셉에 대해 기획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들이 내게 바라는 걸 명확히 하자면, 화제성과 그로 인한 시청률, 그리고 영상 조회수.
기막힌 컨텐츠를 기획하는 걸 아예 기대 안 하는 건 아니었으나,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지.
그나마 내 재능을 살리자면, 우리 아티스트들의 재능을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을 잡는 것뿐.
어쨌건 여러모로 출연진들과 회의를 거쳐야 하는 건 맞다.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네···. 그리고 웬만하면 미리 상의하더라도 리얼리티를 위해서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마시고요. 화면에 다 티가 나거든요. 이미 했던 얘기를 또 하면서 짜둔 대로 이끄는 건.”
“네. 알겠습니다.”
아마 매번 살얼음판일 것 같다.
기획을 떠넘기는 게 얼핏 편해 보여도, 막상 출연진들이 짜놓은 기획이 엉망이면 방송도, 유튜브에 올릴 영상도 재미가 없을 테니까.
그래도 이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재밌는 편집과 포맷의 신선함 덕분이지.
어쨌거나 뭘 해도 기본은 될 거라는 얘기다.
우리는 그렇게 큰 부담 없이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
미팅이 끝나고 나는 집에 돌아가 곧장 아버지께 심민정과 접촉할 방법에 대해 물으려 했다.
허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레이니데이 계약 만료 해체. 네티즌 “예정된 수순이었다.”]
[큐빅엔터테인먼트, 이지연과 재계약 결정!]
[이지연의 레이니데이 해체, 본격 솔로 활동 언제 시작하나?]
[이지연 SNS서, “레이니데이는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
이지연을 중심으로 난 기사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심민정’을 검색하고 나서야, 보이는 기사 하나.
[레이니데이 심민정, 다음 행보는 바리스타?]
기사 타이틀만 봐도 씁쓸한 마음이 절로 든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그녀가 가진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았다는 건데.
이마저도 기사에 실어버리다니.
“하여간 기레기 새끼들은 박멸되지가 않아.”
난 그녀가 일하고 있는 카페를 은밀하게 수소문했다.
기레기이긴 하나, 아주 정확한 위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거든.
어차피 찾아올 사람은 어떻게든 찾아오게끔 지역 이름을 언급하긴 했지만.
“음. 일단 한가한 편이네?”
혹시 기사 때문에 파리들이 꼬일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뜯어먹을 게 있어야 파리가 꼬이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사생이나 기자 같은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파리일 수도···?’
나는 길 건너편에서, 카페 창가에 비친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단아하게 로우 테일로 묶은 갈색 생머리.
쓰레기라고 불리는 그 회사에서 해방됐기 때문인지, 일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신 같은 얼굴.
나는 정갈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현지가 선물해준 넥타이 핀까지 착용한 채로 카페에 들어갔다.
‘넥타이 핀은 시상식에서 처음 꽂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첫인상이 중요하잖아?
정장 입고 성의를 드러내야지.
“어서오··· 오···?”
인사를 건네던 그녀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나를 알아본 듯했다.
하긴, 화제가 됐었으니까.
일반인들은 잘 못 알아보더라도 이 바닥 사람들은 웬만해선 알아보더라.
“크흠.”
나는 카운터에 선 그녀의 커다래진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면 말이다.
“박, 박한울 매니저님 맞죠!?”
그녀의 놀란 얼굴에서는 거부감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느낌이 좋다. 이렇게 되면 일이 쉬워지겠지.
아무래도 은퇴를 결심한 사람의 입장에서, 나는 불청객일 수도 있으니까.
‘유명세가 도움이 되긴 하네.’
나는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캐스팅에 대해 말을 꺼내기로 했다.
배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언급하면서.
그런데.
“와! 역시! 박한울 매니저님 맞죠? 저 연기에 재능 있는 거 맞나 보네요?”
“네?”
“일부러 저 찾아오신 거 아니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음. 일단 눈치가 없진 않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그리고 연예인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도 맞을 거고.
“일부러 찾아온 거 맞아요.”
그녀의 얼굴 위로 환하디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풀어버리며 말했다.
“저는 제가 연기 천재라고 믿었는데 아무도 안 믿어줬거든요. 소속사도, 네티즌도. 근데 매니저님이 절 찾아왔다는 건 역시 제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보신 거잖아요? 어떻게 안목이 그렇게 좋으세요? 내가 진짜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하하!”
첫인상을 말하자면, 긍정왕.
물론 좋게 말했을 때의 얘기였다.
"와... 이번엔 혼자 시작하려고 했는데, 박한울 매니저님은 못 참지."
내가 여기에 와서 입밖으로 말한 거라고는, 일부러 찾아왔다는 것 하나뿐이었는데···.
심지어 '연기'라는 단어조차 꺼낸 적이 없었다.
< 레이니데이 심민정 > 끝